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뉴라이트

뉴라이트가 진보?- 이건 진보진영의 책임이다



우선 불펌 기사를 좀 인용하자.


"역사의 수레바퀴를 진행방향을 향해 맨 앞에서 끌고 가는 이들이 진보요, 자유의 투사다. 그런데 지난 20년을 보면 앞에 선 이들이 수구 꼴통이라고 모욕받고, 뒤에 선 이들이 진보라 자칭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춘근 이화여대 교수)

 

"현재 대한민국은 이념 전쟁에 휩싸여 있다. 동포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광분하고 있는 김정일 집단, 그들의 꼭두각시가 돼 친북노선을 주장하고 있는 종북주의자,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좌파세력들이 진보라 자칭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물론 언론과 지식인까지 진보라고 불러주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진정 '진보'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최진학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정책실장)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이끌던 30~40대 우파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자유주의진보연합'이 16일 오후 창립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이상 오마이 뉴스에서 불펌)

 


여기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는 "저들도 수구 꼴통이라는 말은 듣기 싫었던 모양"이라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냉소적인 반응에 대해 냉소한다. 한 마디로 진보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저 또라이들이 진보라는 이름을 사용하겠는냐는 것이다.


사실 자유주의가 진보라는 말을 쓰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진보라는 말은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한 말이었다. 어떻게 진보를 하면서도 빈곤을 줄일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놓고 헨리 조지가 역저 "진보와 빈곤"을 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19세기의 가장 진보적인 사상가였던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자유론"의 저자 아닌가?  그래서 노동당이 등장하기 전까지 영국은 보수당 대 자유당의 구도였지 않은가? 게다가 미국의 진보진영은 통칭 "리버럴"이라 불리지 않는가?


문제는 자유주의자도 되지 못하는 저 기회주의자들에게조차 자유주의는 커녕 냉전의 잔재들에게 진보라는 말을 빼앗기는 지경까지 갔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그 말을 쓰겠다는데 어쩌겠냐고 말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진보진영인 진보는 커녕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저렇게 말하며 끼어들 틈을 내어준 것이다. 경직된 이념. 세계에서 가장 퇴행적인 나라인 북한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 어설프면서도 권위적인 조직 운영. 시대에 뒤떨어진 구호와 시위 방식. 지식, 정보 기술에서 낙후된 모습 등등.....



그런데, 어이 뉴라이트들... 저 현수막 위의 자유의 종을 난타하라가 4.19 선언문의 제목인건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당신들은 적어도 4.19 정신은 계승해야 하지 않을까?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4.19를 계승한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부정변증법 | 2009/07/17 12:28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3)

뉴라이트를 분석하자(1) 미국과 유럽

신보수처럼 사회학자들을 골치아프게 만드는 집단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들은 68혁명을 꽃피운 신좌파의 반대편이다. 신좌파의 특징은 계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도 있었고, 지식인도 있었고, 실업자도 있었고,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여성은 경우에 따라 중산층 이상의 계급에 속해있을수 있지만, 남성에 대해서는 피지배계급이었고,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생태,민권운동 같은 지배, 피지배로도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운동세력들이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운동을 일으켰다. 그것이 유럽과 미국을 아로새겼던 60년대의 물결이었다.

 

이 60년대의 물결은 여전히 매카시즘의 시대를 좋은 시절로 기억하는 수구보수들에게는 잊지 못할 악몽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뉴레프트들이 "소련"이나 "중국"도 맹렬히 비판함으로써 기존의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공세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좌와 우를 넘어 일체의 억압에 저항했다. 그들은 보수당과 사회당 노동당을 싸잡아서 구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간 수구보수들은 권력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수구들은 존슨 대통령의 복지정책이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고,  낙태니, 동성애니 하는 그들 기준에서 파렴치한 반인륜적 행위들이 햇빛을 보는 것을 견뎌야 했고, 빨갱이 지식인들이 글과 예술작품으로 기업과 권력자를 조롱하는 것도 허용되는 꼴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70년대동안 미국의 수구보수들이 침묵만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절치부심 재기를 준비했고, 그 방법은 신좌파와 똑 같이 탈계급적이고 다원적인 세력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기독교근본주의자와 시장자유주의자와 반공주의자, 그리고 보수주의자가 뭉쳤다. 사실 이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상극이었다. 시장자유주의자는 당연히 고도의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근본주의자와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돈만 준다면(어려운 말로 유인만 있다면) 신앙 따위야 헌신짝이 될수 있는게 진정 시장적 인간이다. 게다가 반공주의자는 또 어떤가? 또 보수주의자는?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인 제퍼슨, 프랭클린 등이 모두 계몽주의자들이었고, 이신론자(사실상 무신론자, 유물론자)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에 정교분리를 명시할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와 기독교근본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 미국의 건국정신이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점에서 반공주의는 역시 어긋난다. 이렇게 보수주의, 기독교근본주의, 반공주의, 시장주의는 서로서로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로 뭉쳐서 거대한 운동을 이루었다. 그게 바로 신보수, 즉 뉴라이트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이질적인 집단들의 느슨한 연대였기 때문에 계급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는 절대 분석되지 않는다. 즉 뉴레프트의 정확히 오른쪽 대칭인 것이다. 뉴레프트가 어떤 공식적 조직도 만들지 않으면서, 단지 삶의 양식과 생각, 즉 주체성만을 퍼뜨렸듯이, 뉴라이트도 특별히 어떤 조직을 만드는게 아니라 사고방식, 삶의 양식을 퍼뜨렸다. 그것은 바로 질서였다. 뉴라이트는 계급으로 포착되지 않는 뉴레프트를 하나의 단어로 포괄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불평분자"였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뉴레프트 운동을 싸잡아서 불평과 혼란으로 비난하면서 질서와 경건이라는 자신들의 삶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백인 하층계급에게 크게 어필했다.

 

이렇게 탈계급적인 뉴라이트의 공세 앞에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했던 좌파들은 연전연패할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뉴라이트에 포섭된 것이다. 특히 좌파들이 흑인이나 소수민족을 배려한 덕분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노한 백인 하층민들의 이탈, 그리고 자유의 물결이 교회나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파괴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주부들을 중심으로 많은 하층민들이 뉴라이트에게 표를 던졌다. 노동조합에 의존하던 구좌파 정당인 영국 노동당은 대처에게 대패해야 했으며, 일본 사회당은 괴멸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좌파정당인 독일 사민당조차 8-90년대를 야당으로 보내야 했다.

 

이러한 뉴라이트 현상은 계급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단지 어떤 이념이나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도 강고한 정치세력화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레이건이나 대처의 당선은 단지 선거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운동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반면 중간 중간에 있었던 좌파의 집권, 즉 클린턴, 블레어, 쉬뢰더 등의 승리는 단지 선거 결과였을 뿐 어떤 운동의 흐름은 보여주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의 승리가 중요한 것은 단지 좌파가 승리해서가 아니라 그 선거 과정이 뉴라이트 운동에 반대편에 선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승리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계급의 벽을 횡단하면서 어떤 생각을 중심으로 연대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진영은 뉴라이트가 뉴레프트를 통칭한 "무질서, 혼란"이라는 말을 그대로 "변화"라는 말로 바꾸었다. 그렇게 되면 뉴라이트가 자랑하던 "질서"는 "완고함"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뉴라이트의 정책을 "무자비함, 냉정함"으로 묘사함으로써 뉴레프트를 "배려있음"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어쨌든 80년대를 풍미한 미국과 유럽의 뉴라이트 운동은, 계급이 아닌 어떤 견해, 관점, 생각이 계급의 벽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힘을 만들어낼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실 그 원조는 뉴레프트였음을 보여주었다. 실상 미국, 유럽에서도 뉴라이트의 지도부들은 전향한 과거 좌파들이었다. 다니엘 벨, 알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그리고 이들의 선배격인 하이에크 등이 그렇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부정변증법 | 2009/01/06 23:01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1) | 덧글(15)

뉴라이트의 역사공략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뉴라이트의 역사 공략이 정말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치지도 않습니다. 교과서뿐 아니라 곳곳에서 공략하고 있습니다. 공권력까지 동원해 가며, 이렇게 집요하게 역사를 물고 늘어지는 정치집단은 아마 처음이지 싶습니다. 게다가 경제, 정치 전공자들이 앞장서서 역사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역사를 물고 늘어질까요? 수구 꼴통짓 하느라고? 아닙니다. 이건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위입니다. 뉴라이트(미국 식으로 말하면 네오콘)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명박은 정치적으로 파산 직전입니다. 이명박은 경제대통령을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명박이 아니라 천하의 그 누구도 경제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일찌기 케인즈가 간파했듯이 경제는 심리이며, 강박이며, 일종의 불안강박입니다. 경제를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경제의 동력은 일종의 불안강박이며, 욕구이기 때문에 경제인은 결코 만족을 모릅니다. 따라서 정치인들중 가장 뒷일 생각 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나를 찍으면 잘살게 해주마!"하고 장담을 합니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경제적 동물들은 아무리 잘살게 해 주어도 "도대체 언제 잘 살게 해줄거냐?"하고 반문합니다. 역대 정권이 한결같이 "경제가 어렵다. 경제를 살리자."라고 노래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경제는 항상 어렵습니다. 인간은 항상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데, 저 무모한 발언을 통해 대통령이 된 인물이 이명박입니다. 경제대통령? 이건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는 미션입니다. 물론 오바마도 일종의 경제대통령성 발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경제뿐 아니라 다른 매력들을 많이 가진 정치인입니다. 특히 진정성과 도덕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은 다른건 다 볼거 없고, 경제라도 살려라 라는 올인 심리에 의해 몰표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면 동원할 정치적 자산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꼴은 오히려 경제를 죽이고 있습니다.  이미 정치적으로는 끝장났다고 봐야 합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3월 위기설(경제가 아니라 정치)가 유포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 정치적으로 파산한 대통령이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적으로 정권을 휘두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출범 석달만에 경찰력에 의존함으로써 전체주의 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제 사상 통일, 이념 통일을 외치면서 파시즘으로의 길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파시즘은 국가 강제력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제력이 강해도 민중의 쪽수를 이길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파시즘은 알아서 기는 자발적 동조자의 무리가 필요합니다. 뉴라이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뭔가 군중들을 열광하게 만들어서 비이성적으로 몰두하고 복종하게 만드는 그런 상상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파시즘은 이 단계에서 민족주의를 동원했습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의 영광앞에 인권유린과 억압이 정당화될뿐 아니라,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그걸 받아들이고,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정부가 아니라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억압해 버리는 것입니다.

4. 그런데 한국에서는 엉뚱하게 좌파가 민족주의를 걸머 쥐고 있습니다. 사실 민족주의자를 좌파라고 부를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명박 기준에서 좌파들인 옛 운동권들이 여전히 강고하게 민족주의적 담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주의를 동원해서는 도리어 말려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5. 하지만 민족은 선천적이고 고정적인 자연공동체가 아닙니다. 민족은 단지 구성원들이 뭔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범위까지가 민족입니다. 즉, 어떤 모종의 공동운명체라고 우리가 느끼는 범위가 민족의 범위를 구성합니다. 따라서 민족은 구성적 개념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때는 똑 같이 다민족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전혀 다른 상황인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흑인, 백인을 막론하고 적어도 하나의 공동체라는 범위안에 스스로를 넣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족과 티벳족, 위구르 족 등이 각자 자신들 끼리 공동체라고 상상합니다. 따라서 다민족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가능하면 자랑스러운 공통점을 중심으로 모이려고 하며, 자기들 내부에서 수치스러운 특성을 가진 집단은 민족 외부로 몰아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6.이탈리아 정치가 마씨모 다쨀리오는 이탈리아가 통일된 뒤 “우리는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는 이탈리아인을 만들 차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명박도 마찬가집니다. 파시즘을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필요하고, 그런데 기존의 한민족은 좌파의 것이니, 새로운 민족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만들면 됩니다. 그 민족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즉, 한민족에서 북한을 배제한 대한민국이라는 민족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이건 생각보다 쉽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어떤 자긍심, 자랑을 공유하면서 민족의 경계를 구획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자긍심, 자랑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집안 망신 시키는 동생 쯤 됩니다. 그렇게 간신히 마음속에 포함시켜 놓았는데, 몇해전의 북핵국면은, 그리고 걸핏하면 터뜨리는 오만방자한 발언은 북한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상당히 희석시켰습니다. 젊은 세대 같으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지난 월드컵때부터 젊은이들이 자랑스럽게 외친 이름은 "대한민국"이지 결코 "한민족"이 아니었고, 휘두른 깃발은 태극기지 결코 한반도기가 아니었습니다.

7. 따라서 북한을 배제한 남한만의 역사를 가능하면 자랑스럽고, 긍지에 가득하게 재진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는 의식을 공유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민족이 탄생하는 것이며, 이 민족을 바탕으로 파시즘적 동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뉴라이트가 집요하게 역사를 공략하고, 특히 남한 단독정부 이후의 역사를 재구성하려고 애쓰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부정변증법 | 2008/12/27 00:1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66)

무식한 어른과 똘똘한 중딩, 그리고 일제고사

2008년 가장 놀라운 사건은 중, 고딩들이 앞장 선 그리고 20대들이 뒤 이은 촛불 대항쟁이었다. 어른들은 어정쩡하게 끌려다니거나, 아니면 정부의 발표를 충실히 믿으며 마치 나라가 큰 절단이라도 날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노인들은 뉴라이트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추태를 부렸다.(물론 노인들이 다 그런건 아니었지만... 추태 부린 집단들의 연령층이 노년의 비율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무리 사실이 밝혀져도 도대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요지부동이던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불가사의였다. 그래서 국개론이란 말까지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국개론은 사실일까? 물론 개새끼라는 극단의 용어는 피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무식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왜 저들이 전교조를 기를 써가며 파괴하려 하는지, 왜 교육에서 충돌점이 집결되고 있는지도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문해 능력 부족이었다.

우선 국립 국어원에서 발표한 국민문해능력 조사 결과를 잠시 인용해 보자.(http://www.korean.go.kr/08_new/index.jsp)

- 19세~79세 성인의 문해력 점수는 평균 63.6점으로 중학교 3년생 평균 77.4점 보다 낮음.
- 성인의 5.3%는(약 200만 명 추정) 문장 이해력이 거의 없는 반문해(半文解, semi-literacy) 상태임. 낱글자나 단어는 읽을 수 있으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여 은행이나 관공서 서식 작성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을 남의도움 없이 처리하기 어려움.
- 성인의 문해력 평균 63.6점은 중학교 평균 점수인 77.4점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81.6점으로, 중학생에 비해 상당히 부진한 편임.
- 가장 높은 4수준 해당자는 성인의 경우 35.1%에 불과했으나, 중학생들은 68%에 달함


<문해력 점수 분석 >

구분

단계

문해력 정도

비율

인구 수

(추정치)

점수

문해력 부진

(7%)

0수준

(비문해자)

-읽고 쓰는 능력이 전혀 없음

1.7%

약 62만명

-

1수준

(반문해자)

-낱글자나 단어를 읽을 수 있으나 문장 이해 능력은 거의 없음

5.3%

약 198만명

24점 이하

(중학생 평균의

30% 이하)

기초 문해력 보유

(93%)

2수준

-초청장·명함 등 간단한 생활문을 읽고 원하는 정보를 찾아낼 수 있음

 

-다소 길거나 복잡한 문장은 이해하지 못함

21.1%

약 788만명

28~48점

(중학생 평균의

30~60%)

3수준

-신문기사·광고·공공기관 서식 등 일상적인 생활문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음

 

-법령문 등 복잡한 문서 이해나 추론 능력이 부족함

36.8%

약 1,374만명

42~72점

(중학생 평균의 70~80%)

4수준

-길고 어려운 문장이나 내용이 복잡한 문장도 잘 이해할 수 있음

 

-글에 직접 드러나지 않은 내용도 추론할 수 있음

35.1%

약 1,310만명

76점 이상

(중학생 평균 수준 이상)



이것이 말해 주는 바는 한 마디로 어른들 중 35.1%만이 중학생의 평균보다 높은 문해 능력(한마디로 말귀를 알아먹을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고등 학생들이 촛불을 지필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하면서 혀를 차대던 노인네들은 그럴 자격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적어도 어른들 중 2/3는 중학생의 평균보다 무식하다. 하물며 중학생들 중 똘똘한 축에 속한 촛불부대와 비교하면 3/4이 더 무식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ㅇ 남성(64.7점)이 여성(62.5점)보다 문해력이 약간 높음.
ㅇ 20대가 평균 70.2점으로 가장 높으며 70대는 39.3점으로 매우 낮음.
ㅇ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자들은 75.5점, 무학이나 초등학교 중퇴자는 39.3점으로 교육 정도와 문해력이 비례함을 알 수 있음.
ㅇ 독서량이 많을수록 문해력이 높게 나타났고, TV 시청 시간이 길수록 문해력이 낮게 나타남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한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표본의 수와 표준오차로 미루어볼때 의미 없는 차이로 보인다. 그런데 20대와 70대의 차이는 상당히 의미있는 차이다. 70대의 평균 점수는 중학생 평균의 30~60%이니, 학교에서 40점 정도 받는 중학생 수준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게 뉴라이트 단체들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20대도 자랑할만한 점수는 아니다. 중학생 평균에 조금 미달되는 점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 문항별 정답률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고 한심한 지경이 드러난다. 아래의 표는 기초 문해력 조사의 각 문항별 정답률을 성인과 중학생으로 나누어 비교한 것이다.

기초 문해력 조사 문항 구성 및 정답률

 

 

문항

난이도

성인(%)

중학생(%)

1

포크댄스

95.80

99.38

2

부동산 정보

71.17

91.30

3

신기술/통신

48.35

82.30

4

초대장

85.75

96.89

5

가정통신문

80.73

88.20

6

법령문

40.31

72.67

7

일기예보

83.81

95.34

8

전입신고서

53.22

65.84

9

우체국 용무

24.59

36.34

10

복약 설명서

68.28

83.23

11

안내문

67.81

88.82

12

투표 참여자 우대제도

37.20

41.93

13

무통장 입금증

78.22

80.12

14

제품 보증 약관

71.58

87.27

15

일기도

56.05

72.36

16

세일전단지 일부

70.52

87.58

17

세계시간

32.30

50.93

18

구인광고

69.09

73.60

19

명함

84.17

93.17

20

사전 활용

61.90

76.09

21

약도

56.66

77.33

22

문화센터

43.91

53.42

23

공익광고

72.62

80.12

24

도서소개

63.36

77.95

25

TV 편성표

71.79

82.30

 


거의 모든 문항에서 중학생이 성인을 능가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중학생이 성인을 압도하는 분야가 무엇인고 하니, 신기술/통신과 법령문이었다. 그런데 촛불 국면에서 거의 모든 쟁점이 이 두 분야에서 일어났음을 염두에 두면 성인들이 얼마나 중딩들에게 말할 자격이 없는지 알수 있다. 신기술, 통신, 그리고 법령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무슨 어른 행세를 한단 말인가? 이제 한국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의견집단은 중학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이니까 모든 어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학생의 절반밖에 득점하지 못하는 노년층 어르신들의 고집스러운 목소리를 마치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며 주장하는 언론과 정부의 모습은 한심하다.

결국 오늘날 이 모양, 이꼴, 즉 국개론까지 나오게 만든 상황의 원인은 국민이 무식해서다. 국민이 무식하면 위정자는 독단을 부려도 마음이 편하다. 적당히 속이면 되니까. 하지만 똑똑한 중고딩들이 그 속임수를 자꾸 간파해내자, 이들은 결심했다. 중고딩들도 무식하게 만들기로. 일제고사, 바로 그 첫삽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을 무식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의 1탄이다. 다음 탄은 전교조를 파괴해서 교사들을 무식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리하여 온 국민이 무식해지면, 천년 만년 해 먹는거다. 우리는 이제 이 땅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지성의 보루인 중학생(!)을 지켜야 한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8/12/24 22:03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7)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