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네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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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현재의 정치적 구성
1 세계 질서
네그리는 국제법, 국제법적 기관의 탄생과정을 의미있게 고찰합니다. 이는 마치 뒤르켐이 어떤 사회의 집합의식의 반영이 그 사회의 법률에 나타난다고 보았던 것과 같습니다. 만약 세계 질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형식이든 사법적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네그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관념으로 거부합니다.
1) 현재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지구적 세력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관념: 즉 현재의 질서는 저절로 생긴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2) 지구적 세력들에 초월적 단일 권력과 중심이 있다는 관념: 지구적 질서는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과거 계선조직 같은 식으로는 파악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제 연합(UN)
흔히 미국의 세계 지배도구로 격하되어 온 국제연합을 네그리는 의미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의 실제 영향력과 무관하게 이러한 틀이 만들어진 과정과 역동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수백년을 거슬러 30년 전쟁을 살펴봅니다.
30년 전쟁은 어떤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대전입니다. 이는 국제적 질서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이 그대로 발현된 사건입니다. 특히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은 국제 질서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가 됩니다. 이에 2차 대전 막바지 유엔의 탄생은 국제적international 질서 관념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넘어 지구적global 질서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나아가는 정점이 됩니다. 국제적 사법 구조에서 지구적 사법 구조로 전환: 여기서 국제적이란 문자 그대로 nation간의 관계입니다. 지구적이라 함은 nation의 경계와 무관한 초국적 차원입니다. 즉 국가간의 협약이 아니라 ‘지구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독일의 위대한 법철학자인 한스 켈젠이 1920년대에 각 국가의 사법 구성체와 헌법의 최고 근원으로 국제 사법 체계를 제안했습니다. 즉, 민족국가만으로는 권리 개념 실현에 장애가 되니까, 즉 정당성의 근거로 이미 불충분하니까, 국제적 질서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종교가 위력을 상실한 근대 유럽에서 한동안 법과 도덕의 신성한 후광의 역할은 민족이 담당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잡다한 공동체들이 민족단위로 통합되고, 혹은 오스트리아나 터키 제국같은 중세적 국가는 민족단위로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20세기 들어서면서 민족이 그런 보편적 후광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에 켈젠은 법과 도덕의 최종적인 근거로서 모든 국가를 포괄하는 국제헌법을 제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네그리는 칸트의 후손(?)인 켈젠의 어쩔수 없는 관념론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즉 “체계의 형식적 구축 및 타당성을 체계를 조직하는 물질적 구조와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 했다는 것입니다. “그 구조는 물리적으로 실존하고 조직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점에서 유엔은 물리적으로 실존하고 조직된 최초의 초국적 질서라는 점에서 그 한계에도 분명하고 가치를 가집니다. 그리고 실제 초국적 세계 권력의 헌법화가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네그리는 여기에 대한 두 가지 부적절한 이론적 반응을 지적합니다. 이 부적절한 반응은 모두 일국적 유비 domestic analogy가 방법론적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초월적 권력을 낳는 계약 과정 강조하고 지구적 안전 중시하는 홉스적 노선: 즉 안전을 희구하는 개인이 절대군주에게 권력을 이양하듯이 안전을 희구하는 민족들이 어떤 초국적 주권자,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설.
(2) 구성 과정을 활성화하고 초국적 권력을 지지하는 대항 활력에 초점 맞추는 로크적 가설: 즉 야경국가 이상의 횡포를 통제하기 위한 시민사회처럼, 초국적 권력을 견제하는 초국적 시민사회의 구성기획이 필요하다는 가설.
그래서 네그리는 일국적 주권을 단지 국제수준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관계의 지구화에 적합한, 어떤 정치권력이 이미 실존하는지 아니면 창조될 수 있을지를 묻고자 합니다. 물론 이는 단지 정치, 사법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연관되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국입니다.
제국의 구성
제국은 자본주의적 생산 및 그 세계 시장의 지구화를 배경으로 구성되는 주권입니다. 물론 일국적 수준을 넘어선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었지만 네그리는 이들이 모두 현재 상황을 자본주의의 연장으로만 볼 뿐 근본적으로 새로운 상황과 중요한 역사적 전환임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거부합니다. 기존의 국제자본주의 관련 이론들은 세계체제론(종속이론: 월러스틴)과 제국주의론(힐퍼딩, 레닌)입니다.
1) 세계 체제론은 자본주의가 처음부터 항상 세계 경제로서 기능했음은 옳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지나치게 보편적으로 보아 현대 자본주의 생산과 지구적 권력 관계에서의 단절이나 전환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2) 제국주의론은 기본적으로 민족국가론입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민족국가들이 다른 민족들에 대해 제국주의적 지배를 계속 행사하고 있다고 보며, 현재의 경향들이 단지 제국주의의 완성이라 주장합니다. 흔히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으로 지구화 경향을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제국주의론은 열강들의 땅까먹기 경쟁이 이제는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어떤 하나의 공통적인 권리 관념을 만들어낸 과정을 간과합니다. 즉, 2차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를 동일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네그리가 이렇게 제국의 구성이 지닌 사법적 형상에 특별히 관심 두는 이유는 법학, 정치학 같은 분과 학문적 관심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사법적 형상들이 제국 구성 과정의 좋은 지표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근의 초국적 주권의 징후를 보이는 각종 초국적 사법이 그 정당성의 근원을 정치적, 문화적, 최종적으로 존재론적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즉 제국의 권력은 삶 권력으로 작용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다 상세화 하기 위해 먼저 네그리는 ‘제국’ 개념의 계보학을 추적합니다.
제국 개념의 기원은 고대 로마로 올라갑니다.(여기서 네그리가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드로스 제국, 중국의 천하와 어떤 근거로 로마 제국을 다르다고 본건지는 모호합니다).
고대의 제국 개념은 사법적 범주들뿐 아니라 보편적 윤리적 가치들을 통합합니다. 제국은 윤리적인 것과 사법적인 것의 일치 및 보편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특별한 정치제입니다. 이 점에서 제국은 ‘정당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권력입니다. 여기서 저는 네그리의 견해가 좀 좁다고 보입니다. 실제로 이런 정치-윤리적 권력은 비단 로마뿐 아니라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제나 중국의 역대 천자들도 마찬가지로 가졌던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제국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실상은 그렇더라도), “대의”를 위해 다른 민족, 나라를 토벌하는 군대를 일으킬 수 있는 권력이라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윤리-정치적 동력을 작동시키는 이러한 사법적 개념은 두 가지 근본적 경향을 포함합니다.
1) 전체 ‘공간’을 덮는 권리 관념: 제국에는 외부가 없습니다. 그 경계 외부는 비인간, 야만으로 간주됩니다. 제국은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세계”의 주권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서 Empire의 어색한 번역어인 제국보다 동아시아에서 사용한 ‘천하’가 이런 의미를 더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이 천하의 한 중심의 나라이며, 이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을 포괄하여 천하가 되는 것입니다. 천자는 천하의 통치자지 결코 중국의 통치자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걸 거부하는, 즉 천자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도덕적 결함이 되며, ‘정당한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2) 모든 ‘시간’을 포괄하는 권리 관념: 원칙적으로 제국은 역사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제국의 상태는 영구적인 평화이자 유토피아로 간주됩니다. 태평성대!
네그리는 이런 점에서 걸프전(1차 걸프전)을, 그리고 뒤이은 코소보 전쟁을 예의주시합니다. 이 전쟁들은 분명 그 내막이야 어찌되었든 윤리적인 목적으로 침공을 정당화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쟁을 윤리적 도구로 내세우는 경향은 세계대전 이후 매우 금기시 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윤리적 정당화의 최종적인 배경은 걸프전에 참전한 특정 민족국가 수준으로는 제공할 수 없습니다. 이미 어떤 모종의 초국적 권위가 상정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구적(글로벌)체계가 발전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국적 권위의 모델
여기서 한동안 펼쳐지는 들뢰즈식의 장광설은 생략해도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니, 그래야 더 잘 이해됩니다. 그래서 좀 건너 뛰겠습니다.
앞에서 고대 제국 관념은 제국이 ‘힘 자체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권리와 평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것,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성립-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제국의 첫째 과제는 가치론적이 됩니다. 즉, 그것의 고유한 권력을 지지하는 합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대 제국들은 단지 무력이 아니라 가치의 힘을 세우기 위해 종교와 공식철학에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네그리는 로마만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그 보다 천년 전에 페르시아 제국은 빛과 어둠의 균형처럼 보이던 조로아스터 교를 빛에 의한 어둠의 정벌로 바꿈으로써 이런 정당화를 시도했습니다. 중국의 천자들은 ‘수기치인’,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이를 ‘천명’과 연결시키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각종 신묘한 자연의 징후들과 연결시켰습니다. 가장 근래로는 독일제국이 헤겔의 시대정신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했습니다. 따라서 제국이 하는 전쟁은 단지 전쟁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언제나 예외적으로 개입 요구를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은 이런 권위에서 나오지만, 여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 무력과 도구들을 작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이런 권위의 가장 최소단위가 바로 경찰권입니다. 경찰권은 항상 예외적인 개입을 주장할 수 있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회상황을 규정할 수 있는 사법권력과 경찰을 배치할 수 있는 물리력이 바로 제국적 권위 모델을 정의하는 두 좌표가 됩니다.
보편적 가치들
예외적 개입은 어떤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야 가능합니다. 오늘날 초국적 법이, 직간접적으로 민족-국가의 국내법을 관통하고 그 틀을 바꾸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초국적 법이 국내법을 아주 강력하게 좌우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즉 어떤 권위가 예외적 개입을 하는 것입니다. 민족국가가 권위의 최후 배경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변형의 가장 중요한 징후는 우선은 강대국의 자의인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 질서의 지배적 주체들이 인간적인 문제들을 예방하거나 해결하고, 조약을 지키고, 평화를 강요하기 위해서 다른 주체들의 영토들에 개입하는 권리나 의무라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달리 말해 이는 오늘날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자기 권리,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의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초국적 주체의 형태를 빌려 비상사태 혹은 윤리적 원리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게된 상황을 보여줍니다. 즉, 지구적인 경찰권으로서만 개입이 정당화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대목은 9·11 이전에 쓴 책이라는 한계가 나타난 부분입니다. 2차 걸프전은 이런 경찰역할을 벗어난 미국의 자의적 망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체첸과 그루지아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망동 역시 경찰적 개입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미국은 2차 걸프전을 계기로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었고, 결국 공화당의 몰락을 가져왔고, 러시아도 최근 국가 부도위기에서 도통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이제 제국(형성되고 있는 제국)은 자신의 세계 질서 안에 모든 권력관계를 봉합하기 위해 생산적인 네트워크의 지구화를 지지하고 자신의 광범위한 포괄적 가치를 내세움과 동시에 제국의 질서를 위협하는 새로운 야만인들과 반란적 노예들에 대항하여 강력한 경찰 기능을 전개하는 이중의 위치에 섭니다. 제국주의에서는 그 경계선 바깥이 용납됩니다. 그러나 제국의 경계는 보편적인 윤리적 경계입니다. 그 외부는 악으로 규정되고, 야만으로 규정되니, 토벌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국의 위기가 발생합니다. 그것을 네그리는 부패(오염?)의 제국이라고 부릅니다.
토벌이 일어납니다. 그 토벌은 전쟁입니다. 그 전쟁의 정당성은 보편적 가치에 기반합니다. 그 보편적 가치는 인권, 생태 등 지구적 가치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전쟁은, 제국의 지배는 실제 그것이 집행되는 실체 수준에서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실체와 본질, 효과와 가치가 공통적으로 만족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제국이 생성(becoming)이 아니라 부패가 발전합니다.
이라크 전쟁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번 오바마의 당선은 부시가 끝내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했음을 보여줍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는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 제국의 토벌 형식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구적 가치로 정당화를 시도하기 위해 처음에는 ‘대 테러 전쟁’에서 나중에는 ‘독재자 타도, 민주정부 수립’까지 곡예를 부렸지만, 결국 이 전쟁을 가치 정당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부시는 철저히 미국의 지도자로 격하되었고, 마침내 정치적으로 거세되었습니다. 마치 비잔티움에만 권력이 미치던 로마 말기의 황제처럼. 이 점에서 오바마는 이율배반적 위치에 서게될겁니다. 온 세계가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제국의 지도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이 열광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을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 by | 2008/11/07 13:46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2)
요즘 네그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올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군 촛불 국면에는 그의 ‘다중’ ‘자율주의’ 개념 때문에 관심이 급증했었고, 하반기에는 전 지구적 금융위기와 여기에 대응하는 지구적 공조, 미국의 절대적 위상 격하 등의 현상이 일어나자 그의 ‘제국’ 개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제가 네그리에 정통했거나 그런거는 아니지만, 주변에 저를 자율주의자로, 혹은 네그리언으로 아시는 분들이 계셔서, 여기에 몇 차례 읽었던 『제국』(Empire)를 발췌하고 대략 나름의 소감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Michael Hardt(구텐베르트 프로젝트의 주동자)와 Antonio Neri 의 공저입니다. 공저라고는 하지만 실상 하트가 네그리의 제자나 다름없고, 공식적으로 한 번도 스승에게 대든(?)적이 없기 때문에 네그리 평생의 사상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네그리 사상의 근원에 대해서는 하트가 『네그리 사상의 진화』라는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별로 설득력 있는 책은 아니니까 굳이 사보실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하트는 네그리 사상의 뿌리에서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 학파(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의 영향은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니체, 들뢰즈의 영향은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 난해하지 않은 네그리 사상을 오히려 더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오히려 조정환 선생이 쓴 『아우토노미아』가 훨씬 네그리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그리는 원래 그람시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특히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에 모두 정통하여 20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 대응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논문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네그리의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본론』이 미완성 저작이며, 마르크스의 웅대한 계획의 1/6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자본론』을 포함한 총 6권 분량의 『경제학』이란 대작을 쓰기 위한 일종의 설계도였던 『정치경제학비판 개요(이하 그룬트리세)』의 스케치를 참고하여 계속 채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유명한 개념인 비물질 노동의 개념, 그리고 다중지성의 개념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인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가 탄생합니다.
또 네그리는 그람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연히 그람시와 맥을 같이 하는 문화자본주의 비판가들인 아도르노, 하버마스의 영향도 깊이 받았습니다. 이들의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네그리는 기존의 정치투쟁의 개념을 확장하여, 의사소통의 망, 네트워크에서의 미시적인 투쟁이라는 개념을 끌어냅니다. 여기에 그룬트리세에서 얻은 통찰력을 결합함으로써 네그리는 이제 의사소통의 망, 네트워크는 단지 자본의 지배를 돕는 이데올로기 도구가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생산수단이 되며, 블루칼라, 산업 프롤레타리아는 생산력의 주변부로 밀려나가, 19세기와 같은 계급투쟁의 주력군이 아니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기타 자세한 이야기는 제국을 읽어 나가면서 다시 살펴보기로 합시다.
앞으로 발제할 원전은 Hardt, M. , Negri, A.(1999). Empire. Boston: Havard University Press. 이며, 번역본은 윤수종 역(2001). 『제국』. 서울: 이학사.입니다. 그런데 이 번역본의 문장이나 용어가 매우 어색하고, 원전의 영어는 그리 어려운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교 이상 영어 수준이면 그냥 영문판을 읽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책 제국의 후속편이 바로 『Multitude 다중』입니다.
그럼, 이제 제국을 같이 읽어 봅시다.
머리말
이 책 『제국』은 머리말에서 이미 상당히 많은 내용을, 아니 사실상 저자들의 주장 거의 대부분을 제시합니다. 본문은 오히려 머리말에서 가설로 제시한 명제들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 입증하고 정당화하는 내용들입니다. 머리말의 내용을 문제의식에 따라 정리해 봅니다.
제국이 뭐야?
머리말의 제일 첫머리는 바로 제목인 제국의 개념정의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국은 미제, 일제, 대영제국 할 때 제국이 아닙니다. 이 개념은 알렉산드로스 제국, 로마제국, 혹은 동아시아의 ‘천하’와 같은 개념입니다. 이 제국, 천하 개념은 그때까지 인간이 알던 세계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더 이상 외부가 없는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주권을 의미합 니다. 21세기의 제국은 물론 고대의 군사적 정복이 아니라,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된 자본, 생산, 교환, 물론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된 노동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체이자,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입니다. 자본의 초국화, 지구화, 탈 정치화(경제 관계들의 자율성)로 인해 20세기 후반 들어 민족국가의 주권은 점차 쇠퇴했고, 이제 민족국가가 이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민족국가의 주권이 쇠퇴하고, 경제적-문화적 교환에 대한 규제가 점차 불가능해지는 것은 제국이 도래한다는 주요한 징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권 그 자체의 쇠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주권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초국적 주권체의 탄생으로 나타나고, 네그리는 이런 현상을 통칭하여 비유적 의미에서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와는 뭐가 다르지?
앞에서 미제, 일제, 대영제국과 ‘제국’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뭐가 다를까요? 여기서 네그리는 전자를 제국주의라 부르면서 ‘제국’개념과 대립시킵니다.
제국주의와 달리 제국은 권력의 영토적 중심과 고정된 경계에서 구별됩니다. 제국주의는 기본적으로 민족국가와 민족국가의 관계입니다. 한 민족국가가 권력의 영토적 중심이 됩니다. 바로 종주국입니다. 그리고 종주국과 그것의 식민지를 포괄하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른바 런던, 베를린 같은 ‘제국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에는 영토적 중심이 없습니다. 제국은 탈중심화, 탈영토화하는 지배장치입니다. 제국은 명령의 네트워크를 조율함으로써 잡종 정체성들, 유연한 위계들, 복수의 교환들을 관리합니다. 이 개념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데, 본문에서 다시 상세하게 다룹니다. 다만 여기서는 종주국, 중심, 이런 개념이 ‘제국’에서는 사라진다 정도로 알아 둡시다.
그게 어떻다는 거야?
제국주의가 제국으로 이행하는 과도기는 세계의 공간적 분할을 뒤섞는 과정을 통해 나타납니다. 즉, 영토적 경계에 따라 중심부, 주변부가 나누어지지 않게 됩니다. 종주국보다 훨씬 부유한 식민지의 특정 구역이 있는가 하면, 식민지보다도 비참한 종주국의 구역이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이제 한 민족국가(종주국)가 다른 민족국가(식민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가로질러 나타납니다. 제3세계 속의 제1세계, 제1세계 속의 제3세계 등.<방콕이나 쿠알라룸푸르의 중심가, LA나 뉴올리안스의 흑인 슬럼가)
왜 그렇게 되었지?
이는 자본의 주요 잉여가치 획득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산업 시대에는 공장이 착취의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은 고정된 장소에 자리잡는 영토적 공간입니다. 따라서 착취의 단위도 영토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산업적 공장 노동의 역할은 축소되었습니다(사라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 소통적, 협동적, 감정적(어떤 책에서는 정서적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저는 감정적이 더 적당한 번역 같습니다)노동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부는 삶정치적 생산(biopolitical)을 통해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방식, 삶 그 자체가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을 위한 소통, 생산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소통, 라이프스타일이 가장 잉여가치가 높은 상품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정치는 푸코의 개념인데, 이 역시 본문에서 상세하게 다룹니다)
어쨌든 이래서 제국의 지배는 제국주의의 지배보다 은근하며 무섭습니다. 이 지배는 사회 세계의 깊숙한 곳까지 확장하는 사회 질서의 모든 등록기위에서 작용하며, 인간 본성에 직접 작용합니다. 제국의 지배 대상은 사회 생활 전체입니다. 또한 제국의 권력은 정치권력 뿐 아니라 삶권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미국은 여전히 막강한데, 뭐가 탈중심이야?
네그리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민족국가도 오늘날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미국은 제국 안에서 특권적 지위를 점합니다. 하지만, 옛 유럽 제국주의와는 다릅니다.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건국과정부터 제국주의 종주국이 될 수 없는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본문에서 미국 헌법의 변천과정을 분석하면서 상세하게 제시됩니다.
그럼 어떻게 투쟁할까?
우선 가장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제국의 엄청난 억압과 파괴력(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때문에 예전의 지배 형태(주권국가, 민족국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그리워해서는 안됩니다. 제국으로의 이행과 그 지구화 과정은 해방 세력에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제국은 지배세력들이 지구적 관리를 위하 창출해낸 주권기구입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저항 세력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바로 다중입니다. 권력의 지구화에 맞서 다중 역시 창조적 힘을 통해 대항 제국, 즉 지구적인 흐름과 교환에 대한 대안적인 정치 조직을 자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다중은 제국에 항의하고 전복하는 투쟁들을 통해 제국을 관통하고 넘어설 새로운 구성 권력을 발명해야 합니다. 제국에 항의하고 대안적 지구 사회를 그리는 세력은 스스로를 지리적 지역에 한정시켜선 안 됩니다.
# by | 2008/11/03 13:07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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