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양성평등
16살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양성평등
풍성중학교 3학년 ***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인터넷을 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첫째로 신발을 벗고, 둘째로 가방을 내팽겨 치고, 세 번째로는 컴퓨터 플러그를 꼽은 뒤, 마지막으로는 발가락으로 본체의 전원을 켜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볼일이 보고 싶어지면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레 정보의 바다로 풍덩! 빠져들게 된다.
인터넷을 켜면 익숙한 초록색 검색 창이 뜨고, 나는 자연스레 형형색색 다양한 색깔과 현란한 움직임으로 내 눈을 간질이는 광고로 눈을 돌리게 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광고에서는 새로 나온 게임, 승용차, 화장용품, 휴대폰 등을 요란하게 알리고 있고, 그 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품보다 바로 해괴한 옷을 입거나 천 조각으로 보아도 될 만한 옷가지를 걸치고 있는 여성이다.
거의 다 벗은 듯한 여성이 대체 왜 이러한 광고에 나오게 되는 것일까? 너무나 풍만해서 옷이 터질 것 같은 가슴과 불가능 할 정도로 기다란 다리를 자랑하는 게임 광고 속 여자 캐릭터는 어떻게 해서 광고 속에 나오게 된 것일까? 나는 그러한 여자를 이미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처음엔 ‘새삼스레’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느냐고 자문했었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 할수록,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게임 속에서도 그렇지만, 승용차 광고에서도, 주유소 광고에서도 그랬다. 심지어 샤워 용품 광고를 할 때에는 여러 명의 여성이 샤워하는 모습을 발랄하게(?) 표현해내었다. 왜 대체 남자 모델은 거의 쓰지 않는 것일까? 승용차와 거의 다 벗은 여성의 관계는 무엇일까? 샤워 용품 선전은 꼭 여성이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져 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주일에 두세 번 든 체육 시간에는 주로 피구와 축구, 발야구 등을 했었다. 남자애들은 축구, 여자애들은 피구를 하는 것이 정해진 매뉴얼이었고, 어쩌다 한 번 남녀 혼성으로 발야구를 하곤 했다. 어쩔 때는 ‘보디가드 피구’라는 것을 했는데, 여자애들끼리, 남자애들끼리는 서로 맞출 수 있지만 남자가 여자를 맞추어 아웃시킬 수는 없는,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 그러한 피구 게임이었다. 내 기억 속으로는, 그 피구가 결코 재미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하필 남자가 보호 해 주었어야 했을까?’라는 의구심도 적지 않게 든다.
지금도 드라마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회장님, 사장님인데 여자 회장님도 별로 안 보인다. 그리고 회장과 사장 옆에서 열심히 일하는 비서는 왜 다 여자인 건지! 차를 내오고, 전화를 바꿔주고, 손님을 먼저 대접하고……. ‘남 비서’의 개념은 없는 것일까?
또 있다. 우리 동네에는 잠실고등학교, 잠실여자고등학교 등이 있는데, 잠실고등학교에는 남학생만, 잠실여자고등학교에는 이름처럼 여학생만 다닌다. 그런데, 왜 남학생만 다니는 잠실고등학교는 왜 ‘잠실남자고등학교’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 걸까? 남학생이 다니는 학교가 정상화된 것이고,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정상화되지 않아서 ‘여자’라는 단어를 붙인 걸까?
버스를 탈 때 자주 보게 되는 광고에서 모바일 화보를 선전할 때에도 역시 남자 화보는 없었다. 전부 다 여자들이 수영복 입고 해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만 넘쳐날 뿐이다.
이 뿐인 줄 아는가? 속담에도,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속담에도 남녀차별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 셋이 모여도 수다를 잘 떨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과학적으로 고음을 낼 때 접시가 잘 깨지고, 그 고음을 내는 것이 남성 보다는 여성이 아무래도 쉽지 않겠느냐? 그것이 남녀 차별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집안일을 여성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던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에 음파 감지기로 여성들의 목소리와 남성들의 목소리를 비교, 분석해 본 것도 아닐 테고……. 다분히 남성우월주의에 치우쳐서 만들어진 속담 같아, 들을 때마다 속이 상한다.
위의 사례 외에도 양성이 평등하지 못한 예는 참으로 많을 것이다. 회사 내에서도 은근한 차별과 승진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예이다. 회식 자리에서의 성희롱 등도 모두 다……. 십대 아이들이 즐겨 쓰는 속된 단어인 ‘엠창?(뜻은 너희 엄마는 술집에서 일하는 창녀지?)’이라는 말 또한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를 어쩌면 짐승보다 낮은 존재로 심히 격하시킨 예이다.
나의 생활에 깊이 뿌리박힌 ‘은근한 양성불평등’을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느끼고 있을까? 앞으로도 이런 양성불평등이 지속된다면, 진정한 사회악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야기하게 될 것이다. 양성불평등은 사라져야 한다. 내가 이 나이 때에 이러이러한 불평등을 체험했다는 것을 나의 미래의 아들․딸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으며, 현재 또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딸아이를 낳게 되어 그 아이가 양성불평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른 두 종류의 인간만 있을 뿐, 다른 두 계급의 인간이 있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16살의 나이에 내가 할 수 있으며, 앞으로 할 수 있고,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우선, 지금의 엄마․아빠 세대들이 자라나는 자녀에게 올바로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남자아이라면 이렇게, 여자아이라면 저렇게 행동하라고 하지도 말고, 남자아이니까 이렇게, 여자아이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거야.’라고 가르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남자가 남자다운 것, 여자가 여자다운 것을 함부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상에는 다른 두 ‘종류’의 인간만 있을 뿐이다.
또, 학교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힘써야 한다. 남성 주의를 여성 주의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강조해주었으면 한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보디가드 피구를 할 때에 남자가 여자를 지켜주지도,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지켜주는 것도 아닌 동성끼리는 공격을 할 수 있지만 이성끼리는 공격을 할 수 없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방법은 요즈음 대부분의 경기에서 행해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러한 양성평등 글짓기를 보편화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과 학교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역할이다. 한창 자아를 형성할 시기인 십대. 특히 청소년에게 보여 지는 많은 매체부터가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벗은 여성의 몸으로 상품을 대신하여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선정적인 방법 말고 진정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광고가 증가하고, 능력 있는 여성의 정당한 승진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각종 성범죄에 노출 되어 있는 것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시급히 아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장기적으로 사회를 양성평등으로 이끌어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자주 광고를 하거나, 양성평등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증가시키는 등 현재 내가 말할 수 없는 많은 해결 방안들이 차고도 넘칠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는, 여성과 남성의 색깔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16세의 소녀, 내가 보기에는 이 색깔이 혼합되어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혼합되지 않더라도, 각자의 색깔을 살려 보기 좋게 만드는 보색의 관계처럼, 하늘에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한껏 멋을 내고 있는 것처럼, 서로 돕고 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조각조각 맞아 떨어지는 퍼즐처럼. 남녀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16세 소녀는 원한다, 소망한다, 그래서 외친다. ‘평등하자’라고.
# by | 2008/05/08 15:40 | 교단 일기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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