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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자건거 31만원




엉뚱한 뉴스가 다 있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 이미 2만달러를 돌파한 그러나 거덜난 빈창고라고 주장하신 나라 경제를 물려받아 16000달러까지 줄이는 위업을 달성하신 뒤 17500 정도로 회복하신 기적을 보이시고, 경제대통령이라 불리시는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경매에 다 나왔다. 뉴스를 보자.

"무체인 자전거가 시중에서 40만~50만원대에 팔리는 점을 고려해 30만원부터 경매를 시작했다. 경매에는 4~5명이 참여했으며 결국 잠실동에 사는 53세 공무원이라고 밝힌 김종윤 씨에게 31만원에 낙찰됐다."

그런데 두가지가 석연치 않다. 우선 대통령각하께서 나도 자전거 타고 출근한다고 광고하면서 400미터를 자전거 타고 가면서 찍은 사진에 나온 자전거는 프레임과 페달 근처가 모두 파란색이다. 그런데 경매에 나왔다는 자전거는 노란색이다. 이건 대체 어찌 된 일일까? 타시던 자전거가 아니던가 아니면 겨우 400미터 출퇴근 하시는데 자전거를 두대를 쓰시던가 둘 중 하나다. 전자라면 기만이요, 후자라면 반서민적이다. 한 두푼 하는 자전거가 아니지 않는가?

또 하나 석연치 않은게 있다. 바로 낙찰가다. 얼마 전에 자전거 30만원에 샀다고 좋아하던 어느 선생님이 있었다. 그렇다면 31만원이라는 낙찰가는 각하께서 타시던 물건 치고는 너무 낮은게 아닌가? 나라 경제 거덜냈다고 각하께서 주장하시는 노무현 대통령이 최문순 의원에게 주었던 다기세트는 무려 600만원에 낙찰되기도 하지 않았던가(무슨 청자, 백자 값이 아닌가? 세상에나.....). 그런데 달랑 31만원이라니, 그것도 낙찰자가 공무원이라니....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 보았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사진과 비슷한 모양의 무체인 자전거를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왔다.




























인터넷 할인 가격이 44만원!
그런데 31만원!
저 공무원께서는 저 자전거가 대통령 각하께서 타시던 의미있는 물건이 아니라 단지 싼 가격에 나와서 구입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도 최초 입찰가인 30만원에서 1만원 더 붙은 31만원 이상을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낙찰!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민들이 얼마나 무지몽매하여 옥체가 비비신 성물을 이렇게 무시하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녁에 효자동 지나가면서 본 파리 날리던 "이명박대통령식사하신 해장국집" 모습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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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0/11 19:52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0)

G20 개최로 국격이 올라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화자찬이 도가 넘는다. 그는 G20 유치한 것을 가지고 국격이 상승할 기회라느니, 단군 이래 최대 행사라느니 하면서 모든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여기에 언론들마저 스스로 가세하면서 졸지에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일을 한 그런 사람인양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먼저 G20이 뭔지 좀 보자. G20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등 선진7개국(G7)과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유럽연합(EU)의장국, 그리고 한국 등 이른 바 신흥국, 그리고 IMF, IBRD 등 국제 은행 총재 등이 참석하여 세계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비공식 포럼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구속력 있는 결정이나 협정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공식 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강대국의 지위가 분명하게 적용되는 국제연합이나 여타 국제 회의와 달리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구성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의장도 대륙별 안배에 의해 순번에 따라 맡는 것이 그렇다. 1999년에 베를린에서 처음 개최 되었고, 이후 해마다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재무장관 협의였다가 지난 해 부터는 정상회담으로 확대 되었다. 첫번째 정상회담은 런던에서, 두번째인 올해는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그런데 애초에 G7 만 모여도 세계 경제 현안을 충분히 좌지우지 할 수 있었는데 G20으로 확대된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1997년 세계 경제위기때 아시아 신흥국의 만만치 않은 위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신흥국 경제가 무너지면 그 불똥이 G7에게 퍼지는 것이다. 따라서 G7은 이들 아시아 신흥국과 현안을 논의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여기에 BRICs 급의 신흥국들의 위상까지 높아지면서 G20이 되었다. 결국 G20은 결코 선진국 회담이 아니며, 주요 선진국이 주요 신흥국과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공동의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G7이 신흥국의 의견을 듣고 얼르고 달래는 자리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는 G7과 신흥국의 양자회담이다.

그럼 이제 답이 나왔다. 정상회담이 된 G20은 지난해 영국에서 막을 올렸다. 이 때는 앞으로 정상회담으로 정례화 하자라고 결정한 모임이니까 사실상 첫번째 회담은 올해 미국에서 개막한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번 회담은? 그 모양새 상 G7에서 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명약관화하다. 또 대륙별 안배를 중요시 하기 때문에 브라질, 멕시코, 터키, 아르헨티나도 해당 없다. G7 입장에서는 좀 껄끄러운 중국, 그리고 사실상 G8이 된 러시아는 G7과 동격. 그러면 남은 나라는? 호주, 인도네시아, 인도, 사우디, 남아프리카, 그리고 한국이다.

일본이나 프랑스가 배 아파했다? 그거 참 해괴한 이야기다. 내년 개최지가 신흥국 중 한 군데일 것이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신흥국 들 중 여러 모로 가장 적당한 나라가 한국, 호주 정도일 것이라는 것도 확연하다. 그런데 호주는 사실상 G7급이다. 그럼 답이 나왔다. 뻔한 결과가 나왔는데 배 아플게 뭐가 있겠나?

결국 내년 G20 개최지가 된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졌다기 보다는 원래 국격, 즉 신흥국들 중 리더 급이었던 국격이 다시 한번 확인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계기로 세계경제 리더로 부상되었다는 말도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것은 IMF나 IBRD를 움직일수 있게 되었을때 할 수 있는 말이다. 돌아가며 맡는 G20 의장이나 개최권을 얻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물론 이 행사가 대규모 국제행사이며, 상당한 경제적 메리트를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걸로 인해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질적 전환을 이끌 계기를 만든것인양 오버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이 신흥국 중 잘난쪽이라는 기존의 국격만 확인된 셈이니까. 그리고 대한민국이 신흥국과 G7의 중간 위치에 있었던 것은 이미 90년대 때부터가 아닌가?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입만 열면 "강소국"타령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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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0/02 06:55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2)

대체 왜 내가 안타까워야 하나?- 잡설

한길 리서치가 최근에 조사했더니 이명박의 지지율이 50%를 넘었다고 한다. 정책을 바꾼 바도 없는데 바꿀 것이라는 말이나 뉘앙스만 가지고도 이렇게 올릴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도대체 노무현은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50% 지지율의 속내를 보니까 더욱 갑갑해진다. 그건 전반적으로 지지가 상승한 결과가 아니라 원래 이명박을 지지하던 집단의 충성도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70대 이상의 지지율 74%(이러면서도 전라도의 김대중 지지율 욕한다. 이 노인들....), 자영업자의 지지율 60%.... 아마 학력별로 분류한다면 고졸이하 지지율이 70%로 나올 가능성도 크다.

내가 이런 현상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에게 가장 많이 피해를 보고 있는, 혹은 보게 될 집단이 몰표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 자영업자들, 지하상가에서 줄줄이 쫓겨나도, 대형 마트의 공격적인 입점으로 곳곳에서 문을 닫아도, 노점상 철거, 재개발로 사방팔방에서 찢겨 나가도 이놈의 자영업자들의 여당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게다가 저학력층은 자신들의 자녀를 영원히 찌질이로 박아넣을 교육정책을 포탄처럼 쏟아내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아낌없는 몰표를 선사한다. 이게 세계적으로 가방끈 긴 대한민국의 지성 수준이란 말인가?

할렘가를 허우적거리고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심지어 글자도 제대로 못읽는 미국의 흑인들도 누가 자기편이고 누가 남의편인지는 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민주당에게 몰표를 던진다. 히스패닉은 보수적인 카톨릭 신앙 때문에 동성애를 긍정하고 낙태를 찬성하는 민주당과 거리를 둘 뿐이지, 공화당이 자기 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안다. 그들은 뭔가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을 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왜 자신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고졸이라는 대한민국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은 왜 자기들이 부자정당에게 지지표를 던지는지 이유도 대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그 정당을 지지해야만 하는 의무라도 느끼는 것 같다. 옛날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이 일어났을때 사실상 권력을 잃어버린 지주 앞에서도 농민들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것 처럼 이들은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저 집단들이 아닌 다른 집단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큰 결단이라도 내려야 하는 일 처럼 본능적으로 느끼는 모양이다. 어쩌면 유신시절부터 새겨진 상처의 흔적 때문일까?

그리고 엉뚱하게 이명박 정권 들어선 이후 물질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전도된 현상이란 말인가? 집값은 다시 올라가고 있고, 종부세는 돌려 받았고, 재산세도 내렸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에 대해 언짢음을 느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결국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정치를 바라볼때 나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내 이익과 무관하게 올바르지 못한 정책에는 분노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저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엉뚱한 정치적 선택의 원인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공동체 전체의 올바름의 관점이 아니라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다 보니 잔꾀에도 속아넘어가는 것이다.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진정한 자기 이익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데, 시종 이익만 생각하게 되면 눈앞의 허깨비에 홀딱 속아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플라톤의 국가론, 정치가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모두 그 마지막을 교육학에 할애하였다. 시민들이 이익이 아니라 올바름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을때 비로소 공화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어째서 왕께서는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발끈했던 것이다. 통치자들은 올바름의 관점에서 민중들은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조합을, 뒤르켕이 직능조합을 긍정적으로 본 것은 일단 가족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넘어서는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지,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자체를 긍정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좌파들은 완전히 길을 잘못간 것 같다. 계급의 이익을 생각하라고 외친것이 잘못이다. 저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몰라서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다. 그게 자기들에게 이익일것이라 생각했기에. 물론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 몰랐기에 더 속기 쉬웠겠지만... 하지만 그들이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올바름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으려면 교육을 거쳐야 한다. 어른들이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교육운동은 학교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진정 교육운동가로 불릴려면 학교가 아니라 사회의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올바름이라는 말이 몰계급적 소부르주아적 환상이라고 핏대를 세울 좌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가 혁명을 꿈꾸었던 것은 자본주의적 분배가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에게 자본가의 폐지와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폐지도 요구했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는 계급으로서 자신을 소멸시키며, 그럼으로써 계급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들의 이익을 넘어선 그런 올바름의 관점을 계급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이 과연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익을 위해 봉기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훗날 경제투쟁, 정치투쟁의 구별이 나오고 등등한 것 같은데, 에이 머리 아프다.... 대체 이 사회의 살아있는 부정이자 피해의 담지자들이 멍거니 저러고 있는데 왜 내가 이런 고민을 하며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가? 운동가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해명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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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9/15 14:34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10)

용서가 없는데 어찌 화해, 통합까지 나간단 말인가?

요즘 화해라는 말이 유행인 모양이다. 어느새 화해와 국민통합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처럼 되어 버렸다. 너도 나도 김대중 따르기에 나선다고 하며, 한나라당 쪽 사람들이 더 난리 브루스를 추고 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코마 상태에 빠지기 직전까지 김대중의 발언은 화해, 통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명박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거의 투쟁을 선동하다시피한 모양새였다.

그럼 대체 이 화해 타령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 나온 말일까? 전두환이랑 김영삼이 문병 갔다 오고서 나온 말이다. 모양이야 그럴듯 하다. 사형 선고를 내렸던 전두환이 아니었던가? 평생의 라이벌 김영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문제는 정작 화해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마 상태에 빠진 사람하고 무슨 화해를 한단 말인가? 그냥 일방적으로 방문하고 일방적으로 화해 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줄거리가 이렇게 된다.

전두환: 사형선고까지 내리고 광주 민중을 학살한 나 조차도 김대중과 화해를 원한다.
김대중:.......(코마)
김영삼: 나도 김대중과 화해를 원한다.
김대중:.......(코마). 그리고 사망
이명박 등등등: 자, 김대중의 유지를 이어받아 우리 모두 화해하자.

자, 이게 말이 되는가? 이렇게 되는 순간 어떤 논리가 성립되는가 하면

광주학살을 저지른 전두환과 그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피차 서로에게 잘못한게 된다. 그러니까 화해의 대상이다.
3당 야합을 저지르고 아이엠에프 터뜨린 김영삼과 그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피차 서로에게 잘못한게 된다. 그래서 화해의 대상이다.
그냥 툭 잊어버리자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귀 틀어막고 극우 코드 인사에 온갖 분탕질을 다 저지르고 사람을 몰아 죽이고 태워죽인 이명박과 그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피차 서로에게 잘못한게 된다. 그런데 이제 툭 털고 다 없었던 것으로 하잔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통합 하잔다. 아니 화해의 결말이 왜 통합인가? 화해 하면 서로 관용하며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인데, 그 귀결이 왜 통합인가? 화해 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문제제기도 못하고 뜻을 합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해괴한 논리가 어디 있는가?

자, 말은 똑바로 하자.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은 화해를 말할 처지에 있지 않다. 화해는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했을때 하는 것이다.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은 명백이 잘못을 저지르고 피해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들의 올바른 자세는 "이제 그만 화해하자."가 아니라 "이제 그만 용서해 줘" 이게 맞는거다.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받고, 그 다음에 화해 하는거다. 그런데 저들이 단 한번이라도 용서를 구한적이 있는가? 그런데 화해에 이어 통합이라고?

그럼 그 다음 스토리는 뻔 하다. 이제부터 데모하는 놈들은 화해와 통합의 대의를 거스르는 놈들이니 절대 용서하지 않고, 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겠다. 뭐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정말 기가 막히다.

심지어 전두환조차 사람을 죽이면 당황하는 기색이라도 하고 심심한 사과와 유감이라도 말했다. 그런데 슬그머니 머리 처박고 숨어서 시간아 지나가라 하고 있다가 잊을만하다고 생각되면 튀어나와서 화해하고 통합하자고? 정말 화해를 말하고 싶으면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에 대해 법적으로는 어쩔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최소한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여라.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여라. 작년 촛불 항쟁때 수천명의 억울한 사람들에게 대 사면이라도 한 번 해라. 운전면허만 가지고 생색내지 말고. 이 쪽에서 원한이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화해를 선언하고 통합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은  옹치봉후(雍齒封侯)라는 고사성어를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한고조가 가장 미워하던 신하였던 옹치를 제후로 임명하자 그제서야 부하 장군들이 안심하고 더욱 충성하더라는 고사 말이다. 진정 화해하고싶고, 진정 통합을 꿈꾼다면 그대가 가장 미워하던 사람들, 소위 좌파라고 부르던 사람들에게 먼저 관용을 베풀어라. 그리고 설사 억울할지라도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라. 그러면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통치하는 사람의 도량인 것이다. 그걸 못하겠으면 그대는 그저 한 사람의 시민 정도의 도량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니 서민들 혹하게 하는 저 혹세무민의 미사여구는 집어치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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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8/24 16:15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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