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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지독한 혼란

제목은 이렇게 썼지만, 이 글은 울리히 벡의 유명한 책 이름이 아니다. 물론 그 책 내용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연찮게 얼추 맞아들어가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에 참 인색하다. 그 한마디만 하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순간에도 "사랑해"라는 말을 기어코 삼킨다. 비유가 좀 건방지지만 공자 역시 "인"이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한사코 에둘러 대답했었다. 공자가 인에 대해 딱 부러지는 설명을 하지 않은 까닭은 인이란 실천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바꾸어 놓은 주자는 공자의 길에서 정말 한참 벗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담지 않는 것도, 그것은 실천을 통해 드러나는 원리지 그 자체로 규정될수 있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행동들"은 할 수 있어도 "사랑 할"수는 없다. 너를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해 줄수는 있어도 "사랑" 그 자체는 할 수 없다. 따라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사랑 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사랑 해"라는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그건 다만 "난 지금 기분 좋아"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제시할 수 없는 한 "사랑 해"라는 말은 공허하다. 오히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에 기반한 여러가지 실천과 배려, 서로간의 관계를 우호적이고 행복하게 만들려는 구체적인 실천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기분 쫗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기분이 나쁘고, 상황이 어렵고, 고통스러울때 그것을 꾹 참고 내색하지 않으며 도리어 상대방을 배려해주려는 마음은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성자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 대하고 나같은 범인은 특정한 사람에게 그리 대한다. 

공자는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다. 예수도 이웃을 사랑하라 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충서를, 즉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갖되, 그게 일시적이거나 변덕스럽지 않고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을 행한다고 했다. 예수도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도덕의 황금율, 즉 네가 원하는 바를 타인에게도 주라는 것으로 귀결시켰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자연적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마음은 자연상태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맹자는 사단이라는 마음의 단서가 있다고 했지만 그건 맹자의 희망사항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마음, 사랑의 마음, 충서의 마음은 훈련되고 교육되어야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서예악이 필요한 것이다. 즉 예절이라는 규범을 따르며 음악과 시의 교양으로 육성되어야 하고, 서의 지식을 바탕해야 하는 마음인 것이다. 즉, '앎' 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사랑은 장자가 말하듯 "새를 키우는데 내가 좋아하는 술과 고기를 주어 결국 굶겨 죽이는"격이 될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도 행하되, 그것을 상대의 상황과 현재 상황에 맞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상대가 원하는 바를 안 뒤, 그 실행 가능성을 고려하여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바와 상대가 원하는 바, 그리고 실행 가능한 상황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교섭하고 조정되어야 한다. 즉 사랑은 "내가 원하는 바와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실행 가능한 맥락에서 일치시킬 수 있도록 상호 교섭하는 것"이다. 사랑은 교섭인 것이다.

원칙적으로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독심술을 하지 않는 한 상대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우선 자신과 상대의 보편성(이게 칸트 윤리학의 기본이 된다)을 가정하여 내가 원하는 바를 기준으로 상대가 원하는 바를 추론한다. 이게 근대적 사랑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아론적 독단, 근대적 주체성의 폐단이 나타난다. 국민들을 사랑한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원하는 바에 비추어 귀족들과 반대파를 죽였다.

여기서 하버마스의 서로주체성이 나올 순서가 된다. 사랑은 물론 상대가 원하는 바를 해 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나를 기준으로 유추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랑의 기준은 나도 남도 아닌 나와 남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소통의 장이다. 결국 사랑이란 "의사소통"하려는 것이다.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자 하며,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라. "사랑하다"는 어떤 관념도 대표하지 못하기에 공허한 말이다. 다만 매 순간 매 순간 상대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소통하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 할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9/12/14 09:28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2)

10년전에 썼던 아주 긴 교단 일기

10년전 너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심란해서 기나긴 일기 비슷한 글을 썼었나 봅니다. 컴퓨터 하드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인데, 느낀바가 있어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말 그대로 수필-마구 붓 가는 대로, 나의 실존, 내면세계의 무제한 표출

 

나는 강남출신이다. 그리고 나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80년대. 그 시대는 정말 독특한 시대였다. 젊은이들은 믿을수 없겠지만 나는 대학 4년 내내 우리 집이 부유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했고, 심지어는 저주해야 했다. 내가 배 불리 먹고, 넉넉하게 살고, 그리고 여유 있게 국립대학을 다닐 수 있는 것은 천만 노동자의 피눈물 나는 희생과 억압 덕분이라는 그 무거운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이 부채의식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아주 손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름 다른 강남 녀석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뻔뻔한 수혜자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 스스로의 기득권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 전투적인 지식인이자 노동계급의 전위투사로 여겼다. 그래서 그 한심한 짓을 함께 공유했던 고등학교나 중학교 동창들과도 거의 만나지 않았고, 연락을 끊었다. 친척들, 특히 부유한 외가쪽 친척들을 노동계급의 적으로 간주하고 연락을 끊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시절은 대학생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 가난해 보이려고 애썼던 시절이다.  “세련되었다.”라는 말이 결코 칭찬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강남출신이라는 것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나에게는 일종 의 원죄와 같은 것이었고, 그 원죄를 씻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곱절, 몇 곱절 더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무거운 원죄의식, 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거시기 국립대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수많은 원죄의식들은 세월이 가고,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그 탄생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잊혀져 갔다. 나는 스스로를 6월의 아들이라 부르며, 내가 아스팔트위에 뿌린 청춘의 시간들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지만, 어쨌든 그건 그냥 지나가 버린 이야기이며, 한 때의 무용담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잊혀져간 그 시절의 그 기억들, 그 원죄의식이 다시 살아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웬디스에서 벌였던 그 치기어린 짓거리가 1997년, 당시만 해도 무척 가난한 지역이었던 암사동에 있는 한 중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결코 웃어넘길 추억만으로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1996년까지 강남구의 도곡 중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피자를 사주고 베니간스에서 식사를 사 주어도 아무 감동없이 너무도 당연하게 덤덤하게 받아먹던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떡볶이 500원어치에 한없이 감동하는 아이들과 함께 분식집에서 만두와 순대를 먹는 상황에 처하자 그놈의 원죄의식이 다시 솟구쳤던 것이다. 이제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이제는 거의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원죄의식은 점점 생생하게 되살아나며 나를 밤새 뒤척이게 만들었다.


사실 나는 대학교 때 치열하게 싸우고 고생했던 것으로 원죄를 충분히 대속 했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떳떳했었다. 그래서 도곡 중학교에 발령이 났을 때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 속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릉역과 역삼역 사이에 자리 잡은 그 동네는 지하철 3호선의 종점이 양재에서 수서로 바뀌었다는 것 빼고는 내가 학교 다닐 때의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복이 생겼다는 것을 빼면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아이들은 얼굴을 보면 그 즉시, 저놈은 내 어린 시절이군, 아 저놈은 내 친구 진수의 어린 시절 같고 하며 손쉽게 친근감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갸냘픈 향수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마치 나의 어린 시절 같은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이물질처럼 끼어있던 대학 4년, 아니 5년간의 기억에서,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얼마나 행복했던가? 거칠고 교양 없고, 오직 바라는 건 엄마들의 돈 봉투뿐인 선생들, 아니면 “나는 도덕적이야, 나는 깨끗해.” 라고 하면서 은근히 강남 아이들의 좋은 가정환경을 시샘하고, 그 시샘과 열등감을 “이 동네 아이들은 도대체가 선생을 우습게 알고, 지만 아는 이기주의자들이야! 여기에서 무슨 교육을 해? 난 가난한 동네로 갈거야!”라는 말속에 풀어내는 촌스러운 선생들 속에서 부대끼던 아이들에게 나는 선생이자, 동네 오빠였으며, 그리고 향토의 선배이자 자신들의 미래 모습이었으며, 혹은 흉내 내고 싶은 하나의 모델이었다.

아이들 눈에는 얼마나 멋지게 보였겠는가? 좋은 집안에 명문대 출신으로 방송국이란 직장도 마다하고서 백묵을 잡은, 젊고 전혀 구질구질하거나 꾀죄죄하지 않은 선생님. 컴퓨터 게임도 할 줄 알고, 시끄러운 메탈 사운드도 즐기고, 아이들의 문화도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선생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거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것 역시 내가 노력한 결과였다. 교재연구만 하면 선생의 준비가 다 끝난 것인가? 천만의 말씀! 자신을 문화적으로, 심지어는 스타일로도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나는 그 5년간을 가장 솔직한 나의 참 모습 속에서 살았는지 모른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엘리트 코스를 계속 밟아온, 생활에 부대끼지 않고, 여유있게, 정말 가르치는게 재미있어서 가르치는 신선놀음하는 선생. 온갖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누리며, 교사의 봉급을 전혀 박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며, 도대체가 미래의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그런 부드러운 교사. 그곳에서 근무했던 것이 나의 불행이었는지 모른다. 나를 계속해서 온상 속의 화초로 머물게 만드는.

그러나 나는 너무 솔직하다. 그래서 “잘 사는 애들은 더 이상 돌볼 필요가 없잖아? 그래서 나는 어려운 아이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로 가서 참 교사의 보람을 찾겠어!”라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런 용기도 나지 않고, 진짜 어렵고 거친 그런 아이들을 다루고 힘이 되어줄 자신도 없다. 내가 그들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건 촌 출신 선생들이 강남 아이들 앞에서 사정없이 헤매고 상처받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강남 애들 앞에서 병신 되는 건 “부잣집 애들이라 싸가지 없다.”라는 말로 합리화가 되고, 가난한 아이들 앞에서 헤매는 건 교사의 기본적인 양식이 부족한 것으로 은근히 말이 흘러가는 이 웃기는 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도곡 중학교에서의 5년을 행복하게 보냈다.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하는 전남 영암 출신 교사에게 조언도 해 주고 하면서, 학교에서 가장 힘들다는 학생부 교내지도계를 계속 하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의 주소가 송파구라는 이유로 강남에서 나가게 되었다. 마침 도곡에서 정을 끊으라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강남의 교사진은 점점 고령화 되었고, 돈 뜯어 먹는데 귀신인, 아부하는데 귀신인, 정말 그 아이들 가르치기엔 너무너무 턱없이 모자란, 그래서 강남 아이들의 선생에 대한 기본적인 싸가지 없음을 만드는 가장 주범인 그런 미친 늙은이들로 교무실은 갈수록 도둑놈 소굴처럼 변해갔다. 난 단안을 내렸다. 이 거지같은 것들과 함께 일하느니 내가 여기를 떠나자. 그래서 유임하라는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그 속이야 뻔하지 않은가? 일에서의 열외를 권리처럼 주장하는 늙은이들로 학교가 가득 차니 일 시켜 먹을려고 붙잡는 거지), 구청을 옮기기로 했다. 학교를 옮기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강남이 내가 20년을 살아온 곳이라면, 송파구는 내가 그 나머지 인생을 살아온 곳이었으며, 대체로 그 문화나 분위기가 비슷했으니까(그러고 보면 나는 단지 두 개의 구에서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우물 안 개구리란 속담은 나 들으라고 나온 말인가 보다). 그리고 인접해 있는 강동구 역시 대체로 비슷하거나 약간 못하리라 생각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송파구에서 10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강동구는 그때까지 거의 가 본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때 문득 깨달았다. 검단산 갈 때 버스 창밖으로 구천면 길 일대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기차표 끊으러 길동에 있는 강동 우체국에 몇 번 같던 것, 한일 시네마가 있는 천호 사거리, 시네월드 개관한 뒤 강동 구청 앞에 몇 번 갔던 것, 그 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막연하게 송파구건 강동구건 어쨌건 다 8학군인데 그만하면 할 만 하겠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착임계를 쥐고 암사동에 도착했을 때 그 느낌은…. 한국어의 빈약한 어휘로는 뭐라고 표현할 어휘의 부족을 느낄 정도였다. 영어로는 mental cataclysmic 뭐 이렇게 쓸까?

그때의 내 심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정말 여러가지 생각으로 온통 엉켜 있었으니. ‘서울에 이런 곳도 있었나? 과연 내가 이런 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이 걱정은 자신은 쥐뿔도 없으면서 자신이 근무하던 곳의 학생들과 눈높이만 비슷해져 가지고 “내가 오륜에 있을 때는, 내가 가원에 있을 때는…. 하는 그런 선생들이 하는 종류의 걱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실존적인 혼란과 걱정이었다. 나 자신을 알기에 당연히 해야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반면에 ‘그래. 이런 곳이 당연히 있지. 난 대학교 때 이곳보다 더 어려운 사당동이나 봉천동의 달동네에서 소위 민중운동이란 것을 했던 사람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곳에서야말로 진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지.’ 하는 기대감 같은 것도 은근히 가슴속에서 솟아 나왔다. 물론 그 기대감이 고통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석 달이면 충분했지만 말이다.

 

어떤 교사는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아니, 대부분의 교사가 그럴 것이다. 흔히 하는 “내가 저들 비위까지 맞춰줘야 해?” 하는 푸념을 수없이 들어왔고, 그 푸념에 관해서만큼은 20대에서 50대 까지 (60대는 곧 짤릴거니까 빼자)세대차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암사동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엉뚱하게도 도대체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강남이나 다른 비교적 부유한 동네에서 주눅들어가며 아이들의 거만하고 차가운 시선만을 주로 받아왔다고 느끼던 저 위축되고 컴플렉스로 가득한 교사들에게는 교사에게 순종적이고 학부모도 찍 소리 안하는 암사동의 아이들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강남에서도 이미 아이들의 신뢰와 사랑을 가득 받아가며 5년을 보냈었다. 게다가 그것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서 수도 없이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난 기꺼이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었고, 또한 그러면서 아이들을 내 페이스에 끌어들이고, 그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로부터 다른 교사들이 받지 못하는 차별대우와 편애를 받아 왔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게 없었다. 모든 선생이 같았다. 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선생들 입장에선 얼마나 행복한가? 사랑도 거저 얻고, 귀여운 아이들도 거저 얻으니.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나는 선생으로서 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다른 사람에겐 없는 뭔가가 저 사람에게는 있다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휘어잡고, 수많은 복제품을 만들어 내고, 많은 인재를 키워왔던 나의 할 일은 일거에 사라져 버렸다. 그저 교사 자격증과 나라에서 주는 월급 명세서만으로도 아이들에게서 공경받고, 어깨 으쓱할수 있고, 인사 잘 받고, 뭐 이러는데, 뭐가 아쉬워서 거기에 다른걸 보태나?

나는 확실히 게을러졌다. ‘음. 내일 수업 땐 무슨 이야기를 할까? 다음 시험 때는 어떤 기상천외 황당한 문제로 모두를 놀래킬까?’ 이런 행복한 고민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나태, 권태로움. 이것은 나에게는 쥐약이다. 나는 전력질주를 사랑한다. 나는 탈진되는 것을 즐긴다. 이곳은 너무 재미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이곳 아이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너무도 작은 공통분모만이 존재했다. 사람이고, 한국말 쓰고, 같은 교실을 사용하고, 나는 말하고 그들은 받아 적고. 물론 잘 따르고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가 내가 아니라 그 어떤 선생이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구 아무개와 김 아무개 앞에서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기가 찬다. 도곡에선 모르는 척 지나가다 뒤통수에 펔큐나 안하면 다행이다. 도대체 자기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사람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단지 선생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면, 이건 스스로 개 돼지 취급을 자청하는 일이 아닌가?


난 그런 아이들이 정말 싫었다. 그런 순진한 아이들이 정말 싫었다. 조금 더 영악해 지고, 세상을 똑바로 알고, 그럼으로써 이 어려운 삶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선생들은 두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한 종류는 이런 가난한 아이들을 경멸하는 부류였고, 또 다른 부류는 이런 아이들의 순진함, 혹은 어리석음을 ‘순수’라고 이름 붙여주며, 계속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부류였다. 아이들이 계속 이렇게 소위 ‘순수’하게 자라면 그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나 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의 교육정도, 집안 수준 등을 쉽게 알아맞추는 편이다. 그런데 이 동네 아이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교사들 중에는 마치 엄청 상류층인 것처럼 행세하고 아이들 앞에서 그것을 뽐내는 가소로운 사람도 있었다. 이곳 아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거의 인종 차별 수준의 발언을 무수히 뱉아 대면서 말이다. 내가 견적을 어떻게 내냐고? 난 그 사람의 옷, 차 같은 것은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의 눈과 이마를 본다. 눈에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훤히 디스플레이 되고 있으며, 이마는 그 사람 개인의 역사책이 적혀있다. 이런 나의 견적은 거의 틀림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마치 가난한 사람의 대변자인 것처럼 입만 열면 싸가지 없는 강남 아이들과 ‘순수’한 이곳 아이들을 비교하며, 마치 자신만이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자신은 이 아이들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정작 이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게 가만히 보면, 쓸데없는 수다나 떨며 놀거나, 무자비하게 구타하거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실패해서 수업을 중단하고 짜증을 내는 일 따위다. 결국 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들 중에 자기와 비위가 맡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큰소리인가? 그런데도 나는 그런 큰소리를 들으면 기가 죽는다. 내 속에서부터 완벽하게 다듬지 않으면 큰 소리 치지 못하는 내 성격상,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가 죽는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뭔가 배울 것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현실로 들어가면 오히려 내가 한 수 가르쳐야 할 판이다. 참 황당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짜증을 내건 무릎을 멍이 들도록 두드려 패건 여전히 인사를 잘 한다. 뒤돌아 가는 사람을 불러서까지. 정말 인사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 같다. 물론 나도 인사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인사가 하나도 반갑지 않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적응이 된 것 같다.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작년보다는 좀 원활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내 자식들이 아닌데도 난 내가 이 아이들의 앞길을 헤쳐주고 싶다. 뭔가 눈이 훤하게 뜨이는 그런 길을 열어주고 싶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싶다. “자, 봐라! 저기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이렇게 말이다.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강남 애들이나 암사동 애들이나 마찬가지다. 강남 애들도 용돈이 좀 많다는 것 뿐, 기본적으로는 똑 같은 불행 속에 있으니까. 그 불행은 하필이면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한국에 태어났다는 원죄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묻지 않는다. 묻기라도 하면 함께 그 앞길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이라도 할텐데. 제발 물어봐라 하고 부탁을 해도 묻지 않는다. 그저,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한다. 아니 차라리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라도 말 했으면 좋겠다. 그것조차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냥 같이 시간이나 때우자고 한다. 특별한 말썽꾼이 아니면 특별한 말을 할 기회도 없다. 그럼 그들은 정말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말 그대로 ‘순수’ 한 것이고, 영원히 그렇게 ‘순수’하게 살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가 끝나도 좀체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교복을 입은 체 학교에서, 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다가, 겨우 저녁 먹을 시간이나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 동기는 너무도 ‘불순’하다. 학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집이 싫은 것이다. 그들도 자기 집이 싫은 것이다. 자기들의 삶이 싫은 것이다. 그나마 학교가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할수 있지? 내가 이런 고민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안타까움만이 가득하게 아니 아찔하게 밀려온다. 그런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빠한테 휴대폰 사야 하니까 50만원만 내놔라 라고 했는데 아빠가 안 줘서 아빠랑 대판 싸웠다며, 아빠한테 미안하다며 흐느끼는 도곡 졸업생의 메시지가 내 삐삐를 뒤흔들며 녹음되어 있다.


나의 원죄. 이 이상한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에게 내가 누렸던 그런 치기어린 장난조차도 다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다. 이 아이들이 안 되면 이 아이들의 아이들이라도. 쉽게 말해서 "돈 많이 벌게 하고 싶다. 출세하게 하고 싶다. 남보란 듯이 에헴하고 살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더 이상 ‘순수’하지 않게 만들고 싶다. 그놈의 ‘순수’파 선생들은 너희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을 희롱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싶다. 뻔하지 않은가? 그 선생들 자신 이미 ‘순수’하지 않은 웬만큼 넉넉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신들의 자녀가 과연 그렇게 ‘순수’하게 자라게 하고 싶은가?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은 ‘순수’하지 않게 자라서 출세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아이들은 ‘순수’하게 자라서 자신들의 아이의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헌법상으로는 평등하지만 분명히 노예가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하여. 정말 무섭고 나쁜 건 이런 사람들이다. 무시하는 사람들이 차라리 낳다. 적어도 그들은 위선자들은 아니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적이라는 것을 공개하니까. 하지만 이 순수파는 위험하다. 적이 적이 아닌척 하고 있으니, 아니 벗인척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이 ‘순수’파들도 위선자는 아니다.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위선자들이다.


하고 한날 자기 집 가난하다며 강남 애들에 대해서 이를 박박 갈며, 소녀가장(?)으로서의 고통을 늘 투덜거리던 어느 여선생은 난데없이 대학원 입학고사를 준비한다. 그것도 등록금 비싸기로 악명높은 곳을. 도대체 이해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이게 선생들의 본모습이다. 다 그런 것이란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괜히 건방 떨며 ‘순수’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못하는 것이다. 난 순수니 가난이니 하는 말을 못하겠다. 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래. 난 강남 촌놈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난 강남 촌놈으로서의 나 자신을 인정한다. 그래서 진지하게 나와 다르게 살아온 아이들과 접근을 시도한다. 내 마음은 사실 이렇다. “솔직히,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불가항력이야.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단다. 너희들이 나를 좀 도와주렴. 그래서 우리 서로 거리를 좁혀 나가자.”이렇게 말이다. 난 감히 처음부터 신뢰, 사랑, 순수 따위를 입에 담을 용기가 없다. 그러나 분명 진보는 있다. 나는 분명히 작년보다는 아이들과 더 가까워 졌다. 그래서 이제는 그 ‘순수’파들을 압도하고 아이들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함께 헤쳐 나갈 그 길을 나도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하지만 여기 부임한 지 1년, 이제 분명한 것은 나도 슬금슬금 사랑을 말할 수가 있게 되어 간다는 것이다. 작년보다 더 많이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에 말이다. 도곡의 아이들과는 금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쨌건 간에 요즘에 들어서야 나는 교실에서 사랑을 말한다. 요즘에 들어서야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이 아이들을 한해 더 가르친다면,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랑 받기도 하면서.  마찬가지로 나는 아이들의 사랑을 느낀다. 그렇다. 분명 아이들은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슬금슬금 차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 원래 사랑이란 차별대우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의 가슴은 아이들이 던져주는 사랑을 받아먹고 점점 부풀어 오른다. 작년에는 이걸 얻지 못해서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아마 내년에는 나는 도곡에 있었던 시절만큼 행복해 질 것이다. 2년간의 적응기간을 거치고 마침내 말이다. 나는 이런 내 자신을 인정한다. 이제 이런 내 자신이 부끄럽지 않다. 그놈의 원죄의식도 이제는 던져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이 커 갈수록 안타까움도 더욱 커간다. 이제 아이들도 슬슬 나에게서 그 무엇인가를 바라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제야 내가 아무렇게나 인사하던, 단지 우리학교 선생들 중의 하나가 아님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른 선생들한테는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를 바란다. 자신들에게 꿈과 희망과 그 길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걸 모른다. 나는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미래를 바라본다. 계속해서. 그러나 모르겠다. 아아!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까움은 그냥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사랑은 사랑으로 남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공부에 도통 관심 없는 아이들이 난리 법썩을 떨거나 1/3은 엎어져 자는 통에 그냥 콩가루가 되어버린 망친수업이 끝날 무렵이 되면 눈물이 난다. 7반이던가 어디선가 그 눈물 맺힘을 들키고 말았다. 아! 그래서 오늘 6반애들이 평소와 달리 그렇게 점잖게 있었구나!

하지만 그렇게 조용히 안해도 되는데, 아무리 떠들어도 괜찮은데.... 이젠 아이들 입에서 “선생님 만한 분 다시없어요.”란 말을 듣고야 말았기에. 일단 이게 되었으면, 반은 된 거니까. 꼭 중학교 다닐 때가 아니더라도 좋다. 이놈들이 늙어 죽을 때 까지. 아니 내가 그렇게 오래 살까? 시간은 얼마나 걸려도 좋다. 난 기어코 길을 찾고야 말 것이다. 내가 세상을 뒤집어엎는 혁명의 괴수가 되어야 한다면 까짓 거 그것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감방 속에 처박히더라도, 난 그렇게 할 것이다. 난 결코 ‘순수’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사랑은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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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11/21 10:42 | 교단 일기 | 트랙백 | 덧글(4)

교사의 그릇된 사랑

잘못된 사랑

 

지난 호에 “학생에 대한 사랑”이 교사의 필수적인 덕목임은 분명하지만 결코 쉽게 들먹일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참된 사랑”이라는 표준적인 상을 하나 세우는 것 역시 올바르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상적인 규준을 하나 마련하려는 욕망이야말로, 오성의 습성이야말로 온갖 형이상학적 요설의 근원임을 베이컨, 흄, 칸트 등 많은 철학의 거장들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표준’이야 말로 자신과 다른 것들을 폭력적으로 일치시키거나 배제하는 근대성의 핵심이다.

만약 어떤 표준적인 사랑의 상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저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을 사랑의 표준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강요하려 들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사랑과 다른 것, 혹은 그것에 포착되지 않는 것은 증오나 사랑의 적으로 정의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참된 사랑을 규정하기 보다는 참되지 못한 사랑을 규정하는 소극적이고 겸손한 방법이 보다 안전하다. 따라서 “잘못된 사랑”의 유형을 먼저 살펴보는 것은 비록 “참된 사랑”의 표준은 보여주지 못해도 “거짓된 사랑”을 회피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잘못된 사랑의 근원: 분리 불안


에리히 프롬은 잘못된 사랑은 “합일에의 욕망”, “분리의 공포”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나머지 “합일에의 강박”에 빠지면서 비롯된다고 했다. 합일의 욕망과 분리의 공포는 이미 17세기에 스피노자가 코나투스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코나투스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이 승인되는 한 그는 힘을 가진다. 그런데 이 힘은 동료가 많아질수록 배가된다. 인간에게 가장 적당한 동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같은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며, 어떤 공동체와 일체감을 느끼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지며, 반대로 공동체와 일체감을 느끼지 못할 경우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낀다. 이것이 사랑의 근원이다.

그런데 사랑과 합일은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요구한다. 중매결혼보다 연애결혼이 거치는 노정이 험난하고 쌍방에게 더 많은 노고와 고통을 요구하듯, 공동체에 참여하여 일체감을 느끼는 경험 역시 상당한 노고와 비용을 요구한다. 문제는 “분리의 공포”가 너무 강하여 일체감을 느끼기 위한 헌신과 노력을 기다릴 수 없는 경우다. 특히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그 고도의 분업화로 인해 전통적인 모든 공동체를 해체하고 모든 사람들을 개별 노동자와 개별 자본가로 마주 세웠다. 돌아가 쉴 어떤 장소도 없이 벌거벗은 개인으로 세상에 나서게 된 현대인들에게 분리의 공포는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뭉크의 절규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홀로선 개인의 공포를 섬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합일의 욕망은 합일의 강박으로 바뀐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 방법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분리감과 고독감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려들어 합일하고자 한다. 결혼도 예외는 아니라서, 결혼은 이제 빨리 고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손쉽게 맺어주는 짝짓기 비즈니스로 변모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잘못된 사랑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무작정 아무에게나 “합일”하고자 하는 강박적 충동과 어떤 능동적인 노력도 투입하지 않고서 일체감이라는 결과만을 획득하려는 게으름이다. 이는 비용의 최소화와 결과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규칙에 비추어 보면 합리적인 선택으로 둔갑한다.

 

잘못된 사랑 하나: 나를 상대에게 일치시킴


이런 나태하고 빗나간 사랑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가 바로 “자신을 일치시킴”이다. 분리공포에 시달리면서 합일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은 어떤 대상과의 분리를 두려워한 나머지 아예 그 대상과 자신을 일치시키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조금의 부정적, 비판적 생각도 분리 공포에 밀려 즉각 배제된다. 만약 내가 상대와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나타난다면 이는 분리의 전조로 강조된다. 이는 연인의 생각을 무조건 긍정하는 병적인 사랑으로, 자녀를 위해 자기 인생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 강박적인 부모 사랑으로,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전체주의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도-마조히즘에 이르게 된다. “난 네가 기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가 있어.”라는 만화 대사는 이런 비뚤어진 사랑을 훌륭하게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런 잘못된 사랑은 교사들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교사 역시 분리공포를 가지고 있는 현대인이기에, 강박적으로 일치의 대상을 찾는다. 교사들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일치대상은 학생들, 자기 자녀, 그리고 상급기관(제도)이다. 공교롭게도 이는 교직 발달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처음 교사는 자기가 맡은 아이들과 자신을 일치시킨다. 종종 많은 젊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감행한다. 이를 사회는 “헌신적 사랑”이라고 칭송하기까지 한다. 이들 헌신적인 교사들은 때때로 퇴근시간을 훨씬 넘겨가면서까지 아이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 서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신을 아이들에게 던졌다는 점에서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게다가 이들은 아이들과의 일치감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해서 아이들이 현재 서 있는 지평 너머를 보지 않으려 한다. 도대체 0교시, 야자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헌신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6시반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퇴근하지 않고 입시공부를 보살핀, 그러다 순직까지 하는 교사의 모습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것은 자신의 분리 불안을 학생들과의 일치를 통해 해소하려는 강박증이다.

그러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자기 자녀를 가지게 되면 이들의 “사랑”은 순식간에 자기 자녀에게로 넘어간다. 애초에 학생들 역시 단지 가장 가까이 있는 일치감의 대상이었을 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얻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버리고 교체하는 것도 매우 쉬운 것이다. 이들의 자녀사랑 역시 일방적인 헌신이다. 모든 세계의 중심에 자기 자녀가 서며, 나머지 것들은 자신을 포함하여 그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심지어 엊그제까지 헌신의 대상이었던 학생들마저 자기 자녀를 부양하기 위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자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실제로 “헌신적”인 교사들은 “헌신적”인 부모로 쉽게 변신하며, 일단 헌신적인 부모가 되면 결코 헌신적인 교사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사랑도 오래 가지 않는다. 자녀가 독립된 인격으로 성장하여 손쉬운 일치의 대상이 아니게 되자 어김없이 중년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가 닥쳐온다. 바로 이 무렵이 많은 교사들이 승진병을 앓는 시기다. 따지고 보면 승진병은 승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승진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집단과의 일치감, 교육청, 교육부, 그리고 장학사 등 일개 교사보다 더 커 보이는 집단이나 존재와의 일치감이 주된 목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승진병에 걸린 교사들이 교장의 총애를 놓고 다투어야 하는 경쟁 상대인 다른 승진병 교사들과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놓고 희희낙낙하는 현상을 이해할 길이 없다.

결국 학생들에 대한, 자기 자녀에 대한 무한헌신과 승진병은 모두 같은 질병의 다양한 증상, 혹은 그 발병 경과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모두 노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그저 손에 잡히는 대상을 향해 자신을 무조건 일치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이 더욱 발전하면 어떤 특정 집단이나 인물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전체주의나 사도-마조히즘으로 발전하게 됨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왜곡된 사랑은 교사뿐 아니라 학생에게도 나타난다. 교사가 요구하는 지시사항을 무조건 따르거나 좀 더 나아가 교사가 좋아할 것이라 판단한 말과 행동을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미리 행하는, 즉 알아서 기는 아이들이 그들이다. 만약 사랑받을 만한 말과 행동을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이들은 심한 분노를 느껴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거나, 더 철저히 수동적이 되는 길을 택한다. 관심 받기 위해 일부러 말썽을 부리거나 꾀병을 앓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잘못된 사랑 둘: 상대를 나에게 일치시킴


나를 상대에게 일치시키는 것이 사랑의 수동적 왜곡이라면, 상대를 나에게 일치시키는 것은 능동적 왜곡이다. 두 경우 모두 상호작용이 인정되지 않으며, 나와 사랑 대상간의 독립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이비 사랑이다. 전자는 자신에 대한 폭력이며, 후자는 상대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상대를 나에게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를 완전히 소유해야 한다. 상대를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의 의지와 기호가 소멸되고 그 빈자리가 나의 그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는 사랑의 자본주의화라 할 만한 방식이다. 16세기까지만 해도 공공장소에 주로 전시되던 예술작품이 18세기 이후에는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형태로 변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술 애호가의 상이 훌륭한 작품을 순례하듯 찾아다니는 사람에서 많은 작품을 소장한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최고 미덕은 소유이며 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사랑한다면 가져야 한다. 그리고 가지려면 상대는 완전한 소유의 대상, 즉 사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그릇된 사랑의 최악의 형태인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시체를 사랑하는 것)적 사랑이 나타난다. 영화 “헬레나를 상자에 넣기”에는 한 여성을 온전히 갖고자 그녀의 사지를 절단하는 비뚤어진 사랑이 묘사되고 있다. 꼭만 실제 칼과 톱으로 사지를 절단해야만 네크로필리아가 아니다. 상대의 의지와 행위와 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그것과 일치될 것을 욕구하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서 상대의 사지는 물론 눈과 혀까지 뽑아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사랑이 “널 갖고 싶어.”라던가 “널 60년 할부로 사고 싶어”라는 광고카피가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근대의 사랑은 상대방을 소유하는 것,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헤겔이 말한 “노예의 변증법”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완전히 소유하려면 상대가 자신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기 생각 없고, 의지 없는 상대는 죽은 상대나 마찬가지다. 반응이 없는 죽은 상대와의 사랑은 허무하다. 상대를 노예로 만듦과 동시에 자신은 기껏해야 노예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 결국 이 사랑은 노예, 사물이 된 상대에 대한 경멸로 바뀌게 되며, 새로운 살아있는 사랑의 대상을 찾아 떠나며, 새로이 찾은 대상을 사물, 소유물로 만들고 만다. 이는 영원히 고독한 사랑이며, 영원히 목마른 사랑이며, 한 마디로 사랑이 아니다.

이런 끔찍한 사랑과 교사는 무관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네크로필리아적 사랑은 사실 거의 모든 교사가 조금씩은 앓고 있는 질병이다. 많은 교사들이 조용한 교실, 정돈된 교실을 원한다.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교실에서 직각으로 줄을 맞춘 아이들이 교사가 원할 때만 대답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침묵하고 있기를 희망한다. 한 마디로 죽은 교실을 원한다. 많은 교사들이 수업시간이 아닐 때는 애교를 부리면서 와서 안기고, 수업시간에는 교사들의 은어대로 “그림같이” 앉아 있는 그런 학생을 희망한다. 즉 교사가 원할때만 살아있는 그런 움직이는 시체를 갈망한다. 교사는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통제된 학생과 학급에게 일치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고독감과 분리불안을 해소하려고 한다.

심지어 이는 교육운동 진영에도 나타난다. 대동단결이라는 단 한마디에 지도부와의 이견은 묵살되며 배제된다. 운동단체의 지도부는 어느 새, 과거의 동지들을 자신의 결단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투쟁에 나서는 그런 대오로 간주하게 된다. “한 분도 빠짐없이.”라는 수식어, “전원 동참하자.”라는 구호 속에는 엄청난 폭력과 네크로필리아가 숨어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단지 가변자본으로 소유하기 위해 그들의 일사분란한 복종을 요구했듯이 교육운동 지도자들이 수 많은 동료교사들을 자기 이념의 올바름의 증거물로서, 혹은 정치력의 지표로서 소유하고자 한 것은 아닐지 깊은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 두 종류의 잘못된 사랑은 모두 근대사회의 고독과 분리불안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한 성급함과 나태함에서 비롯된 동전의 양면 같은 현상이다. 따라서 자신을 일치시키는 자, 즉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복종하는 자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타인을 일치시키는 자, 즉 무조건적인 억압과 통제를 가하는 자가 된다. 교장, 교육청에게 순종적인 교사들일수록 학생들에게 일사 분란, 그림 같음, 완전한 침묵을 요구한다. 학생들에게 자기 생활이 없을 정도로 헌신하는 교사가 동시에 학생들에게 가장 억압적인 교사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들은 사실은 같은 현상의 두 측면이다.

사랑 하나 제대로 못하고 이런 질병을 앓는 이유는 분리 불안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성급함이 빚어낸 사랑 강박이다. 하지만 이를 비난할 수 없다. 인간은 결코 홀로 살수 없는 동물인데, 근대 사회는 인간을 홀로 서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과 강박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을 해야한다. 그 노력은 나를 알고, 상대를 알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잘못된 사랑을 나태한 사랑이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 앎의 과정, 알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앎의 대상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죽은 사실들의 암기가 아니라 끊임없는 교호작용이며 생성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내가 가르치는 내용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즉 그들을 얼마나 잘 아는가? 즉 그들과 얼마나 상호작용하며 알고자 노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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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5/21 14:4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교사와 사랑

사랑을 함부로 들먹이지 마라


사랑의 능멸

필자와 함께 근무했던 교사들 중 대단히 억압적인, 속칭 무서운 선생님 한분이 있었다. 그 앞에서 아이들은 숨소리 외에 내지 않았으며, 걸핏하면 30~40분에 달하는 종례에 시달렸으며, 아주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도 추호도 용서가 없었다. 게다가 책상이건, 의자건, 무엇이건 직각으로 줄이 맞춰져 있어야 했다. 심지어 그는 술자리에서 맥주병과 병뚜껑까지 정확하게 줄을 맞춰야 성에 풀렸다. 그런 그가 해마다 2월이면 하는 말이 있었다. “자, 올해는 어떤 아이들을 새로 만나서 사랑을 줄까? 참 설레인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소름이 끼치고 구토와 현기증을 느꼈다. 그가 아이들에게 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그 사랑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고결하고 따스해야 할 사랑이 끔찍하게 들렸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지만, 어디 그 선생님뿐이랴? 많은 교사들이, 그리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하기 때문에 매질하고 두발을 단속하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우열반 편성을 하고, 나중에 잘 되라고 ‘소년동아일보’도 구독시킨다. 이것 말고도 아이 사랑이 끔찍해 보이는 사례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저 무시무시한 “사랑”을 받으면서 시달리다 집에 온 아이들은 입은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학원에서 밤 10시까지 멍한 눈으로 더 무서운 사랑에 시달려야 한다. 아이 사랑에 어디 나이가 따로 있으랴? 그 연령도 점점 내려가 밤 10시 학원 앞에 늘어선 학원 셔틀버스는 끄떡 끄떡 졸고있는 초등학생들로 그득하다, 간신히 집에 들어와 겨우 샤워나 하면 이번에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 보라는 부모의 닦달이 이어진다. 이런 끔찍한 아동학대도 역시 사랑의 이름으로 가해지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이 아닌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0교시 부활, 자사고·특목고 확대에 마음이 들썩 거리는 것이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한국의 부모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끔찍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만행을 자행하는 어른들은 한 결 같이 입에서 “사랑”을 읊조린다.

사실 “사랑”은 사람을 상대하는 모든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덕목이다. 부모는 자식을, 의사는 환자를, 성직자는 신자를, 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야 한다. “학생 사랑”이 교직윤리의 핵심 덕목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어떤 교육정책도 그 배경과 기반에는 “학생 사랑”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랑이 이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남용되고 잔혹극에 가까운 아동학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고귀한 덕목은 모욕 정도가 아니라 거의 유린당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랑의 매”라는 모순적인 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되어왔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희화화 되어버린 사랑의 무력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너도 나도 다 학생을 사랑한다고 하며,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이 사랑의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으니, 이 덕목이 무슨 도덕적 가치가 있겠는가 하는 회의마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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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려야 할 사랑

그렇다면 차라리 사랑을 교사의 덕목에서 지워버리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욱 끔찍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4·15 참변이나 혹은 교육 쿠데타라 불릴만한 이른바 공교육 자율화 방안이 발표된 뒤,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 앞에서 교육 당국이 당황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은 그래도 “아이 사랑”이라는 이 모호한 가치가 공통의 가치판단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나마 이 모호한 사랑이라는 가치라도 공통성의 기반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것마저 사라진다면 학력이니 노동생산력이니 하는 차가운 양적 척도만 남게 된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도구적 이성이 가져오는 암울하고 억압적인 결과는, 게다가 그것이 경제와 행정체계를 벗어나와 생활세계와 문화전승의 영역까지 잠식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왜곡하고 소외를 만연시키는 우울한 풍경화는 벤야민, 아도르노, 푸코, 하버마스, 프롬 등 수 많은 석학들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묘사해왔던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 사랑”이 모호하고 남용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가치하게 만들거나 냉소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제는 왜곡된 사용이지 이 덕목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정화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학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런 불순한 용도들을 찾아서 제거해야 한다. 감히 사랑을 참칭했던 각종 사이비 사랑들을 찾아서 질타하고 사랑의 목록에서 영원히 삭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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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화를 위하여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지적했듯이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은 자연스럽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사랑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어렵다. 사실상 근대성에 찌들어있는 우리는 사랑을 잘 모른다. 사랑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한 다음의 문장들을 곱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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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소유가 우리를 너무도 우둔하고 편협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상을 소유할 때, 즉 그것이 우리에게 자본으로서 존재하거나 우리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점유할 때, 먹고 마시고 몸에 걸치고 그 안에 거주하는 등, 간단히 말해서 사용할 때야 비로소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여기에 더해 사적소유는 스스로 이 모든 소유의 직접적인 실현을 단지 생활수단으로서만 파악하며, 이 실현이 수단으로 봉사하는 생활은 사적소유의 생활, 즉 노동과 자본이 된다. 그리하여 감각들의 단순한 소외, 소유의 감각이 모든 육체적·정신적 감각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인간의 본질은 절대적 빈곤으로 환원되어 자기 내면의 부를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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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형식이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 수탈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수탈을 용이하게 만드는, 아니 그러한 수탈 관계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왜곡되고 소외된 인간성을 생산한다. 이렇게 왜곡되고 소외된 인간은 오직 소유를 통해서만 인식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며, 사랑을 한다. 즉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며, 정체성이란 소유의 목록이 되고, 사랑이란 그 대상을 온전히 가지는 것이 된다. 이런 왜곡된 삶 속에서 “사랑”만큼은 너무도 고귀하고 위대해서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40년 전 비틀즈는 40억 인류가 동시에 “All you need is Love"를 부르면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이라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이 40억 개의 왜곡되고 소외된 사랑이라면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대전의 발발이 될 것이다.

물론 삭막한 근대화는 그만큼 인간들에게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높여 놓았다. 그러나 소유와 도구적 이성에 기반한 사랑은 마실수록 갈증만 심해지는 이뇨성 액체와 같다. 현대인들은 살아 있는 사람과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으면, 죽은 사물처럼 다룰 수 없으면, 한 마디로 소유할 수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

부모는 장난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자녀들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 때만 그 사랑을 느낀다. 실제로 각종 매체들을 통해 표현되는 부모-자식의 기호들 중 자녀가 능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자녀는 무기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목마를 탄 모습으로, 아니면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조금 잔인하게 표현하면 체온이 있는 인형으로 묘사된다. 부모는 자녀가 무력한 아기이거나 복종하면서 사실상 아기나 다름없을 때가 아니면 사랑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며 지배다.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저 많은 학원들, 저 많은 아동 학대기관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많은 부모들은 사랑과 지배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자식이 나이를 먹고 신체적 힘에서 월등해 졌을 때 효도는커녕 도리어 학대를 받는 것이다. 그들이 자녀를 사랑한 적이 없으니, 자녀도 그들을 사랑할 턱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떨까? 어쩌면 하고 많은 직업 중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조금은 사랑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이 가르치고 사랑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회, 경제적 이익 때문에 선망되고 있는 현실은 그런 섣부른 희망을 갖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교사는 사랑을 해야 하며, 세상이 모두 차갑게 식어버리더라도 학교만큼은 사랑으로 따스하게 데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장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 바깥에서 생활하지 않는 한, 먼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지, 우리가 감히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자칫 왜곡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마르크스의 말을 되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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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으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전제한다면 그대는 사랑은 오직 사랑과만, 신뢰는 오직 신뢰와만 교환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예술적인 교양을 갖춘 인간이어야만 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대 자신이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라야 한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대의 모든 관계는 그대의 의지의 대상에 상응하는, 그대의 현실적·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라야 한다.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 그대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그대의 생활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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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사랑이란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따라서 결코 쉽지 않으며 심지어는 두렵기까지 한 일임을 깨달을 수 있다. 예컨대 음악회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티켓을 구입하기 위한 화폐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며 애호하는 삶이다. 식비를 쪼개어 가며 파가니니 독주회 티켓을 마련한, 그걸로도 모자라서 아예 한 달을 굶어가며 친구를 위한 티켓까지 마련한 가난한 청년 슈베르트는 화폐를 넘어선 참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사랑 하려면 자신의 삶 자체가 사랑이라야 한다. 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하며, 그의 생활이 사랑과 베풂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그는 학생들의 삶 자체를 사랑해야 하며, 그들이 자신의 고유한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 사랑은 일방적인 지배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대등관계이기 때문이다. 지배관계에서 오가는 것은 명령과 복종뿐이다. 물론 명령하는 자는 그 명령의 동기가 사랑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복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말 대로 사랑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사랑은 하나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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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5/17 12:0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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