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23일
조잡한 공산주의자로서 구좌파들
요즘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 나름 기득권층(?)이라 불릴수 있는 지도부들을 보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조잡한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단지 세상을 있는놈과 없는놈으로 양분하고 있는놈에 대한 적개심과 질투로 무장한 조잡한 공산주의는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놈의 것인가 아닌가로 단순분류하고 그 결과 인류의 문화유산도 있는 놈의 것으로 치부하여 적대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는 문화파괴적인 공산주의이며, 스탈린과 마오쩌뚱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조잡한 B급 영화 "D-War"를 옹호한 김규항에게서 드러났다.
교육운동에서도 이런 조잡한 공산주의는 평준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 서울대 등 명문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 일체의 수월성 교육에 대한 무관심과 적대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있는자와 없는자의 대립에 기반한 좌파이론에 대한 가장 예리한 비판자는 마르크스 자신이 될 것이다. 그의 "경제학철학 수고"의 일부분을 인용한다.
(이하 인용)
공산주의는:
1.그 최초의 형태에서는 사적소유의 보편화와 완성일 뿐이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이중적 형태로 나타난다. 공산주의가 대립한 물질적 소유의 지배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제일 먼저, 모두에 의해 사적소유로 전유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한다. 공산주의는 폭력적 방식으로 재능 등을 배제 한다. 육체적이고 직접적인 전유가 생활과 생존의 유일한 목적으로 간주된다. 노동자라는 규정은 지양되지 않고 모든 인간들에게 확장된다. 공동체가 사물 세계와 맺은 관계는 사적소유와의 관계로 남는다....
이 공산주의는 인간의 개성을 체계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그것의 부정인 사적소유의 철저한 표현에 불과하게 된다. 자신을 보편적 권력으로 구성하는 시기심은 다만 충족되는 방식만 다를 뿐인 소유욕의 은폐된 형태다. 모든 사적소유자의 생각은 이렇게 최소한 자신보다 더 부유한 사람을 깎아 내리려는 시기심과 하향평준화 욕구로 전환한다. 이러한 시기심과 평준화 욕구가 경쟁의 본질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유치한 공산주의는 상상된 최소한에서 이러한 시기심과 평준화를 완성시킨 것에 불과하다. 이는 특수하고 제한된 표준을 가진다. 사적소유의 이러한 철폐가 진정한 소유와 얼마나 거리가 먼지는 이것이 교양과 문명 세계 전체에 대한 추상적 부정, 가난하고 욕구마저 없는 인간의 부자연스러운 단순성으로 귀환한다는 것이 증명해 주는데, 그러한 인간은 사적소유를 넘어 섰다기 보다는 아직 사적소유에 이르지도 못한 인간이다.
이러한 이론에서 공동체는 노동의 공동체일 뿐이요, 평등은 공동체의 자본, 즉 보편적 자본가로서 공동체가 지불하는 임금의 평등일 뿐이다. 이러한 관계의 두 측면은 노동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규정성이고 자본은 보편성과 사회의 권력이라는 거짓된 보편성으로 고양된다.....
사적소유의 최초의 적극적 철폐인 유치한 공산주의는 자기 자신을 공동체의 적극적인 본질로 정립하고자 하는 사적소유의 저열함의 현상형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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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9/23 08:25 | 마르크스 읽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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