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지 않는 교사는 실천하지 않는 교사다

386세대, 그 중에 교사들, 특히 그 중에 운동권 출신 교사들은 때로 참으로 뻔뻔한 존재들로 보인다. 물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386이고, 운동권 출신이고, 그것도 운동권의 핵심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교사로서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때때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지경이다.

 

한 마디로 나의 대학시절은 땡땡이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들에게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내 대학 시절은 이랬다.아침에 늦잠 푹 자고 일어난다.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학교에 간다. 사범대학은 저 산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무척 가기 귀찮다. 그래서 번번히 사범대학까지는 가지도 않고, 모든 집회가 열리는 학교 내의 광장을 먼저 들른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학생회실 들러서 오늘의 투쟁 일정 확인한다. 일정 있으면 그대로 대오 따라 나가서 돌던지고, 화염병 던지고 싸움 실컷 한다. 저녁은 투쟁의 뒷풀이 시간이다. 가서 술이나 퍼마시고 곤드레 만드레 상태에서 노래 부르고 결의를 다진다.

집회나 시위가 없으면 학생회실에서 줄담배 피워대며 이런저런 잡담이나 까거나 아니면 소비에트 과학원에서 나온 유물론, 변증법, 정치경제학 교과서나 좀 공부하다가 (당시 NL들은 이 마저도 안봤다. 이것들을 안보는게 더 나았는지 그래도 책이니까 보는게 나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NL은 항상 무식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다시 내려가서 술판 벌리고 다음날 늦잠.

이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거의 모든 강의는 시험때나 출석하고, 어떤 강의는 시험도 안 치고 리포트 대충내고 학점 받았다. 그래도 학점은 B이상이 나왔다. 당시 운동권 중 가장 극좌파였던 PD계열의 나름 리더급으로 알려졌기에, 그것도 권력이라고 교수들이 눈치를 봤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권력이라고 나는 그 알량한 권력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고스란히 내 손해였다. 물론 핑계는 있었다.

 

 "실천 하느라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실천하느라 바빴던 것인지, 아니면 공부하기 싫어서 실천을 핑계 대었던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아마도 고딩까지 범생이었던 원한에 한껏 일탈해 본것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수업 열심히 챙겨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서도 얼마든지 "실천"할 시간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공부 그 자체도 충분히 실천이었던 것이다. 나는 실천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게으른 것이었다.

 

문제는 우석훈 박사 말대로 이 놈의 386세대는 이러고도 너끈히 취직했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동기들은 단지 모대학이라는 이유로 학점 불문, 과거불문, 심지어 전과자(물론 집시법 등이지만)임에도, 입사시험 생략하고 번듯한 회사에 척척 취직했다. 사범대의 경우 임용고시가 생기긴 했지만, 사립학교는 역시 무풍지대, 모 대학졸업장만 들이밀고 남근만 달려있으면 척척 교사가 되었다. 그나마 임용고시 생기기 전에는 졸업만 하면 공립학교에 발령들이 났다. 그 결과 전공에 대해 거의 깡통에 가까운 교사들이 아니면 겨우 개론 수준의 지식만 가진 교사들이 대거 교단에 진출하였다. 나도 물론 그 중 하나였다. 엉터리 변증법적 유몰론, 사적유물론, 정치경제학 지식들에 자만하고서 나름 사회과학에 일가견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아, 교육학.... 교육학 개론 수준의 지식도 없이 졸업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 까짓, 제도권 교육학 좀 모르면 어때?"

 

그나마 나는 사회선생이지만, 다른 과목은 참 심각했다. 일반인보다도 영어를 못하는 영어선생, 교과서 수준의 지식 이상을 알지 못하는 과학선생 등등. 이들 역시 실천하느라 바빠서 전공공부를 못했다. 물론 이들은 교사가 된 다음에도 "실천"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실천하고 수업은 교과서 수준에서 대략 때웠다. 나름 재미있고, 발칙한 수업방법을 도입한 교사들도 있었지만, 역시 지식의 범위가 교과서 수준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하나 둘 고등학교로 가기 시작한 이들 실천하는 교사들은 정작 교실에서는 문제집 풀이, 혹은 입시식 요점정리 수업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서투르게. 그리고 정작 교육활동이 아닌 시간, 공간에서 펄펄 날았다. 집회장, 농성장, 각종 회의장소에서.

 

물론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다. 의식은 실천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말에 어떤 학부모와 학생이 동의하겠는가? 어쨌든 우리는 실천했다. 그런데, 사회교사가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문헌을 뒤지면서 자신의 지식을 점점 개선해 나가는 것과 구별되는 별개의 실천은 대체 무엇인가? 과학교사가 자기 고장의 생태도 조사하고, 아이들에게 보여줄 표본도 수집하고 분석하고, 또 내이쳐, 사이언스 이런 잡지들에 실린 논문도 보고 하는 일이 실천이 아니면 무엇이 실천이란 말인가? 한 마디로 지식을 쌓고, 개선하고, 확산시키고 소통, 공유하는 것이 교사의 실천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실천이란 말인가?

 

이쯤 이야기가 진행되면 양시양비론으로 빠진다. "물론 참교육 활동 열심히 하고 연구하는 교사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여건이 마련되려면 역시 실천, 즉 투쟁하는 교사가 중요하다." 이런 또 실천! 내가 전교조 학술지 이름을 "실천교육학"이라고 짓자 이런 반응이 나온다. "오~ 실천~". 나는 교실에서 적용되고 피드백되는 교육학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그들은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 실천.

 

Praxis. 이론과 실천의 종합. 이걸 다시 실천이라고 무식하게 번역하는 통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생긴 것이다. 프락시스는 프락시스다. 그냥 프락시스. 무식하에 아무 짓거리나 질러대는게 아니라 "앎에 기반한 실천", 이게 프락시스다. 그럼 먼저 해야 할 일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하지 않고 알기만 하면 소용이 없다고? 그건 공부를 안해본 닭머리들이나 하는 말이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본사람은 안다. "안다는 것은 무서운 것"임을. 일단 "알면,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따라서 앎과 행함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단지 추상임을. 앎 그 자체가 바로 행함이다. 앎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함의 변화가 없다면 그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알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행함의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교사들이여,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교사들이여, 제발 공부 좀 하자! 무엇보다 전공과 교육학을 공부하자. 진보는 +@다. 이른바 제도권 지식을 다 아는 바탕위에 비판적인 발전을 가하는 것이지, 빈 깡통 속에 이념만 채워 넣는 것이 아니다. 미술로 치면 피카소만 알면 되었지 라파엘로, 렘브란트 따위는 안 봐도 된다는 식의 우를 범하면 안된다. 그런데 우리 386세대들은 그런 우를 범해왔다. 실천 했기에!

 

그런데 88만원 세대들은 그런 우리를 실천했다고 해서 존경하지 않는다. 도리어 무능함에도 쉽게 취직하고, 그 자리 안내놓고 버티는 이기주의자들로 본다. 차라리 이명박처럼 돈돈돈 그러는 것도 아니고, 가치가치 그러면서 사실은 자기 자리, 저 환상적인 철밥통, 신이 내린 직장  부둥켜 안고 있는 위선자로 보고있다. 참으로 쪽팔린다. 아, 정말 쪽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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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9/05 11:15 | 교단 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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