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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필요한 강수진 혹은 조선일보

나는 강수진 씨가 공연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상하게 큰 발레 공연은 꼭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데(객석수가 많아서 그런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발레나 오페라를 보는 것은 나는 소양은 없고 돈만 많다고 자랑하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A석만 되도 까마득히 멀리 개미같은 무용수들이란....소양도 돈도 있으려면 몇십만원짜리 티켓을... 헉. 그래서 나는 강수진씨를 발레리나로서 어떤지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순전히 강수진씨의 특정 발언과, 그 발언을 전달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것이니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예술적 성취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조선일보 기사라 신뢰성에 의심이 가지만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 강수진은 "중3 때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남산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 발레 연습을 하다 저녁 때는 예습·복습을 하고 10시쯤 잤다"면서 "지금도 일과는 그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엔 "발레를 하면 거의 매일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 힘든 게 내겐 보통"이라고 답했다.-

이 대목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감동을 줄지 몰라도, 발레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말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기대한 대답은 "물론 아프죠. 하지만 내 몸 사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면 통증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아요."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안 할만큼 강수진씨가 솔직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사실 통증을 친구삼을 정도라면 정신 건강에는 상당한 적신호입니다. 일종의 강박신경증의 증후일후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술은 일종의 억압된 욕망의 승화이기 때문에 신경증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히스테리=예술, 강박증=종교, 망상증=정치...

하지만 나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말은 "동료들은 나를 머신(기계)이라고 부른다"며 "쉬는 건 나중에 무덤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을까요? 우연히 화가나서 한 말일까요?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우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건 정말 강박증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이건 이 분이 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지금 주변 사람들을 무척 힘들게 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또 그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파고들지는 않겠습니다.

문제는 이걸 너무 감격스럽게 전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였습니다. 강수진씨 강연에서 하고 많은 내용은 다 제쳐두고 하필이면 "쉬는 것은 무덤에 가서도 할수있어"하고 타이틀을 달았던 것입니다. 하고 많은 말 중에 여기에 감격한 혹은 감격할 것을 요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확실히 병적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강박신경증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투자하는 자본가와 노동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작용이 모두 강박적입니다.

투자는? 역사적으로 부자들은 돈을 쓰고자 합니다. 과시합니다.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 박으로 대박을 낸 흥보의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묘사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첩까지 거느리며 살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부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떼돈을 벌지먼 번 그 돈은 계좌에서 숫자로만 존재해야지 지갑까지 와서는 안됩니다. 얼른 얼른 재투자 해야 합니다. 막스베버가 말했듯이 계좌의 숫자 그 자체가 기쁨의 근원이 될 뿐, 그것을 이용한 다른 재화와 용역은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이런 사람을 정신병자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수전노" 아닙니까?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돈을 뺏아가려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할때, 나의 돈을 늘리는 것 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게 느껴질때... 만약 그 대상이 돈이 아니라면 정신병리학에서는 이것을 편집증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떤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면(예를 들면 여자구두, 속옷 따위) 변태내지 정신병으로 취급되는데, 유독 돈에의 집착만 허용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심리적으로 병든 것은 별개가 아니겠습니까?

노동은? 세상에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이 인간을 위대하게 하네 어쩌네 하는 노동운동가들도 기회만 생기면 노조 전임자라도 하면서 노동 하지 않으려 합니다. 노동 대신 투쟁을 하죠.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을 문둥병처럼 기피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노동(labour)이 아니라 일(work)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작품에 심취한 예술가는 몇시간씩 꼼짝않고 작업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매일매일 주어진 시간표에따라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라고 하면 붓을 집어던지고 말것입니다. 투쟁하는 노동운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매일 9시는 국회, 10시는 정부, 2시는 법원 앞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피켓팅과 시위를 하고 주말은 쉬라고 한다면 당장 투사노롯 때려 치울겁니다. 투쟁도 필받아서 해야지 시간표대로 하기 시작하면 노역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은 필 받으면 몰아치는 그런 노동이 아니라 시간표에 따라 늘 일정하게 반복하는 이런 이상한 노동입니다. 똑같은 일을 끝도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정신병리학에서는 강박증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상합니다. 모든 행위의 반복은 강박증이지만, 그 반복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노동이 되는 것입니다. 노동을 예찬하는 것은 사실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야 말로 이런 "노동의 예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처럼 기피되는 노동을 끄적끄적 하게 만드는 것... 이게 자본주의의 생명줄입니다.

처음에는 강제노동이 주어졌습니다. 이른바 폭력적으로 관철된 시초축적(본원적 축적)과정이 그렇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부랑자는 처벌되었고, 농민들은 농토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강제로 공장에 밀려들어갔으며, 구걸을 하거나 노숙을 하면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저항도 만만치 않은대다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노동하게 노동윤리를 내면화 하는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바로 훈육입니다. 학교의 탄생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학교는 시간표에 따라 매일 반복적으로 출퇴근하고 노동하는 생활이 몸에 배이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노동자공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빵점짜리는 용서받아도 무단결석자는 용서받지 못하는 곳, 이게 학교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내면화보다 더 강력한 것은 최면을 걸어버리는 것입니다. 훈육을 통한 내면화는 의식에 작용합니다. 하지만 최면은 무의식에 작용합니다. 한마디로 노동강박증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노동을 안하면 큰 재앙이라도 닥칠것처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노동강박증을 앞에 나왔던 돈에 대한 편집증과 결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일하고, 벌고, 일하고 벌고를 죽을때까지 반복하게 될겁니다. 만약 이 흐름이 멈추면 신성모독이라도 범한것 같아서 죄책감과 불안감에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될겁니다. 휴식은 없습니다. 휴식을 하게되면 오히려 더 불안합니다. 사우나에서 찜질방에서 알몸으로 휴대전화만 들고 돌아다니는 샐러리맨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이건 이미 철저히 물든 강박증입니다. 강박증 환자는 정말 무덤에 가서야 쉴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왜 강수진씨가 조선일보에 의해 칭송을 받고 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강수진씨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세속적 성공에만 관심이 있고, 그 성공을 위해 강박적으로 반복연습을 했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기독교는 기가막힌 조합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무덤보다 더 안락한 천국으로 유혹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릴 생각 말고 일하고, 일하라. 휴식은 죄악이다. 계속 일하면 죽은 다음 천국에서 휴식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요, 강수진씨 발언에 대한 비판 댓글에 가장 울컥하는 반응을 보인 분들은 주로 개신교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같은 맥락에서 박태환이 김연아만큼 주류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박태환은 김연아처럼 반복반복 연습벌레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수진, 김연아... 자기도 모르게 조선일보 등에 의해 노동강박증 환자를 생산하는 최면술사의 팬던트가 되고 있습니다. 부디 이분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그런 위치를 뿌리치거나 반비판했으면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부정변증법 | 2009/05/01 12:0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2)

<조선일보-갤럽조사> 고시 반대 여론 70%로 압도적 外

대학에서 사회조사 방법론과 통계처리를 강의하는 입장에서 꼭 한번 뒤집어 보고 싶었던 내용인데, 이미 다른 분이 하셨네요. 그냥 퍼 옵니다.


<조선일보-갤럽조사> 고시 반대 여론 70%로 압도적 外

< 조선일보-갤럽>의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조선일보-갤럽>은 28일 하루동안 구조화된 설문지를 가지고 전화 설문을 통해 1013명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선일보는 이 조사에서 촛불집회에 여론이 악화되었다는 것만 부각시켜 보도하고 있으나, 여론조사의 내용을 살펴보니 그 보다 더 주목해야 할 응답들이 많았다. 본 블로거는 <조선일보-갤럽>의 조사결과 PDF 파일을 입수하여 그 정보를 공개하려 한다. (참고: 이 조사의 최대 허용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이며 응답률은 23.6%이다.)



1.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20.7%로 다시 추락

지 난주 한나라당 소속의 여의도 연구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로 회복했다는 여론조사를 발표하였다. 정당 소속의 연구소의 지지율이 과장되었을 것이란 견해가 있었으나,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도 27%로 나오는 등 지난 7%의 지지율을 탈피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쇠고기 고시가 이루어진 28일 조사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간신히 20.7%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국정수행을 잘 하고 있다고 보는가 잘못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20.7%였고, 잘못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국민이 68.6%였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로 돌아섰다는 일부 언론들의 주장에 반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반짝 상승했던 추세마저 꺽여버린 것으로 보인다.



2. 쇠고기 추가 협상 만족 37%, 불만족 59%

" 쇠고기 추가 협상 결과에 만족하는가 불만족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불만족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 협상에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9%에 불과했으며, 대다수의 응답은 불만족에 집중되어 나타나 여전히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 고시 하지 말았어야 70%로 압도적

다 음으로 <조선일보>가 광우병 위험에 관한 위험을 근거로 국민들의 여론이 돌아선 것처럼 보도한 것과 다르게, 정부가 美쇠고기 고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국민이 7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전히 국민들의 美쇠고기 불신이 높다는 것과 더불어,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시의 관보게재에 대해 다음중 어떤 의견에 공감하는가?라는 질문에 추가협상까지 마쳤기 때문에 고시를 해야했다 27.9%, 국민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마친 뒤로 미뤄야했다 44.8%, 미국과 전면 재협상까지로 고시를 미뤄야했다 25.9% 라는 응답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고시가 27일 이루어진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고시를 하지 말았어야라는 의견이 70.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결과이다.



4. 한나라당 지지율 20%대로 추락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20%대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설문조사에서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꾸준히 30%대를 기록하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29.8%를 기록하여 20%대로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이명박 정부의 낮은 지지도가 여당으로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 "촛불시위 변질"에 관한 <조선>보도는 사실과 달라

마지막으로 조사 결과 중 여론조사의 내용과 해석이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지적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촛불이 변질되었다"는 여론이 67%로 나타났다고 했으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설 문 조사에서는 정확히 " ○○님께서는 최근 촛불집회의 목적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에서 교육자율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공영방송 사수 등 다른 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 공감하십니까? 아니면 공감하지 않으십니까?" 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촛불시위 변질과는 차원이 다른 질문이다. 조선일보는 이 응답을 "촛불시위 변질"이라는 말로 풀어내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왜곡이다.

이는 사실 잘못된 문장으로 갤럽의 여론조사 전문성을 의심할 만큼 형편없는 조사문항이다. 응답자의 입장에서 이 질문은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촛불집회의 목적이 변화했느냐를 아는지 묻는 질문, 둘째, 촛불집회의 목적이 변화했다는 여론에 공감하는지 묻는 질문, 셋째, 촛불집회의 목적이 변화한 것에 대해 공감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이 문항의 결과는 이런 다의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조사 되어서도 안되었고, 조사 결과를 마음대로 해석해서도 안되었던 것이다. 즉, 이 질문은 촛불이 변질되었냐는 것을 묻지도 않았었고, 응답자는 그런 대답을 하지도 않았었다.



고시에 반대에 대한 여론 압도적이고, 이명박-한나라당 지지율 추락 추세 보여

< 조선일보-갤럽>의 조사는 美쇠고기에 대한 반대여론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명박 지지율은 대국민 사과이후 반등했다가 다시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한나라당 지지율은 하락추세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시위에 대한 여론은 계속해야 37.9%, 중단해야 57.2%로 나타났지만, 경찰의 진압 방식이 과잉진압이라고 보는 여론이 높아 촛불시위를 둘러싼 시위대와 경찰에 대한 여론의 시각은 같이 안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이 조사의 결과는 <조선일보>와의 해석과는 다르게,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안좋아지고 있다는 걸 나타내고 있다. 또한 조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본 결과 촛불에 관한 여론도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다르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촛불에 관한 여론은 다양한 차원의 해석이 가능한 만큼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추가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조선일보>처럼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by 부정변증법 | 2008/06/30 16:20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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