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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7) 째째함의 우상

그 동안 이런 저런 사정, 사실은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편지가 좀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부터 다시 꾸준하게 편지 드리겠습니다.


쫀쫀함, 째째함의 우상

불과 10년전만 해도 교사가 되겠다고 희망하는 남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시절의 공기를 여전히 마시고 있는 부모들은 딸에게는 교사가 되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면서 아들이 교사가 되겠다고 하면 손사래를 칩니다. 심지어 자기 딸이 교육대학에 다닌다고 자랑하는 어느 어머니는 그런 한편 혹시 딸이 남교사와 결혼하게 될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합니다. 소위 “남자가 째째하게 선생이나 한다.”라는 통념 때문입니다.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또 영남권보다 호남권에서 이런 통념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럼 도대체 이런 해괴한 이데올로기는 어디서 왜 생긴 것일까요?
사실 교사가 큰 뜻을 품고 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교사는 뭔가 확인 가능한 큰 실적을 올리고, 경우에 따라 짜릿한 모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그런 직업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게 좋은 사람은 문자 그대로 ‘벤처’기업을 창업하거나 종소기업의 기획팀 등에서 일하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교사는 흔히 야망과는 거리가 멀고, 안정되긴 하지만 지루하고 활동의 폭도 집-학교로 한정되고, 만나는 사람도 교사나 학생들로 제한되어 세상물정에 어둡게되는 그런 직업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이런 통념은 부분적으로 사실인 면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통념이 유포된데는 사회적 편견 뿐 아니라 교사들 자신의 책임도 상당히 있습니다. 즉, 교사의 일 자체가 째째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교사들이 째째하게 일해왔기 때문에 이런 통념이 유포된 것입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미국의 극동담당자는 “한국인들은 쥐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한국인에 대한 세계의 통념이었습니다. 한국인은 지도자를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쥐떼같은 겁장이들로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어떤 미국인도 한국인을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건 이후 518과 610을 통해 한국인의 역동성과 용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통념은 행동을 통해 뜯어고칠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교사는 째째하다 따위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교사는 학교-집을 오가면서 아이들이나 상대하는 작은 세계에서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면서 쪼잔한 일이나 한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수 교사들이 여전히 째째하게 산다면 교사에게 주어지는 교사의 높은 대우는 곧 삭감되어 ‘째째한 수준’이 되고 말것입니다.
교육사를 한번만 훑어 보아도 교사는 표면적으로는 째째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웅혼한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잇습니다. 이런 점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동안 역사를 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역사는 항상 정치와 전쟁을 중심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정복자를 웅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웅혼해 보이지만 실제 그가 한 일은 창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파괴에 가깝습니다. 실제 역사를 이끈 사람들은 이런 파괴자가 아니라 그들이 이런 정복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창조자들이지만 이들은 역사의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창조자들의 관념이 널리 보급되고 대를 이어 전달되어 보편화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생물학적 진화에만 의존하는 동물이 수십세대에 걸쳐야 하는 적응과정을 인간은 문화를 통해 단 한두세대만에 해치울수 있습니다. 집단 중 한 두사람의 창조적 존재가 있어도 이들의 업적은 문화로 보편화되고 세대를 거쳐 전수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이 “교육”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일 뿐 아니라 교육하는 동물인 것입니다. 인류가 이렇게 지구상에서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용기, 힘, 투쟁 따위가 아니라 문화와 교육의 힘인 것입니다.
용맹과 무력만을 숭상하고 문화와 교육을 등한시한 민족이 얼마나 허무하게 스러져 갔는지 우리는 힉소스, 히타이트, 아시리아, 흉노, 몽골의 성쇠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무력에 의해서는 정복당했지만 사실상 정복자를 정복한 그리스와 중국을 통해서도 문화와 교육의 위대함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육은 위대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교육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위대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 즉 교육자, 교사들이야 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 역사의 중추를 담당하는 웅혼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 많은 교사들은 째째하거나 쪼잔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이는 그만큼 교사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섬세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너무도 중요한 인류의 위업이며, 그 영향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가해집니다. 그러니 교육은 함부로 자신의 용기를 뽐내고 통큼을 자랑하며 객기를 부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육은 오히려 항상 신중한 판단과 정교한 선택에 직면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저는 우리 나라 교사들이 지나치게 째째하다는 점에서는 동의 합니다. 그들에게 용기, 대담성, 창의성이 지나치게 부족함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다 갖추기가 어렵다면 째째할지언정 신중하고 사려깊은 교사가 무모하고 대담하지만 째째하지는 않은 교사보다는 더 바람직한 교사가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교육자 뿐 아니라 심지어 장군들에게까지 적용됩니다. 용맹함과 신중함을 겸비하기가 어렵다면 그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용맹한 장수 보다는 신중한 장수가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예를 보십시오. 그 분은 결코 용맹한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출격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소위 “째째”해 보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조정은 수군이 궤멸된 다음에야 그의 째째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째째함을, 신중하고 사려깊음, 그리고 섬세하고 꼼꼼함으로 받아들여야지 결코 비겁하고 우유부단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과 위험을 우려하여 째째해 보일정도로 조심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 -동료들의 비난, 행정적인 규제, 교장의 압력, 관행이나 관례-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교육적 결과라는 잣대에 의거해서 째째하게 좌고우면해야 하며, 또 이 잣대에 의거해서 때로는 용감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젊은 여러분에게는 유감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대개는 대담한 선택보다는 째째한 선택이 올바른 경우가 많습니다. 남이 뭐라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교사는 결코 객기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교직생활의 대부분은 이 째째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확신이 섰다면, 그리고 그것이 교육적으로 마땅한 것이라고 결정되었다면 여러분은 대담해 지는데 조금의 두려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규범은 오직 하나 교육입니다. 교육이 여러분을 주저하게 만들고, 교육이 여러분을 대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교육에 대해서는 상충하는 여러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옳기도 하고 모두 그르기도 합니다. 이 중 한 관점에 입각해서 대담하게 행동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다른 관점에 의해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 주장도 가능한 것이 교육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용감해지기 전에 먼저 째째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현 상태가 어떤지 째째하게 살펴보아야 하며, 여러분이 처한 교육적 환경, 여러분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 또 다른 대안의 가능성도 째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입장을 가진 교사들과도 째째하게 토의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여러분의 입장이 처음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도출된 최종 입장이 있다면, 이 때가 여러분이 째째함을 그만두고 용기있게 밀고 나가야 할 순간입니다.

사업가는 과감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이익을 놓칠수 있습니다. 물론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가는 기대되는 이익과 예상되는 리스크를 비교합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이익 쪽이 크면 용감하게 달려 나갑니다. 하지만 교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익이 손실보다 큰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익은 크지 않더라도 손실이 없는 쪽이 교사가 선택해야 할 방향입니다. 그래서 교육에는 공리주의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총효용 입장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불리한 학생 입장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업가에게 안 팔리는 상품은 버려야 할 대상이지만, 교사에게 가장 불리한 학생은 오히려 가장 공들여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불리한 학생이 가장 적게 나오는 안이 나올때까지 계획을 수정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이건 사람을, 더군다나 미래를 짊어질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째째합니다. 하지만 그 째째함은 위대하고 영웅적인 째째함이며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째재함입니다. 여러분은 째째해질 수 있는 용기와 그 째째함을 유지할 수 있는 끈기와 절제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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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2/07 15:40 |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 트랙백 | 덧글(8)

학생들이 만든 지식E채널

요즘 수업시간에 교실에 있는 여섯대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지식e채널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제대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 중 여학생들이 중심이 되서 만든 것 하나 올려봅니다. 누가 여학생이 컴과 친하지 않다고 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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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1/06 16:21 | 교단 일기 | 트랙백 | 덧글(6)

경사 났네, 경사 났어!

공정택이 마침내 짤렸습니다.

서울시 교육을 말아먹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교육감 공정택이 마침내 검찰의 너무도 노골적인 봐주기 수사에도 불구하고 겨울 벌금 150만원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치사하게 항소에 상고에, 헌재에 질질 끌고 늘어지더니 결국 오히려 망신만 두제곱, 세제곱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 28억을 갚을 일도 막막할 것이고,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교육계 각종 요직에 승진시키고 약속 봐주고 하면서 받았다는 거금들도 뭉치뭉치 게워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나 저나 저 파렴치한 도적같은 인간이 억울하게 해직시킨 작년의 그 선생님들은 이제 그만 복직이 되어야 옳겠죠?

잔여 임기가 너무 짧아 다시 선거를 하지는 않겠지만, 다음번 정기 선거때는 제발 올해 같은 어리석은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다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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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0/29 16:3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

교실에서 노가다

나는 내 전용 교실을 하나 가지고 있는 꽤 복 받은 교사중 하나입니다. 한국 실정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죠. 하지만 그 과정은 눈물겨웠습니다.

우리 학교에 비는 교실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가 이름이 인문사회교실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장에게 그 교실에 책장을 사다 놓고 여러 자료를 비치해서 토론수업방으로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난관이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토론에 필요한 기본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아이들에게 충분히 읽힐 자료를 일개 교실에 비치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었고,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려고 해도 이미 각종 스케줄이 빡빡해서 안정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해답은 인터넷인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려면 적어도 5~6대의 컴퓨터는 교실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실이 컴퓨터교실 외에 있을 턱이 없고, 일반 교실에는 검색, 조사용이 아니라 시청각 교육용 컴퓨터가 한대 있을 뿐입니다. 예산을 신청해 봤지만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무실이나 특별실 등에 컴퓨터가 교체될때마다 버려지는 컴퓨터들을 모았습니다. 버려지는 컴퓨터라 그 상태는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CMOS암호가 걸려있는 놈도 있었습니다. 거런 놈은 메인보드 점퍼 초기화 하고, 작동 안되는 컴퓨터는 램만 빼서 재활용하고 하는 등 10여대 컴퓨터의 부품들 중 쓸만한 놈을 재조립해서 여섯대를 만들어 4층에 있는 인문사회교실로 옮겼습니다.

마침내 우리 아이들은 토론 수업중에 언제든지 자료를 찾아보면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방식은 거칠기 한량없습니다. 잠깐만 앉았다가 가면 바탕화면 가득하게 파일이 덮이고, 온갖 액티브 X와 외부 프로그램이 주렁주렁 설치됩니다. 각종 트로잔, 악성코드도 무수히 검색되고, 아주 지저분해 집니다. 그러면 컴퓨터가 점점 느려지고, 그때마다 사방팔방에서 "선생님, 컴퓨터가 안되요!" 소리가 속출합니다. 그럼 그때마다 가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사회선생인지 기술선생인지 헷갈립니다.

그래도, 이렇게 고달파도 아무것도 없는 교실에서 아는 것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멀뚱멀뚱한 수업을 하는 것 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후에는 사회 뿐 아니라 다른 과목 수행과제를 하려는 아이들이 들락날락합니다. 이제 다음 과제는 버려지는 프린터와 스태너를 주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교실이 정착해 가자 아무것도 보태준 적 없는 교장, 교감, 연구부장이 사진을 찍어갑니다. 교과교실 활용 실적에 들어가겠죠. 학교일이란게 늘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관심을 끌었으니 내년에는 토의용 책상이라도 구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없는 선생님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냥, 지나간 노가다들이 생각나서 몇줄 끄적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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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0/22 10:35 | 교단 일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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