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경쟁

진보진영은 '사교육 탓'을 넘어야 한다

 

 

지난 포스팅에서 저 빈칸의 ?들 속에 학업성취의 가장 중요한 변인들이 숨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찾는 것이 교육학자, 사회학자의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교육학자, 사회학자들이 게으름뱅이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나와 있다. 그 중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것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업성취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업성취도가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메카니즘을 밝히지 않는 한 분석적 가치도 적을 뿐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는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슷한 정도의 상류층 학생들 간에도 상당한 수준의 학업성취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에 삽입되는 매개변인이 사교육이다. 다음의 보도 내용이 그 가장 전형적인 주장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24일 서울 11개 지역교육청의 과목별 기초학력 미달 비율과 무료급식 지원자 비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상관계수가 평균 0.7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영어와 수학의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관계수가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권영길 의원은 “이번 조사 결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가 공고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 지원이 교육격차 해소의 첫 걸음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한겨레, 2월 24일)


이 주장을 따라가게 되면 다음과 같은 모형을 얻게 된다.

 

 

 

이게 진보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모형이다. 한마디로 부잣집이 자녀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특히 많은 사교육을 하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노동당의 발표도, 진보신당의 논평도 다 이런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학업성취도 격차를 교사들의 노력부족으로 몰아가면서 교원평가를 강행하려는 안병만 장관의 단순무식한 논리에 대해 학업성취도는 SES에서 결정난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주장이 도리어 신자유주의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즉, 안병만은 병맛을 만들수 있어도, 이주호에게는 얼씨구나 하며 어시스트를 해준 격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우파들은 학업성취도를 순전히 개인의 노력탓으로 보는 자유주의를 견지하겠지만, 신자유주의는 빈부차가 학력차로 나타난다는 좌파들의 견해를 거부하지 않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괜히 '신'이 아니다. 이주호는 2004년부터 시종일관 "빈부교육격차 해소, 교육평등을 위해 평준화를 해체해야 한다."는 역설을 주장하고 다닌 인물이다. 아마, 그들은 이 모형을 거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거침없이 명제를 펼쳐나갈 것이다.

 

1. 부유층은 사교육비를 투자하기 때문에 자녀가 성적이 높다.

2. 빈곤층은 사교육비를 투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 성적이 낮다.

3. 따라서 평등의 관점에서 빈곤층도 부유층 만큼 사교육비를 투자할 수 있게 해야한다.

4. 그 방법은 교사들의 노동을 강화하여 빈곤층이 학교에서 학원 다니는 효과를 얻게 하는 것이다.

5. 교사들의 노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간, 그리고 학교와 학원 사이의 경쟁을 조장해야 한다.

 

이 명제들 중 1,2 번은 전통적인 좌파의 주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4,5번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게 신자유주의의 무서움이다. 이걸 반박하다 보면 좌파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부유층이 사교육 등 더 많은 교육투자를 하기 때문에 빈곤층이 뒤처지지 않게 정책적 뒷받침을 하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면서도 이른바 공교육 강화방안을 통해 학교를 학교+학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정책은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1,2번의 전제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사실 SES, 사교육 가설은 경험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가설임이 여러차례 증명되었다. 고집불통 한국 학부모들은 잘 믿지 않지만,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김양분 이라는 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들만 훑어봐도 사교육이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그리 신뢰할만하지 못한 속설에 불과하다. 특히 사교육 효과는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더욱 의미 없어진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그림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광억 외(2004)의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에 나오는 강남지역 학생들의 서울평균 대비 서울대 입학 비율이다.

85년부터 강남지역 학생들은 서울지역 평균보다 1.5배~2배 서울대학에 더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중은 85년과 87년에 절정을 이루었다가, 93년을 계기로 조금씩 내려앉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87년은 사교육이 절대적으로 금지되었던 시절이다. 그 시절에는 사교육을 받으면 퇴학을 당하고, 학원이라고는 사대문 안에 가야 재수생 학원이 있었다. 93년은 사교육의 고삐가 풀리기 시작한 해다. 그때부터 속셈학원이란 이름을 빙자한 보습학원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만약 사교육원인이라면 강남지역의 서울대 입학 비율은 93년을 계기로 비약적으로 증가했어야 했다. 그러나 학원이야 있건 없건 그 비율은 큰 차이가 없고, 도리어 학원이 없던 시절에 더 높기까지 하다. (물론 80년대에도 대학생 몰래 과외가 성행하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과외받는 학생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것도 서울대를 노리는 학생들 보다는 좀 처지는 학생들 쪽이 많았다.)

 

 

사실 SES가 높은 집단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고소득직군 아버지를 둔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앞의 강남의 사례를 보았듯이 그게 꼭 사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래도 학교공부에 조금이라도 +@를 하는 것이니 성적을 깎아먹기야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기울기가 완만할 것이란 의미다.

 

 

사실 사회현상이란 무 자르듯이 어떤 변인 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 경영학자들은 그런 만행을 잘 저지른다. 노동운동가나 좌파정치인들도 이런 오류를 자주 범한다. 하지만, 사회학자, 인류학자는 훨씬 더 신중하다. 위의 그래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설도 여러 개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이 가설들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난 것으로 볼 것이다. 그러면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설들을 탐색할 것이다. 요컨대 사회학에서는 새 이론이 나오면 옛 이론을 논박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측면으로 첨가된다(바로 이게 얼른 봐서는 잘 구별되지 않는, 사회학이론과 사회철학의 차이다. 사회학자는 논박에 관심이 없다.)
 

1. 과외금지 해제로 고소득직군에서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켰다.

2.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고소득직군이 자녀의 학력과 출세의 상관관계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3. 민주화, 개방화, 그리고 지식정보화로 인해 전문직의 수 자체가 증가하였고,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고소득직군으로 대거 진입하였다.

 

그렇다면 사교육 말고도 SES가 높은 가정의 어떤 특성들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사교육이 아니라 이런 특성들의 혜택을 빈곤층 자녀도 누릴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특히 대지주, 부동산 부자, 기업 소유자로 대표되던 부유층에는 없고, 93년부터 그 비중이 늘어난 지식노동자, 전문직종사자에게는 있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인이 동기(motivation)다. 동기는 행동을 촉발하며, 행동을 지속시키며, 행동의 강렬함을 결정하는 심리적 기제다. 동기는 인간을 의지를 가진 존재, 의욕하는 존재로 본다면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전제다. 이는 기계론적 인간관을 거부한다는 윤리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실제 심리학과 생리학의 과학적 발견결과와도 일치하는 이론이다. 반면 경쟁을 붙이면 공부 잘 한다는 논리는 인간을 단순한 자극-반응의 기계로 보는 매우 위험한 인간관에 기초해 있다. 인간은 객관적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스스로 하고자 할때 한다. 그리고 스스로 하고자 해서 할 때 그 결과가 가장 훌륭함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학업성취도에 대한 모형은 ‘동기(학습동기)’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후부터는 연구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9/02/25 19:59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28)

경쟁과 학업성취라는 허구

이번 정부의 정책을 보면, 그리고 그 정책을 선전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상식으로 통용되는 내용에 편승해서 그럴듯하게 들리는 그런 말들을 많이 한다. 지난 노무현 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현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바로 자신이 포률리스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포퓰리스트의 특징은 대중에게 상식에게 거슬리지 않는 말만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종 대중의 감수성과 잘 맞지 않는 독특한 주장을 많이 했다. 그를 독선적이라고 욕을 할수는 있을지언정 포퓰리스트라고는 욕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주장을 한다. 비극이라면 거슬리지 않는 말을 하면서도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거야 뭐 어쩔수 없는 것이고.

이 정부가 가장 잘 써먹는 상식에 편승한 말이 "학교들을 경쟁을 시켜야 학생들의 학력이 증진되고, 나아가 인적자원이 풍부해진다."라는 말이다. 아마 일반인들은 이 심플한 명제를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냥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학자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상식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것들 이면에 있는 보고싶지 않는 진실을 끄집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자인 것이다. 이제 나 역시 학력의 이면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 내려고 한다. 사회학자들은 방정식 모형을 좋아하기 때문에 먼저 간단하게 모형부터 세워보려고 한다. 

A(학업성취도)=C(상수)+B1X1+B2X2+B3X3+B4X4+....BiXi


이런 모형을 일단 세워 보자. 이건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임의의 변인들 i개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때 이 변인들을 어떤 것들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학업성취도를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가설들이 세워질수 있다. 그럼 남는 것은 그것을 경험적 자료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다.

1. 현 정부의 모델

현 정부가 주장하는 모델은 이렇다.

학업성취도=C+B1교사의노력+B2학생의노력
교사의 노력=C+B경쟁
학생의 노력=C+B경쟁

논의가 복잡해지지 않도록 여기서 말하는 학업성취도의 타당성 등에 대한 교육철학적 논의는 일단 배제하도록 하고, 순전 성적이라고 치자. 또 경쟁의 성격도 변수에서 배제하고, 모두 공정한 경쟁만 한다고 치자. 교사와 학생의 노력도 꼼수나 기타등등의 방법을 개발하는 것 등이 아니라 순전히 학습 시간,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만 한다고 치자.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경로모형이 세워진다.

[모형 1]

한 눈에 봐도 이 모형의 설명력은 매우 빈약해 보인다. 그야말로 30년대, 40년대때 머리띠 졸라 매고 죽기살기로 하면 뭘 못해 사고방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부모세대의 사고방식과 이 모델이 다른 점이 있다면 '교사의 노력'이 상수항에서 변수항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며, 노력을 자극하는 원인으로 경쟁이라는 변인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부모세대의 모형과 비교해 보자. 우리 부모세대의 학업성취도 모형은 이랬다.

[모형2]

이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참으로 잔인한 모형이었다. 한 마디로 노력을 안하니까 공부를 못한 것이고, 노력을 안한 이유는 본인의 심지가 굳지 못한 탓이다. 아마 지금 40대들은 부모로부터 이런 요지의 잔소리를 질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형1]은 이 부담에서 실패자들을 해방시켜준다.  실패자들에게 가장 손쉬운 비난할 대상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교사다. 즉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와 나란히 선생이 열심히 안가르쳐서가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선생이 열심히 안가르친 이유는 바로 경쟁이 없어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정리하면 이렇다.
 
1) 학생들은 원튼 원하지 않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어 있다.
2) 그런데 교사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3) 따라서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다.
4) 따라서 학업성취도가 낮다.


사실 이건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교사들을 경쟁시킨다는 것은 결국 학생들을 더 경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차라리 [모형2]를 선호할 것이다. 현재 정부의 선동질에 넘어가 [모형1]과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집단은 중고교 재학생이 아니라 졸업생 그리고 그 중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집단들일 가능성이 많다. 한마디로 재수없는 교사들 엿먹어봐라 이 심리다. 즉 내가 철밥그릇 직장 가질 가망이 없으니, 지금 그 직장 가진 놈들 엿먹어라 심리다. 코메디 버전으로 하자면 날씬한 것들은 다 사라져버려라 심리다. 사실 이건 사회조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필자는 다음의 가설이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가설1 중고교 재학생보다 졸업생이 학교간 경쟁을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주장에 더 많이 동조할 것이다.

가설2 졸업후 자신의 진로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록 학교간 경쟁을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주장에 더 많이 동조할 것이다.
 
이런 심리에 편승한 정책이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포퓰리즘은 꼭 돈을 퍼주고 혜택을 주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2. 보다 복잡화된 모델(탐구과제)

우리는 위의 모델이 현실의 극히 일부만 반영함을 알고 있다. 그건 경험칙이다. 세상 일이 저렇게 간단할 것 같으면 누가 못하겠는가? 학력이 저렇게 쉽게 설명될 것 같으면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노예 감독관을 교육부 장관으로 삼아 교사와 학생들을 닥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긴 지금 이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노예감독관과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 모델은 다음의 중요한 사실들을 망각하고 있다.

1) 노력으로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2) 경쟁이 꼭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3) 노력에 영향을 주는 변인은 매우 많다.

1)의 경우는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좌절한 많은 학생들의 경험이 그것을 이미 반증하고 있다. 교사로서 나는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상한선 이상을 절대 넘지 못하는 학생들을 너무 많이 봤다. 대체로 평균 80점대 학생들 중에 그런 성실군자들이 많다. 반면 그들의 반의 반 밖에 공부하는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교1등 하고, 서울대 가고 연고대 가고 하는 얄미운 학생들도 자주 봤다. 노력으로 안되는 것이다.

2)의 경우는 몇해 전 휴대폰과 첨단 통신기기를 이용한 대규모 수능 부정 사태가, 서울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학부생들의 집단 부정행위 사태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이 보강되어야 한다.


[모형3]
                   
두 개의 ? 변인이 추가되었다. 하나는 학생과 교사의 노력에 영향을 주는 변인으로서 경쟁이 아닌 다른 변인이다. 이 변인은 경우에 따라서 교사와 학생의 노력과 무관하게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줄수도 있다. 두번째 ?는 경쟁이 교사와 학생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것에 미치는 영향이다. 모형에는 단지 한 칸씩으로 그렸지만 사실은 이 안에 무수한 변수들이 포함될 수 있다. 화살표를 굵게 칠한 것은 경쟁보다 실은 이 감추어진 변인들의 영향력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노력을 거치지 않고 성취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인으로는 지능,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들 수 있다. 지능은 쉽게 이해 할수가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배경은 부자일수록 사교육을 더 시킬수 있다는 수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부자일수록 이미 알게 모르게 습득할 수 있는 지식과 문화자원이 많다는 것이다. 꼭 교과서 놓고 문제 연습한것만 성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런 은연중에 학습한 것들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

게다가 사회경제적 배경은 노력에도 영향을 준다. 통상 사회경제적 배경이 높을수록 적절한 수준의 성취기대가 주어져서 학생들은 학습동기화가 잘 이루어진다. 반면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을 경우 성취기대가 거의 없거나 (무관심) 아니면 지나치게 높아서(네가 우리집의 희망이다 등등)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또 매클렐란 등 많은 사회학자들은 성취에 영향을 주는 퍼스낼리티에 대한 훌륭한 자료를 많이 남겼다. 즉 성취지향적 퍼스낼리티를 가진 사람이 보다 창의적인 성취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취지향적 퍼스낼리티는 8-10세의 경험이 결정적인데 이때 부모가 이미 성취한 수준, 적절한 관심과 응원, 그리고 탈권위적인 부모가 이런 인성을 형성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하였다. 안타깝게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부모는 이미 성취한 수준도 낮고, 관심과 응원이 과소 혹은 과대하며, 아버지가 가부장적인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무수한 변인들이 성취도, 그리고 학생의 노력에 영향을 준다.

교사의 노력에 영향을 주는 변인 역시 다양하다. 많은 교직이론들은 교사들의 직무태도는 보상보다 존중을 바라고 있으며 이게 무너졌을 경우 적절한 동기형성이 기대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뉴욕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우수교사에 대한 보상을 성과급이 아니라 교육과정 편성이나 신임교사 연수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바꾸었고, 실제 그게 보다 효과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금전적 보상보다는 존중감의 보상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거꾸로 교사들은 금전적 박탈감보다 존중감의 훼손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에 더해 학구적인 학교 분위기, 제반 연구 인프라 등도 교사의 노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변인이 될수 있다.

다음은 두번째 물음표다. 경쟁이 증가할수록 어느정도 교사나 학생이 더 노력할 가능성은 있다. 그것은 또 다른 효과를 가져올수도 있다. 이른바 부작용이다. 따라서 학교의 경쟁은 이 부작용이 학업성취도보다 더 심각할 경우 완화되어야 한다. 우선 학생의 경우, 우리나라 학생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경쟁을 하고 있다. 문제는 교사들을 경쟁 붙이면, 교사들이 논문 편수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성취도들 놓고 경쟁할 경우, 당연히 학생들도 더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수들의 경쟁을 강화한다면 말도 더 달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이미 임계치 이상의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다. 말의 상태는 기수가 가장 잘 알듯이, 학생의 상태는 교사가 가장 잘 안다. 이렇게 부작용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면 교사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말이 더 달릴 수 없음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강요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 임실, 대구, 부산 등에서 터져나온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미 100년 전, 독일의 교육행정가인 케르센슈타이너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는 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귀가조치 시키는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독일 공교육의 일대 개혁을 시작했다. 아마 지금도 별 차이 없을 것이다.

그 외 더 많은 변인들을 추가할 수 있지만 , 일단 이 정도 해 두자. 이건 블로그지 논문집은 아니니까. 하지만, 연구꺼리로 일단 담아두기로 하자.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9/02/22 22:08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4)

조정환 선생의 강연내용?

조정환 선생이 전교조에서 했던 강연 내용입니다. 원고 없이 강연하셔서, 이렇게 차례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차례만 봐도 이야기의 감은 잡힙니다. 언젠가 이 차례를 바탕으로 원고를 부탁드려야겠습니다.

경쟁에서 소통으로[ 2008 초등관 동지회 출범식 강의]-성적을 없애라


1. 도입---글로벌 경쟁력

가. 몇 가지 장면
안철수의 예
엉터리 학위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신정아 사건
표절 사건
황우석 사건
교원평가와 성과급

나. 교육통제 기조의 강화(자율과 경쟁)..."자율과 경쟁, 선택과 집중, 글로벌경쟁력 강화"

3월은 일제고사의 달(3월 6일 중등, 그로부터 며칠 뒤 초등)...자율과 경쟁

최보경 교사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경쟁력 저해 분자의 제거

다. 일제고사의 구조

-복종과 경쟁-학생들은 복종하게 되고 교사의 권력은 강화된다, 학생들 사이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학생들은 무력해진다
-경쟁과 복종-경쟁이 복종을 강화한다
-1990년대 이후 전인교육 기조의 침식(물론 시장경쟁, 입시경쟁을 허용한 상태에서 전인교육이란 공념불)

라. 평가, 성적의 일반화(이른바 수월성)

-교육행정평가
-교원양성기관평가
-학교평가
-교원평가
-학생평가

마. 경쟁의 수위와 영역들....일반적 경쟁체제

학생
교사
교육행정가
학부모

바. 일제고사에 대한 긍정반응--질서, 서열을 원하는 사람들. 서열질서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

일부 학부모
일부 교사
학원들
기업들

조선일보: 해맑은 아이가 칸막이를 친 모습
교육행정가
권력자

2. 경쟁이 발전과 진화를 가져오는가?

가. 경쟁의 이론들
생물학에서 다윈과 크로포트킨
정치경제학 밀튼 프리드만과 가브리엘 타르드
정치학에서 신자유주의 대 자율주의


나.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이야말로 최선의 결과를 낳는가?
경쟁의 결과...자본가의 이득, 노동자의 손실; 자본가의 최대이득은 노동자의 최대손실이다

다. 경쟁, 협력보다 근원적인 것은 창조: 창조에서는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하다

3. 성적과 임금의 관계

성적과 임금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성적은 미래 임금의 차용증서로 여겨진다: 높은 성적은 높은 임금을 보장할 것: 위계적 임금, 위계적 성적
차별적 성적은 기업의 비용을 줄인다
복종하는 인간, 노동에 유용한 에너지를 많이 가진 인간(이른바 '우수한' 인간)을 양성하기
표준화된 진리에 대한 순응을 키울 수 있다
전투적인 학생이 더 높은 성적을 얻을 때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성적= 훈육의 부과, 권위의 증가

4. 성적폐지 투쟁

가. 예: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학점 인플레이션과 성적폐지투쟁
나. 성격

성적폐지는 학생들의 보다 큰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그것은 자주적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해방시킨다

다. 교사와 교수의 입장

교사와 교수는 권력을 원한다. 성적을 통해 판정할 수 있는, 평가할 수 있는 권력을 원한다. 추방의 권력을 원한다. The wall...을 원한다
하지만 성적은 교사와 교수의 자유를 빼앗는다.
느슨한 학점매기기는 교수들을 위한 더 많은 시간(독서, 친교, 사랑, 비전공 학습, 육아)
성적 없이 가르치기
모순 속의 존재, 누구의 입장에 설 것인가? 자본의 입장인가 자유의 입장인가? 관리자의 입장인가 교육자의 입장인가?

라. 학부모의 입장

마. 성적에 대항한 싸움의 성격

-훈육과 복종에 대한 싸움이며 더 많은 자유를 위한 싸움이다
-위계와 복종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한 싸움이다
-우리 내부의 벽을 제거하기 위한 협력을 위한, 새로운 투쟁의 주체성을 위한 싸움이다

5. 협력의 조건은 무르익고 있으며 경쟁은 생산을 위축시킨다

경쟁의 강화는 현재의 생산 시스템과 위배된다
소통과 협력이 현재 생산의 핵심적 수단이다
인터넷...지적재산권의 위험성


6. 전투와 전쟁

가. 전투의 경우 개별 학교에서 승리할 있지만 전쟁은 사회 전체 지구전체의 수준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
나. 그렇지만 개별 영역에서의 전투의 승리 없이 지구 전체에서의 전쟁의 승리도 없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8/09/17 23:07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경쟁력 없는 경쟁력(펌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경쟁력없는 경쟁력

 

진중권(문화평론가) / 씨네21 No.668

애플사의 CEO 스티븐 잡스는 스탠퍼드대학의 졸업식장에 껄렁하게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자신이 내린 생애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가 대학을 중퇴한 것이었다고 말했단다. 명문대 졸업생들의 부푼 자부심에 기얹은 이 썰렁한 축사는 전세계 네티즌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연설도 유명하다. 그는 하버드대학의 명예졸업장을 받는 자리에서 전통적 기부나 자선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자신이 내린 생애 최고의 결정 중 하나고 아마 대학 중퇴를 꼽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라도 한국에서라면 별볼일 없었을게다. 여기서는 대학 졸업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 보수적 사회에서 식장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스티븐 잡스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말하는 빌 게이츠는 '좌파 평등주의 빨갱이'라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스티븐 잡스의 제품발표회는 예술적 퍼포먼스에 가깝다. "이 노트북은 두께가 1.9cm"라고 말하는 것고 얇은 서류봉투 속에서 슬며시 초박형 노트북을 꺼내는 것은 애초에 효과가 다르다. 이 미학성은 PT만이 아니라 애플 제품의 디자인 자체의 원리다. 디지털 시대의 생산력은 이렇게 예술적 창의성에서 나온다.

빌 게이츠에 따르면, 시장의 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창조적 자본주의'다. 실제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다. 그런데도 한국의 지배층은 구태의연하게 성장 제일주의를 외친다. 모자란 사회적 상상력이 한국 자본주의를 창조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보수언론에서는 툭하면 '경쟁력'을 외친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데에 있다. 세계는 상상력과 창조성의 경쟁을 벌이는데, 그들의 굳은 머리속의 '경쟁력'은 획일적인 입시경쟁일 뿐, 도대체 국제중학교에 들어가 명문대 가려고 밤늦게가지 토플 공부를 하는 초등학생에게 상상력과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회적 상상력의 결여야말로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기술생태계가 파괴되어 있어, 대기업의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그 효과가 중소기업으로 흐르지 못하는 게 우리 경제의 문제다. 아무리 대기업의 수출을 늘려도 성장이 잘 안된다면, 뭔가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책은? '삽질'로 내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고용창출을 위한 대책은? 건국절 기념으로 비리 기업인들 대거 사면해주는 것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기껏 욕먹어가며 사면해줬더니 왜 대기업에선 신규고용을 안 해주냐고 볼멘소리나 하고 앉았다. 비리 기업인 사면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정부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한마디로, 우리의 문제는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 모두에서 경제운영의 창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그 특유의 복고 취향에 힘입어 이 경향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개발도상국인 중국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것을 고민하는 즈음에, 이 정권은 747공약(주 : 매년 7% 성장, 국민소득 4만 불, 세계 7대 경제대국)을 추진하겠단다. 그것도 앞으로 10년간 계속 추구할 목표로 삼겠단다.

경쟁력없는 경쟁력을 신처럼 신봉하는 굳은 머리들에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19세기에 옥스퍼드대학에서는 졸업생 중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이에게 상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제도가 도입된 이후 100동안 그 대학은 수학자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C.P.스노의 조서 <두 문화>에 나오는 얘기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8/08/27 12:46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