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0일
서울대학생들에게는 묘한 버릇이 있다. 그건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잘 소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이나 출신들은 묻기도 전에 먼저 학교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그런데 서울대학생, 혹은 졸업생은 상대가 먼저 알아서 물어오면 마지못해 쑥스럽게, 네, 한다. 서울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혹은 다녔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나름 특권층(기득권이라고는 하지 말자. 거저 얻은건 아니지 않은가?)에 들어서는데 필요한 자원을 획득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뭔가 미안함, 쑥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묘한 위치에도 서게한다.
그건 서울대학이 형이상학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은 대학 서열의 최정점이 아니다. 서울대학이 있고, 그리고 서열화된 대학들이 있다. 따라서 서울대학은 경쟁에서 열외다. 이는 고전철학으로 말하면 일자의 위치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게 잘못이라는건 다 알수 있지만, 그 미안함을 서울대학생들이 느껴야 하는 까닭은 좀체 알기 어렵다. 그건 서울대학생들이 또 그 졸업생들이 끈끈한 네트워크로 만들어놓은 지위가 아니다. 그런 끈끈함이라는 점에서 서울대생들은 연고대생들의 발끝에도 못미친다.(학벌없는 사회 운동 주도자들이 연고대 출신들이 많은것은 그 점에서 참 수상하다.) 지금의 서울대학과 같은 형이상학적 지위는 서울대 단독으로는 결코 만들수 없다. 그것은 대중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먼저 그 형이상학적 아성을 만들었고, 거기 입학한 학생들이 서울대학생이 된 것이다. 출신학교 말하기를 꺼리는 서울대학생들의 버릇은 바로 그 형이상학적 아성에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신비하게 빨려들어간 얼떨떨함의 반영이다.
말하지 않음. 일종의 터부로 삼음. 그것이야 말로 저 초월적 지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서울대라는 이름을 쉽게 입에 담지 않음으로써 그 이름은 더욱 더 신비하고 굳건한 것이 되어간다. 나는 얼마 전에서울대학에 강의한다는 이유만으로 진보를 자처하는 기자로부터 자기들과 어울릴 자격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불쾌함보다는 연대 출신의 그 기자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반사적인 위축감을 느꼈다. 그것이 억압기제를 타고 분노 혹은 공격성으로 나타날수 있다. 한마디로 학벌철폐운동 자체가 이미 학벌을 인정하는 것이며, 서울대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다. 연고대생들까지 뭉쳐서 서울대 폐지를 목놓아 외쳐야 한다면, 저 서울대는 도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학벌철폐는 제도로 폐지되지 않는다. 대중들의 마음에 무형으로 그려진 서열을 그 구조를 어떻게 폐지한단 말인가? 그 구조가 남아있는한 대중들은 금새 서울대의 기능적 등가물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연고대처럼 기존 서열체계 내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또 다른 형이상학적 지위에 있는 대학일 가능성이 크다. 즉, 서울대가 해체된 파편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학벌철폐는 대중들뿐 아니라 서울대학생들에게 까지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그 신비감, 범접키 어려움의 주술을 해체할때 비로소 가능하다. 주술의 해체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그 이름을 아주 일상적으로 부르면 된다. 그러면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의 근거없는 자부심도 해체될 것이며, 부르는 사람의 이유없는 위축감도 소멸할 것이다. 그 이름을 자꾸 회피할수록 그 이름은 더욱 거룩해진다. 그래서 십계명의 첫째도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것 아니었나? 학벌철폐운동, 서울대 폐지 운동은 이 점에서 이율배반적이다. 참으로 서울대가 별볼일 없게 되기를 원한다면, 별볼일 없게 취급하라. 어차피 서울대 졸업해 봐야 별 뾰족한 수 없는 88만원 시대에, 별볼일 없게 불리기까지하면, 정말 남는 것 없다. 공연히 폐지운동, 해체운동의 대상으로 삼아 특별취급하지 말라.
나는 그래서 서울대 뿐 아니라 상명대, 방통대 등에서도 강의하지만, 고의로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있음을 우선적으로 명시한다. 단언컨대 나는 "대학에서 강의함"에 대해서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나, "서울대에서 강의함"을 더 각별히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대학들 중 하나고, 가장 먼저 강의했던 대학일 뿐이다. 그래서 무덤덤히 그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다. 그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다고 발끈한다면 그는 진보의 모양과 기존 질서를 승인하거나 위력을 느끼는 무의식을 공유하는 모순적 존재일 것이다.
서울대학을 그냥 서울고등학교 부르듯 부르자. 서울대학에 철폐할 특권은 없다. 법적으로는 단지 서울에 있는 국립대학일 뿐이다. 그러니 그냥 그렇게 부르고, 그냥 그렇게 취급하면 된다. 특별한 선망의 대상과 특별한 타도의 대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따라서 입시학원과 학벌철폐운동은 은밀한 공범자일지도 모른다.
"어느 학교 다녀요?" "서울대학이요.(무덤덤)" "아, 네.(무덤덤)" 이런 식의 대화가 널리 퍼진다면 서울대학의 신성함은 붕괴된다. 낡은 유물론에 사로잡힌 구좌파는 말의 무서움을 간과한 경향이 있다. 말은 무슨 주문은 아니지만, 분명 행위자의 관념을 지배하는 강압 없는 강압이다. 진보는 먼저 말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 말은 화용론적 의미에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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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부정변증법 | 2008/08/20 00:3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2) | 핑백(1) | 덧글(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