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투쟁

성자의 풍모를 지닌 예민한 지성인 전태일

해마다 11월이면 노동관련 단체에서는 전태일 열사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벌인다. 정말로 기리는 것인지 아니면 기림을 빙자하여 어떤 이익을 보기 위한 경제투쟁을 벌이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11월은 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없는 존재인 것 처럼, 치부라도 되는 것 처럼 쉬쉬하며 그 존재가 가려지고 꺼려졌던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그런 기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태일 열사의 이름과 그 정신은 점점 화석화되어간 것 같다. 참으로 그 진심을 느껴보려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으며 다만 하나의 상징, 하나의 아이콘으로 각종 노동단체들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한국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감춰진 치부도 꺼림의 대상도 아니다. 특히 노동조합을 조직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중산층이라 할 만하며 기득권층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시선을 한사코 거부하면서 여전히 자신들은 피해자이며, 아직도 배고프다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자칭 노동운동가, 노조활동가들은 여전히 전태일을 들먹이며 그 계승을 운운한다. 그들은 전태일을 살리고 죽인다. 그들은 "자기 몸에 불을 붙일 정도로" 빡세게 투쟁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분신의 행위에 어떤 종교적이고 영적인 배경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은 거룩한 하나의 희생이며 제의였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써 감추려 한다.

전태일은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고 그런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와 그 사회의 도덕과 규범이 바로잡힐 것을 요구했으며, 그것이 권력과 금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가 지키고자 한것은 '인간성'이었다. 그는 청계천 기업가들의 그 착취 행위를 '인간성'에 대한 모욕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고자 한 것이었지, 결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며, 계급의 이름으로 계급을 증오하고 공격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즉, 그는 즉자적으로 바라보이는 비참한 노동현실에 분노한  그런 단무지 투사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인간의 존엄함에 대한 그리고 참으로 존엄한 삶의 방향과 가치에 대한 철학과 사유를 발전시켜왔으며, 그 방향과 가치가 실제 현실과 괴리를 일으킬때 거침없으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 지성인이며 운동가였던 것이다. 그의 기본적인 정서는 '분노'가 아니라 '연민'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으며, 다만 어린 시다들의 처지에 가슴아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별로 더 나을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그들에게 '내어 줌'을 실천한 것이다.

오늘날의 노동운동가는 노동조합은 자기들보다 처지가 딱한 외국인 노동자나 비정규직이 내어줌을 간청할때 이를 외면하면서 "노노갈등을 조장하려는 자본의 음모에 넘어가지 말라. 우리 몫을 떼어 달라고 하지 말고, 자본가에게 너희 몫을 싸워 얻어라."고 말한다. 어느 모로 보나 요즘 민주노총과 노동조합운동은 전태일 열사의 정신과는 거리가 참 멀다.

여기, 전태일 열사가 남긴 몇 안되는 글 중 하나를 올린다. 신문에 나온 어느 시각장애 음악가를 보고 감동하여 가진 것이라고는 신체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로서 바로 그 신체의 일부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기술한 편지다. 그의 분신은 바로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자신을 고통받고 가엾은 이들을 위해 바친 것이지, 그 불붙은 몸을 내던지며 투쟁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말하자면 노동자에서 성자로 스스로를 탈정체화했으며, 그의 정신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저 핍박받고 빼았기는 노동자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도리어 그 상황에서도 내어줌을 사유할 수 있는 "주제넘은"존재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하 인용: 전태일 기념사업회에서 퍼왔다.


안녕 하십니까 저는 시내 성북구 쌍문동에 주소를 둔 청년으로써 중앙 일보 정기 구독자입니다. 주사위란에서 실명의 고난을 극복하시고, 음대를 졸업하신 두분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평범한 신체를 가지신 분들 보단 몇갑절 노력의 결실을 사회를 위해 봉사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을 때 같은 세대의 일원으로써 단군의 자손으로써 형제가 되는 두 분의 불편을 모른다. 할 수 없었습니다. 형의 앞을 못보시는 불편을 조금이라도 감해 드리기 위하여 제가 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생각 했습니다.
먼저 피조물의 제한된 능력 안에서 두눈을 만드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후진국의 맨 밑바닥에서 중진국의 지도자적 위치에서 힘찬 전진을 계속하는 조국에 감사 하면서 저의 한눈을 김형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사랑하고 보고 즐거워하며 삶의 보람을 느끼는 발전해 가는 조국 건설의 웅장하고 믿음직한 여러 아름다운 실제들을 분리된 또하나의 저인 김형에게도 보이고 싶습니다.
주사위계 선생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지게 도와주십시오.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이식을 위한 비용입니다. 얼마만큼의 비용을 요할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엔 다액을 요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처음에 기재하신 만큼 아름다운 결실을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하루속히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
난필 용서
3월 10일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부정변증법 | 2009/11/23 16:10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

징징거리지 말고 일어서자

하늘이 무너지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사민당이 권력을 잡고, 유럽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웠던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은 지식인들에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이마르 공화국이 다름 아닌 독일민중들의 손에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무너질때, 저 독일 민중들이 49%라는 엄청난 몰표로 나찌당을 여당으로 만들어줄때, 하늘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사민당, 공산당이 불법정당이 되고, 수 많은 지식인들과 사민당 정치인들이 투옥, 고문, 살해될때, 불고 몇년 전만해도 유럽의 가장 모범적인 민주정부를 가지고 있었던 독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야만의 시대로 넘어가 버릴때, 그것도 완력과 폭력이 아니라 다름아닌 민중들의 지지를 통해 이렇게 되어버릴때, 어찌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겠는가? 앞이 깜깜해지고, 차라리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지고, 또 다른 희망이었던 사회주의 소련은 노동자의 천국은 커녕 잔혹한 전체주의임이 드러나고, 한때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하이데거 같은 대철학자마저 나치에 협력하는 세상,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듯한 상황.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목숨마저 위태로와 그동안 조국에서 이룩한 모든 명성과 기반을 뒤로하고 낯선 나라로 망명을 떠나야 하는 기막힌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고, 이 고통과 시련의 의미와 원인을 탐구했고, 그 속에서 희망은 없는지 진지하게 되물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혈혈단신 미국에 떨어진 아도르노나 아렌트, 그리고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벤야민, 노벨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문호에서 일거에 제거되어야 할 빨갱이로 전락한 토마스 만...



 

전쟁이 끝나면 다 될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재빨리 친미파로 변신한 옛 나찌 잔당들이 도리어 큰소리 치면서 반공투사로서 서독의 권력을 장악할때, 그 좌절은 또 어떠했을까? 마침내 1969년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빌리 브란트는 울먹이며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나치를 물리쳤습니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1933년부터 1969년 무려 36년을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폴란드에서 무릎꿇고 사죄함으로써 드디어 독일은 정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에 비하면,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하면 우리의 87년 체제는 훨씬 덜 민주적이고, 덜 진보적이었고, 히틀러와 나치에 비하면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훨씬 덜 두려운 존재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덜 가졌었고, 또 덜 잃었다. 우리는 아직 할만하고, 희망의 여지가 많고, 힘도 있다. 이젠 징징거리지 말고, 할 일을 찾아야하겠다. 나의 만성전을 다시 살펴보며, 독일군에 포위된 벤야민의 절망을 되새기며.... 빌리브란트의 눈물을 꿈꾸며. 그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계몽의 변증법",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인류의 고전을 쓴 아도르노, 아렌트를 생각하며.... 아, 여기 사진에는 없지만, 안전한 망명지에서 다시 독일로 숨어 들어와 봉기를 일으켰으나 장렬히 산화한 빌헬름 로이슈너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민당 당원들도 생각하며....

게다가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블로그라는 무기도 있지 않은가? 1930년대 독일에서 전단지 몇장 돌리다가 총살당한 사민당, 공산당 형제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난 하루에도 수백명, 많으면 수천명에게 내 글을 돌리고 있다. 얼마나 힘찬 상황인가? 이걸 막아? 그럼 난 외국에서 영문판 블로그로라도 계속해서 싸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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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8/09/28 21:29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6)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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