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01일
나는 강수진 씨가 공연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상하게 큰 발레 공연은 꼭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데(객석수가 많아서 그런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발레나 오페라를 보는 것은 나는 소양은 없고 돈만 많다고 자랑하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A석만 되도 까마득히 멀리 개미같은 무용수들이란....소양도 돈도 있으려면 몇십만원짜리 티켓을... 헉. 그래서 나는 강수진씨를 발레리나로서 어떤지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순전히 강수진씨의 특정 발언과, 그 발언을 전달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것이니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예술적 성취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조선일보 기사라 신뢰성에 의심이 가지만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 강수진은 "중3 때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남산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 발레 연습을 하다 저녁 때는 예습·복습을 하고 10시쯤 잤다"면서 "지금도 일과는 그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엔 "발레를 하면 거의 매일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 힘든 게 내겐 보통"이라고 답했다.-
이 대목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감동을 줄지 몰라도, 발레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말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기대한 대답은 "물론 아프죠. 하지만 내 몸 사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면 통증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아요."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안 할만큼 강수진씨가 솔직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사실 통증을 친구삼을 정도라면 정신 건강에는 상당한 적신호입니다. 일종의 강박신경증의 증후일후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술은 일종의 억압된 욕망의 승화이기 때문에 신경증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히스테리=예술, 강박증=종교, 망상증=정치...
하지만 나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말은 "동료들은 나를 머신(기계)이라고 부른다"며 "쉬는 건 나중에 무덤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을까요? 우연히 화가나서 한 말일까요?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우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건 정말 강박증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이건 이 분이 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지금 주변 사람들을 무척 힘들게 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또 그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파고들지는 않겠습니다.
문제는 이걸 너무 감격스럽게 전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였습니다. 강수진씨 강연에서 하고 많은 내용은 다 제쳐두고 하필이면 "쉬는 것은 무덤에 가서도 할수있어"하고 타이틀을 달았던 것입니다. 하고 많은 말 중에 여기에 감격한 혹은 감격할 것을 요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확실히 병적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강박신경증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투자하는 자본가와 노동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작용이 모두 강박적입니다.
투자는? 역사적으로 부자들은 돈을 쓰고자 합니다. 과시합니다.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 박으로 대박을 낸 흥보의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묘사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첩까지 거느리며 살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부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떼돈을 벌지먼 번 그 돈은 계좌에서 숫자로만 존재해야지 지갑까지 와서는 안됩니다. 얼른 얼른 재투자 해야 합니다. 막스베버가 말했듯이 계좌의 숫자 그 자체가 기쁨의 근원이 될 뿐, 그것을 이용한 다른 재화와 용역은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이런 사람을 정신병자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수전노" 아닙니까?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돈을 뺏아가려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할때, 나의 돈을 늘리는 것 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게 느껴질때... 만약 그 대상이 돈이 아니라면 정신병리학에서는 이것을 편집증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떤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면(예를 들면 여자구두, 속옷 따위) 변태내지 정신병으로 취급되는데, 유독 돈에의 집착만 허용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심리적으로 병든 것은 별개가 아니겠습니까?
노동은? 세상에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이 인간을 위대하게 하네 어쩌네 하는 노동운동가들도 기회만 생기면 노조 전임자라도 하면서 노동 하지 않으려 합니다. 노동 대신 투쟁을 하죠.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을 문둥병처럼 기피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노동(labour)이 아니라 일(work)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작품에 심취한 예술가는 몇시간씩 꼼짝않고 작업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매일매일 주어진 시간표에따라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라고 하면 붓을 집어던지고 말것입니다. 투쟁하는 노동운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매일 9시는 국회, 10시는 정부, 2시는 법원 앞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피켓팅과 시위를 하고 주말은 쉬라고 한다면 당장 투사노롯 때려 치울겁니다. 투쟁도 필받아서 해야지 시간표대로 하기 시작하면 노역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은 필 받으면 몰아치는 그런 노동이 아니라 시간표에 따라 늘 일정하게 반복하는 이런 이상한 노동입니다. 똑같은 일을 끝도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정신병리학에서는 강박증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상합니다. 모든 행위의 반복은 강박증이지만, 그 반복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노동이 되는 것입니다. 노동을 예찬하는 것은 사실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야 말로 이런 "노동의 예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처럼 기피되는 노동을 끄적끄적 하게 만드는 것... 이게 자본주의의 생명줄입니다.
처음에는 강제노동이 주어졌습니다. 이른바 폭력적으로 관철된 시초축적(본원적 축적)과정이 그렇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부랑자는 처벌되었고, 농민들은 농토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강제로 공장에 밀려들어갔으며, 구걸을 하거나 노숙을 하면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저항도 만만치 않은대다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노동하게 노동윤리를 내면화 하는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바로 훈육입니다. 학교의 탄생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학교는 시간표에 따라 매일 반복적으로 출퇴근하고 노동하는 생활이 몸에 배이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노동자공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빵점짜리는 용서받아도 무단결석자는 용서받지 못하는 곳, 이게 학교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내면화보다 더 강력한 것은 최면을 걸어버리는 것입니다. 훈육을 통한 내면화는 의식에 작용합니다. 하지만 최면은 무의식에 작용합니다. 한마디로 노동강박증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노동을 안하면 큰 재앙이라도 닥칠것처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노동강박증을 앞에 나왔던 돈에 대한 편집증과 결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일하고, 벌고, 일하고 벌고를 죽을때까지 반복하게 될겁니다. 만약 이 흐름이 멈추면 신성모독이라도 범한것 같아서 죄책감과 불안감에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될겁니다. 휴식은 없습니다. 휴식을 하게되면 오히려 더 불안합니다. 사우나에서 찜질방에서 알몸으로 휴대전화만 들고 돌아다니는 샐러리맨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이건 이미 철저히 물든 강박증입니다. 강박증 환자는 정말 무덤에 가서야 쉴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왜 강수진씨가 조선일보에 의해 칭송을 받고 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강수진씨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세속적 성공에만 관심이 있고, 그 성공을 위해 강박적으로 반복연습을 했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기독교는 기가막힌 조합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무덤보다 더 안락한 천국으로 유혹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릴 생각 말고 일하고, 일하라. 휴식은 죄악이다. 계속 일하면 죽은 다음 천국에서 휴식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요, 강수진씨 발언에 대한 비판 댓글에 가장 울컥하는 반응을 보인 분들은 주로 개신교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같은 맥락에서 박태환이 김연아만큼 주류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박태환은 김연아처럼 반복반복 연습벌레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수진, 김연아... 자기도 모르게 조선일보 등에 의해 노동강박증 환자를 생산하는 최면술사의 팬던트가 되고 있습니다. 부디 이분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그런 위치를 뿌리치거나 반비판했으면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 by 부정변증법 | 2009/05/01 12:0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