2008년 12월 25일
우선 제목부터 딴지 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왜 전국단위학업성취도 평가라고 하지 않고 일제고사라고 말장난을 하냐고? 학업성취도평가는 평가의 이름이며, 일제고사는 그 평가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이 평가를 일제고사라고 부른다. 이쯤 되면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적어도 책임있는 교육당국이라면 반드시 실시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교육과정의 갱신과 각종 정책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으로서 일제고사에는 반대한다. 하물며 그런 일제고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성추행범보다 더 무거운 징계를 내리는 교육청에 대해서는 비판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
대체로 배움이 부족하면서 조중동 기사가 읽는 문자 내용의 대부분인 보수우익 어르신들은, 그래서 중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독해능력을 자랑하시는 분들은 이쯤되면 짜증이 날 것이다. 그분들은 이렇게 잘게잘게 논의하는 글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잘게잘게 잘라보자. 즉, 분석해 보자. 나는 대학에서 사회조사방법론을 강의하지만, 가능하면 그런 흔적은 안 남기고 쉽게 쓰려고 하니, 인내를 가지고 읽어보기 바란다.
1. 양적평가는 평가의 일 부분이다
우선 학업성취도와 평가를 분석해보자. 학업성취도란 학생이 목적한 바의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가 하는 것이다. 평가(assessment)란 그것을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자료의 형태로 표시하기 위해 일련의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 조사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겠지만, 크게 양적조사와 질적조사가 있다. 양적조사란 평가 대상의 수치화 가능한 속성을 측정하여 자료화하는 것이다. 질적조사란 평가 대상의 수치화 불가능한 속성을 자료화 하는 것이다. 학교의 예를 들면 시험점수는 양적자료이며, 생활기록부의 "어쩌구저쩌구"써 있는 말은 질적자료다. 실제 이 둘은 모두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에서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양적 평가인 SAT 못지않게, 교사의 추천서, 그리고 교사인터뷰 내용 등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평가의 일 부분에 불과한 이러한 양적 평가가 평가의 전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어떤 학부모도 자녀의 생활기록부상의 이러쿵저러쿵 써 있는 말에 큰 중요성을 두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담임에게 고맙거나 억하심정이 생기거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수치로 표시되는 점수에는 민감하며, 그 수치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심지어 시험점수를 내지 않는 초등학교는 마치 평가를 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 하다못해 학원시험이라도 봐서 뭔가 숫자가 나와야 비로소 안심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직장에서 수치로 표시되는 업무실적 등등이 중요한 평가요소이듯, 인간관계, 포용성, 창의성, 업무추진력 등 숫자로 표시할수 없는, 그래서 상사나 동료의 말과 글로서 표현할수 밖에 없는 속성들도 중요한 평가요소다. 그리고 갈수록 이렇게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요소들이 한 사람의 능력에 대한 인벤토리로서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서 7차교육과정에서는 질적인 평가를 강화하고,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질적인 평가를 주로 하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교육과정의 이행 정도를 체크해야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방식에 맞추어 질적인 평가가 위주가 되었어야 한다. 따라서 정말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고 싶었다면, 설문지 형태의 시험을 치는 일제고사가 아니라, 학생, 교사 인터뷰, 참여관찰 등의 방식이 더 중요하게 사용되어야 했으며, 굳이 일제고사 형식의 시험을 치게하고 싶었으면, 그 결과가 교육결과의 극히 일부분만을 반영함을 전제했어야 했다.
2. 평가는 교육과정의 일부분이다
통상 교육과정은 목표설정-교수요목작성-교재개발-교수학습-평가-피드백 순서로 이루어진다. 즉, 평가는 이 순환고리의 한 마디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왝더독 의 상황이다. 꼬리에 불과한 평가가 교육과정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무도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교육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에만, 사실은 평가의 결과에만, 아니 평가 결과에 의한 서열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 부모들은 심지어 "몇점이냐?"조차 건너 뛰어서 바로 "몇 등이냐?"를 묻는 것이다. 물론 평가의 목적중에 "선발"의 기능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어떤 순간 발휘되는 부수적인 기능이지 평가에서 항상 발휘되는 본질적인 기능이 아니다. 그렇다면 평가의 본질적인 기능은 무엇인가? 바로 교육목표가 잘 달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디에 문제가 있으며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국단위로 이루어 질수는 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과정의 전반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료수집을 위해 필요한 정도만 실시되었어야 했다. 또 10학년까지 국민공통과목들 10개의 서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10과목 모두를 각 과목에 가장 적합하고, 또 각 과목의 단원에 따라 가장 적합한 다양한 평가방법들을 동원하여 실시했어야 했다. 한국적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왝더독을 조장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위다.
3. 7차 교육과정은 학교중심 교육과정이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차수가 바뀌면서 점점 중앙정부의 결정소관이 줄어들고 각급학교의 결정소관이 늘어나고 있다. 7차교육과정은 그 최종판으로 국가수준, 시도수준, 학교수준의 교육과정을 각각 수립하게 되어있다. 국가수준에서는 학습해야 할 내용의 개요과 권장하는 교수학습 및 평가방법의 범위만 지정해 준다. 시도에서는 이수하게 될 교과의 단위와 범위만을 지정하며, 구체적인 부분은 거의 대부분 해당 학교에서 학교교육과정을 수립하여 실시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7차교육과정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평가는 학교에서 실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각 학교마다 수립한 교육목표가 다르다면 당연히 평가의 내용과 방법도 달라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전국 단위로 똑 같은 방식의 똑 같은 문항의 시험이라는 평가가 정당화될 여지는 없다. 오히려 이런 방식의 평가는 7차교육과정의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일제고사식의 전국평가가 이루어진다면, 각 학교들은 7차교육과정이 권장하는 창의성과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을 포기할 것이다. 이런 부분은 일제고사에서 측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각 학교들은 교과서를 전부 수업하지 않고 학교 교과협의회에서 협의하여 단원을 재구성할수 있게 한 7차교육과정의 요구와, 소위 일제고사의 시험범위의 압박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후자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이 사실상 국정교과서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4차 교육과정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일제고사를 보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손가락이 아파서 여기서 그만두려 한다. 그리고 다른 이유들은 이미 여러 논객들이 충분히 개진했다고 보고, 그분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무책임한 주인장)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 by 부정변증법 | 2008/12/25 07:35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