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청소년

사교육이 문제가 아니잖아?

언제부터였을까? 사교육문제라는 말이 생겼다. 사교육문제라는 말이 생기면서 고통의 당사자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로 옮겨지고 말았다. 이렇게 학생들은 이중의 소외구조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만약 사교육문제라는 말이 성립이 되려면 사교육 이전에는 없다가 사교육 이후에 생긴 그런 문제라야 한다. 그리고 툭 까놓고 말하면 그건 돈문제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사교육이 금지되었던 80년대라고 해서 청소년들이 행복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교육 이전이나 이후나 나머지는 똑 같다. 다만 차이가 난다면 돈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외친다. "돈이 덜 들게 해 달라.". 그러자 교육부가 화답한다. "언제든지 부려먹을 수 있는 교사들을 이용해서 싸구려 사교육을 제공해 주겠다.". 자, 이러면 문제가 해결 되었는가?

전교조는 1989년에 결성되었다. 그리고 그 때 전교조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것은 노동 어쩌구, 통일 어쩌구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교육에 찌들은 아이들에 대한 시선 때문이었다. 잠깐, 잠깐, 그때는 학원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만 그때도 아이들이 고통스럽기는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강제야자, 강제보충으로 파김치가 되어 11시가 다 되어야 집에 들어올수 있었고, 그 놈의 0교시 때문에 5시반이면 일어나야 했다. 그때 나온 교육운동 가요들은 "내 무거운 책가방" 처럼 과도한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며 자살하는 청소년들의 소식들이 심금을 울리던 시절도 그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학원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청소년들을 질식시키는 과도한 학습이 아니라 사교육이 문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학부모를 괴롭히는 사교육비가 문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사교육이 있건, 없건 고통의 총량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시달리건,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시달리건, 대체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서 사회는 어느새 청소년들의 고통이 아니라 학부모들의 고통에만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러면서 방과후학교라는 졸속 정책이 나온 것이다. 만약 방과후학교가 정착된다면 학원은 위축될지 모른다. 그러면 학부모의 주머니 사정은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교육당국이 1차적으로 신경써야 할 고객은 학부모인가 학생인가? 학부모의 주머니가 아니라 학생들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할 교육당국이, 학원때문에 괴롭다고 말하자, 아예 학교도 학원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는 동안에 사회가 청소년들의 고통에 둔감해졌다는 것이다. 90년대만 해도 0교시와 야자는 청소년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단어였고, 어른들은 그 단어를 들으면 애틋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는 눈 하나 꿈적하지 않는다. 대체 이 사회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하는 로리타에 사디스트 변태들이 되었단 말인가? 학부모의 주머니에 신경좀 쓰지 말자. 자기 새끼 괴롭히면서 돈쓰겠다는데 왜 국가가 그걸 신경 써 주는가? 그렇다면 자기 새끼 두드려 패기 위해 야구방망이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것도 사 줄건가? 학원 보내는 것과 야구방망이로 패는게 어떻게 같냐고? 철학자 로크(좌파가 절대 아니라 자유주의자!)가 말했다. "누군가를 노예로 삼는것과 살인하는 것은 같다." 따라서 누군가를 강제로 과로시키는 것과 그를 미친듯이 구타하는 것은 같다. 이 사디스트 부모들의 마음을 고쳐먹이지 않는 한 결코 교육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80년대, 90년대만 해도 남아 있었던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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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3/20 12:02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3) | 덧글(9)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Marc Siverstein 지음

 

오늘날의 사회에서 아동은 독특한 방식으로 억압되어 있지만 이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서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잘 모르기 일쑤다. 불평등과 강요에 기반해 아동과 성인의 관계가 이뤄진다는 사실은 보통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의 사회적 억압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이유는 아동에 대한 차별이 어떻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동은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이 아동에 대해 어떤 형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주권과 강요하지 않음, 그리고 자유연합과 상호부조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아나키즘의 사상은 부모역할론, 교육일반론 그리고 아동육성론 등에서 비권위적 이론을 공식화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또한 억압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아동들이 해방을 시작하는데 아나키즘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권위는 부모로부터 나온다. 부모는 아동이 태어난 날로부터 만 18세 또는 19세에 이를 때까지 법적으로 정당화된 보호권을 갖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관점에서 아동과 관계를 맺는다. 부모는 아동을 소유물로 바라보는데, 그래서 아동은 양육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며, 적정선을 지켜야 하고, 통제되어야 하며, 규율을 배워야 하고, 선행을 했을 때는 칭찬을 받고 잘못했을 때는 체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아동에 대한 이런 식의 개념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한다.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그저 자신의 미래에 소속될 뿐이다.”

일부 부모들은 핵가족 하에서의 숨막히는 분위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자식을 과도하게 보호한다’거나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기도 한다. 성별화된 질서가 생성되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다. 권위적인 이데올로기가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도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를 통해서다. 핵가족 하에서 성(性)에 대해 금욕적으로 억압한 결과 아동들에게서 신경증적이고 반사회적인 인격적 특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신이 가진 특정 종교(유대교, 기독교 등)나 정치적 입장(미국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가 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등)를 자식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한다. 유대교 가정에서는 남자아이가 13살이 되면 유대교 성년식인 ‘바 미츠바(Bar Mitzvah)’라는 것을 열어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하거나 또는 대놓고 강요하기도 한다. 이는 ‘남자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표시다. 하누카, 크리스마스 등은 아동이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종교적 잔치다. 자신 스스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하는 기회를 아동은 부여받지 못한다.

아이가 5살 무렵이 되면 학교에 보내지는데, 이곳은 아나키스트 밥 블랙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아동수용소’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기관에서 아동은 교사에 의해 주의 깊게 감시를 당한다. 교사는 아동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보고를 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아동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생각이나 개인성의 징후를 보일 때마다 은근하게 또는 명시적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그것을 꺾어놓는 것이다. 아동이 ‘제대로’ 행동을 하지 않을 때는 학생주임에게 보낸다거나, 교무실에 가둬놓는다거나, 정학시킨다거나, 퇴학처분을 내린다거나 또는 낮은 성적을 주는 등의 체벌을 가한다. 사립학교 대부분에서 그리고 많은 공립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복장과 두발의 규정이 가해진다. 웃옷은 반드시 가지런히 바지에 넣어야 한다거나 허리띠를 반드시 매야 한다는 식의 조항까지 있을 정도다. 문신을 하거나 머리를 염색하거나 귀걸이나 피어싱을 하거나 또는 기타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학생주임이나 또는 교장이 직접 나서서 호통을 치고 이를 금지시킨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노동자와 사장의 관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장은 회사를 소유하고, ‘행동 규정’을 마련하며, ‘생산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권위자에게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며, 학생들의 분노는 학생자치기구나 학교가 인정하는 학생회 등을 통해 조절된다. 이는 거대한 노동조합총연맹(미국의 경우 AFL-CIO 같은 단체)을 통해 노동자들의 분노가 조절되는 것과 유사하다. 학생자치기구가 사소한 개혁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아나키즘이 요구하는 것처럼 학교의 존재 자체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강요와 폭력의 철폐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가 감옥과 얼마나 많은 점에서 닮아 있는가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감옥과 학교 모두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적용된다. 권위적인 구조, 복장과 두발 규정,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 정숙과 질서에 대한 강조, 금지규정을 지키기 위한 단속, 행동에 대한 규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보상제도, 개인 자율성에 대한 상실, 자유에 대한 억압,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 등.

이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아동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이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점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작업장--학생들은 패스트푸드 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착취를 경험한다--에서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자신이 부모와 성인들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부당하지는 않은지 이야기해보자. 계급에 대한 자각은 필수적이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자신이 하나의 독특한 계급으로서 억압을 받는다는 계급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억압하는 계급은 삶의 조건에 대해 명령을 내린다. 아나키스트들의 국제노동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회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의 규약 서문을 알기 쉽게 바꿔서 말해보면,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구체적으로 조그만 방식으로 불복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예를 들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거나, 학교가 강요하는 종교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 또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할 때, 과제의 주제로 청소년 운동의 역사 또는 엠마 골드만이나, 학교에서 아나키스트 동아리를 만들고 반전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한 15살 학생 케이티 시에라Katie Sierra 등을 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들 앞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해보자. 이는 노동자들의 작업거부나 태업과 비슷한 방식의 불복종이다. 학교 바깥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등 스스로를 교육시켜보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학교에 붙일 수도 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소책자나 잡지를 만들어 학교에 돌릴 수도 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 동맹휴학 또는 ‘길거리를 되찾자’ 등의 방식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엽적일 수도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접하면서 더욱 급진적이 되어 문제의 뿌리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아나키스트 동아리는 근처 개훈련장에 붙어 있던 ‘복종을 가르칩니다’ 라는 문구를 떼어내 한 고등학교에 펄럭이도록 붙여놓았다. 이런 행동은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부모들과 학교 당국은 예전에는 별로 저항을 받지 않고도 지나갔던 것들이 이제는 학생들로부터 저항을 일으키게 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그런 권력이 도전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학생은 전처럼 형태가 없는 한 무리의 온순한 양떼가 아니라 계급의식을 갖고 지성을 갖춘 젊은 청소년들로 조직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을 영원히 없애나갈 것이다.

아나키즘은 청소년 해방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강요와 폭력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은 청소년이 처해 있는 노예와도 같은 속박상태에서 청소년이 자유로워지는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청소년의 해방에 있어서 아나키즘은 부모의 강요를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는 통찰을 제공한다. 즉 청소년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대안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중권력 전략’의 좋은 예이다. 새로운 사회는 낡은 사회의 껍질을 벗고서 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약골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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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12/10 21:33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6)

어느 여학생이 쓴 양성평등 주장

16살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양성평등

 

 

풍성중학교 3학년 ***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인터넷을 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첫째로 신발을 벗고, 둘째로 가방을 내팽겨 치고, 세 번째로는 컴퓨터 플러그를 꼽은 뒤, 마지막으로는 발가락으로 본체의 전원을 켜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볼일이 보고 싶어지면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레 정보의 바다로 풍덩! 빠져들게 된다.


인터넷을 켜면 익숙한 초록색 검색 창이 뜨고, 나는 자연스레 형형색색 다양한 색깔과 현란한 움직임으로 내 눈을 간질이는 광고로 눈을 돌리게 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광고에서는 새로 나온 게임, 승용차, 화장용품, 휴대폰 등을 요란하게 알리고 있고, 그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품보다 바로 해괴한 옷을 입거나 천 조각으로 보아도 될 만한 옷가지를 걸치고 있는 여성이다.


거의 다 벗은 듯한 여성이 대체 왜 이러한 광고에 나오게 되는 것일까? 너무나 풍만해서 옷이 터질 것 같은 가슴과 불가능 할 정도로 기다란 다리를 자랑하는 게임 광고 속 여자 캐릭터는 어떻게 해서 광고 속에 나오게 된 것일까? 나는 그러한 여자를 이미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처음엔 ‘새삼스레’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느냐고 자문했었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 할수록,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게임 속에서도 그렇지만, 승용차 광고에서도, 주유소 광고에서도 그랬다. 심지어 샤워 용품 광고를 할 때에는 여러 명의 여성이 샤워하는 모습을 발랄하게(?) 표현해내었다. 왜 대체 남자 모델은 거의 쓰지 않는 것일까? 승용차와 거의 다 벗은 여성의 관계는 무엇일까? 샤워 용품 선전은 꼭 여성이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져 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주일에 두세 번 든 체육 시간에는 주로 피구와 축구, 발야구 등을 했었다. 남자애들은 축구, 여자애들은 피구를 하는 것이 정해진 매뉴얼이었고, 어쩌다 한 번 남녀 혼성으로 발야구를 하곤 했다. 어쩔 때는 ‘보디가드 피구’라는 것을 했는데, 여자애들끼리, 남자애들끼리는 서로 맞출 수 있지만 남자가 여자를 맞추어 아웃시킬 수는 없는,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 그러한 피구 게임이었다. 내 기억 속으로는, 그 피구가 결코 재미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하필 남자가 보호 해 주었어야 했을까?’라는 의구심도 적지 않게 든다.


지금도 드라마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회장님, 사장님인데 여자 회장님도 별로 안 보인다. 그리고 회장과 사장 옆에서 열심히 일하는 비서는 왜 다 여자인 건지! 차를 내오고, 전화를 바꿔주고, 손님을 먼저 대접하고……. ‘남 비서’의 개념은 없는 것일까?


또 있다. 우리 동네에는 잠실고등학교, 잠실여자고등학교 등이 있는데, 잠실고등학교에는 남학생만, 잠실여자고등학교에는 이름처럼 여학생만 다닌다. 그런데, 왜 남학생만 다니는 잠실고등학교는 왜 ‘잠실남자고등학교’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 걸까? 남학생이 다니는 학교가 정상화된 것이고,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정상화되지 않아서 ‘여자’라는 단어를 붙인 걸까?


버스를 탈 때 자주 보게 되는 광고에서 모바일 화보를 선전할 때에도 역시 남자 화보는 없었다. 전부 다 여자들이 수영복 입고 해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만 넘쳐날 뿐이다.

이 뿐인 줄 아는가? 속담에도,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속담에도 남녀차별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 셋이 모여도 수다를 잘 떨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과학적으로 고음을 낼 때 접시가 잘 깨지고, 그 고음을 내는 것이 남성 보다는 여성이 아무래도 쉽지 않겠느냐? 그것이 남녀 차별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집안일을 여성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던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에 음파 감지기로 여성들의 목소리와 남성들의 목소리를 비교, 분석해 본 것도 아닐 테고……. 다분히 남성우월주의에 치우쳐서 만들어진 속담 같아, 들을 때마다 속이 상한다.


위의 사례 외에도 양성이 평등하지 못한 예는 참으로 많을 것이다. 회사 내에서도 은근한 차별과 승진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예이다. 회식 자리에서의 성희롱 등도 모두 다……. 십대 아이들이 즐겨 쓰는 속된 단어인 ‘엠창?(뜻은 너희 엄마는 술집에서 일하는 창녀지?)’이라는 말 또한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를 어쩌면 짐승보다 낮은 존재로 심히 격하시킨 예이다.


나의 생활에 깊이 뿌리박힌 ‘은근한 양성불평등’을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느끼고 있을까? 앞으로도 이런 양성불평등이 지속된다면, 진정한 사회악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야기하게 될 것이다. 양성불평등은 사라져야 한다. 내가 이 나이 때에 이러이러한 불평등을 체험했다는 것을 나의 미래의 아들․딸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으며, 현재 또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딸아이를 낳게 되어 그 아이가 양성불평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른 두 종류의 인간만 있을 뿐, 다른 두 계급의 인간이 있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16살의 나이에 내가 할 수 있으며, 앞으로 할 수 있고,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우선, 지금의 엄마․아빠 세대들이 자라나는 자녀에게 올바로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남자아이라면 이렇게, 여자아이라면 저렇게 행동하라고 하지도 말고, 남자아이니까 이렇게, 여자아이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거야.’라고 가르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남자가 남자다운 것, 여자가 여자다운 것을 함부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상에는 다른 두 ‘종류’의 인간만 있을 뿐이다.


또, 학교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힘써야 한다. 남성 주의를 여성 주의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강조해주었으면 한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보디가드 피구를 할 때에 남자가 여자를 지켜주지도,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지켜주는 것도 아닌 동성끼리는 공격을 할 수 있지만 이성끼리는 공격을 할 수 없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방법은 요즈음 대부분의 경기에서 행해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러한 양성평등 글짓기를 보편화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과 학교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역할이다. 한창 자아를 형성할 시기인 십대. 특히 청소년에게 보여 지는 많은 매체부터가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벗은 여성의 몸으로 상품을 대신하여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선정적인 방법 말고 진정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광고가 증가하고, 능력 있는 여성의 정당한 승진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각종 성범죄에 노출 되어 있는 것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시급히 아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장기적으로 사회를 양성평등으로 이끌어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자주 광고를 하거나, 양성평등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증가시키는 등 현재 내가 말할 수 없는 많은 해결 방안들이 차고도 넘칠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는, 여성과 남성의 색깔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16세의 소녀, 내가 보기에는 이 색깔이 혼합되어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혼합되지 않더라도, 각자의 색깔을 살려 보기 좋게 만드는 보색의 관계처럼, 하늘에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한껏 멋을 내고 있는 것처럼, 서로 돕고 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조각조각 맞아 떨어지는 퍼즐처럼. 남녀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16세 소녀는 원한다, 소망한다, 그래서 외친다. ‘평등하자’라고.

by 부정변증법 | 2008/05/08 15:40 | 교단 일기 | 트랙백(1) | 덧글(4)

청소년 소설 "아바타"

“이런 썩을!”
폭탄 터지는 소리와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대고 눈 앞의 모니터가 온통 붉게 물들어 버리자 태호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외쳤다. 그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집어던진 체 앞뒤로 몇 번 흔들어 대었다. 그 동안 무적을 자랑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연승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다. 15연승? 16연승? 하여간 최근 들어 처음 겪어본 패배다.
-hey! you're excellent soldier! it was a great match! see ya!
자신을 뉴질랜드인이라고 소개했던 상대방에게서 채팅 인사가 왔다.
-you too. good game. by by
태호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영어단어를 총 동원해 작별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게임을 중단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30분간의 격전을 벌린 다음이라서 그런지 머리가 약간 어지럽고 어깨가 쑤셨다. 목을 조금 돌려보고 자기 손으로 어깨를 탁탁 두드린 뒤 태호는 가방을 들쳐 메고 옆자리에서 계속 게임하고 있는 종훈이를 두드렸다.
“야, 최종훈, 그만 좀 해라. 학원 갈 시간이야.”
“음. 음? 알았어.”
종훈이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엉덩이의 묵직함으로 보아 전혀 일어설 기척이 아니었다. 도리 없이 태호는 종훈이가 하고 있는 게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다려야 했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이, 일본 애니매이션 투로 예쁘게 꾸며진 캐릭터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옮겨 다니면서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줍고 있었다. 가끔 익살스럽기까지 한 명색이 괴물들이 튀어나와 전투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칼질 몇 번에 허무하게 쓰러졌고, 공연히 아이템과 돈만 보태주었다.
“야, 너 이게 재미있냐?”
“아니, 그냥.”
“그럼, 그만 하고 가자니깐?”
“먼저 가. 조금만 더 하면 레벨 올라가니까.”
“야, 재미도 없는 것, 레벨만 자꾸 올리면 뭐 하냐?”
태호가 투덜거렸지만 종훈이는 들은 척도 않고, 예쁜 소녀 캐릭터를 조종하여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모험을 계속하며 아이템을 줍고 경험치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10여분 마침내 예쁜 벨소리와 함께 “레벨이 올랐습니다.”라는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종훈이가 캐릭터 창을 열자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귀여운 소녀캐릭터의 모습이 나타났다. 레벨 업 배너를 클릭하자 소녀의 모습은 더 귀엽고 매력적으로 바뀌었다.
“어라? 이게 뭐야? 너도 정말 어지간하다.” 그 소녀 캐릭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호가 약간은 놀란 듯, 또 나머지 약간은 한심하다는 듯 종훈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캐릭터 이름이 유지연? 너 유지연 걔하고는 헤어졌잖아?”
“헤어져? 누가?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 걔 맘대로! 너 지연이가 2반 이오종하고 사귀는 거 몰라? 전교생이 다 보는 앞에서 손잡고 다니는 거 못 봤어?”
“웃기지마.”
“관두자. 하여간 너도…. 휴. 뭐라 할 말이 없네.”
“할 말 없으면 하지 마. 그리고 너 학원 간다며?”
“넌 안가?”
“안 가. 너나 가. 난 이제 학원 끊을 거야.”
“맘대로 해라. 난 간다.”
태호는 pc방 의자에 비스듬한 자세로 반쯤 드러눕다시피 한 모습으로 마우스를 까딱까딱 누르고 있는 종훈의 모습을 안타까운 듯, 한심한 듯 잠시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이 세상의 모든 무기들은 다 동원 되었지 싶은 총포도검의 합성음이 잠시 울리다 사라졌다.

♥ ♥ ♥ ♥ ♥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종훈이는 부시시한 모습으로 열쇠를 비틀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동대문에서 새벽장사 하는 부모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 없었고, 텅 빈 집과 덩그라니 하나 켜져 있는 현관의 등불만이 그를 맞아주었다. 종훈이가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에 밤늦게 들어오는 것이 안타까워 엄마가 켜 두고 나간 것이리라. 그러나 종훈이는 아무도 없는 환한 집 보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깜깜한 집이 더 그립다.
방 한 구석에 어차피 별로 든 것도 없는 책가방을 내 동댕이치고 종훈은 마치 자석에라도 끌려가듯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컴컴한 방에 마이크로소프트 로고가 모니터를 밝히며 어슴프레한 빛을 흘려내었고, 종훈의 긴 회색 그림자가 힘없이 늘어섰다가 컴퓨터 화면이 바뀔 때마다 색깔을 바꿔 입었다.
유령같이 그림자를 흘리며 종훈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처럼 불길한 마스크 모양의 게임 아이콘을 클릭했다. 아이디와 비번을 치고 접속하자 그의 게임 아바타가 화면에 나타났다.
“지연…”
마치 종훈이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둥근 눈망울에 날씬한 몸매를 하고 있는 게임 아바타가 그를 향해 윙크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표정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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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하지만.” 지연이 애교스럽게 눈 꼬리를 치켜 올렸다.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린 것 같거든요?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게 수평선 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가려던 곳은 안개산맥이 아니었던가요?”
“허, 그러게요.” 종훈이 멋 적게 머리를 긁었다. “어떤 놈이 이정표에다가 장난을 쳤나봐요. 에이. 이런 멍청한 장난질에 당하다니.”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지연이 우아한 걸음으로 종훈에게 다가왔다. “온갖 술수가 난무하는 땅 페이룬에서 그 정도 안 당해 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 천사가 따로 없어!

종훈은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위안을 느끼며 지연을 슬쩍 훔쳐보았다. 연분홍색 로브 사이사이로 살짝 드러난 하얀 살결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자주색 투구 아래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이 바람을 받아 춤추듯 흩날리고 있었다.
“자아, 이러고 있어봐야 별 도움이 안 되니까.” 지연의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손이 종훈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일단 아까 그 이정표까지 되돌아가죠. 이 바닷바람이 좋긴 하지만, 오늘 안에 안개산맥에서 스승님을 만나야 하니까.”
“저야 뭐.” 종훈이 약간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길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은걸요? 그럼 지연 신관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길어지니까.”
“어머, 종훈 기사님도….”
지연이 말끝을 흐리며 미소로 화답했다. 그 미소에 종훈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한 순간에 소멸되는 환희를 느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종훈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해요. 뭔가 위화감이 느껴져요. 이런 느낌, 이런 느낌을 언제 받았더라…. 아! 이레니쿠스! 이런 함정이다!”
종훈의 당황한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들이 서있는 둘레로 불길이 원을 그리며 일어서더니 장막을 이루면서 완전히 에워싸고 말았다.
“화염의 장막!” 지연이 침착한 모습으로 나풀거리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이 정도는 쉽게 처리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 아름다운 마법사를 데리고 나타나셨군.” 거칠고 구역질나는 바리톤 음성이 들리더니 검은 망토를 걸친 키가 큰 중년 남자가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레니쿠스! 그 때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았어야 했는데.” 종훈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칼을 움켜쥐었다.
“호오, 고귀한 기사 종훈. 이거 정말 오랜만이로군. 하하하, 이거,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는 걸? 그대의 고귀한 자비심 덕에 이 몸이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으니 말이지. 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서 말이야. 하하하하!” 이레니쿠스가 거미처럼 느물거리는 길고 가는 손가락을 마치 하프라도 연주하는 듯이 흔들어대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저 아름다운 마법사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지.”
이레니쿠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불길에서 한 줄기 섬광이 번득이며 주문을 외우고 있던 지연을 덮쳤다. 지연의 몸이 종잇장처럼 맥없이 붕 떠오르더니 종훈의 발 앞에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기침과 함께 검붉은 핏덩이를 토해내었다.
“지연 신관님!”
“괜찮아요. 쿨럭.”
지연이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 억지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이레니쿠스!” 종훈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장검에서 파란 광채가 솟구치자 불길의 원이 마치 두려움이라도 느끼는 듯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오늘만은 내게서 자비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아, 홀리 소드! 어떤 마법이라도 해제할 수 있다는 거룩한 무기. 크크. 하지만 내가 그 정도 대비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가?”
이레니쿠스가 비웃으며 손을 치켜 올리자 땅 속에서 시커먼 형상들이 기분 나쁜 소리를 흥얼거리며 솟아올랐다.
“트롤들!”
“자아, 어쩌실텐가? 고귀한 기사 나으리. 그대가 날 공격한다면 저 아름다운 마법사는 트롤들의 간식거리가 되고 말걸세! 자, 이 더러운 땅 귀신 트롤들아, 부드러운 고기가 저기 있다.”
이레니쿠스가 손을 휘두르자 키가 3미터는 넘어 보이는 트롤들이 일제히 지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종훈은 있는 힘껏 장검을 휘두르며 트롤들을 막았다. 그의 검이 허공을 스칠 때 마다 하얀 빛이 번득이며 트롤의 두꺼운 가죽이 예리하게 갈라졌다. 그러나 트롤은 워낙 몸집이 큰데다가 상처도 순식간에 아물었기 때문에, 종훈의 공격은 트롤을 잠시 주춤거리게 할 뿐, 이내 회복된 트롤들이 다시 덤벼들었다.
“하아, 트롤들을 먼저 상대하시겠다? 그대는 지금 나를 무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눈물겨운 사랑 때문인가?”
이레니쿠스가 야비한 웃음을 던지더니 종훈을 향해 손을 내 뻗었다. 그의 마디만 앙상한 거미가시 같은 손가락 끝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은 안개가 뻗어 나오더니 종훈을 향해 꿈틀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모금만 호흡하더라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사악한 마법 <지옥의 숨결>이었다. 이 치명적 안개는 인간의 체온에 반응하여 표적이 된 사람 둘레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존재였다.
물론 평소의 종훈이었다면 홀리 소드로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훈이 이 안개를 상대한다면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지연은 트롤들의 손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 것이었다. 종훈은 일단 칼을 꼿꼿이 세운 체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때 지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과 트롤들, 이레니쿠스를 포함한 반경 수십 미터가 한 낮의 태양보다 몇 배나 밝은 찬란한 빛의 물결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빛의 물결이 넘실거릴 때 마다 트롤들을 하나 둘 먼지가 되어 버렸고, 지옥의 숨결은 연분홍색의 따뜻한 향기가 되어 부드럽게 흩어졌다.
“성스러운 절대 광막!” 이레니쿠스의 입에서 공포스러운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선한 정령들과 신의 정수를 모두 소환하는 강력한 마법. 흑마법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대상을 모두 중화시켜 그 존재를 소멸해 버리는 절대선의 정화. 그러나 이 마법을 소환한 사람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백 마법 최후의 비기.
“이럴 수가 저 계집이! 아, 이럴 수가.”
이레니쿠스는 자기 몸에서 수십 년 간 연마했던 흑마법의 에너지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휘청거림도 잠시, 종훈의 홀리 소드가 섬광을 일으카며 그의 몸뚱이가 예리하게 세로로 갈라지며 장작처럼 쓰러졌다. 그렇게 이레니쿠스의 사악한 육신은 몇 번 꿈틀거리다가 마침내 회색 안개가 되어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이레니쿠스를 완전히 해치운 것을 확인한 종훈은 칼을 집어던지고 지연을 향해 달려갔다. 지연은 허리를 반쯤 들어 올린 체 엎드려 있었다. 그녀의 상체를 간신히 지탱하며 땅을 딛고 있는 가느다란 팔의 굴곡에서는 핏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지연 신관님!” 종훈이 지연을 붙들어 일으켰다. 이미 그녀의 몸에는 한 줌의 힘도 남아있지 않는 듯, 그의 품에 안기자마자 두 팔이 축 아래로 처지고 말았다.
“무사하셨군요.” 지연이 입가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되었어요.”
“되긴 뭐가 되요? 난 당신을 잃을 수 없단 말이에요! 왜 그런 무리한 마법까지 쓰셨나요?”
“저도 종훈 기사님을 잃을 수 없었….”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지연의 눈이 감기며 고개가 아래로 쳐져버렸다. 종훈은 이 순간 아무 말도 입밖에 튀어나오지 않는 것이 너무 슬펐다. 수 많은 전투로 거칠어진 그의 얼굴 위로 작은 강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 ♥ ♥ ♥ ♥

새벽 네 시, 아무도 없는 텅 빈 아파트. 작은 방 하나에서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컴퓨터 모니터가 반짝이는 빛이었고, 스피커에서는 계속 똑 같은 음악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종훈은 한 손에 마우스를 움켜쥔 체 의자에 목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흐르다 말라 굳어버린 눈물 자욱이 모니터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모니터에는 “당신의 캐릭터가 죽었습니다. 경험치와 아이템의 20%를 삭감하고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라는 문자가 유령처럼 둥실둥실 떠나녔다.

by 부정변증법 | 2008/05/03 19:24 | 예술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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