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뉴레프트
2008/11/03 네그리,하트 '제국' 읽기 (1) [9]
2008/10/02 좌파도 북한 인권에 관심 가져야(펌 글) [3]
2008/09/05 사파티스타의 라칸도나 선언문 [1]
신보수처럼 사회학자들을 골치아프게 만드는 집단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들은 68혁명을 꽃피운 신좌파의 반대편이다. 신좌파의 특징은 계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도 있었고, 지식인도 있었고, 실업자도 있었고,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여성은 경우에 따라 중산층 이상의 계급에 속해있을수 있지만, 남성에 대해서는 피지배계급이었고,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생태,민권운동 같은 지배, 피지배로도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운동세력들이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운동을 일으켰다. 그것이 유럽과 미국을 아로새겼던 60년대의 물결이었다.
이 60년대의 물결은 여전히 매카시즘의 시대를 좋은 시절로 기억하는 수구보수들에게는 잊지 못할 악몽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뉴레프트들이 "소련"이나 "중국"도 맹렬히 비판함으로써 기존의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공세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좌와 우를 넘어 일체의 억압에 저항했다. 그들은 보수당과 사회당 노동당을 싸잡아서 구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간 수구보수들은 권력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수구들은 존슨 대통령의 복지정책이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고, 낙태니, 동성애니 하는 그들 기준에서 파렴치한 반인륜적 행위들이 햇빛을 보는 것을 견뎌야 했고, 빨갱이 지식인들이 글과 예술작품으로 기업과 권력자를 조롱하는 것도 허용되는 꼴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70년대동안 미국의 수구보수들이 침묵만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절치부심 재기를 준비했고, 그 방법은 신좌파와 똑 같이 탈계급적이고 다원적인 세력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기독교근본주의자와 시장자유주의자와 반공주의자, 그리고 보수주의자가 뭉쳤다. 사실 이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상극이었다. 시장자유주의자는 당연히 고도의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근본주의자와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돈만 준다면(어려운 말로 유인만 있다면) 신앙 따위야 헌신짝이 될수 있는게 진정 시장적 인간이다. 게다가 반공주의자는 또 어떤가? 또 보수주의자는?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인 제퍼슨, 프랭클린 등이 모두 계몽주의자들이었고, 이신론자(사실상 무신론자, 유물론자)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에 정교분리를 명시할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와 기독교근본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 미국의 건국정신이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점에서 반공주의는 역시 어긋난다. 이렇게 보수주의, 기독교근본주의, 반공주의, 시장주의는 서로서로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로 뭉쳐서 거대한 운동을 이루었다. 그게 바로 신보수, 즉 뉴라이트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이질적인 집단들의 느슨한 연대였기 때문에 계급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는 절대 분석되지 않는다. 즉 뉴레프트의 정확히 오른쪽 대칭인 것이다. 뉴레프트가 어떤 공식적 조직도 만들지 않으면서, 단지 삶의 양식과 생각, 즉 주체성만을 퍼뜨렸듯이, 뉴라이트도 특별히 어떤 조직을 만드는게 아니라 사고방식, 삶의 양식을 퍼뜨렸다. 그것은 바로 질서였다. 뉴라이트는 계급으로 포착되지 않는 뉴레프트를 하나의 단어로 포괄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불평분자"였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뉴레프트 운동을 싸잡아서 불평과 혼란으로 비난하면서 질서와 경건이라는 자신들의 삶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백인 하층계급에게 크게 어필했다.
이렇게 탈계급적인 뉴라이트의 공세 앞에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했던 좌파들은 연전연패할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뉴라이트에 포섭된 것이다. 특히 좌파들이 흑인이나 소수민족을 배려한 덕분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노한 백인 하층민들의 이탈, 그리고 자유의 물결이 교회나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파괴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주부들을 중심으로 많은 하층민들이 뉴라이트에게 표를 던졌다. 노동조합에 의존하던 구좌파 정당인 영국 노동당은 대처에게 대패해야 했으며, 일본 사회당은 괴멸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좌파정당인 독일 사민당조차 8-90년대를 야당으로 보내야 했다.
이러한 뉴라이트 현상은 계급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단지 어떤 이념이나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도 강고한 정치세력화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레이건이나 대처의 당선은 단지 선거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운동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반면 중간 중간에 있었던 좌파의 집권, 즉 클린턴, 블레어, 쉬뢰더 등의 승리는 단지 선거 결과였을 뿐 어떤 운동의 흐름은 보여주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의 승리가 중요한 것은 단지 좌파가 승리해서가 아니라 그 선거 과정이 뉴라이트 운동에 반대편에 선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승리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계급의 벽을 횡단하면서 어떤 생각을 중심으로 연대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진영은 뉴라이트가 뉴레프트를 통칭한 "무질서, 혼란"이라는 말을 그대로 "변화"라는 말로 바꾸었다. 그렇게 되면 뉴라이트가 자랑하던 "질서"는 "완고함"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뉴라이트의 정책을 "무자비함, 냉정함"으로 묘사함으로써 뉴레프트를 "배려있음"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어쨌든 80년대를 풍미한 미국과 유럽의 뉴라이트 운동은, 계급이 아닌 어떤 견해, 관점, 생각이 계급의 벽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힘을 만들어낼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실 그 원조는 뉴레프트였음을 보여주었다. 실상 미국, 유럽에서도 뉴라이트의 지도부들은 전향한 과거 좌파들이었다. 다니엘 벨, 알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그리고 이들의 선배격인 하이에크 등이 그렇다.
# by | 2009/01/06 23:01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1) | 덧글(15)
요즘 네그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올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군 촛불 국면에는 그의 ‘다중’ ‘자율주의’ 개념 때문에 관심이 급증했었고, 하반기에는 전 지구적 금융위기와 여기에 대응하는 지구적 공조, 미국의 절대적 위상 격하 등의 현상이 일어나자 그의 ‘제국’ 개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제가 네그리에 정통했거나 그런거는 아니지만, 주변에 저를 자율주의자로, 혹은 네그리언으로 아시는 분들이 계셔서, 여기에 몇 차례 읽었던 『제국』(Empire)를 발췌하고 대략 나름의 소감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Michael Hardt(구텐베르트 프로젝트의 주동자)와 Antonio Neri 의 공저입니다. 공저라고는 하지만 실상 하트가 네그리의 제자나 다름없고, 공식적으로 한 번도 스승에게 대든(?)적이 없기 때문에 네그리 평생의 사상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네그리 사상의 근원에 대해서는 하트가 『네그리 사상의 진화』라는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별로 설득력 있는 책은 아니니까 굳이 사보실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하트는 네그리 사상의 뿌리에서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 학파(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의 영향은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니체, 들뢰즈의 영향은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 난해하지 않은 네그리 사상을 오히려 더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오히려 조정환 선생이 쓴 『아우토노미아』가 훨씬 네그리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그리는 원래 그람시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특히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에 모두 정통하여 20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 대응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논문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네그리의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본론』이 미완성 저작이며, 마르크스의 웅대한 계획의 1/6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자본론』을 포함한 총 6권 분량의 『경제학』이란 대작을 쓰기 위한 일종의 설계도였던 『정치경제학비판 개요(이하 그룬트리세)』의 스케치를 참고하여 계속 채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유명한 개념인 비물질 노동의 개념, 그리고 다중지성의 개념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인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가 탄생합니다.
또 네그리는 그람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연히 그람시와 맥을 같이 하는 문화자본주의 비판가들인 아도르노, 하버마스의 영향도 깊이 받았습니다. 이들의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네그리는 기존의 정치투쟁의 개념을 확장하여, 의사소통의 망, 네트워크에서의 미시적인 투쟁이라는 개념을 끌어냅니다. 여기에 그룬트리세에서 얻은 통찰력을 결합함으로써 네그리는 이제 의사소통의 망, 네트워크는 단지 자본의 지배를 돕는 이데올로기 도구가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생산수단이 되며, 블루칼라, 산업 프롤레타리아는 생산력의 주변부로 밀려나가, 19세기와 같은 계급투쟁의 주력군이 아니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기타 자세한 이야기는 제국을 읽어 나가면서 다시 살펴보기로 합시다.
앞으로 발제할 원전은 Hardt, M. , Negri, A.(1999). Empire. Boston: Havard University Press. 이며, 번역본은 윤수종 역(2001). 『제국』. 서울: 이학사.입니다. 그런데 이 번역본의 문장이나 용어가 매우 어색하고, 원전의 영어는 그리 어려운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교 이상 영어 수준이면 그냥 영문판을 읽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책 제국의 후속편이 바로 『Multitude 다중』입니다.
그럼, 이제 제국을 같이 읽어 봅시다.
머리말
이 책 『제국』은 머리말에서 이미 상당히 많은 내용을, 아니 사실상 저자들의 주장 거의 대부분을 제시합니다. 본문은 오히려 머리말에서 가설로 제시한 명제들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 입증하고 정당화하는 내용들입니다. 머리말의 내용을 문제의식에 따라 정리해 봅니다.
제국이 뭐야?
머리말의 제일 첫머리는 바로 제목인 제국의 개념정의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국은 미제, 일제, 대영제국 할 때 제국이 아닙니다. 이 개념은 알렉산드로스 제국, 로마제국, 혹은 동아시아의 ‘천하’와 같은 개념입니다. 이 제국, 천하 개념은 그때까지 인간이 알던 세계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더 이상 외부가 없는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주권을 의미합 니다. 21세기의 제국은 물론 고대의 군사적 정복이 아니라,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된 자본, 생산, 교환, 물론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된 노동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체이자,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입니다. 자본의 초국화, 지구화, 탈 정치화(경제 관계들의 자율성)로 인해 20세기 후반 들어 민족국가의 주권은 점차 쇠퇴했고, 이제 민족국가가 이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민족국가의 주권이 쇠퇴하고, 경제적-문화적 교환에 대한 규제가 점차 불가능해지는 것은 제국이 도래한다는 주요한 징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권 그 자체의 쇠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주권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초국적 주권체의 탄생으로 나타나고, 네그리는 이런 현상을 통칭하여 비유적 의미에서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와는 뭐가 다르지?
앞에서 미제, 일제, 대영제국과 ‘제국’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뭐가 다를까요? 여기서 네그리는 전자를 제국주의라 부르면서 ‘제국’개념과 대립시킵니다.
제국주의와 달리 제국은 권력의 영토적 중심과 고정된 경계에서 구별됩니다. 제국주의는 기본적으로 민족국가와 민족국가의 관계입니다. 한 민족국가가 권력의 영토적 중심이 됩니다. 바로 종주국입니다. 그리고 종주국과 그것의 식민지를 포괄하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른바 런던, 베를린 같은 ‘제국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에는 영토적 중심이 없습니다. 제국은 탈중심화, 탈영토화하는 지배장치입니다. 제국은 명령의 네트워크를 조율함으로써 잡종 정체성들, 유연한 위계들, 복수의 교환들을 관리합니다. 이 개념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데, 본문에서 다시 상세하게 다룹니다. 다만 여기서는 종주국, 중심, 이런 개념이 ‘제국’에서는 사라진다 정도로 알아 둡시다.
그게 어떻다는 거야?
제국주의가 제국으로 이행하는 과도기는 세계의 공간적 분할을 뒤섞는 과정을 통해 나타납니다. 즉, 영토적 경계에 따라 중심부, 주변부가 나누어지지 않게 됩니다. 종주국보다 훨씬 부유한 식민지의 특정 구역이 있는가 하면, 식민지보다도 비참한 종주국의 구역이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이제 한 민족국가(종주국)가 다른 민족국가(식민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가로질러 나타납니다. 제3세계 속의 제1세계, 제1세계 속의 제3세계 등.<방콕이나 쿠알라룸푸르의 중심가, LA나 뉴올리안스의 흑인 슬럼가)
왜 그렇게 되었지?
이는 자본의 주요 잉여가치 획득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산업 시대에는 공장이 착취의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은 고정된 장소에 자리잡는 영토적 공간입니다. 따라서 착취의 단위도 영토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산업적 공장 노동의 역할은 축소되었습니다(사라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 소통적, 협동적, 감정적(어떤 책에서는 정서적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저는 감정적이 더 적당한 번역 같습니다)노동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부는 삶정치적 생산(biopolitical)을 통해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방식, 삶 그 자체가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을 위한 소통, 생산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소통, 라이프스타일이 가장 잉여가치가 높은 상품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정치는 푸코의 개념인데, 이 역시 본문에서 상세하게 다룹니다)
어쨌든 이래서 제국의 지배는 제국주의의 지배보다 은근하며 무섭습니다. 이 지배는 사회 세계의 깊숙한 곳까지 확장하는 사회 질서의 모든 등록기위에서 작용하며, 인간 본성에 직접 작용합니다. 제국의 지배 대상은 사회 생활 전체입니다. 또한 제국의 권력은 정치권력 뿐 아니라 삶권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미국은 여전히 막강한데, 뭐가 탈중심이야?
네그리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민족국가도 오늘날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미국은 제국 안에서 특권적 지위를 점합니다. 하지만, 옛 유럽 제국주의와는 다릅니다.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건국과정부터 제국주의 종주국이 될 수 없는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본문에서 미국 헌법의 변천과정을 분석하면서 상세하게 제시됩니다.
그럼 어떻게 투쟁할까?
우선 가장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제국의 엄청난 억압과 파괴력(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때문에 예전의 지배 형태(주권국가, 민족국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그리워해서는 안됩니다. 제국으로의 이행과 그 지구화 과정은 해방 세력에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제국은 지배세력들이 지구적 관리를 위하 창출해낸 주권기구입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저항 세력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바로 다중입니다. 권력의 지구화에 맞서 다중 역시 창조적 힘을 통해 대항 제국, 즉 지구적인 흐름과 교환에 대한 대안적인 정치 조직을 자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다중은 제국에 항의하고 전복하는 투쟁들을 통해 제국을 관통하고 넘어설 새로운 구성 권력을 발명해야 합니다. 제국에 항의하고 대안적 지구 사회를 그리는 세력은 스스로를 지리적 지역에 한정시켜선 안 됩니다.
# by | 2008/11/03 13:07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9)
| 주대환 “左는 北인권, 右는 南인권 관심가져야” [인터뷰] “진보진영도 술자리에선 김정일 비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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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북한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남한 정권보다 더 정통성이 있다고 보는 친북좌파 진영에게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금기(禁忌)사항과도 같았다. 그러나 최근에 ‘좌파라면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진짜 좌파가 등장했다. 전(前)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던 ‘사회민주주의연대’의 주대환 공동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친북인사, 좌파인사들이라면 누구나 손사래를 치는 ‘데일리엔케이’와 주 대표가 마주 앉았다. 민주노동당 내 평등파(민중민주 진영)의 사상 이론적 브레인 역할인 해온 주 대표가 북한주민들의 ‘인권’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좌파가 ‘인권’을 논하면 등 뒤에서 ‘변절자’라는 화살이 날아오는 기막힌 시대, 주 대표의 첫 마디는 의외로 담담했다. “인권문제에 좌·우가 어디 있습니까?” 주 대표는 “진보진영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이중 잣대를 버려야 하고, 보수진영은 반북(反北)을 목적으로 북한 인권을 다루면 안된다”며 한국사회의 좌·우 모두를 향해 “이제 북한인권 문제는 좌우를 넘어선 인류 보편적 문제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주 대표는 ‘북유럽형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이끌고 있다. 민족문제, 통일문제, 친북·반북문제에 얽매이지 않는 선진국형의 좌파 활동을 펼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데 있어 ‘친북’이냐 ‘반북’이냐는 문제는 분리돼야 한다”며 “그래야 정치도, 사회도, 국가도 발전하고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의 인터뷰 전문] -진보진영이 북한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보진영은 근본적으로 남한보다는 북한이 민족의 자주성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북한의 웬만한 흠에 대해서는 눈감아 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또, 지금까지 정치․사상적 구도의 문제도 있었다. 보수진영에서 ‘북한인권’이라는 이슈를 선점하면서 진보진영을 ‘친북 또는 반인권주의자’라고 몰아세우고, 진보·중도 연합진영은 ‘평화’라는 이슈를 선점하여 보수진영을 ‘냉전세력․전쟁세력․대결주의자’로 치부해왔다. 이러한 양 진영 간 대결이 북한인권 문제를 과잉 이념화, 과잉 정치화 했다고 본다. 그리고 지난 오랜 동안 진보세력이 김대중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문제다. 진보세력이 김대중·노무현 세력의 2중대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세력은 사회경제정책에서는 ‘우파’인데도 공조(共助)했다는 말이다. 정부 여당이야 북한을 직접 상대하는 입장에서 북한의 비위를 맞출 수 있다고 쳐도, 진보세력은 정권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북한에 대한 입장을 정부 여당과 같이 했다. 앞으로 좌파인가 우파인가를 구분하는 데 있어 친북이냐 반북이냐는 문제는 분리하고 떼어 내야 한다. 그래야 정치도, 사회도, 국가도 발전하고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좌파진영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진보진영에는 북한인권 개선활동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본다. ‘사실(fact)’만큼 고집스러운 것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인권 상황이 참혹한 북한 현실을 우리 눈앞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진보진영에서도 북한 현실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입 다물고 모른 체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 있다. 진보진영 친구들이 술자리에서는 ‘김정일이 빨리 죽어야 인민들이 사는데’라고 말을 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딴소리를 한다. 현재 북한을 두고 진보와 보수진영의 국론 분열 상태에서 통일이 온다면 위험하다. 서로의 책임을 따질 것이고, ‘너는 그때 뭐했냐’며 서로의 흠을 들춰내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앞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탈이념화, 탈정치화해서 진보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한다면 지금의 북한 정권에게는 상당히 큰 압박이 될 것이다. 결국 보수는 남한인권에, 진보는 북한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햇볕정책에 대한 우파진영의 평가가 야박하다고 생각하나? 햇볕정책도 일면으로는 타당성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고 햇볕정책이 진보적인 정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진보라면 북한 인민을 위한 정책이어야 하지만, 햇볕정책은 그저 평화를 유지하자는 수준이었다.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독재자와 손을 잡고 활짝 웃는 김대중, 노무현은 근본적으로 자기들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햇볕정책이 모든 면에서 잘못 됐다고 평가하는 것은 인색하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의 체제경쟁이 끝난 이후부터 남한 정부는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접근해 왔는데, 지금까지 남한은 ‘주먹은 센데 주머니는 비어 있는 친구가 용돈 좀 나눠쓰자’는 식의 북한을 달래가면서 관리해 온 것이다. 햇볕으로 북한의 두꺼운 옷을 벗기지 못했다는 비판은 옳다. 북한 체제의 변화와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DJ가 햇볕정책을 꺼낼 때 장담했던 것만큼 성과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신뢰가 쌓이면 설득도 되고, 설득이 되면 요구도 해야 하는 것인데, 지금 그런 상황이거나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북한에 꾸준히 물자가 들어갔으니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았겠나? 대한민국 마크가 찍힌 물자가 돌아다니는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또, 개성공단은 지금까지 문 닫고 살아 온 북한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효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의 현재 상황은 햇볕이든 햇볕이 아닌 다른 것이든 남한 정부, 정당의 탓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 김정일 독재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고 인민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사실 지금까지 통일부나 남한의 민간교류 단체들은 평양만 다녀오지 않았나? 북한은 철저한 계급 사회이고, 평양과 그 이외 지역은 천양지차(天壤之差), 전혀 딴판인데 그들은 평양의 모습에만 관심을 갖는다. 묘하게도 진보진영은 북한의 특권층과만 대화하고 보수진영이 인민들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보법 폐지를 우파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남한에 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공작, 침투 등에 대해서 국보법이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되고 있는가를 따져 봤을 때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최근 몇 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 받은 사람 몇 사람이나 있는가? 거의 사문화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국보법이 폐지된다고 해도 형법의 ‘간첩죄’ 조항 등이 있어서 반국가적 범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은 남한 인권 발전에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러니까 실효는 없으면서 그 부정적 영향은 매우 크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면에서 우리 사회가 발전한 만큼 이 방면에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진보진영 내에서는 국보법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뉴레프트(New-Left) 운동을 하는 우리가 진보진영 내에서 ‘우리도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아직도 국보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는 원래 자유주의자들이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다른 사람의 사상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국보법에 대해 폐지 목소리를 높여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국보법 폐지와 조봉암 선생의 복권을 보수진영이 동의한다면 정말 진보진영도 다시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또, 뉴레프트 운동 세력의 입지가 넓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성 있는 자유주의자가 등장해야 비로소 선진국형 사회민주주의자도 나타날 수 있다. 지금처럼 내가 북한인권과 관련한 토론회나 세미나에 간다고 하면 내 주위에서는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많다. 우파진영과는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용만 당할 것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나는 뉴레프트 진영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도 보수진영 인사도 참여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뉴레프트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어떤 방향성으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나? 뉴레프트 운동은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으로 북유럽형 ‘복지국가’를 상정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의료민영화, 전기․가스․상하수도의 민영화 등 복지의 근본을 훼손하는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종부세와 상속세를 줄이려는 위험한 감세 정책도 비판한다. 오히려 공공 서비스를 더 발전시키고 복지 제도를 확충해야 하고, 부동산 보유세와 상속세, 소득세의 증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뉴레프트 운동은 민족문제나 통일문제, 또는 친북․반북이라는 대립구도에 스스로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문제에 얽매여서는 진보도 발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좌우파가 정책 대결을 벌이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좌우파가 일관된 철학으로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민주주의연대는 그런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
# by | 2008/10/02 21:26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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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9/05 09:00 | 뉴레프트/탈근대사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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