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3일
마르크스 독해 - 경제학-철학 수고 (1)
소외된 노동
원문 1) 우리는 정치경제학의 전제들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는 그 용어와 법칙들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사적소유, 노동, 자본, 토지의 분리, 마찬가지로, 임금, 이윤, 지대의 분리, 그리고 또한 분업, 경쟁, 교환가치 등의 개념들을 전제하였다.
읽기1) 마르크스에게 정치경제학(이하 경제학)은 도전의 대상이었다. 이미 그는 동시대 급진주의자들이 유행처럼 실시하던 기독교비판이 이미 시대를 놓치고 있음을 간파했다. 이미 기독교는 그 시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정치경제학"임을 매우 예리하게 간파했다. 자본주의 시대의 애덤 스미스, 데이빗 리카도는 중세의 성 아퀴나스요, 루터였다. 자본주의 시대는 이미 "신"의 시대가 아니라 "돈"의 시대였기에 "신학"이 아니라 "경제학"이 이 시대의 교리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에 마르크스는 기독교 비판에서 경제학 비판으로 돌린 것이다. 유념하자. 마르크스가 평생 추구한 학문은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비판"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헤겔의 방법론을 사용했기 때문에 비판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한다. 즉, 경제학의 이론체계 내부에서 부정의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전개시켜서 마침내 경제학의 체계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의 모든 용어와 법칙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모든 개념들을 전제한다. 그는 외부에서 다른 이론의 입장에 서서 경제학을 비판하지 않는다. 순수히 경제학의 용어, 개념, 법칙만을 사용해서 스스로를 모순에 빠뜨리려 하는 것이다.
원문 2) 우리는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노동자가 상품으로 가장 비참한 상품으로 전락한다는 것, 노동자의 빈곤은 그의 생산의 힘과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것, 경쟁의 필연적 결과는 소수의 수중으로의 자본의 축적, 그에 따라 더욱 무서운 독점의 재현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자본가와 지주의 구별은 농부와 매뉴팩쳐 노동자의 구별과 마찬가지로 소멸되고, 사회 전체가 유산자와 무산자(노동자)라는 두 계급으로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읽기2) 이건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기독교가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직 "성경 말씀"만을 이용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 이 수고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선지자인 애덤 스미스의 어록만을 이용해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끌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가 드러내려는 것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이다. 이를테면 자유로운 노동자(농노에서 해방된)는 바로 스스로를 가장 비참한 상품으로 전락시키며, 노동자가 더 많이 생산할수록 그는 빈곤해지며, 자유 경쟁의 귀결이 오히려 무서운 독점이라는 것 등.
원문3) 정치경제학은 사적소유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을 해명 해주지는 않는다. 정치경제학은 사적소유가 현실에서 겪게 되는 물질적 과정을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공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나면 그러한 공식은 정치경제학에게 법칙으로 간주된다. 정치경제학은 이러한 법칙들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데, 즉 그 법칙들이 어떻게 사적소유의 본질에서 생겨났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읽기3) 이제 마르크스는 경제학의 가장 기본 개념들,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하나 하나 검토한다. 그 결과 경제학은 사적소유라는 것을 하나의 사실로 전제하고 시작함을 확인한다. 그리고 바로 사적소유의 여러가지 공식들을 마치 자연법칙처럼 제시한다. 오늘날 경제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들이 다 이런 내용이다. 이를테면 경제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 같은 것이 그렇다. 여기에는 판매를 위해 생산하는 공급자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지 않고 구입하는 수요자가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등가교환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교환이란 소유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은 그 전제가 사적소유에서 멈추는 것이다. 마치 인류가 탄생할때 부터 사적소유가 있었던것 처럼. 그러나 수요공급의 법칙은 자연법칙이 될 수 없다. 사적소유가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적소유는 인류의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회관계속에서 발생한 사회적 산물이다. 그래서 각종 경제학 법칙들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려면 이 사적소유가 발생하는 과정 속에서, 사적 소유의 사회적 본질을 밝혀내고, 거기에서 법칙들을 도출해 내어야 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사적 소유를 그저 자연적 사물처럼 원래 있었던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
원문4) 정치경제학은 노동과 자본, 자본과 토지의 분리 근거에 대해 어떤 해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치경제학에서 자본의 이윤에 대한 임금의 관계를 규정하는 경우, 자본가의 이해가 최후의 근거로 간주되는데, 이는 전개해야만 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쟁은 논의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경쟁은 외적 사정들로부터 설명된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은 이러한 외적이고 우연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이 어느 정도로 필연적 발전의 표현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경제학이 교환 자체를 어떻게 우연한 사실로 간주하는지 보았다. 정치경제학자가 운동에서 설정하는 유일한 수레바퀴는 소유욕, 소유욕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전쟁, 경쟁이다.
읽기4) 마찬가지로 경제학은 사적소유, 수요공급의 법칙 뿐 아니라 노동, 자본, 토지 등에 대해서도 전혀 해명하지 않고 그저 전제한다. 당연히 노동과 자본은 특정한 사회적 단계에서 사회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토지에서 자본이 분리되는 것도 17세기 이후 나타난 역사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마치 인류가 경제활동을 시작한 그 순간에 이미 노동, 자본, 토지가 존재한 것처럼 전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모든 기본 개념이 이유없이 전제되는 것에 의존한다. 특히 경제학이 즐겨 사용하는 외부효과들(외적 사정들)이 그러하다. 이 모든 것, 자신들의 법칙을 교란하는 모든 것을 경제학은 우연으로 간주한다. 아무리 우연이라도 계속 나타나면 우연이 아닐진데, 경제학에서는 이 모든 외부효과는 끈질기게 우연이다. 핵심 개념인 교환 역시, 사회적인 관계속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다. 도대체 왜 특정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게 되는지, 왜 하필 그 상품과 저 상품이 교환되게 되는지 등은 모두 우연한 결과다. 경제학자에게 우연이 아닌 것은 오직 하나다. 인간은 소유욕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경쟁한다. 이것만 우연이 아니다. 한 마디로 탐욕스러운 인간 행위에 의해 야기되는 결과들만을 법칙으로 간주하고, 나머지 인간 행위의 결과들은 모두 우연으로 간주하여 눈 감아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이쯤되면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임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원문 5) 이는 정치경제학이 예를 들면 독점과 경쟁, 기술의 자유와 기업, 토지소유 분할과 대농장과 같이 그 학설들 내에서 새로운 모순들이 나오는 운동의 연관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경쟁의 학설이 독점의 학설에 대해, 영업자유의 학설이 동업조합의 학설에 대해, 토지 점유 분할의 학설이 대토지 소유의 학설에 대해 다시 대립할 수 있었는데, 이는 경쟁, 영업의 자유, 토지 점유의 분할이 독점, 동업조합과 봉건적 소유의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자연적 결과로서가 아니라 우연적이고 의도적이며 강제적 결과로만 설명되고 파악되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사적소유, 이기심, 노동·자본·토지소유의 분리, 교환과 경쟁, 가치와 인간의 평가절하, 독점과 경쟁 등의 본질적 연관이며, 이러한 일체의 소외와 화폐제도 사이의 본질적 연관이다.
읽기5) 그리하여 경제학은 자신이 눈감아버린 것에서부터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서 계속 자체 모순에 빠진다. 도대체 동업조합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유경쟁이 일어나고, 영업의 자유가 확대되며, 중세적 토지 독점에서 왜 토지 점유의 분할이 나타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경제학에서 영업의 자유, 경쟁, 토지 분할 등의 자본주의적 경제의 기본은 어디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전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 이전 시대, 중세, 봉건시대는 그 전체가 하나의 우연이다. 인간사회는 원래 자본주의적이다. 인간은 원래 탐욕적이고, 경쟁하며, 이익을 추구하고, 사적소유에 기반해 있다. 그럼 그 이전에 왜 중세, 봉전주의적 삶을 살았는가? 그것은 우연이다. 천년간의 긴 우연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 우연을 강제로 종료시키고 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도대체가 결과를 미리 전제해 버린 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에서는 봉건제가 전개된 필연적 결과로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사적소유, 교환, 화폐, 이윤 등에 대한 법칙을 추구하는 학문에게, 그것들의 발생학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기독교인에게 "신"의 원인을 추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경제학에서는 사적소유, 이기심, 노동,자본,토지, 교환과 경쟁, 인간의 평가절하 등등의 현상들이 모두 논의의 출발점이 되거나 우연한 결과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런 소외들이 우연히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이들 공통의 원인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고 있다. 그러면서 화폐제도와 이런 소외들간의 어떤 연관이 있지나 않나 추적해보겟다고 말한다. 즉, 경제학이 침묵할수밖에 없는 지점을 지적한 뒤, 그 지점에서부터 사회학적인 설명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 by | 2008/10/13 22:27 | 마르크스 읽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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