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교원평가

전교조의 교원평가 협의체 참가와 관련하여 위원장에게

별안간 불거진 전교조의 교원평가 협의체 참가.

 

사실 저는 오래 전 부터 전교조가 교원평가에 대해 전향적인 접근을 할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적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양성관 교수 등이 수행한 교원평가 대안모델 개발 수탁연구의 전교조측 담당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의체 참가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불쾌감과 우려를 감출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본부는 또 참실련은 계속 원칙적 반대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저희 연구진이 개발한 대안모델도 다만 연구진의 의견일 뿐 전교조의 입장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라며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어느 구석에서도 본부가 교평에 전향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언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중앙일보 기사보고 소식을 듣습니다. 교평협의체 참가라고? 이거 참 아햏햏한 상황입니다. 중앙일보에 교평협의체 참가하겠다고 하면 칭찬 듣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원칙적 반대라고 하면 칭찬듣습니다. 혹시 뭐 이런 것 아닙니까?

 만약 전향적으로 접근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소식을 먼저 들어야 할 사람들은 기자가 아니라 조합원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조합원들이 신문보고 알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본부는 어떤 협의체에 나가서도 정치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협의체 참가 자체는 입장에 따라 찬성할수도 반대할수도 있는 정책적인 결정입니다. 거기에 따라 강경파 온건파 나눠지는거고, 그건 세계 어느나라 노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조합의 위원장을 선출할때 경선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죠. 문제는 어떤 자격, 어떤 힘을 가지고 협의체에 참가하느냐입니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등의 노사정협의체가 제대로 굴러가는 이유는 정부의 태도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부가 진지한 태도로 나오게끔 하는 노조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단결투쟁, 강력투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지도부가 조합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력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조합원들의 이익을 양보하라는 설득까지 할 수 있으려면 그 노조는 평소에 의사소통이 막힘없이 잘 흘러다니고 있는, 즉 퍼트냄 용어를 빌리면 "사회적 자본"이 틈실한 그런 조직이라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본부의 결정은 애초에 가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자기 조합원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고, 심지어 기회주의자로 몰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노조 대표는 절대 협의체에서 대접받지 못합니다. 만약 굳이 협의체에 들어가시겠다면 대대로 끝낼 것이 아니라 조합원 총투표를 하던지 하여간 평조합원들을 논의의 장에 끌어들이는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럴 생각이 없으시다면 협의체에 들어가서 파토가 나게 해야 합니다. 단 절대 전교조가 먼저 박차고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교총이 박차고 나오게 해야 합니다. 즉, 결사적으로 승진제도 개혁과 교평을 연계시키자고 버텨야 합니다. 그래서 판이 깨져도 교총때문에 깨지게 해야 합니다.

 만의 하나 협의체에 들어가서 언론의 뭊매를 피하고, 가서 자기주장만 하다가 박차고 뛰쳐나옴으로써 조합내 강경목소리도 피하는 얕은 수를 생각하고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협의체에 참가한 당사자들은 협의체의 틀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헌신했느냐가 또 하나의 정치적 평가 기준이 됩니다. 언론의 추이를 잘 살펴보시면서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면서 교총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히 양보했는데, 교총은 고집을 세우는 그림을 그리십시오.

 교총 정책팀은 호구가 아닙니다. 분명 그들도 경우의 수를 그려가며 전교조로 인해 파토나게 만들려고 할겁니다. 절대 거기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먼저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순서가 잘못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득작업을 하십시오. 그래서 정치력을 모아 가지고 가십시오. 왜 협의체에 참석하려고 하는지, 가서 무엇은 반드시 지키고 무엇은 양보가 불가피하여 양해를 구할 것인지 분명히 조합원들에게 밝히십시오. 미리 정해 놓고, 언론에 먼저 풀어놓고, 그 다음에 대대에서 통과시키는 이런 짓은 좀 그만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협의체 참가는 최대의 재난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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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1/20 08:26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2)

교장이 되기까지 (2)

교사가 교장이 되기 위해 우선 거쳐야 하는 교감되기의 관문중 첫번째인 경력평정 점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경력평정 점수를 확보했으면, 다음에는 근무평정이 기다리고 있다. 근무평정은 문자만의 의미로는 근무를 얼마나 잘 했나 평가하는 것이다. 통칭 수우미양가로 평정하며, 학교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교사들은 자신이 무엇으로 평가되었는지, 어떤 근거로 그렇게 평가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근거도 결과도 알 수 없으니, 근평을 잘 받기 위한 정해진 규칙도 없다. 오직 교장의 자의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 만, 당해년도 근무평정 최고 점수를 누가 받느냐 (속칭 왕 수라고 한다)하는 것은 관례상 교무부장이 받는다거나, 아니면 이 왕수 하나만 추가하면 바로 교감 나갈수 있는 사람에게 준다는 불문율 비슷한게 있다. 하지만 그것도 교장 마음이니 아무도 장담 못한다. 

이렇게 교장에 의해 마음대로 매겨질수 있는 근무평정이다 보니 그것을 잘 받기 위해서는 교장의 눈에 들어야 하고, 교장이 생각하기에 잘 근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교장이 바뀌면 평정기준도 바뀌는 것이다(물론 서류상으로야 학생지도 등등의 세부항목이 있지만, 미리 수우미 대상자 정해놓고 세부항목 점수는 거기에 맞춰 끼워 넣는다는거야 이미 알사람 다 아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인 즉슨, 교장이 청소를 중요시하면 수업을 전폐하고라도 매 수업시간에 학생들 청소를 빡빡 시켜야 하며, 교장이 행정사무를 중요시하면 맨날 서류뭉치 들고 끙끙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교장 눈에 들면 부장이 된다. 부장이 되면 적어도 근무평정에서 두번째 등급은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부장들 중에 한 두명이 최고 점수를 받는 것이다. 이로써 부 장교사들은 기묘한 집단을 이룬다. 그들은 다른 교사보다 높은 점수를 확보한 집단이라는 우월감으로 자기들끼리 뭉치지만, 다시 그 속에서 최고점수를 받기 위해 교장의 총애를 다투어야 한다는 점에서 치열하게 시기하고 견제한다. 이 모든 것이 교사에게 기대되는 모습이 아님은 당연하다. 더 나아가 교장이 아부를 좋아하면 아부를, 술을 좋아하면 술자리를, 놀이를 좋아하면 노래방 모임을, 돈을 좋아하면 금일봉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많은 부장교사들이 이런식으로 산다. 그 이유는 결국 교장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승진하려면 그것이 절대권력에 얼마나 잘 보이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기준과 점수, 이것이야 말로 절대권력의 핵심조건임을 이미 노자와 한비자가 수천년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교감으로 승진하고자 마음먹은 교사는 교육적 소명과 철학보다는 교장의 취향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교장이 되었기 때문에 교실수업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일상적인 교실수업과 교육장면 보다는 외부에 폼내기 좋은 것들, 특별한 수업, 특별한 사업이 교장의 관심사다. 따라서 교장 눈에 들려면 이런 특별한 사업들에 헌신해야 한다. 불행히도 교사들의 수업시수는 이런 특별한 사업에 헌신할만큼 널널하지 않다. 따라서
특별한 사업의 대가는 일상적인 수업의 부실화다.

여기서 또 다시 고통스러운 역설이 반복된다. 교사는 승진하려면 교사이길 포기해야 한다. 교사일수록 그는 승진과 멀어지며, 교사가 아닐수록 그는 승진과 가까워진다. 보통 근무평정에서 왕수를 받을 정도의 위치가 되려면
두세 학교를 거치면서 10년여에 걸쳐 다양한 교장들의 취향에 맞춰가며 간과 쓸개를 내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받게되는 훈장이 바로 왕수인 것이다.

그러나 왕수만 받았다고 승진이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여기까지는 승진병 환자라면 누구나 웬만큼은 한다. 그래서 동점자가 속출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장치가 있다. 이른바 연구가산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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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1/15 19:36 | 교단 일기 | 트랙백 | 덧글(4)

비담, 문노, 그리고 참교육

간만에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았다. 마치 스타워즈의 벤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연상시키는 문노 비담 커플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서다.

어쩌면 작가가 참고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김남길이 참고했는지도 모르겠다. 빛과 어둠, 공주와의 사랑, 스승과의 애증 등등.....

어쨌든 이 커플의 마지막은 교사인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비담은 문노의 필생의 역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삼국통일의 기반이 될 각종 정보와 자료를 편찬하였고, 이를 비담에게 전수하여 큰 일을 도모하려 하였다. 북두칠성 어쩌구 한 날에 태어난 아이가 여자 아이인지라, 여왕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보수적인 문노인지라 진지왕의 아들인 비담과 그 북두성의 딸을 맺으려 했으리라.
그런 그의 희망이자 인생의 전부라 할 비담이가 잔혹한 근성을 내보이자, 실망과 분노가 일었을 것이고, 더 커 보이는 남의 떡(유신) 때문에 더 화가 났으리라. 그래서 "너는 그 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라고 말 한 것이다.

그런데 비담의 한 마디가 직관적으로 던진 한 마디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 그 자격은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어야죠."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자격을 타고 난 사람에게 그 자격을 부여한다면 그게 무슨 스승이겠는가? 스승이란 바로 백지로 태어난 아이를 잘 가꾸어서 어떤 종류의 자격을 갖추게 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너는 손잡이 없는 칼날이다. 쓸 수 없다면 부러뜨릴수 밖에 없다."는 독한 말 까지 한다. 이런 말을 보면 비담이 아니라 문노가 도리어 미실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문노는 미실이 연모했던 사다함의 제자로서 미실의 총애를 듬뿍 받았던 몸이 아닌가?

문노는 스승으로서 두 가지 실패를 했다.
첫째, 자신이 목표로 한 바 자격을 갖추게 하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제자를 탓했다. 우리 교사들은 평소에 얼마나 제자를 탓하는가? 싸** 없는 놈, 싹수가 노란 놈 등의 말을 얼마나 쉽게 하는가? 우리는 제자들에 대한 평가에 얼마나 인색한가? 웬만큼 공부 잘해서는 영특하다 소리 듣기 힘들고, 웬만큼 봉사하지 않고서는 착하다는 말 듣기 어렵다. 교사들끼리 학생들 품평하는 것을 들어보면 너무 민망할 정도다. 웬만하면 여러 학생들에게서 여러 장점을 찾으려는 나는 그런 교사들에게 면박당하기 일쑤였다. 누군가를 칭찬하면 "에이, 난 걔 별로던데..."라는 소리가 바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거기에는 전교조, 비전교조의 구별이 없었다. 그래서 전교조가 인심을 잃은 것이리라.

둘째, 학생의 타고난 바, 본성에 맞는 목표를 세우는 데 실패했다. 만약 비담이 손잡이 없는 칼날이라면 거기에 맞는 자격조건을 세워서 가르쳤어야 했다. 공연히 어릴때부터 왕보다 더 큰 꿈 어쩌구 하면서 헛 꿈을 심어 줄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이 아이가 어떤 자질과 품성을 갖고 있는지 꼼꼼히 살폈어야 했다. 만약 이 아이가 손잡이 없는 칼날이라면, 손잡이 끼울 부분을 잘 만들어 놓았어야 했다. 손잡이 없는 칼날도 연결부분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손잡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장검 손잡이에 맞출 것인가, 농기구 손잡이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식칼 손잡이에 맞출 것인가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노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문노는 훌륭한 인물이다. 문과 무를 겸비했고, 인품과 지혜까지 갖춘 인물이다. 사다함의 제자이며 거칠부의 사위이니 당시 신라에서 엘리트 중 슈퍼 엘리트이니, 진골정통을 대표할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 스토리상으로는 스승으로서는 분명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 잘못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쨌든 이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슬슬 교원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음. 하물며 교사에 대한 평가야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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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9/30 10:00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0)

교원평가 그 외에 몇 가지 생각(1)

 이 글은 전교조 게시판에서 새지평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어느 선생님의 물음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저는 인사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로 본론 들어갑니다. 새지평님의 원문은 파란 색으로, 저의 답변은 검은 색으로 작성합니다.

(전교조 조합원들과 비조합원선생님들조차 교과부에서 추진하는 교원평가에 대하여 달갑지 않게생각합니다. 반대하지요. 그런데 비조합원선생님들은 교과부에서 시행하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잖아 라며 패배감에 이미 길들여지신분들입니다. 전교조에서 조금 더 싸워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또 그렇게 영웅으로 등장하여 악을 물리칠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과거 아군의 많은 부분이 적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참교육학부모회 등의 단체는 물론 한겨레, 경향, 시사인이 모두 교원평가를 전향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전교조 활동가들은  그럴때 마다 그들도 타락했다 그러면서 버린 자식 취급합니다. 강경 전교조 활동가들이 수구꼴통이 사용하는 "한걸레"라는 말을 사용한지도 꽤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완전 고립입니다. 한겨레, 경향마저 고립되어가는 판국입니다. 적어도 교원평가에 관한 전교조의 입장은 민주당은 커녕 진보신당조차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재 전교조에서 '지도'그룹에 속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처럼오랜동안 전교조 활동의 중심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지도그룹이겠지요. 지도그룹이라면 여론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전교조가 초창기 시절처럼 말이죠. 촌지거부, 교과전담, 교육자치 등등 말이죠. )


우선 저는 전교조의 지도그룹이 아닙니다. 전교조의 지도그룹이 되려면 골품이 성골이라야 합니다. 무엇이 성골이냐 따지면 너무 냉소적이 되니까 그만둡시다. 저는 분회장만 줄창 하다가 다만 우연히 어느 성골분의 눈에 띄어 잠시 본부라는 곳을 구경했을 뿐입니다. 소위 참실련이라는 정파에서는 저를 중용(?)하려는 분들이 계셨지만, 그 정파는 사람을 쓸 수 없는 정파라는 곳이 확인되었기에 미련없이 나왔습니다. 참실련에서는 연공서열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습죠? 

네. 지도그룹이라면 여론을 만들어야죠. 전교조 초창기의 힘은 바로 전교조가 항상 갑이었고 정부와 교총이 을이었다는데 있었습니다. 항상 의제를 선점하고 공격했기에 6000명의 불법 조직이 60000명의 합법조직보다 더 영향력이 강했던 것이죠. 그런데 저는 합법화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의 인권과 복지와 관련한 정책이 아니라 교원복지, 근무조건과 관련한 정책이 먼저 제시된 것이 패착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 결과 단협이 체결되고 조합원이 많이 늘었죠. 하지만 그때부터 영향력은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이해찬이 교육부조리 근절을 외치고, 체벌 금지를 내세우면서 교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을때, 같이 부화뇌동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도리어 이해찬이 울고갈 정도의 강력한 정풍운동을 펼쳤어야 했습니다.

 

(교원평가를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교원"의 "평가"를 통한 통제장치를 합법적으로만들자는 것이라 봅니다. 그 교원의 정조준이 전교조 교사처럼 권위에 도전하는 발칙한 교사들의 순화와 소위 "무능력교원"이라고하는 교사들의 퇴출이 목적이겠지요. 그런데 그들을 길들이기 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근평을 통하여 그러한 자들을 처리할 수있지만 근평에서 ‘양’이나 ‘가’를 받았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은 없습니다. 즉 그러한 불량교사들을 솎아내는 방법은사법적인 처리 즉 학교 바깥의 권력을 통한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었죠. )

이거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교원은 이미 충분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사실상 특권층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미 지배계급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더 통제할 까닭도 없으며, 교원평가를 통해 통제할수도 없다고 봅니다. 물론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재단 마음에 안 드는 교사에게 집중적으로 낮은 점수를 퍼부어서 쫓아낼수도 있겠죠. 하지만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5%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젊은 교사들과, 승진 점수에 혈안이 된 중년 교사들로 이루어져서 발칙한 시도가 더 이상 나오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만약 이게 실시되면 학업성취도평가처럼 어느 학교에 떨거지 교사가 제일 적은가 따위로 경쟁하기 십상인데, 학부모가 부담스럽게 떨거지 점수를 매길수도 없고, 동료가 떨거지 점수를 매길수도 없을 겁니다. 결국 요식행위가 될 것입니다. 물론 당근과 채찍이 있지만, 채찍은 서로 회피할 것이고(상대평가 하기가 어렵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당근의 경우는 그 수혜자의 비율이 너무도 적어서 무시될겁니다. 상위 10%는 연구휴식년, 이 정도는 되어야 교사들이 불을 튀길겁니다.



 이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교원평가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것일까요? 이는선전의 힘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선전이라도 효과가 있어야 겠지요. 그래야 사람들이 동의를 하는 것이지요.그들은 어떻게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는가? 가 문제이겠지요. 그것이 우리들이 파고 들어야 할 지점이기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생님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 선생님께서는 왜 국민들이 정부에서 실시하고자 하는 교원평가에 찬성한다고 보십니까?


어떤 분은 국민들이 언론 플레이에 녹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운동권들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주사파는 자기들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먹히지 않자, 모두 미국의 심리전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평등파는 자본이 언론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바보들아 내가 너희들의 머리에 생각을 심어주겠다, 뭐 이런 사고방식입니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면, 운동판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기본적 사고방식도 이거 아닙니까? 그래서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국민들은 그렇게 우매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미 대중 한사람, 한사람은 무능할지 몰라도 결집된 대중은 탁월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다만 언론플레이에 녹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편협합니다. 오히려 정부가 대중 여론의 어떤 지점을 정확히 공략했다고 봐야 할겁니다. 그건 바로 1) 학교에 대해 만족하는 국민이 거의 없다는 것이며, 2) 제도가 무엇이 되었든 결국 교육은 교사가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육제도 탓을 많이 합니다만, 제도의 한계에 부딪쳐 자기 꿈을 다 펼치지 못하는 교사와, 애시당초 그런 꿈도 없는 교사는 탁 티가 납니다. 그리고 우리도 학생시절 그런 교사들을 금방 식별해내지 않았습니까? 우리 기억을 되돌려 봅시다. 우리 학창시절에 선생님들 좋았습니까? 아뇨. 나쁜 기억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 그 나쁜 선생님들이 전교조 합법화 이후 줄었습니까? 아뇨. 오히려 전교조 선생님들이 그런 선생님 되어 버린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전교조가 뭐 할줄 알았더니 똑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저는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여론과 작년의 촛불이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87년 이후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 욕구가 강해졌습니다. 알량할지언정 교사도 학생들, 학부모들에게 권력을 행사합니다. 이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형성되었던 것이고, 정부는(사실은 노무현 정부입니다) 이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욕망의 흐름을 읽은 것입니다.

2.  정부의 교원평가 실시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는 무엇을 하겠다라는 정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엇을 하지 않겠다라는 정책입니다. 즉, 정부가 더 이상 공공사업을, 복지사업을 책임지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감세정책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교육을 통제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교육에서 손을 떼기 위해서 교원평가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들 주장대로 "민간에 맡기고, 시장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손을 놓을 수는 없으니 "일제고사"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미주알 고주알 전부 간섭하고 통제했습니다. 그러자니 운영비도 많이 들고 관료조직도 비대해집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제는 돈 쓰고 싶지 않습니다. 4대강도 파야 하고, 자본가 세금도 깎아줘야 하고... 그래서 자율화조치가 이어집니다. 지역에서 학교에서 알아서 해라!  자율에는 댓가가 있습니다. 그건 정부의 예산지원 삭감이죠. 알아서 구해라! 그렇다고 공교육이 개판되게 냅두면 정부가 욕을 먹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 책임을 교사에게 지우는 것입니다. 이제 정부가 미주알 고주알 하는 교육이 아니니, 교사가 책임지라!  이 맥락에서 교원평가가 도입되는 것입니다. 즉, 학교 자율화와 교원평가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교원평가를 통해 학부모가 교사를 통제하게 하고, 일제고사를 통해 자율권을 받은 학교가 멋대로 나대지 못하게 간접 통제한 뒤, 정부는 교육관련 섹터를 대폭 축소하고자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531 의 연장선상에서의 교원평가입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자율화 없이, 즉 과거의 관료적 통제와 비대한 교육관료기구는 온존한 채로 교원평가와 일제고사를 옥상옥처럼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과거 정부의 교원평가안만큼의 지지를 유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3. 저희가 계속해서 교원평가 반대를 외치다 보면 ‘교원평가’라는 말은 사람들의머리속에 각인이 되며 전교조는 반대만 한다는 기존의 이미지만 고착시킬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는 방법-대안적 투쟁방법-은 없는지요? 예를 들면 교원평가가 아닌 “학교자치평가를실시하자” “교육평가”를 실시하자 등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신자유주의에서 조차도 교원평가, 일제고사는 정부의 간접통제도구입니다. 즉, 직접 통제를 철수하는 대신 도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원평가의 다른 면은 학교자치일수 밖에 없습니다. 자치권 없는 책무성은 언어도단입니다. 행정학 용어로는 임파워먼트라고 합니다. 교사가 보다 많은 책무성을 걸머질테니, 그대신 더 많은 권한부여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권한부여 없는 책무성 강화는 결국 지나친 통제로 귀결되며, 그걸 강행할 명분도 없기 때문에 형식화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원평가의 이 양 측면, 책무성 강화와 비례하는 권한부여의 확대를 부각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게 저와 양성관 교수 등이 2006~2007년에 걸쳐 공들여 개발했던 대안적 교원평가 모델의 핵심입니다.

4.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교원평가 대안 투쟁은 무엇인가요?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씀드릴수 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같은 경우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교원평가가 맥락있게 자리잡았기 때문에 협상도 가능하고 정치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교조를 뭉개겠다, 이 생각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대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반대 투쟁을 하면 완전히 고립시키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름의 대안을 꾸준히 개발하고 알리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권한부여의 확대, 학교자치의 확대가 되어야 하겠죠. 하지만 이런 말이 나오면  각론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교평 찬성이냐, 반대냐?" 부터 신앙고백해야 하는 상황부터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교원평가 반대"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평가를 통해 교사가 되었고, 연수에도 평가를 받고, 해마다 근무 평가를 받고, 거기 따라 승진도 하고 있습니다. 평가는 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원평가 반대가 아니라 교원평가및 승진제도 개혁이라는 포지티브 선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 자세한 말씀은 기회가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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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9/19 10:12 | 기독교비판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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