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반성

용서가 없는데 어찌 화해, 통합까지 나간단 말인가?

요즘 화해라는 말이 유행인 모양이다. 어느새 화해와 국민통합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처럼 되어 버렸다. 너도 나도 김대중 따르기에 나선다고 하며, 한나라당 쪽 사람들이 더 난리 브루스를 추고 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코마 상태에 빠지기 직전까지 김대중의 발언은 화해, 통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명박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거의 투쟁을 선동하다시피한 모양새였다.

그럼 대체 이 화해 타령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 나온 말일까? 전두환이랑 김영삼이 문병 갔다 오고서 나온 말이다. 모양이야 그럴듯 하다. 사형 선고를 내렸던 전두환이 아니었던가? 평생의 라이벌 김영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문제는 정작 화해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마 상태에 빠진 사람하고 무슨 화해를 한단 말인가? 그냥 일방적으로 방문하고 일방적으로 화해 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줄거리가 이렇게 된다.

전두환: 사형선고까지 내리고 광주 민중을 학살한 나 조차도 김대중과 화해를 원한다.
김대중:.......(코마)
김영삼: 나도 김대중과 화해를 원한다.
김대중:.......(코마). 그리고 사망
이명박 등등등: 자, 김대중의 유지를 이어받아 우리 모두 화해하자.

자, 이게 말이 되는가? 이렇게 되는 순간 어떤 논리가 성립되는가 하면

광주학살을 저지른 전두환과 그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피차 서로에게 잘못한게 된다. 그러니까 화해의 대상이다.
3당 야합을 저지르고 아이엠에프 터뜨린 김영삼과 그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피차 서로에게 잘못한게 된다. 그래서 화해의 대상이다.
그냥 툭 잊어버리자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귀 틀어막고 극우 코드 인사에 온갖 분탕질을 다 저지르고 사람을 몰아 죽이고 태워죽인 이명박과 그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피차 서로에게 잘못한게 된다. 그런데 이제 툭 털고 다 없었던 것으로 하잔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통합 하잔다. 아니 화해의 결말이 왜 통합인가? 화해 하면 서로 관용하며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인데, 그 귀결이 왜 통합인가? 화해 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문제제기도 못하고 뜻을 합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해괴한 논리가 어디 있는가?

자, 말은 똑바로 하자.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은 화해를 말할 처지에 있지 않다. 화해는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했을때 하는 것이다.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은 명백이 잘못을 저지르고 피해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들의 올바른 자세는 "이제 그만 화해하자."가 아니라 "이제 그만 용서해 줘" 이게 맞는거다.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받고, 그 다음에 화해 하는거다. 그런데 저들이 단 한번이라도 용서를 구한적이 있는가? 그런데 화해에 이어 통합이라고?

그럼 그 다음 스토리는 뻔 하다. 이제부터 데모하는 놈들은 화해와 통합의 대의를 거스르는 놈들이니 절대 용서하지 않고, 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겠다. 뭐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정말 기가 막히다.

심지어 전두환조차 사람을 죽이면 당황하는 기색이라도 하고 심심한 사과와 유감이라도 말했다. 그런데 슬그머니 머리 처박고 숨어서 시간아 지나가라 하고 있다가 잊을만하다고 생각되면 튀어나와서 화해하고 통합하자고? 정말 화해를 말하고 싶으면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에 대해 법적으로는 어쩔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최소한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여라.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여라. 작년 촛불 항쟁때 수천명의 억울한 사람들에게 대 사면이라도 한 번 해라. 운전면허만 가지고 생색내지 말고. 이 쪽에서 원한이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화해를 선언하고 통합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은  옹치봉후(雍齒封侯)라는 고사성어를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한고조가 가장 미워하던 신하였던 옹치를 제후로 임명하자 그제서야 부하 장군들이 안심하고 더욱 충성하더라는 고사 말이다. 진정 화해하고싶고, 진정 통합을 꿈꾼다면 그대가 가장 미워하던 사람들, 소위 좌파라고 부르던 사람들에게 먼저 관용을 베풀어라. 그리고 설사 억울할지라도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라. 그러면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통치하는 사람의 도량인 것이다. 그걸 못하겠으면 그대는 그저 한 사람의 시민 정도의 도량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니 서민들 혹하게 하는 저 혹세무민의 미사여구는 집어치우라.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부정변증법 | 2009/08/24 16:15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9)

징징거리지 말고 일어서자

하늘이 무너지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사민당이 권력을 잡고, 유럽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웠던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은 지식인들에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이마르 공화국이 다름 아닌 독일민중들의 손에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무너질때, 저 독일 민중들이 49%라는 엄청난 몰표로 나찌당을 여당으로 만들어줄때, 하늘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사민당, 공산당이 불법정당이 되고, 수 많은 지식인들과 사민당 정치인들이 투옥, 고문, 살해될때, 불고 몇년 전만해도 유럽의 가장 모범적인 민주정부를 가지고 있었던 독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야만의 시대로 넘어가 버릴때, 그것도 완력과 폭력이 아니라 다름아닌 민중들의 지지를 통해 이렇게 되어버릴때, 어찌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겠는가? 앞이 깜깜해지고, 차라리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지고, 또 다른 희망이었던 사회주의 소련은 노동자의 천국은 커녕 잔혹한 전체주의임이 드러나고, 한때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하이데거 같은 대철학자마저 나치에 협력하는 세상,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듯한 상황.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목숨마저 위태로와 그동안 조국에서 이룩한 모든 명성과 기반을 뒤로하고 낯선 나라로 망명을 떠나야 하는 기막힌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고, 이 고통과 시련의 의미와 원인을 탐구했고, 그 속에서 희망은 없는지 진지하게 되물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혈혈단신 미국에 떨어진 아도르노나 아렌트, 그리고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벤야민, 노벨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문호에서 일거에 제거되어야 할 빨갱이로 전락한 토마스 만...



 

전쟁이 끝나면 다 될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재빨리 친미파로 변신한 옛 나찌 잔당들이 도리어 큰소리 치면서 반공투사로서 서독의 권력을 장악할때, 그 좌절은 또 어떠했을까? 마침내 1969년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빌리 브란트는 울먹이며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나치를 물리쳤습니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1933년부터 1969년 무려 36년을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폴란드에서 무릎꿇고 사죄함으로써 드디어 독일은 정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에 비하면,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하면 우리의 87년 체제는 훨씬 덜 민주적이고, 덜 진보적이었고, 히틀러와 나치에 비하면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훨씬 덜 두려운 존재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덜 가졌었고, 또 덜 잃었다. 우리는 아직 할만하고, 희망의 여지가 많고, 힘도 있다. 이젠 징징거리지 말고, 할 일을 찾아야하겠다. 나의 만성전을 다시 살펴보며, 독일군에 포위된 벤야민의 절망을 되새기며.... 빌리브란트의 눈물을 꿈꾸며. 그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계몽의 변증법",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인류의 고전을 쓴 아도르노, 아렌트를 생각하며.... 아, 여기 사진에는 없지만, 안전한 망명지에서 다시 독일로 숨어 들어와 봉기를 일으켰으나 장렬히 산화한 빌헬름 로이슈너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민당 당원들도 생각하며....

게다가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블로그라는 무기도 있지 않은가? 1930년대 독일에서 전단지 몇장 돌리다가 총살당한 사민당, 공산당 형제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난 하루에도 수백명, 많으면 수천명에게 내 글을 돌리고 있다. 얼마나 힘찬 상황인가? 이걸 막아? 그럼 난 외국에서 영문판 블로그로라도 계속해서 싸울거다.
.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8/09/28 21:29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6) | 덧글(27)

철학이 뭐 별건가? 재미있는 철학의 역사 여는 글(1)

지금부터 수록되는 길은 장차 단행본으로 준비하려는 대중용 철학사 책을 쓰기 위한 초고들입니다.^^

흔히 철학이라는 말을 여러 상황에서 쓴다. 너의 철학을 밝혀라, 개똥철학 하고 있네, 위대한 철학자. 대체 철학 그러면 흔히 이 셋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세가지 용법에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점도 있다.

우선 차이부터 말하자. 첫번째 용례에서는 어떤 행위나 말의 가장 근본적인 기준을 밝히라는 뜻이다. 철학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말이나 행동을 선택할때 아무런 기준이 없다는 뜻이니, 완전 중구난방이란 뜻이 될 것이다. 개똥철학이라고 말할때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라고 말할때는 뭔가 어렵고 거창한,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볼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결국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현실과는 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첫번째 용례를 보면 어떤 사람의 행위나 말에서 그 사람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직접 드러나있지 않다. 한 사람이 자신을 현실세계에 드러내는 모습과, 진짜 기준이 되는 속마음은 다른 것이다. 따라서 겉모습,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는 그사람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었다. 두번째 용례는 너무도 당연히 현실에서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 현실의 감각만으로 생각하면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 된다. 세번째 용례도, 우리가 철학자라 하면, 특히 위대한 철학자라 하면 우리가 일상적인 감각으로 보는 세계 뒤에 숨어있는 어떤 본질을 꿰뚫어 볼것이라 기대하면서 나오는 용례다.

결국 이 셋은 같은 뜻이다. 겉으로 드러나고 직접 확인되는 것(철학자들은 이것을 현상이라고 부른다). 결국 철학이라 하면, 잡다한 여러 현상들 배후에 감춰진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거나, 아니면 그 현상들을 지배하는 어떤 근본원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심지어 현상 배후에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감각적 현상만이 모든것이라는 주장을 할지라도, 그 역시 일단 눈에 보이는 현상이 모든것일까 아닐까 하는 물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대답이다. 즉 철학은 본질이나 근본원리에 대한 물음들이며, 그 물음에 답하려고 하는 모든 활동들이다.

그런데 왜 나는 , 철학의 개념들이 아니라 철학의 역사를 쓰려고 할까? 대 철학자 헤겔이 말했듯이 "철학과 철학사는 동의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가장 다루기 쉬운 첫번째 용례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때 그 말과 행동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사실 남은 커녕 자신의 마음의 근거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알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순간의 말과 행동만 고찰해서는 불가능하다. 이때 우리는 "내가 대체 왜 그랬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면 "어쩌어쩌 하였기 때문에 이리저리 행동했구나."하는 답을 얻는다. 하지만 그 다음의 질문은 "그렇다면 나는 어찌어찌한 경우에 이러저리 행동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라는 것이 되며, 결국 그 질문은 과거의 행동들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답할수 없게 된다. 이 과정을 철학에서는 반성이라고 한다. 결국 현재 나의 행동이나 말의 기준, 원칙을 알고자 하면 나는 그 기준과 원칙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과거로부터 거슬러가며 반성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니 만약 "철학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이 생각되고 행해졌는가를 반성적으로 사유해야만 한다. 결국 철학과 철학사는 같은 뜻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 또 자신의 삶에 대해 우리가 의지할수 있는 원리나 원칙은 없는지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수천년전부터 그런 질문을 던져왔던 역사 속에서 반성적으로 추적할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던지고 있는 그 물음이 어떤 과정속에서 만들어져 온 것인지 추적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 그 물음에 대한 답이나오며,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이 세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어떤 원리와 원칙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음, 써놓고 나니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일단 내 아이디어들을 정리하는 것이니, 대중화 하는 작업은 추후 하도록 하겠다. 원래 머리말은 어려운 법이니.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8/09/04 11:44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