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거리지 말고 일어서자

하늘이 무너지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사민당이 권력을 잡고, 유럽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세웠던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은 지식인들에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이마르 공화국이 다름 아닌 독일민중들의 손에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무너질때, 저 독일 민중들이 49%라는 엄청난 몰표로 나찌당을 여당으로 만들어줄때, 하늘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사민당, 공산당이 불법정당이 되고, 수 많은 지식인들과 사민당 정치인들이 투옥, 고문, 살해될때, 불고 몇년 전만해도 유럽의 가장 모범적인 민주정부를 가지고 있었던 독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야만의 시대로 넘어가 버릴때, 그것도 완력과 폭력이 아니라 다름아닌 민중들의 지지를 통해 이렇게 되어버릴때, 어찌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겠는가? 앞이 깜깜해지고, 차라리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지고, 또 다른 희망이었던 사회주의 소련은 노동자의 천국은 커녕 잔혹한 전체주의임이 드러나고, 한때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하이데거 같은 대철학자마저 나치에 협력하는 세상,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듯한 상황.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목숨마저 위태로와 그동안 조국에서 이룩한 모든 명성과 기반을 뒤로하고 낯선 나라로 망명을 떠나야 하는 기막힌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고, 이 고통과 시련의 의미와 원인을 탐구했고, 그 속에서 희망은 없는지 진지하게 되물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혈혈단신 미국에 떨어진 아도르노나 아렌트, 그리고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벤야민, 노벨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문호에서 일거에 제거되어야 할 빨갱이로 전락한 토마스 만...



 

전쟁이 끝나면 다 될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재빨리 친미파로 변신한 옛 나찌 잔당들이 도리어 큰소리 치면서 반공투사로서 서독의 권력을 장악할때, 그 좌절은 또 어떠했을까? 마침내 1969년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빌리 브란트는 울먹이며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나치를 물리쳤습니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1933년부터 1969년 무려 36년을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폴란드에서 무릎꿇고 사죄함으로써 드디어 독일은 정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에 비하면,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하면 우리의 87년 체제는 훨씬 덜 민주적이고, 덜 진보적이었고, 히틀러와 나치에 비하면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훨씬 덜 두려운 존재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덜 가졌었고, 또 덜 잃었다. 우리는 아직 할만하고, 희망의 여지가 많고, 힘도 있다. 이젠 징징거리지 말고, 할 일을 찾아야하겠다. 나의 만성전을 다시 살펴보며, 독일군에 포위된 벤야민의 절망을 되새기며.... 빌리브란트의 눈물을 꿈꾸며. 그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계몽의 변증법",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인류의 고전을 쓴 아도르노, 아렌트를 생각하며.... 아, 여기 사진에는 없지만, 안전한 망명지에서 다시 독일로 숨어 들어와 봉기를 일으켰으나 장렬히 산화한 빌헬름 로이슈너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민당 당원들도 생각하며....

게다가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블로그라는 무기도 있지 않은가? 1930년대 독일에서 전단지 몇장 돌리다가 총살당한 사민당, 공산당 형제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난 하루에도 수백명, 많으면 수천명에게 내 글을 돌리고 있다. 얼마나 힘찬 상황인가? 이걸 막아? 그럼 난 외국에서 영문판 블로그로라도 계속해서 싸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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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9/28 21:29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6)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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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보리밭 at 2008/09/29 00:11
싸워야죠. 싸워야 합니다.
Commented by 카엔 at 2008/09/29 09:48
잘 읽었습니다. 뭉클뭉클 찡해요.
Commented by kisnelis at 2008/09/29 10:02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페아노르 at 2008/09/29 11:09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Nara at 2008/09/29 11:19
하하하 멋져요. ^^
Commented by 파르마콘 at 2008/09/29 12:56
멋지네요...
Commented by Alex at 2008/09/29 14:43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08/09/29 20:22
머리는 차갑게 ^^
Commented by jimbo at 2008/09/29 20:27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이등 at 2008/09/29 23:10
그러니까 요약하면 앞으로 35년 5개월정도는 각오하라는 것인가요..........ㅠ_ㅠ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09/30 07:57
문득 20세기 소년의 켄지일파 생각이 나서요.. 젊을때부터 머리가 허얘질때까지...
Commented by 만고독룡 at 2008/09/30 09:21
아직은 포기하긴 이르죠. 끝짱을 볼때까지는요.
Commented by 프랑켄 at 2008/09/30 09:28
비록 현실은 비참하다 해도 희망을 놓진 말아야죠. 그러면 '진짜 더러운 세상'이 될 것이니깐요.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09/30 16:38
그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권" 하에서 독일 국민들은 지금의 북한만큼이나 비참한 생활난을 겪었고, 그것은 결국 나치라는 악마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물론 전후 독일의 경제난이 사민당만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10년 넘게 독일의 정권을 잡았던 정당으로서 그 무능력과 무기력함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사민당은 카이저가 제창한 성내 평화(Burgfrieden)의 파트너였고, 스파르타쿠스의 폭동(좌파가 보기에는 혁명)의 진압을 명령한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그리 좌파적 이념에 충실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집단으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아데나워 정권이 나치 청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나치의 핵심 멤버들은 사회 주류에서 제외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데나워 정권을 나치의 연장으로 보는 독선과 비타협성은 참 뭐시기 하군요. 하긴 그런 결백함(?)이 어떤 이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09/30 20:47
1920년대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배상금 압박을 당시 사민당 정부는 현명하게 잘 극복했습니다. 다만 1930년대에 다시 터져나온 세계 대공황이라는 치명타는 피할 길이 없었지만... 이건 어느 정부도 피하지 못했죠...하지만 20년대의 살인적 경제난을 바이마르 정부가 수수방관 속수무책이었다고 볼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극복한 힘이 있었기에 나치 독일이 그 정도의 무력을 선보일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이마르 정부를 무능한 정부로 보는 관점은 조금은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일수 있습니다.
아데나워 정권은 말하자면 한국의 한민당 정도였습니다. 핵심 나치 멤버야 당연히 제외되지 않을수 없었겠죠. 하지만 그들이 유태인과 폴란드에 대한 전후 배상과 사죄에 끝까지 버텼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을 지적하면서 나치의 긴 그림자를 걷었다고 말하는 것을 독선이라고 보고 비타협이라고 보는 것은 도리어 편파적인 관점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10/01 10:29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말씀만 하시는군요. 1920년대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패전과 연합국의 무리한 배상 요구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국채 상환을 위해 무책임하게 화폐를 찍어낸 바이마르 정권의 실정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경제를 어느 정도 회생시킨 것은 미국이 주도한 도즈안(案)에 의한 배상금의 조정과 이후 들어온 미국 자본에 힘입은 바가 크며, 이는 또다시 대공황시 독일이 타 국가에 비해 더욱 큰 타격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적어도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사민당 정권은 C- 이상을 주기 어렵습니다(개인적으로는 D정도?).

그리고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배상을 시작한 것은 아데나워 정권때였습니다. 폴란드에 대한 사죄는 당시 냉전 상황으로 인해 지연되었지만, 전후 배상과 사죄에 끝까지 버텼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언한 동독이 유태인에 대한 사죄를 끝까지 거부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죠. 그리고 그 동독 정권에 봉사한 간첩을 최측근 비서로 두고 있다가 들통난 것이 브란트가 물러나게 만든 계기였고요. 도대체 누가 누굴 비난하는지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0/01 12:41
사실과 배치된다는 표현은 과하시고, 일부만 말한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독일의 전후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원인이 화폐발행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 독일에게 부과된 전쟁배상금이 독일 국부 전체의 세배가 넘었다는 점, 그리고 자본가계급과 보수진영이 "등뒤의 칼" 논쟁으로 시종일관 바이마르 정부를 흔들었고, 자유시장경제에 충실한 바이마르 헌법이 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거의 없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이런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그게 사민당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 생각할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몇년만인 1923년 정도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걸 배상금 조정과 미국의 투자 덕이라고 보는 것도 일면적이죠. 거기에는 당시 정부의 과감한 화폐개혁과 부르주아의 반발을 무릅쓴 산업개혁 정책의 효과도 분명 작용하고 있었죠. 어쨌든 그래서 1923년부터 10년 가까이 도리어 독일은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실책은 사민당 탓, 호황은 미국 덕이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치 잔당. 저는 아데나워를 나치잔당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굵은 전범들이 아닌 자잘한 나찌들(마치 일제시대 전범급은 아니지만 마름들 같은)이 여전히 유태인 적몰 자산을 바탕으로 자본가로 변신하면서 청산되지 않고, 형식적인 재판 뒤 두차례의 사면법으로 원대복귀한 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부터가 독일의 진정한 사죄인가 부분인데, 이스라엘에 대한 사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당시 미국, 영국이 뒤를 봐주는 상황에서 기세등등한 유태인들의 기세를 본다면 패전국에다가 냉전의 앞잡이일수 밖에 없던 서독이 이스라엘에 사죄 안 할수가 없었던 노릇이죠. 동독이 이스라엘에 대해 완강하게 나왔던 이유도 이런데서 찾아야 할겁니다. 반면 서독에서는 이렇게 사죄하고는 , "이제 그만 덮고 끝내자" 분위기로 넘어갑니다. 그 결과 나치당 고위 간부들, 정치인들은 철퇴를 맞았으나, 유태인 학살과 나치시대를 통해 치부한 많은 자본가와 기업인들은 "라인강의 기적"을 빌미로 결국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서독 자본가들이 다 나치 전범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래서 오히려 독일의 진정한 사죄는 폴란드와 동구권에 대한 사죄때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2차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동구권은 유태인보다 더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냉전에 가려져서 진정한 사죄가 막혀 있었거든요.

빌리브란트 비서의 동독스파이 사건이야, 여기 들어오시는 분들이라면 다 아시는 사건이지만, 그래서 5년만에 사임하고 말았지만, 그걸 그의 오점이라고 보는 견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희생되었다고 보는 편이지.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08/10/01 16:52
사실을 일부만 말씀하신다고 하시는데, 의도적으로 일부만 말하는 것도 왜곡에 포함됩니다.

네, 분명 사민당의 실패가 사민당 때문이었나는 의문의 여지가 있죠. 외부적 환경과 내부적 무능함 어느쪽이 더 결정적이었는가를 칼을 긋듯 구분하는 것은 힘드니까요. 노무현의 지지부진함이 노무현의 무능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조중동의 뒤흔들기 때문이었는지 분명히 가려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민당이 당시의 난국을 돌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가 나치의 집권이었다는 겁입니다. 여기서 사민당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 어느 집권 정당도 집권기간의 실정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것도 집권 기간이 10여년에 달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자본가 계급의 일부가 하이퍼 인플레이션 기간에 부를 확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동기간에 몰락한 자본가도 상당수에 달했음을 잊어선 안됩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그 난리통에서 기회를 포착할 만큼 기민한 자본가(혹은 무산자 출신의 벼락부자)는 돈을 벌었고, 그렇지 못한 자본가는 망했겠지요. 그걸 가지고 자본가 계급 전체가 덕을 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IMF때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부만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이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입니다. 유태인 적몰자산으로 자본가들이 부를 축적했다는 언급도 마찬가지구요(제가 님같으면 유태인 적몰자산보다는 전쟁포로에 대한 강제노동을 언급했을텐데요).

그리고 유태인과 폴란드인에 대한 사죄에 끝까지 버텼다고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배상은 별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인 평가잣대로 보이는군요. 미국의 압력에 대해서 말씀인데,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유태인 단체의 배상 압력이 본격화되는 것은 60년대말, 70년대 이후부터입니다(핑켈슈타인著, "홀로코스트 산업" 참조하시길). 따라서 유태인 단체의 압력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오히려 브란트 정권이 사죄와 배상에 적극적이었던 이유가 유태인과 미국의 압력때문이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크지요.

마지막으로, 동독 정부가 배상을 거절한 것에 대한 님의 해석은 동독 정권에 지나치게 관용적이어서, 북한 정권의 억압적인 통치 행태를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옹호하는 모 인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군요. 정치적 입장이 유사한 이들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감싸지 말아야 할 것까지 감싸게 되면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Commented by искра at 2008/10/01 00:55
하신 말씀의 취지에는 동감합니다만, 윗분처럼 저 역시 바이마르 공화국이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권" 이란 말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일 제국의 멸망과 혁명의 위기 속에서 혁명을 두려워한 지배층과 사회민주당 온건파 간의 타협으로 이뤄진, 홉스봄이 지적한 것처럼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지하는 사람 조차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던 공화국", 좌파는 프로이센 제국보다는 낫고 우파는 볼셰비키 혁명보다는 나았던 어설픈 차선책 이었을 뿐입니다.
초대 대통령 에베르트와 초대 총리 샤이데만이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주저없이 극우파 자유군단과 손잡고 노동자 시위대에 총질한 것만으로도 극명히 드러납니다.
독일 제국 시기에도 죽지 않았던 로자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이트가 비참하게 살해당은게 언제입니까? 바이마르 공화국 입니다.
물론 바이마르 공화국은 그 이전의 독일 제국이나 그 이후의 나치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민주적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일뿐, 그 시대의 기준에서 볼때 차라리 프랑스 제3공화국이나 30년대에 이미 사민주의 국가를 건설한 스웨덴이 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것 같군요.

또한, 나치는 민중의 열광적인 지지 속에 선거를 통하여 집권한 것도 아닙니다. 1932년 11월의 총선에서 나치는 오히려 후퇴했고 공산당의 지지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게 오히려 우익들을 자극하긴 했죠) 1933년 1월에 "나치는 패배했다!" 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오히려 나치의 위기설이 돌 정도였습니다.
히틀러의 집권은 권력욕에 눈이 먼 슐라이허의 비겁함, 권력다툼 끝에 끝내 히틀러를 끌어들인 파펜의 무책임함, 대통령으로서 수수방관한 힌덴부르크의 무능함, 히틀러를 '위기 대리인' 정도로 과소평가한 대자본, 나치 체제의 야당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무기력한 사회민주당과 비타협적이고 편협한 공산당이 동시에 만들어낸 정치꾼들의 합작품이지, 독일 국민의 압도적이고 열렬한 지지를 받아 집권한 건 아닙니다.(지역마다 차이가 큽니다. 바이에른은 나치가 강했을지라도 베를린이나 브레멘 같은 북독에선 이때만해도 나치가 압도적이진 못했어요) 오히려 나치가 집권한 후에 전국민의 일체화를 통해 그런 풍토를 만들어냈죠.

그리고 아데나워와 기민당 정권을 한민당이랑 비교하는건 정말 뭐하군요. 일제 부역자들이 주류였던 한민당처럼 기민당이 나치의 부역자들로 주류가 체워진 것도 아니고... 전후 사민당과 빌리 브란트의 탁월한 업적에는 동의합니다마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0/01 08:07
1) "민주적, 진보적"은 당시 독일인의 느낌을, 혹을 잃어버린 상실감의 입장에서 수행적으로 기술한 것이지, 객관적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 아닙니다.

2) 의사당 방화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나치를 초조하게 만든 1932년 선거에서 나치가 패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이미 단독 과반수를 이루지 못하면 패배라고 느껴질 정도로 군소 또라이 집단에 불과했던 나치가 약진해 있었던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искра at 2008/10/01 01:01
이 글을 통해서 말씀하시려한 바는 동의합니다.
허나 비록 불완전하나마 안착한 대한민국의 87년 체제가 유혈과 음모의 난투장이었던 바이마르 공화국보다 훨씬 덜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란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군요.
제가 비록 지독할 정도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혐오하긴 하지만, 히틀러와 나치와는 비교 대상이 될수도 없습니다. 시대가 변했을뿐더러 쟤들은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어요. 그저 탐욕스럽고 사기 잘치는 바보들일 뿐입니다.
차라리 이탈리아 현 총리 베를루스코니랑 비교하는게 맞겠네요. 베를루스코니랑 이명박을 비교하면 닮을 점이 얼마나 많은지 섬뜩할 정도입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0/01 07:53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체제, 즉 헌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혼란의 이미지는 다소 윤색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 대개의 혼란이 부르주아 계급의 사주에 의해 이루어졌고, 끝내 부르주아가 자기들의 용병으로 고용한 히틀러에게 덜미를 잡힌 결과가 되었지만... 저는 이명박이 베를루스코니, 탓신 보다 더 먼 꿈을 가지고 있을까봐 두렵습니다.
Commented by 사띠현정 at 2008/10/03 19:37
하이퍼 인플레이션 도래 전까지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매우 문화적인 국가였다면서 배상금 부담을 제외하고는 아주 좋았던 한시절이었답니다.

'배상금'과 관련하여 다음 문제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인데, 이것은 금융을 아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국민들의 저축을 털어서 배상금으로 갚는다는 것 그러니까 정부 재정을 없애버리는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이 중앙은행이 '정부의 관리'에서 독립한 '사적 은행'이라는 사실이죠.

최근의 역사연구를 통해서 밝혀진바는 그러합니다. 독일 제국은행도 사실상 '사회민주당정부'의 관할에서 독립해 있었다는 것이고 오히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은행을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 별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 화폐를 마구 발행하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당연히 일어납니다. 1920년대의 독일은 2008년 9월 현재 아프리카의 독재국가 짐바브웨에서 실현되어 있답니다.

말하자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것은 '금융제도'를 발명하고 수백년 이상 '노우하우'를 쌓아온 '특별한 사람들'이 줄곳 주장하는 것인데, 만일 그 중앙은행이 그나마 '국립'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설은행 연합체'가 중앙은행을 '지분'으로 소유하는 이런 구조속에서는 엄청난 문제가 내재되는데, 화폐 발행 자체가 정부가 중앙은행에 대하여 '국채'를 지는 일이 됩니다. 지금 미국 연준이 그러한데 한국에 비유하면 이러합니다. 국민은행이 '국민은행권'을 발행하고 이것을 정부가 국채를 주고 빌려오는 이런 식이 되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화폐가 사설은행에서 돈을 빌려오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이런 얘기를 엄청 많이 해왔다는데 1990년대 중반 소로스에게 크게 당하고 나서였답니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중앙은행도 지금 미 연준과 비슷했다고 하죠. 그런 상태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의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0/03 20:14
당시 독일 구지배계급, 부르주아의 기를 쓴 사민당 정부 흔들기였죠. 그리고 그들은 히틀러를 자기들 양자로 선택한거고. 독일 공산당은 이 상황에서 어찌보면 상당히 철이 없는 행동을 한 것이고.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독일 제국 시대에도 생존했다가 이때 피살당한 것은, 기실 그들이 독일 제국 시대에는 무장봉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름 아니죠. 로자는 레닌의 전위당 노선에 격렬히 반대하고 대중노선을 옹호했던 자신의 입장과 달리, 결국 철저히 스파르타쿠스 단의 전위 노선의 폭주로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불꽃같은 삶이란 미화에 가려져 있지만, 당시 독일 공산당의 소련사대주의와 모험주의는 철저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Commented by 카도 at 2008/12/09 04:36
책임의 분담...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결국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일 수 있는 거겠고, 요즘엔 그게 문제인 듯합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도 거기엔 그에 상응하는 각오가 동반되지 않는다는 것, 어렵게 꼴 것 없이 널린 일이다 보니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것... 이것이 모두를 무력하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렇게나 모던하게 사회참여라는 걸 할 수 있는데, 저것들은 왜 하라는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데모질이나 하고 다니냐는 식으로- 구체적 행동으로 불거진 의지에 대고 촌스럽다고 욕할 수 있게 되어버린 건 아닐까요. 과연 블로그가 있는 시대, 모두가 공평하다는 시대에 누군가 비장하게 전방으로 나아가 시작의 성화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이런 절망은 단순히 제가 흘러간 방식을 그리워하며 뒤쳐져 있는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의를 위해 그렇게까지 '비장'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걸까요.... 문득 넋두리 해봤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2/09 16:12
20세기에는 신체를 조종하는 정치였습니다. 좌파든 우파든, 많은 신체를 동원하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작, 선동 등도 합리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까지 동의시켜야 하는 그런 정치의 시대입니다. 한명, 두명 동의하는 사람을 늘려나가는 것, 거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오바마가 그런 작업끝에 승리했었죠.... 처음에는 지리하겠지만 어느 순간 거대한 물결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선율적 형태일것입니다.
Commented by 카도 at 2008/12/09 17:23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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