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1일
내 마음에 맺힌 소리를 짚어준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
나는 천주교 신자다. 미사 안 나간지 18년이나 된 냉담자지만, 이력서 등의 종교 칸에 반드시 천주교라고 쓴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내 이름 발음하기 힘들어 할때는 그들이 발음하기 쉬운 세례명을 가르쳐준다.
18년만의 미사. 비록 제대로 형식을 갖춘 미사는 아니었고, 대영광송과 사도신경도 없었고, 그 은은한 오르간 소리도 없었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신부님의 첫마디 “외로우셨죠, 저희가 위로해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아, 저 한 마디. 내 마음에 맺혀있던 그걸 정확하게 집어낸 저 한마디.
외롭고 두려웠다. 백만명이 모여도 우리는 이메가에게 천민에 불과했고, 폭도에 불과했다. 경찰들은 우리를 마치 개돼지처럼 다루었고, 어느 한 구석 시민으로서의 존중은 찾아볼 길 없었다. 조중동은 우리에게 저주를 퍼부었고, 조중동이 진리라고 착각하는 우매한 노인들은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5월 2일 처음 촛불을 올렸을때의 발랄함과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고 점점 원한과 원통함과 악만 남았다. 시위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엄단하겠다느니,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느니 하는 저들의 말 속에는 시민을 시민이 아니라 천한 아랫것들로 보는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누가 그런 대접을 받고 원한을 품지 않겠는가?
게다가 서울광장도 털리고 대책위도 와해되고, 그럭저럭 게릴라 시위로 하루는 연명했지만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촛불을 올릴수 있을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촛불을 올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저 오만한 무리들에게 포위당한단 말인가? 정말 억울하고 원통했다. 중년의 내가 이럴진데, 저 젊은이들은 오죽할까? 정말 무슨 일 터질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신부의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온 저 한마디에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들어서는 걱정. 오늘은 이렇게 크게 집회 하지만, 내일은? 이런 걱정이 떠오르자 마자 다음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회와 세상의 아픔을 나누고 정부와 국민 사이의 교착상태에 활로를 열기 위해 단식에 들어간다” 아, 저 신부들은 지금 시청광장을 되찾아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호소한다.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며, 이 원칙이 깨지면 촛불이 영영 꺼지고, 다시는 서울광장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 한마디에 그토록 사납던(?) 안티명박카페 회원 조차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폭력, 비폭력 논란도 단숨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
“우리는 남쪽으로 행진할 것이다.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소실된 남대문을 찾아갈 것이다. 화재로 소실된 남대문의 참상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참상이다.”
그 동안 시위대에게 왜 그토록 청와대를 고집해서 자꾸 충돌을 일으키는가, 87년 6월 항쟁때도 청와대 진군은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곳곳에 우리 목소리를 퍼뜨리려 했을 뿐, 시위대의 힘으로 저들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감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 사제들의 한 마디에 청와대 진군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렇다. 저들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따를 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동안 말했으면 충분하다. 그래도 안듣겠다는데 왜 말하나? 다만 전국민적인 왕따를 시켜버리면 된다. 권력은 무력에 의해 굴복하지 않는다. 권력은 쪽수에 굴복한다. 아무 짓도 하지 않더라도 촛불이 하나 둘 일어나서 100만개, 1000만개가 되면 저들은 굴복할수밖에 없다. 전두환도 무력에 굴복한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 어제 모였던 5만명은(경찰추산과 주최측 추산의 중간치) 새로이 태어났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기쁨과 진리를 이야기 할것이다. 5만명이 2명씩 이야기하면 20만명이 되고, 그 20만명이 다시40만, 40만이 80만이 되면 순식간에 전국민이 기쁨과 진리와 희망의 촛불을 들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권력과 제도가 아닌 마음 속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419에서부터 이루어젼 민주화의 마지막 피날레로서 민주적인 사람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라 했던가?

어떤 할아버지가 사제들에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흐느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18년만의 미사. 비록 제대로 형식을 갖춘 미사는 아니었고, 대영광송과 사도신경도 없었고, 그 은은한 오르간 소리도 없었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신부님의 첫마디 “외로우셨죠, 저희가 위로해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아, 저 한 마디. 내 마음에 맺혀있던 그걸 정확하게 집어낸 저 한마디.
외롭고 두려웠다. 백만명이 모여도 우리는 이메가에게 천민에 불과했고, 폭도에 불과했다. 경찰들은 우리를 마치 개돼지처럼 다루었고, 어느 한 구석 시민으로서의 존중은 찾아볼 길 없었다. 조중동은 우리에게 저주를 퍼부었고, 조중동이 진리라고 착각하는 우매한 노인들은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5월 2일 처음 촛불을 올렸을때의 발랄함과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고 점점 원한과 원통함과 악만 남았다. 시위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엄단하겠다느니,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느니 하는 저들의 말 속에는 시민을 시민이 아니라 천한 아랫것들로 보는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누가 그런 대접을 받고 원한을 품지 않겠는가?
게다가 서울광장도 털리고 대책위도 와해되고, 그럭저럭 게릴라 시위로 하루는 연명했지만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촛불을 올릴수 있을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촛불을 올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저 오만한 무리들에게 포위당한단 말인가? 정말 억울하고 원통했다. 중년의 내가 이럴진데, 저 젊은이들은 오죽할까? 정말 무슨 일 터질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신부의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온 저 한마디에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들어서는 걱정. 오늘은 이렇게 크게 집회 하지만, 내일은? 이런 걱정이 떠오르자 마자 다음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회와 세상의 아픔을 나누고 정부와 국민 사이의 교착상태에 활로를 열기 위해 단식에 들어간다” 아, 저 신부들은 지금 시청광장을 되찾아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호소한다.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며, 이 원칙이 깨지면 촛불이 영영 꺼지고, 다시는 서울광장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 한마디에 그토록 사납던(?) 안티명박카페 회원 조차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폭력, 비폭력 논란도 단숨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
“우리는 남쪽으로 행진할 것이다.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소실된 남대문을 찾아갈 것이다. 화재로 소실된 남대문의 참상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참상이다.”
그 동안 시위대에게 왜 그토록 청와대를 고집해서 자꾸 충돌을 일으키는가, 87년 6월 항쟁때도 청와대 진군은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곳곳에 우리 목소리를 퍼뜨리려 했을 뿐, 시위대의 힘으로 저들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감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 사제들의 한 마디에 청와대 진군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렇다. 저들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따를 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동안 말했으면 충분하다. 그래도 안듣겠다는데 왜 말하나? 다만 전국민적인 왕따를 시켜버리면 된다. 권력은 무력에 의해 굴복하지 않는다. 권력은 쪽수에 굴복한다. 아무 짓도 하지 않더라도 촛불이 하나 둘 일어나서 100만개, 1000만개가 되면 저들은 굴복할수밖에 없다. 전두환도 무력에 굴복한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 어제 모였던 5만명은(경찰추산과 주최측 추산의 중간치) 새로이 태어났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기쁨과 진리를 이야기 할것이다. 5만명이 2명씩 이야기하면 20만명이 되고, 그 20만명이 다시40만, 40만이 80만이 되면 순식간에 전국민이 기쁨과 진리와 희망의 촛불을 들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권력과 제도가 아닌 마음 속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419에서부터 이루어젼 민주화의 마지막 피날레로서 민주적인 사람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라 했던가?

어떤 할아버지가 사제들에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흐느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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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사제단 “국민 상처 아물 때까지 무기한 단식” by 물하
- 사제단 시국 미사...평화 행진 by 망귀
- 시국미사 by -Ida-
- 6.30 시국미사 by lemonu
- 내일 시국미사 가려고 합니다. by 순이
# by | 2008/07/01 13:08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3)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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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 오는 분들 보실 수 있게 링크 퍼갑니다.
제대로 힐받은 기분입니다.
끈질긴 평화주의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