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교육학
2009/06/18 사회과 교육과정에 대한 간단한 비판(정치 영역) [6]
2009/02/25 진보진영은 '사교육 탓'을 넘어야 한다 [28]
2008/12/17 미국 교육개혁 논쟁사를 읽으며 [11]
# by | 2009/08/22 16:28 |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 트랙백 | 덧글(4)
1. 정 치
1.1. 제도권 교육과정 분석과 문제제기
개정 7차 교육과정에서는 ‘정치’ 과목을 1)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2)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의 원리를 파악하며, 3) 정치 생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 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개설된 과목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결국 “정치현상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정치현상에 대한 고찰(탐구)→ 정보 획득, 탐구 능력 및 의사결정 능력 함양→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 시민의 태도.” 로 요약되며, 능동적 참여의 태도는 명백히 종속변인이며 정치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인지영역이 독립변인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지식? 다음의 표를 보면 정치학의 개론서적 지식과 정치현상에 대한 정보습득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구성표를 보면 마치 이러한 내용들이 투입되면 민주시민으로서 능동적 참여의 태도가 산출될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여기에서 우리의 두 가지 문제의식이 출발한다.
영 역 | 내용 요소 |
민주 정치의 발전 | 정치의 의미와 기능/ 정치적 권위와 정통성/ 민주 정치의 발전 과정 민주주의의 이념과 유형/ 정치 문화와 정치 사회화/우리나라 민주 정치의 특성과 과제 |
국민의 권리와 의무 | 헌법의 정치적 의의/ 국민 주권과 입헌주의의 원리/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 원리/ 국민의 정치적 권리의 내용과 한계/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적 의무/국민 주권 실현의 과제 |
국가의 조직과 통치 | 국가와 정부/우리나라의 정부 형태/국회와 입법부/대통령과 행정부/법원과 사법부/민주주의와 지방 자치의 발전 과제 |
정치 과정과 참여 | 정치 과정/정치 참여의 의의와 유형/이익 집단과 시민 단체의 정치 참여/정당과 정당 정치/선거와 투표/여론/우리나라 정치 참여의 현실과 과제 |
국제 사회와 정치 | 국제 사회의 특성과 변화/국제 사회의 행위 주체/국제 사회의 협력과 갈등 /국제 사회의 여러 문제/우리나라의 외교 정책과 과제/민족 통일의 과제 |
Q1 여기에 투입되는 지식과 정보는 과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시민의 태도를 길러낼 수 있는 원재료로서 정당한 것들인가?
어떤 지식과 정보도 일의적인 상태로 투입될 경우에는 능동적 참여가 아니라 순응적 태도만을 만들 뿐이다. 특히 정치학에서 사용된 개념들은 일의적인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이것들을 철저히 일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민주권 같은 매우 다의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은 교묘하게 선거절차 속으로 축소되고 고정되고 있다. 이것은 교묘한 이데올로기 장치로 보아야 한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 학생들은 정치를 일의적 개념들로 구성된 객관물로 바라보게 된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객관물에 대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에 거스르지 않는 것 뿐이다.
Q2 보다 근본적으로 능동적 참여 경험(간접적인 경험이라도) 없이 인지적인 조작만으로 민주시민의 태도가 길러질 수 있는가?
결국 이런 상태에서 학생들이 습득하게 될 참여 방법은 법에 호소하는 것, 그리고 선거에 참여하거나 합법적인 단체에 가입하고 진정하는 것 외에는 남지 않는다. 정권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은 역동적인 참여는 애초에 배제되고 있다.
Q3. 정치의 주체는 시민 뿐인가?
이건 보다 심각한 물음이다. 지금 이 교육과정은 정치의 주체로서 사회계약의 테두리 내에 있는 사람들만을 상정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홉스 -로크- 루소의 전통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홉스는 사회계약 외부의 사람들을 ‘다중’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계약에서 배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 교과서의 ‘시민’이라는 말 속에는 다분히 질서와 계약에 순응하기로 서약한 사람들의 함의를 담고 있다. 그것을 거부하여 스스로 외부자가 되거나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은 그렇다면 어떤 권리의 주체도 아닌가? 아감벤, 랑시에르 등은 오히려 그들에게서 정치적인 것을 찾고 있지 않은가?
Q4. 국가는 갈등 없이 움직이는 시계장치인가?
저 교과서에서 상정하고 있는 정치 모델에서 국가기구는 매우 중립적이다. 어떤 것이 투입되느냐에 따라 산출이 결정되며 국가 자체는 순수 객관적 기계장치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국가가 그렇게 보이는 것 자체가 실상은 갈등속의 역동적 균형이 아닐까? 그리고 이 갈등 속에서 국가 기구는 그야말로 통치기구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1.2. 무엇을 할 것인가?
기존의 교과서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와 내용범위를 담고 있는 형태이면서, 그 구성과 내용을 다음과 같이 대체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개발한다. 이 교과서는 내신용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정치학의 최신동향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①정치적(Political)인 것의 실제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의 정치교육과정은 너무도 정적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시끄러운 것이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정치는 노동, 작업, 행위 중 행위의 차원이며, 행위는 기본적으로 차이, 다양성의 드러냄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분출하는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찾아가는 역동적 과정으로서 정치. 이렇게 바라 볼 때 정치와 행정의 차이가 포착된다.
②민주주의를 구성적(Constructive)인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도록 한다.
민주주의는 어떤 제도나 법규로 환원될 수 없다. 현행 교과서는 민주주의를 몇몇 특정한 선거제도나 대의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일종의 이념형이다. 민주주의를 어떤 제도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규범적 차원으로 파악함으로써 여러 나라의 정치, 혹은 한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민주화의 관점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③독재와 전체주의를 가르치자.
현재 교과서는 독재, 전체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만큼이나 독재, 전체주의, 파시즘의 이념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부분이 민주적이며 어떤 부분이 전체주의적인지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④정치 기구 등에 대한 정보는 직간접적인 경험 속에서 터득하도록 한다.
# by | 2009/06/18 23:12 | 트랙백 | 덧글(6)

지난 포스팅에서 저 빈칸의 ?들 속에 학업성취의 가장 중요한 변인들이 숨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찾는 것이 교육학자, 사회학자의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교육학자, 사회학자들이 게으름뱅이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나와 있다. 그 중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것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업성취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업성취도가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메카니즘을 밝히지 않는 한 분석적 가치도 적을 뿐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는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슷한 정도의 상류층 학생들 간에도 상당한 수준의 학업성취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에 삽입되는 매개변인이 사교육이다. 다음의 보도 내용이 그 가장 전형적인 주장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24일 서울 11개 지역교육청의 과목별 기초학력 미달 비율과 무료급식 지원자 비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상관계수가 평균 0.7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영어와 수학의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관계수가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권영길 의원은 “이번 조사 결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가 공고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 지원이 교육격차 해소의 첫 걸음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한겨레, 2월 24일)
이 주장을 따라가게 되면 다음과 같은 모형을 얻게 된다.

이게 진보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모형이다. 한마디로 부잣집이 자녀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특히 많은 사교육을 하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노동당의 발표도, 진보신당의 논평도 다 이런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학업성취도 격차를 교사들의 노력부족으로 몰아가면서 교원평가를 강행하려는 안병만 장관의 단순무식한 논리에 대해 학업성취도는 SES에서 결정난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주장이 도리어 신자유주의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즉, 안병만은 병맛을 만들수 있어도, 이주호에게는 얼씨구나 하며 어시스트를 해준 격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우파들은 학업성취도를 순전히 개인의 노력탓으로 보는 자유주의를 견지하겠지만, 신자유주의는 빈부차가 학력차로 나타난다는 좌파들의 견해를 거부하지 않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괜히 '신'이 아니다. 이주호는 2004년부터 시종일관 "빈부교육격차 해소, 교육평등을 위해 평준화를 해체해야 한다."는 역설을 주장하고 다닌 인물이다. 아마, 그들은 이 모형을 거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거침없이 명제를 펼쳐나갈 것이다.
1. 부유층은 사교육비를 투자하기 때문에 자녀가 성적이 높다.
2. 빈곤층은 사교육비를 투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 성적이 낮다.
3. 따라서 평등의 관점에서 빈곤층도 부유층 만큼 사교육비를 투자할 수 있게 해야한다.
4. 그 방법은 교사들의 노동을 강화하여 빈곤층이 학교에서 학원 다니는 효과를 얻게 하는 것이다.
5. 교사들의 노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간, 그리고 학교와 학원 사이의 경쟁을 조장해야 한다.
이 명제들 중 1,2 번은 전통적인 좌파의 주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4,5번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게 신자유주의의 무서움이다. 이걸 반박하다 보면 좌파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부유층이 사교육 등 더 많은 교육투자를 하기 때문에 빈곤층이 뒤처지지 않게 정책적 뒷받침을 하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면서도 이른바 공교육 강화방안을 통해 학교를 학교+학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정책은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1,2번의 전제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사실 SES, 사교육 가설은 경험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가설임이 여러차례 증명되었다. 고집불통 한국 학부모들은 잘 믿지 않지만,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김양분 이라는 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들만 훑어봐도 사교육이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그리 신뢰할만하지 못한 속설에 불과하다. 특히 사교육 효과는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더욱 의미 없어진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그림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광억 외(2004)의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에 나오는 강남지역 학생들의 서울평균 대비 서울대 입학 비율이다. 
사실 SES가 높은 집단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고소득직군 아버지를 둔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앞의 강남의 사례를 보았듯이 그게 꼭 사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래도 학교공부에 조금이라도 +@를 하는 것이니 성적을 깎아먹기야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기울기가 완만할 것이란 의미다.

사실 사회현상이란 무 자르듯이 어떤 변인 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 경영학자들은 그런 만행을 잘 저지른다. 노동운동가나 좌파정치인들도 이런 오류를 자주 범한다. 하지만, 사회학자, 인류학자는 훨씬 더 신중하다. 위의 그래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설도 여러 개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이 가설들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난 것으로 볼 것이다. 그러면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설들을 탐색할 것이다. 요컨대 사회학에서는 새 이론이 나오면 옛 이론을 논박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측면으로 첨가된다(바로 이게 얼른 봐서는 잘 구별되지 않는, 사회학이론과 사회철학의 차이다. 사회학자는 논박에 관심이 없다.)
1. 과외금지 해제로 고소득직군에서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켰다.
2.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고소득직군이 자녀의 학력과 출세의 상관관계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3. 민주화, 개방화, 그리고 지식정보화로 인해 전문직의 수 자체가 증가하였고,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고소득직군으로 대거 진입하였다.
그렇다면 사교육 말고도 SES가 높은 가정의 어떤 특성들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사교육이 아니라 이런 특성들의 혜택을 빈곤층 자녀도 누릴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특히 대지주, 부동산 부자, 기업 소유자로 대표되던 부유층에는 없고, 93년부터 그 비중이 늘어난 지식노동자, 전문직종사자에게는 있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인이 동기(motivation)다. 동기는 행동을 촉발하며, 행동을 지속시키며, 행동의 강렬함을 결정하는 심리적 기제다. 동기는 인간을 의지를 가진 존재, 의욕하는 존재로 본다면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전제다. 이는 기계론적 인간관을 거부한다는 윤리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실제 심리학과 생리학의 과학적 발견결과와도 일치하는 이론이다. 반면 경쟁을 붙이면 공부 잘 한다는 논리는 인간을 단순한 자극-반응의 기계로 보는 매우 위험한 인간관에 기초해 있다. 인간은 객관적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스스로 하고자 할때 한다. 그리고 스스로 하고자 해서 할 때 그 결과가 가장 훌륭함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학업성취도에 대한 모형은 ‘동기(학습동기)’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후부터는 연구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 by | 2009/02/25 19:59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28)
# by | 2008/12/17 13:55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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