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촛불시위

오늘 시국미사에서 신부님의 촌철 살인(아고라 펌)

1. 사람이 지켜야 할 기장 기본적인 예절이 음식에 대한것과 아랫사람에 대한 것이다.

(=> 이명박은 기본이 덜 되었다.)

 

2. 뇌물이 뭐냐? 뇌에 오물이 들어간거다. 그런데 오늘 검찰총장이 촛불을 폭력시위라 했다

(=> 검찰총장은 뇌에 오물 들어간 사람 아니냐? ( 여기서 더 이야기 할까요?라고 하심ㅋㅋㅋㅋ))

 

3. 최초 촛불시위를 한 여중생을 대상으로 이명박이 설득하면 두번다시 시위 안하겠다.

(=> 여중생만도 못한 이명박)

 

4. 어제 남대문행 행진을 보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모습 같더라고 한 신자가 말하더라. 예수님이 누구냐? 예루살렘에 들어가 극렬 반정부시위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 극렬시위의 배후는 예수님이시다.

(=> 이명박, 검찰총장, 경찰청장 너희들은 예수를 밀고한 유다, 그리고 잡아죽인 빌라도 총독같은 놈들이다. 다른 말로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다. 쳐 봐라.)

 

5. 오세훈 서울시장님이 저희 단식미사를 위해 무려 1억을 들여 시청광장 잔디를 다시 깔아주셔서 감사하다.

(=> 천박하고 천민스럽게 미사 못하게 하려고 맨땅으로 엎어버린 오세훈 시장 넌 참 천박하다)

 

할말이 없다.

이 섬뜩한 강론들을 그 꼴통들이 한마디라도 알아 들으려나...


이하 오늘 사진들

by 부정변증법 | 2008/07/01 21:15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

내 마음에 맺힌 소리를 짚어준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

나는 천주교 신자다. 미사 안 나간지 18년이나 된 냉담자지만, 이력서 등의 종교 칸에 반드시 천주교라고 쓴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내 이름 발음하기 힘들어 할때는 그들이 발음하기 쉬운 세례명을 가르쳐준다.

18년만의 미사. 비록 제대로 형식을 갖춘 미사는 아니었고, 대영광송과 사도신경도 없었고, 그 은은한 오르간 소리도 없었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신부님의 첫마디 “외로우셨죠, 저희가 위로해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아, 저 한 마디. 내 마음에 맺혀있던 그걸 정확하게 집어낸 저 한마디.

외롭고 두려웠다. 백만명이 모여도 우리는 이메가에게 천민에 불과했고, 폭도에 불과했다. 경찰들은 우리를 마치 개돼지처럼 다루었고, 어느 한 구석 시민으로서의 존중은 찾아볼 길 없었다. 조중동은 우리에게 저주를 퍼부었고, 조중동이 진리라고 착각하는 우매한 노인들은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5월 2일 처음 촛불을 올렸을때의 발랄함과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고 점점 원한과 원통함과 악만 남았다. 시위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엄단하겠다느니,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느니 하는 저들의 말 속에는 시민을 시민이 아니라 천한 아랫것들로 보는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누가 그런 대접을 받고 원한을 품지 않겠는가?

게다가 서울광장도 털리고 대책위도 와해되고, 그럭저럭 게릴라 시위로 하루는 연명했지만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촛불을 올릴수 있을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촛불을 올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저 오만한 무리들에게 포위당한단 말인가? 정말 억울하고 원통했다. 중년의 내가 이럴진데, 저 젊은이들은 오죽할까? 정말 무슨 일 터질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신부의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온 저 한마디에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들어서는 걱정. 오늘은 이렇게 크게 집회 하지만, 내일은? 이런 걱정이 떠오르자 마자 다음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회와 세상의 아픔을 나누고 정부와 국민 사이의 교착상태에 활로를 열기 위해 단식에 들어간다” 아, 저 신부들은 지금 시청광장을 되찾아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호소한다.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며, 이 원칙이 깨지면 촛불이 영영 꺼지고, 다시는 서울광장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 한마디에 그토록 사납던(?) 안티명박카페 회원 조차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폭력, 비폭력 논란도 단숨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

“우리는 남쪽으로 행진할 것이다.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소실된 남대문을 찾아갈 것이다. 화재로 소실된 남대문의 참상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참상이다.”

그 동안 시위대에게 왜 그토록 청와대를 고집해서 자꾸 충돌을 일으키는가, 87년 6월 항쟁때도 청와대 진군은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곳곳에 우리 목소리를 퍼뜨리려 했을 뿐, 시위대의 힘으로 저들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감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 사제들의 한 마디에 청와대 진군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렇다. 저들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따를 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동안 말했으면 충분하다. 그래도 안듣겠다는데 왜 말하나? 다만 전국민적인 왕따를 시켜버리면 된다. 권력은 무력에 의해 굴복하지 않는다. 권력은 쪽수에 굴복한다. 아무 짓도 하지 않더라도 촛불이 하나 둘 일어나서 100만개, 1000만개가 되면 저들은 굴복할수밖에 없다. 전두환도 무력에 굴복한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 어제 모였던 5만명은(경찰추산과 주최측 추산의 중간치) 새로이 태어났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기쁨과 진리를 이야기 할것이다. 5만명이 2명씩 이야기하면 20만명이 되고, 그 20만명이 다시40만, 40만이 80만이 되면 순식간에 전국민이 기쁨과 진리와 희망의 촛불을 들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권력과 제도가 아닌 마음 속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419에서부터 이루어젼 민주화의 마지막 피날레로서 민주적인 사람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라 했던가?


어떤 할아버지가 사제들에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흐느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by 부정변증법 | 2008/07/01 13:08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2) | 핑백(1) | 덧글(5)

또 촛불시위 이야기 해서 미안... 하지만 너무 감격이라서...

또 펌글입니다.
요즘 내가 민노당 걷어치우고 진보신당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맨몸으로 부딪힌 비폭력 시위, 결국 시민들이 승리했다
[현장 르포] 토끼몰이 진압작전, 그 숨막히는 순간

2008년 05월 30일 (금) 04:48:51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11시가 넘어서자 집회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 앞에서 출발해 종각역 사거리를 돌아 조계사를 지나 안국동을 거쳐 광화문으로 진격했다가 경찰버스의 바리케이트를 맞닥뜨렸다. 다시 방향을 틀어 창덕궁을 지나 대학로까지 갔다가 동대문을 거쳐 광화문으로 돌아왔을 때 대오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12시50분. 그러나 진짜 축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은 군데군데 원을 그리고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대학로까지 갔던 시위대가 돌아와 합류하면서 동심원은 더욱 커졌다. 너도나도 노래를 하겠다며 기타를 넘겨받았고 진보신당의 심상정, 노회찬 공동대표와 영화배우 김부선씨, '미녀들의 수다'의 폴리나 등이 나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심 전 의원 등이 멋쩍은 듯 금방 들어가 버리고 난 뒤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합류했고 인터넷 방송으로 현장 중계를 하던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가세했다. 시위대는 '진중권! 진중권!'을 연호하기도 했다. 진 교수는 어울리지 않는 막춤으로 분위기를 한층 띄웠다.

'아침이슬'과 '내 나라 내 겨레', '바위처럼'에 이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르던 때였다. 광화문 사거리를 막고 있던 경찰 버스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경찰 들어온다"고 소리를 쳤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거리로 뛰어갔다.

당황한 상당수 사람들이 허둥지둥 반대편으로 빠져나갔지만 오히려 경찰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곳곳에서 "뭉쳐라, 뭉쳐라"라는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열린 바리케이트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고 시위대는 경찰들 방패 앞에 줄을 맞춰 앉아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고시철폐 협상무효", "우리는 정당하다", "평화시위 보장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 경찰이 강제진압을 위해 밀고 들어오자 학생들은 도망가기 보다는 오히려 경찰 앞으로 몰려가 방패 앞에 줄을 지어 앉았다. ⓒ언론노조 김기범 기자. 
 
기자들이 몰려들어 시위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플래시를 터뜨렸고 집회 내내 행사 진행을 도왔던 예비군들이 스크럼을 짜고 그 뒤를 둘러쌌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예비군들이 여성분들은 빠져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시위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중학생이나 많아봐야 고등학생이 분명할 것 같은 10대도 군데군데 섞여 있었는데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당신들에게 우리를 지켜달라고 했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들은 방패를 앞세우면서 조금씩 간격을 좁혀왔고 시위대는 구호를 외칠 뿐 여전히 꼼짝도 않고 앉아있었다. 조금만 더 밀고 들어오면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시위대 앞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위대는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은 바닥에 앉은 시위대와 대치하는 한편 양쪽 인도를 치고 들어와 시위대를 에워쌌다. 시위대가 완전히 고립되자 예비군들은 그때서야 "예비군들은 보내달라"며 우루루 빠져나갔다. 남아있는 시위대는 200여명.

  
 ▲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한 시민이 쓰러져 실려가기도 했다. 경찰은 방패와 헬맷으로 무장했지만 시민들은 모두 빈손이었다. 시민들은 "비폭력 비폭력"을 연호하며 충돌을 자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 언론노조 김기범 기자. 
 
  
 ▲ 경찰이 강제진압을 시작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하자 한 여성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언론노조 김기범 기자. 
 
같은 순간 교보문고 앞 인도에서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쓰려져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당시 상황을 지켜봤다던 한 60대 남성은 "경찰이 계속 밀고 들어와 그 남자가 같이 밀었더니 경찰이 밀쳐냈는데 넘어지면서 땅에 뒤통수를 들이받았다"고 말했다. 맞은 편 GS25 편의점 앞에서는 예비군복을 입은 30대 남성이 갑자기 실신해 역시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의료 자원봉사자들이 발빠른 대응이 돋보였다.

경찰에 포위된 남아있는 시위대는 대부분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일부 10대 후반의 여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다들 표정은 밝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2조를 외칠 때는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은 마이크를 들고 "마지막 경고"라며 "길을 열어줄 테니 해산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경찰부터 해산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경찰이 미란다 조항을 통보하고 강제 진압을 하려는 순간, 시위대에 섞여 있던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가 나서서 거세게 항의했다.

"도대체 누가 교통을 방해하고 있나. 길을 막고 있는 것은 경찰 당신들이다. 경찰이 먼저 철수를 하면 우리도 인도 쪽으로 빠지겠다. 이미 시위대가 많이 줄었으니 바리케이트부터 풀고 한쪽이라도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해라."

경찰이 다시 마이크를 들고 시위대에게 물었다. "경찰이 빠지면 여러분도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비켜주시겠습니까. 약속할 수 있습니까." 시위대는 잠깐 술렁거렸지만 "네"라고 대답했고 경찰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맞섰지만 "경찰이 물러났는데 우리가 길을 막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른 의견에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청계광장으로 이동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는 지금까지의 그 어느 집회나 시위와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불법집회를 엄단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리고 실제로 200명 이상을 연행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경찰이 방패를 앞세워 밀고 들어왔을 때 아무런 저항 없이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20대 초반 또는 10대 후반의 어린 학생들을 찍어누르지는 못했다. 기꺼이 '닭장 차'를 탈 준비가 돼 있는 이 당돌하고 당당한 시위대를 경찰은 애초에 힘으로 꺾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옳다"고 확신하고 있는, 굳이 경찰과 힘으로 부딪히지 않아도 자신들이 결국 이길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이 젊은이들을 도대체 무엇으로 굴복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경찰을 먼저 물러나게 만들었고 당당히 걸어서 청계광장으로 옮겨가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자진 해산했다.

이정환·
류정민·조현호·최훈길·김원정 기자 

by 부정변증법 | 2008/05/30 10:4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

촛불은 꺼졌지만 다중이 탄생했다.

26일 밤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광장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애초 이 곳에 집회가 잡히기로 한 과정부터 놀라웠다. 발단은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누군가가 청계광장은 사면에서 포위당하는 곳이며, 그곳 행사를 주관하는 대책위인지 뭔지 하는 각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무조건 광화문"을 외치면서 시작되었다. 지도부도 없었고, 주최측도 없었다. 그냥 인터넷 상에서 청계광장의 지도부에 실망한 네티즌들이 이렇게 저렇게 댓글 보며 몰려 들었다.

나는 집회가 성사되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이미 17시부터 동화면세점 앞 광장을 경찰들이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감한 시민들은 전경들 대오 사이사이에 낑겨 앉아서 촛불을 켰다. 별 수 없이 전경들이 조금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렇게 어떤 조직 동원 없이 단지 게시판 보고, 카페 보고(카페 공지글이 아니라 단지 댓글들)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마침내 1000명에 달하게 되었다. 어쩌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이 광경을 계속 캠코더로 찍어서 인터넷에 생중계하는 자원봉사자가 나타났다.

유명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평범한 네티즌들이었다. 연단도 없고, 마이크도 없었다. 오직 육성으로 곳곳에서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강기갑으로 보이는 핑크빛 한복남은 사거리 신호등에서 보디가드(?)의 호위를 받으며 이쪽은 쳐다도 안보고 청계광장쪽으로 갔다. 간혹 과격시위를 유도하는 선동이 있었지만 휩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고 세가 형성되면 뛰쳐나간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전경들이 점점 늘어났다. 전경들로 가득찬 교보사거리 일대에서 시위대가 들고 있는 1000여개의 촛불만 마치 섬처럼 빛나고 있었다. 과거 PD 진영의 중간보스(?)로 수 많은 야전(?)을 겪은 필자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여전히 발랄한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한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지도부도, 주최측도 없는 순전 인터넷 댓글만 보고 이렇게 집회가 조직된 것이다. 게다가 소위 진보단체들이 총단결해서 주최한 같인 시간의 집회가 쇼 같은 분위기일때 마치 80년 같은 비장함을 견디고 뭉치고 있는 것이다.

전경들이 더 욱죄어 왔다. 청계천쪽으로도 소식이 간 모양이다. 그래서 그 쪽에서 축제(!)판 그만두고 광화문으로 가자는 움직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주최측은 도리어 그들을 주저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절반 이상의 청계광장 시민들이 자리를 떴다. 버스에 막힌 상태에서 광화문쪽으로 가려면 종각쪽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그곳에서 경찰에 차단되었다. 그 소식이 광화문쪽에 전해지자 광화문에 모인 외롭고 용감한 아마튜어들도 종각쪽으로 합류했다. 안타깝게 다음날 수업을 해야 하는 필자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발걸음을 떼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도부도, 지휘부도 없는 상태에서 오랜시간 경찰과 싸우고, 또 분산시키려는 프락치들의 준동에 25일때처럼 허무하게 흩어지지도 않고, 도리어 프락치 사진까지 확보했다. 단 며칠 사이에 그들은 프로가 된 것이다. 게다가 능숙능란하게 각종 통신기기를 활용해서 소식을 널리 알리고 CNN까지 움직이게 했다.

유명인사들.... 인상적인 모습은 이들 대오와 별도로 움직이면서 지사, 인사 행세를 한 삼보일배 의원들과 대비되는, 이들 속에 묻혀서 함께 웃고, 함께 이야기하다 끝내 함께 폭행까지 당한 진중권의 모습이었다.

by 부정변증법 | 2008/05/27 11:4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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