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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재판... 괴물 만들기. 정치의 시작

10월 28일...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두 재판이 있었다.

하나는 촛불 참가자에게 집시법 관련 무죄가 선고된 재판이었다. 또 하나는 용산 참사 농성자들에게 유죄가 선고되고 징역 6년이 언도되는 재판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근대 국가의 근본적인 한계, 입헌주의, 대의민주주의 종점을 깨닫는다.
 
여기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조르지오 아감벤이다. 작년에 읽었던 그의 저서 "호모 사케르"가 떠오르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로마법에서 정의된 신성한 인간이란, 희생양(제물)으로 삼을 수 없지만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이미 신의 소유이므로 희생양(제물)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고, 인간 공동체의 법/권리의 보호 바깥에 위치하기에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영역에서도 배제된다. 혹은 이렇게 배제되는 조건 하에서만 공동체 안에 포함된다. 그는 예외적인 존재이며, 아감벤에 따르면 이런 예외적인 조건을 선포하는 능력이 바로 국가권력의 본질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상황은 매우 특별하다. 테러와의 전쟁, 혹은 좌파 용어를 사용하면 위험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은 예외적인 조건을 선포하는 특별한 능력에 기반하여 존립되었다. 그러나 위험이 도처에 널려있고, 보편화되어버린 세상, 예외가 정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국가권력은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이렇게되면서 권력은 이제 미시적인 현상이 된다.  예외적인 것 바깥에서 안전하게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시민(즉, 일부를 즉 호모사케르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을 시민이라고 규정할 수 있었던)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잠재적인 위험으로, 잠재적인 예외로 간주된다. 수용소는 전 시민을 대상으로, 전 영토로 확장된다. 

즉, 시민은 없다. 시민이 없으면 입헌주의 국가도 없고, 하버마스가 말한 정당성의 위기가 시작된다. 국가가 정당성을 회복하려면 예외를 선포할 수 있는 그 권능을 회복해야 한다.

여기서 아감벤과 비슷한 논지를 펼친 랑시에르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는 이제

"도덕적 분개를 일으키기에 가장 알맞게 만들어진 이 전시, 타자에게 도래한 것에 대한 고통, 고문하는 자에 맞선 공허한 증오, 이는 더 비밀스럽게 자주 이 타자의 입장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을 만들고 때때로 우리에게 고통받는 존재를 조심성없이 환기하는 자들에 대한 짜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국가는 누가 호모사케르인가를 자기가 결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권력이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했다.

촛불은 시민이다. 그러나 용산 철거민은 시민이 아니다.
촛불은 정상성의 범주에 넣어주마. 그러나 용산 철거민은 배제하겠다.
그러니까 촛불 들었던 사람들아, 너희들은 용산 철거민(그리고 어젯밤의 동대문 노점상)들과는 영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니 안심하고 기꺼이 내 품에 오라(포섭하겠다).

그리고 이제 국가는 계속하여 누가 시민이고 누가 호모사케르인지 나누려고 할 것이다. 최근 별안간 강화된 이주노동자의 추방. 불체자라는 신조어까지 유포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작년 촛불 세력의 상당수가 불체자에게 적대감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 이 모든 것이 범상치 않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조만간에 군가산점 부활 논의가 일어나면 여성을 배제하려 할 가능성이 크고, 계급이 아닌 신분이 되어버린 비정규직들도 그렇게 내몰릴 것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지금 자신들을 정상성의 범주에 넣어달라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외 이런 저런 정상성, 시민의 범주 나누기를 통해 기존의 계급, 계층의 구획을 재정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저런 소수자, 배제되는 집단과 정체성을 공유하려 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려는 노력 속에서 진정 참으로 정치적인 것이 출현할 것이다. 이미 이들과 공통성을 창출하기 어려워진 기존의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은 더 이상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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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0/30 11:14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2) | 덧글(3)

촛불로 기소되었다 무죄받은 분들, 돈 받아 가세요

엄밀히 말하면 이거 불펌입니다. 하지만 한겨레 측에서 묵인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내용은 널리 알려져야 하니 말입니다. 요즘 촛불 시위 한창 시절 끌려가서 약식 기소되었다가, 그거 거부하고 정식 재판 받은 분들의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 중 경찰들이 가장 많이 걸어 넣은 도로교통방해죄는 거의 무죄가 나오고 있습니다. 경찰들 스스로 통행로를 다 막아놓고 무슨 교통방해냐는 것입니다. 집시법의 경우는 그게 헌법상의 권리고, 규제보다는 보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뚜렷한 폭력을 행사했거나 집회 주최측이거나 하지 않으면 실상 걸어넣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걸 알기에 자꾸 엉뚱한 교통방해로 걸고 들어가는데, 일단 걸고 나서 재판정 구경 하면 쫄아서 안나오겠지, 이런 심산입니다.


천만에! 자, 무죄 받고 나오면 다음은 작은 돈이라도 받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게 한두푼 계속 모여서 안그래도 부족한 세수에 부담이 될 지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래야 시민의 기본권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참, 정부 당국자께도 팁! 자꾸 형사보상때문에 돈나가는게 부담스러우면 무리하게 체포한 경관에게 구상권 청구하세요. 그래서 사람 함부로 잡으면 패가망신한다고 알려주세요....(이하 펌글)



불구속 재판도 무죄 나오면 보상받는다

재판 결과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구속 상태로 재판받은 당신,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죄 없는 당신 데려다 생고생시킨 괘씸한 국가를 상대로 돈 받아낼 일만 남았다. 먼저 ‘형사보상청구’를 하라. 당신이 갇혀있으면서 경제생활을 못 한 데 대한 대가다. 하루당 5천원에서 일급 최저임금액의 5배(올해의 경우 3만2천원×5=16만원)까지보상받을 수 있다. 재판받은 법원 민원실에 가서 청구한다. 구속 상태에서 수사받다 무혐의 처분 받은 사람도 형사보상을 받을 수있다. 이건 해당 검찰청에 청구하면 된다.

불구속으로 재판받다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보상 제도가 있다. ‘형사비용보상청구’제도를 활용하라. 재판받느라 변호사 비용도 들고, 교통비·식비도 별도로 들지 않았는가. 무죄가 확정된 뒤 6개월이 지나면 청구자격이 사라진다는 사실, 까먹지 말자.

창고 관리 회사에 다니던 직원 김아무개씨. 지난해 회사 사장의 지시를 받고 물건을거래처에 내줬는데 얼마 뒤 바뀐 사장이 전 사장과 김씨를 절도죄로 고소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전 사장은 무혐의 처분됐으나김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결국 무죄판결을 받은 뒤 형사비용보상금 300만원을 받아냈다. 그 내역은 변호사비 250만원,그리고 하루 일당 2만5천원씩, 식비 6700원, 여비 2600원 등이었다.

김씨 경우처럼 검사가 말도 안 되는 기소를 해 억울한 고통을 겪은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라. 우리나라, 돈 많다.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행위를 당했다면, 소송 또 내라. 그래야 국가가 정신 차린다.

by 부정변증법 | 2009/08/12 23:12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촛불이 승리했는지는 몰라도 이명박은 패배하였다.

뭐, 새삼스레 작년 7월 5일의 국민 승리선언 따위를 하자는게 아니다. 그날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하늘에 거대한 스피커를 매달아 놓고, 양희은이 노래를 부르지 않나, 회상전 같은 동영상을 틀지 않나... 완전 축제를 열었었다. 그 날의 가증스러운 기억을 생각하면 국민승리선언 따위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촛불이 승리했다기 보다는 이명박이 패배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이명박의 패배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자꾸 이명박을 정상적인 정치인으로 혹은 신자유주의 제국의 마디로 작용하는 하나의 기구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정상적인 정치인이 아니며 지구제국의 마디로 작용하지도 그럴 생각도 없다. 그의 열망은 오직 하나 "대운하", "토건사업"뿐이다.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만 잡혀갈까봐 요기까지만 한다(지난 겨울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왔더니 그 사이에 통화가 안되어서 안절부절 하셨는지 전남대 윤** 교수님이 "혹시 잡혀간건 아니죠?"라는 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참 뭐시기 한 세상이다). 일제고사에 대해 말만 벙긋해도 해직되는 세상에 일제고사 채점거부까지 했던 내가 필화까지 입으면 정말 휴우....

그럼 이명박이 어떻게 패배했는지를 짚어보자.

1. 이명박은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일 수 없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신자유주의는 민족국가의 약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유연화는 노동만 유연해 지는게 아니다. 관료제 역시 유연해져야 한다. 강고한 관료제는 케인즈 복지국가의 산물이자 동맹이다. 이를 해체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븥이기는 어렵다. 공기업 선진화를 백날 외쳐봐야 소용 없다. 공교육 선진화를 백날 외쳐봐야 소용없다. 이주호의 교육정책이 맥도 추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저 노회한 교육관료들이 결코 저 철밥그릇에 철의자에 철책상을 내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만 유연해져서는 정당성 위기가 오기 때문에 저 웃사람들도 실적에 따라 파리 목숨이 되어줘야 신자유주의가 돌아간다. 관료를 틀어잡지 못한 이명박은 이미 실패자다. 이명박이 이렇게 관료를 틀어잡지 못하게 만든 원동력이 바로 촛불이다. 촛불의 거센 힘에 당황한 이명박은 정치력을 발휘할 틈을 잃어버렸고, 결국 관료제 억압기구를 총동원할수밖에 없었다. 온 국민이 등을 돌리는 마당에 관료들까지 자극한다면 고립무원이 되기 때문이다. 저 노회한 관료들을 절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물론 이명박은 여전히 격노 하고 호통을 치지만 이미 관료들 앞에서는 이빨빠진 호랑이, 핫바지다.

게다가 촛불은 인터넷과 신 미디어들의 힘으로 일어났고, 이명박은 여기에 두려움을 느껴 인터넷과 신 미디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정책을 펼치려 하였다. 이거야 말로 낡은 관료제 집단에게는 쾌재일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자체가 정보화혁명에 기반한 신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과 각종 ICT는 이명박이 그토록 목놓아 외치던 국가경쟁력의 근간이다. 그 근간의 흐름을 관료들을 이용해서 차단하고 앉았으니 이 상황에서는 신자유주의는 커녕 구자유주의도 어렵다. 결국 관료들을 이용해서 촛불과 인터넷을 억압한 이명박은 경제대통령, 실용주의라는 포지션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2. 이명박은 토건자본주의를 밀어붙일 수 없게 되었다.

토목공사는 미친듯이 진행해야 5년안에 해치울수 있다. 늦어도 올 초에는 삽질을 시작했어야 했다. 이명박은 실제 그럴 심산이었다. 안한다고 해 놓고는 물밑에서 설계작업을 하다가 들키기도 했다. 어차피 작년에는 삽질 안한다. 설계기간이니까. 그런데 마치 국민이 원해서 안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촛불의 기억이 문제다. 촛불은 줄었지만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건 촛불의 잠재성이다. 경찰의 작전이 조금만 느슨해져도 금새 십만단위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에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촛불에게 1년째 끌려올 줄이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삽질해야 할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시간은 이명박의 편이 아니다.

3. 이명박은 권력기구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사냥개에게 고기맛을 보이면 결국에는 주인을 물게 되어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노련한 정치인들은 절대 경찰이나 검찰을 이용해서 라이벌을 제거하지 않는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당이라는 이미지를 붙여주고 나서는 대충 수사의 수위를 조절하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직접 조작하는 권력의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대통령도 못하는 직접적인 권력을 경찰, 검찰은 행사할 수 있다. 이 맛을 자꾸 보이면 중독성 때문에 이들은 점점 더 강한 상대를 찾게 된다. 지금 이명박은 정치적 수세를 뚫기 위해 전직 대통령까지 먹이로 사냥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하지만 예상만큼의 흥행을 거두지 못하자 이제 저들의 이빨은 서서히 주인에게까지 드러내보여지기 시작하고 있다. 4년뒤가 정말 걱정된다던 박근혜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얼른 보면 이명박이 경찰, 검찰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이명박은 그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녀야 한다. 경찰들의 간큰 비리사건이 급증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경찰에게 밉보이는 날, 경찰이 소극적으로 나서는 날 이명박 정권은 끝장이 나는 것을 알기에 저러는 것이다. 이미 검경은 이명박 머리 위에 있다.

4. 이명박은 당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대통령은 단임제지만 국회의원은 계속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뭐 인기라도 많으면 이 사람을 이용해서 중임제 개헌도 밀어붙여 볼만 하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본전도 찾기 어렵다. 지역적으로도 아무 기반도 없게 되었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충격이다. 이미 경상도를 그네공주한테 넘겨준 마당에 수도권마저 넘어간 것이다. 10월 재보선에서 손학규가 수원장안은 하나마나니까 서울이나 다른 어려운데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등의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막말로 경기도가 손학규 나와바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판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동요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들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이명박과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그 생각 뿐이다. 작년만 해도 이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이제 1년이 지나도 이모양인 상황에서 그들에게 이명박은 참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뒷방 늙은이에 불과하다.

들자면 이 외에도 여러가지 들 수 있는데, 어쨌든 의외로 촛불에 덴 상처가 깊은 이명박이다.
운동권 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이 새로운 사회의 전망이라거나 반자본주의, 반세계화로 나가지 못했다면서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견이다. 어쨌든 촛불 참가자들이 이전에 비해 사회주의, 반자본주의 등의 용어와 이념에 많이 친숙해진 것은 사실이니까.(요건 다른 주제니까 나중에) 물론 북한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레르기지만 그건 북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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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5/19 22:23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6)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요즘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라는 책과 "미네르바의 촛불"이라는 책의 저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전자는 촛불비관론 혹은 한계론을 펴고 있고 후자는 촛불 희망론을 펴고 있다.  나는 촛불에서 지나치게 미래의 꿈을 찾고자 하는 조정환 선생의 입장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지지한다. 여기에는 실제 촛불 항쟁에 성실하게 참여하면서 함께 웃고, 울고, 느꼈던 한 지식인의 꿈과 희망과 절망이 모두 담겨 있다. 조정환의 책인 미네르바의 촛불에서 가장 가치있는 부분은 네그리주의의 입장에서 촛불의 이론적 해명을 하려 한 앞 부분이 아니라 꼼꼼한 일지와 참가기가 수록된 뒷부분이다. 실상 촛불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이런 민족지적인 작업인 것이다. 왈가왈부는 그 다음의 일이다. 조정환 선생은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 했지만, 이는 이론적 해명이라기 보다는 민족지 작업을 하기 이전에 미리 어느정도 규정해두는 분석틀, 관찰준거에 가깝다. 본격적인 해명, 해석의 작업은 이제 이 자료들을 근거로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네그리의 틀로 촛불을 보지만 그 이념형을 벗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조정환 선생이 이미 본문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반면 "왜 촛불을 끄셨나요?"의 경우에는 이미 그 제목만으로도 도덕적인 반감을 느끼게 만든다. 왜냐하면 촛불은 끈 것이 아니라 꺼진 것이기 때문이다. "왜 껐냐고?" 이건 정말 무례한 질문이 아닐수 없다. 왜 껐겠나? 몰대포, 곤봉, 색소탄에 집회할 만한 장소에 미리 경찰 알박기, 차벽, 명박산성. 촛불집회가 80년대를 넘어선 다양한 창발성이 폭발한 사건이었다면, 역시 경찰의 진압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촛불은 스스로 끈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필사적인 탄압에 의해 꺼진 것이다. 마스크 썼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인 관광객도 무차별 구타하면서 "외국인 행세하지 말라"며 더 패는 경찰들은 80년대를 능가할 정도다. 80년대에도 길거리만 벗어나서 인파속에 묻혀가면 더 이상 잡혀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가투는 오히려 80년대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러니 질문은 "그대는 왜 정부를 전복하지 못했나요? 경찰이 팬다고 안하나요?"로 바꾸어 물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무책임하지 아니한가? 도대체 촛불에게 뭘 기대했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가 물러날때까지 어떤 모진 탄압을 받더라도 꿋꿋하게 버티기라도 하라는 것인가?

이 무책임한 질문 속에서 다음과 같은 배후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환청일까?
"아, 그러니까 지도부가 있어야 한다니까. 명확한 이론을 가지고 지도하는 지도부의 전술적 지도를 받았다면 어떤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았을 것을...."
그리고 이들은 촛불이 지도부의 명령을 듣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촛불이 중간계급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이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좌파의 명령을 들을 턱이 없지 않은가? 이들(아, 왜 끄셨나요 저자들이 모두 이런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의 편집방향이 그런것으로 보인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촛불은 중간계급이다. 따라서 혁명적 이론을 가진 지도부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따라서 꺼졌다. 이제 아무 일도 없었다.괜히 중간계급의 불쇼에 잠시 흥분한 좌파들만 헛꿈 꾼거다"

이렇게 된다.이것은 마르크스가 "프랑스의 계급투쟁"에서 묘사한 중간계급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촛불은 중간계급이 중간계급처럼 행동했다고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중간계급의 항쟁을 보며 중간계급 이상의 행동을 기대했다가 그러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리는 87년 6월 항쟁을 "기껏 대통령 직선제", "기껏 대의제", "기껏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좌파의 기존의 시각을 그대로 연장한 것이다.하지만 역사를 뒤져 보아도 대규모의 민중 봉기로 인해 정부가 전복된 사례는 참으로 손을 꼽는다. 더군다나 선진산업사회에서는 전무하다.무엇을 바라나? 프랑스 혁명이라도 일어나길 바랬나? 기껏해야 정부의 몇몇 양보를 얻어낼 뿐이며, 정부가 국민의 눈치를 보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후퇴를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은 기껏 대통령 선거 하나 얻어낸 것이지만, 그것이 열어낸 공간은 엄청난 것이었다.

물론 촛불은 87년 6월 만큼의 공간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80년 518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518은 기억을 그리고 원천적인 상처와 원한을 남겼고, 그 점은 촛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정환의 지적대로 촛불의 존재론적 효과는 엄청나다. 촛불의 가운데서치른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달리 촛불이 "꺼진 뒤" 그 아픈 기억 속에서 치른 선거들은 온갖 정치공작과 노무현 타령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을 무너뜨렸다. 그래봤자 보수야당?  반자본주의는 아니잖아? 그런 정치적 순결주의는 이제 좀 버리자. 촛불 이전에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았나? 우선 여기부터 가는 거다. 이것 조차도 기성 운동권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그러니 촛불은 결코 꺼졌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잡설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은

1) 작년 촛불 100일간에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정리하는 작업, 민족지적인 통계적인 기타 등등

2) 촛불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 누가 참석했는가? 중간계급이라고 주장하려면 실제 증거를 대야 한다. 중산층의 판타지를 공유하는 집단이 중간계급이라고 말하면서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 전국민의 70% 이상이 중산층이라는 환상을 공유하고 있다면 중간계급은 더 이상 분석적 가치가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관심이 웰빙과 관련된 것이라 해서 중간계급이라고 몰고가는 것도 곤란하다. 왜 웰빙은 중간계급만 관심을 가지는가? 좌우간 이런 잡설 역시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실제 거리에서 본 바로는 중간계급과 중간계급의 자녀로는 보기 어려운 참가자들이 무척 많았다.

3) 촛불을 꺼뜨린 강제력과 이데올로기 공세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무력화 하는 작업. 필자는 실제로 음으로 양으로 이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래서 현란한 개념을 동원하며 촛불이 이랬네 저랬네 하는 이론가들의 논전에는 감히 끼여들지 못하지만, 이명박 진영의 헛소리를 논박하고 그들의 이념 공세를 차단하는 역할은 나름대로 해 왔다. 저 이론가들은 대중들에게 이명박 정권의 혹은 자본주의의 교묘한 논리가 스며드는 것을 막을만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뭐? 나 같은 이데올로그를 지도하는게 이론가라고? 됐네요. 누군 왕년에 VO 활동 안해 봤는줄 알아? 나도 왕년에 피디건추 간부였다구! ㅌ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학자와 이데올로그이지 이론가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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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5/17 22:02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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