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3일
한국인들의 화법이 원래 그런가, 아니면 그들이 그런가? 이상하게 요즘 정부 발표는 수식어를 많이 쓴다. 연설을 하던, 발표를 하던 그 긴 글의 앞의 절반은 수식어다. 깊이 숙여 사죄하던, 아니면 국민을 섬기던, 국민이 무섭다고 생각하던,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려 하던, 하여간 이런 저런 사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집어 넣는다.
물론 정부는 앞의 부분을 수식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앞의 부분은 항상 이유, 근거가 되고, 뒤의 부분은 그것에 따른 대책이 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이유와 근거는 항상 바뀌는데, 그것에 따른 대책은 항상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책이라 불리는 뒤의 부분을 먼저 정해 놓고, 앞의 부분을 상황에 따라 멋대로 가져다 붙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부가 아무리 떠들어도 항상 불변하는 메세지.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규제완화: 즉 기업과 자본이 멋대로 하도록 하겠다.
2) 감세: 즉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덜 지겠다.
3) 법질서 확립: 즉 억압과 통제를 강화하겠다.
4) 대미공조 강화: 항상 미국을 따라가겠다. FTA는 반드시 비준해야 한다.
5) 시장경제 활성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 즉, 모든 영역을 시장화, 상업화 하겠다.
이런 정책들을 통틀어서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을 제공한 근거는 "비대한 복지국가"였다. 비대한 복지국가가 각종 비효율과 관료주의 도덕적 해이를 낳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의 측면을 조금 낮추고 개인적 책임의 측면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이게 1990년대에는 제법 먹혔던 주장이다. 그리고 이 정부가 처음 출범하면서 앞의 다섯가지 정책방향을 제시했을때 그 이유, 근거 역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었다. 온 세계 경제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그 홍역의 원인이 바로 과도한 자유시장, 고삐풀린 자본 때문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이에따라 신 브레턴우즈가 논의되는 등 자본을 규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참 재미있다. 이런 변화된 상황을 앞의 부분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계 경제가 금융자본의 지나친 횡포로 인해 혼란스럽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도 도리없이 어려운 것이다. "라고 이유를 제시하고는, "따라서 그 대책으로.... 원래 말했던 대로 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원래 계획을 밀고 나가겠다. 상황이 바뀐만큼 더더욱 원래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다.
예를 들면 우리가 FTA를 빨리 비준해야 미국도 비준할 것이다였다가 오바마와 민주당이 FTA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FTA를 빨리 비준해야 한다로 말이 바뀌는 식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법이다. 정말 용량이 2메가 밖에 안되서 그러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이해할수 없는 말들을 그럴듯하게 여기고 있는 한국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 by 부정변증법 | 2008/11/03 09:16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