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경쟁
2009/02/22 경쟁과 학업성취라는 허구 [4]
2008/09/17 조정환 선생의 강연내용?
2008/08/27 경쟁력 없는 경쟁력(펌글) [1]

지난 포스팅에서 저 빈칸의 ?들 속에 학업성취의 가장 중요한 변인들이 숨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찾는 것이 교육학자, 사회학자의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교육학자, 사회학자들이 게으름뱅이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나와 있다. 그 중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것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업성취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업성취도가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메카니즘을 밝히지 않는 한 분석적 가치도 적을 뿐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는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슷한 정도의 상류층 학생들 간에도 상당한 수준의 학업성취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에 삽입되는 매개변인이 사교육이다. 다음의 보도 내용이 그 가장 전형적인 주장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24일 서울 11개 지역교육청의 과목별 기초학력 미달 비율과 무료급식 지원자 비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상관계수가 평균 0.7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영어와 수학의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관계수가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권영길 의원은 “이번 조사 결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가 공고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 지원이 교육격차 해소의 첫 걸음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한겨레, 2월 24일)
이 주장을 따라가게 되면 다음과 같은 모형을 얻게 된다.

이게 진보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모형이다. 한마디로 부잣집이 자녀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특히 많은 사교육을 하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노동당의 발표도, 진보신당의 논평도 다 이런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학업성취도 격차를 교사들의 노력부족으로 몰아가면서 교원평가를 강행하려는 안병만 장관의 단순무식한 논리에 대해 학업성취도는 SES에서 결정난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주장이 도리어 신자유주의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즉, 안병만은 병맛을 만들수 있어도, 이주호에게는 얼씨구나 하며 어시스트를 해준 격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우파들은 학업성취도를 순전히 개인의 노력탓으로 보는 자유주의를 견지하겠지만, 신자유주의는 빈부차가 학력차로 나타난다는 좌파들의 견해를 거부하지 않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괜히 '신'이 아니다. 이주호는 2004년부터 시종일관 "빈부교육격차 해소, 교육평등을 위해 평준화를 해체해야 한다."는 역설을 주장하고 다닌 인물이다. 아마, 그들은 이 모형을 거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거침없이 명제를 펼쳐나갈 것이다.
1. 부유층은 사교육비를 투자하기 때문에 자녀가 성적이 높다.
2. 빈곤층은 사교육비를 투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 성적이 낮다.
3. 따라서 평등의 관점에서 빈곤층도 부유층 만큼 사교육비를 투자할 수 있게 해야한다.
4. 그 방법은 교사들의 노동을 강화하여 빈곤층이 학교에서 학원 다니는 효과를 얻게 하는 것이다.
5. 교사들의 노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간, 그리고 학교와 학원 사이의 경쟁을 조장해야 한다.
이 명제들 중 1,2 번은 전통적인 좌파의 주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4,5번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게 신자유주의의 무서움이다. 이걸 반박하다 보면 좌파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부유층이 사교육 등 더 많은 교육투자를 하기 때문에 빈곤층이 뒤처지지 않게 정책적 뒷받침을 하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면서도 이른바 공교육 강화방안을 통해 학교를 학교+학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정책은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1,2번의 전제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사실 SES, 사교육 가설은 경험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가설임이 여러차례 증명되었다. 고집불통 한국 학부모들은 잘 믿지 않지만,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김양분 이라는 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들만 훑어봐도 사교육이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그리 신뢰할만하지 못한 속설에 불과하다. 특히 사교육 효과는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더욱 의미 없어진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그림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광억 외(2004)의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에 나오는 강남지역 학생들의 서울평균 대비 서울대 입학 비율이다. 
사실 SES가 높은 집단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고소득직군 아버지를 둔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앞의 강남의 사례를 보았듯이 그게 꼭 사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래도 학교공부에 조금이라도 +@를 하는 것이니 성적을 깎아먹기야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기울기가 완만할 것이란 의미다.

사실 사회현상이란 무 자르듯이 어떤 변인 한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 경영학자들은 그런 만행을 잘 저지른다. 노동운동가나 좌파정치인들도 이런 오류를 자주 범한다. 하지만, 사회학자, 인류학자는 훨씬 더 신중하다. 위의 그래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설도 여러 개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이 가설들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난 것으로 볼 것이다. 그러면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설들을 탐색할 것이다. 요컨대 사회학에서는 새 이론이 나오면 옛 이론을 논박하지 않는다. 다만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측면으로 첨가된다(바로 이게 얼른 봐서는 잘 구별되지 않는, 사회학이론과 사회철학의 차이다. 사회학자는 논박에 관심이 없다.)
1. 과외금지 해제로 고소득직군에서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켰다.
2.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고소득직군이 자녀의 학력과 출세의 상관관계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3. 민주화, 개방화, 그리고 지식정보화로 인해 전문직의 수 자체가 증가하였고,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고소득직군으로 대거 진입하였다.
그렇다면 사교육 말고도 SES가 높은 가정의 어떤 특성들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진영은 사교육이 아니라 이런 특성들의 혜택을 빈곤층 자녀도 누릴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특히 대지주, 부동산 부자, 기업 소유자로 대표되던 부유층에는 없고, 93년부터 그 비중이 늘어난 지식노동자, 전문직종사자에게는 있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인이 동기(motivation)다. 동기는 행동을 촉발하며, 행동을 지속시키며, 행동의 강렬함을 결정하는 심리적 기제다. 동기는 인간을 의지를 가진 존재, 의욕하는 존재로 본다면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전제다. 이는 기계론적 인간관을 거부한다는 윤리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실제 심리학과 생리학의 과학적 발견결과와도 일치하는 이론이다. 반면 경쟁을 붙이면 공부 잘 한다는 논리는 인간을 단순한 자극-반응의 기계로 보는 매우 위험한 인간관에 기초해 있다. 인간은 객관적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스스로 하고자 할때 한다. 그리고 스스로 하고자 해서 할 때 그 결과가 가장 훌륭함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학업성취도에 대한 모형은 ‘동기(학습동기)’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후부터는 연구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 by | 2009/02/25 19:59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28)



# by | 2009/02/22 22:08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4)
1. 도입---글로벌 경쟁력
가. 몇 가지 장면
안철수의 예
엉터리 학위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신정아 사건
표절 사건
황우석 사건
교원평가와 성과급
나. 교육통제 기조의 강화(자율과 경쟁)..."자율과 경쟁, 선택과 집중, 글로벌경쟁력 강화"
3월은 일제고사의 달(3월 6일 중등, 그로부터 며칠 뒤 초등)...자율과 경쟁
최보경 교사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경쟁력 저해 분자의 제거
다. 일제고사의 구조
-복종과 경쟁-학생들은 복종하게 되고 교사의 권력은 강화된다, 학생들 사이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학생들은 무력해진다
-경쟁과 복종-경쟁이 복종을 강화한다
-1990년대 이후 전인교육 기조의 침식(물론 시장경쟁, 입시경쟁을 허용한 상태에서 전인교육이란 공념불)
라. 평가, 성적의 일반화(이른바 수월성)
-교육행정평가
-교원양성기관평가
-학교평가
-교원평가
-학생평가
마. 경쟁의 수위와 영역들....일반적 경쟁체제
학생
교사
교육행정가
학부모
바. 일제고사에 대한 긍정반응--질서, 서열을 원하는 사람들. 서열질서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
일부 학부모
일부 교사
학원들
기업들
조선일보: 해맑은 아이가 칸막이를 친 모습
교육행정가
권력자
2. 경쟁이 발전과 진화를 가져오는가?
가. 경쟁의 이론들
생물학에서 다윈과 크로포트킨
정치경제학 밀튼 프리드만과 가브리엘 타르드
정치학에서 신자유주의 대 자율주의
나.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이야말로 최선의 결과를 낳는가?
경쟁의 결과...자본가의 이득, 노동자의 손실; 자본가의 최대이득은 노동자의 최대손실이다
다. 경쟁, 협력보다 근원적인 것은 창조: 창조에서는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하다
3. 성적과 임금의 관계
성적과 임금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성적은 미래 임금의 차용증서로 여겨진다: 높은 성적은 높은 임금을 보장할 것: 위계적 임금, 위계적 성적
차별적 성적은 기업의 비용을 줄인다
복종하는 인간, 노동에 유용한 에너지를 많이 가진 인간(이른바 '우수한' 인간)을 양성하기
표준화된 진리에 대한 순응을 키울 수 있다
전투적인 학생이 더 높은 성적을 얻을 때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성적= 훈육의 부과, 권위의 증가
4. 성적폐지 투쟁
가. 예: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학점 인플레이션과 성적폐지투쟁
나. 성격
성적폐지는 학생들의 보다 큰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그것은 자주적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해방시킨다
다. 교사와 교수의 입장
교사와 교수는 권력을 원한다. 성적을 통해 판정할 수 있는, 평가할 수 있는 권력을 원한다. 추방의 권력을 원한다. The wall...을 원한다
하지만 성적은 교사와 교수의 자유를 빼앗는다.
느슨한 학점매기기는 교수들을 위한 더 많은 시간(독서, 친교, 사랑, 비전공 학습, 육아)
성적 없이 가르치기
모순 속의 존재, 누구의 입장에 설 것인가? 자본의 입장인가 자유의 입장인가? 관리자의 입장인가 교육자의 입장인가?
라. 학부모의 입장
마. 성적에 대항한 싸움의 성격
-훈육과 복종에 대한 싸움이며 더 많은 자유를 위한 싸움이다
-위계와 복종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한 싸움이다
-우리 내부의 벽을 제거하기 위한 협력을 위한, 새로운 투쟁의 주체성을 위한 싸움이다
5. 협력의 조건은 무르익고 있으며 경쟁은 생산을 위축시킨다
경쟁의 강화는 현재의 생산 시스템과 위배된다
소통과 협력이 현재 생산의 핵심적 수단이다
인터넷...지적재산권의 위험성
6. 전투와 전쟁
가. 전투의 경우 개별 학교에서 승리할 있지만 전쟁은 사회 전체 지구전체의 수준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
나. 그렇지만 개별 영역에서의 전투의 승리 없이 지구 전체에서의 전쟁의 승리도 없다
# by | 2008/09/17 23:07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경쟁력없는 경쟁력
진중권(문화평론가) / 씨네21 No.668 애플사의 CEO 스티븐 잡스는 스탠퍼드대학의 졸업식장에 껄렁하게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자신이 내린 생애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가 대학을 중퇴한 것이었다고 말했단다. 명문대 졸업생들의 부푼 자부심에 기얹은 이 썰렁한 축사는 전세계 네티즌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연설도 유명하다. 그는 하버드대학의 명예졸업장을 받는 자리에서 전통적 기부나 자선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자신이 내린 생애 최고의 결정 중 하나고 아마 대학 중퇴를 꼽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라도 한국에서라면 별볼일 없었을게다. 여기서는 대학 졸업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 보수적 사회에서 식장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스티븐 잡스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말하는 빌 게이츠는 '좌파 평등주의 빨갱이'라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스티븐 잡스의 제품발표회는 예술적 퍼포먼스에 가깝다. "이 노트북은 두께가 1.9cm"라고 말하는 것고 얇은 서류봉투 속에서 슬며시 초박형 노트북을 꺼내는 것은 애초에 효과가 다르다. 이 미학성은 PT만이 아니라 애플 제품의 디자인 자체의 원리다. 디지털 시대의 생산력은 이렇게 예술적 창의성에서 나온다. 빌 게이츠에 따르면, 시장의 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창조적 자본주의'다. 실제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다. 그런데도 한국의 지배층은 구태의연하게 성장 제일주의를 외친다. 모자란 사회적 상상력이 한국 자본주의를 창조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보수언론에서는 툭하면 '경쟁력'을 외친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데에 있다. 세계는 상상력과 창조성의 경쟁을 벌이는데, 그들의 굳은 머리속의 '경쟁력'은 획일적인 입시경쟁일 뿐, 도대체 국제중학교에 들어가 명문대 가려고 밤늦게가지 토플 공부를 하는 초등학생에게 상상력과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회적 상상력의 결여야말로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기술생태계가 파괴되어 있어, 대기업의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그 효과가 중소기업으로 흐르지 못하는 게 우리 경제의 문제다. 아무리 대기업의 수출을 늘려도 성장이 잘 안된다면, 뭔가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책은? '삽질'로 내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고용창출을 위한 대책은? 건국절 기념으로 비리 기업인들 대거 사면해주는 것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기껏 욕먹어가며 사면해줬더니 왜 대기업에선 신규고용을 안 해주냐고 볼멘소리나 하고 앉았다. 비리 기업인 사면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정부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한마디로, 우리의 문제는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 모두에서 경제운영의 창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그 특유의 복고 취향에 힘입어 이 경향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개발도상국인 중국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것을 고민하는 즈음에, 이 정권은 747공약(주 : 매년 7% 성장, 국민소득 4만 불, 세계 7대 경제대국)을 추진하겠단다. 그것도 앞으로 10년간 계속 추구할 목표로 삼겠단다. 경쟁력없는 경쟁력을 신처럼 신봉하는 굳은 머리들에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19세기에 옥스퍼드대학에서는 졸업생 중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이에게 상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제도가 도입된 이후 100동안 그 대학은 수학자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C.P.스노의 조서 <두 문화>에 나오는 얘기다. |
# by | 2008/08/27 12:46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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