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1일
그럼 혹시 교사도 권력의 개가 아닌게 아닐까?
얼마 전에 검찰과 경찰이 권력의 개가 아니라, 그들이 바로 권력이며, 이명박이 차라리 그들의 개라는 취지의 글을 썼었다. 요즘 세월이 하 수상하니 이러다 블로그 폐쇄될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글의 요점은 직접 신체와 맡닥드리는 미시적 공간에서 바로 권력현상이 제대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미시권력 현상으로 볼수밖에. 교사들은 학생들의 신체에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흔적을 남길때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싸대기에 손자욱을 남기고, 머리털을 깎고, 고통스러운 동작을 취하는 벌을 주고, 학생들이 내어주기 싫어하는 물건들을 가차없이 빼앗고. 그들을 구획하고, 그들을 분류하고, 그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이 과정 속에서 교사들이 고통보다는 쾌감을 느낄 가능성이 분명히 더 클것이다. 아, 변태들인가? 물론 그 속에서 양심의 고통을 느끼는 교사들도 있겠지만, 교사들에게서 양심이 살아나길 기대하는 쪽보다는 교사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쪽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교원노조운동 하는 교사들조차 교육관료들이 자신들에게 가하는 통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지만,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가하는 통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척만 하고 만다. 그것이 권력임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 교장은 자신이 권력자임을 느끼지 못한다. 하물며 교감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교사는 거의 매일 자신이 권력자임을 자각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헤겔이 말한 그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권력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방의 신체를 나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최후의 경지는 상대방의 의지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다. 한국 학교의 학생들은 거의 이 지경까지 와 있다. 그러나 권력은 사람을 상대로 행사해야 맛이다. 돌을 내 마음대로 옮겼다고 권력을 만끽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권력을 행사하면 행사할수록 그 대상은 의지를 잃어가며, 즉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되어간다. 학생들 역시 교사들의 권력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교사의 의지에 순종함으로써 사물이 되어간다. 이런 학생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더 이상 권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른을 좌지우지해야 한다. 그래서 40 넘어가면 교사들은 승진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학생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같은 교사들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결국 승진병의 원인은 학생들을 상대로 권력을 탐닉하게 한 저 병리적 환경에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교사들은 어김없이 조합원이었건 말건 결국 승진병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나 학새들과 소통적 관계에 있었던 교사들은 결코 승진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비로소 그 동안 전교조 교사들에게서 보아왔던 위선과 변절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전교조 운동을 한 것 역시, 학생이 아니라 교사들을 좌우하려던 권력의 발로였던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바로 전교조가 그 유용한 도구였지만, 이미 중년이 된 이상 전교조보다는 교육청이 더 유용한 도구가 된 것이다. 애초에 그런 무리들을 가려내지 못했던 것이 전교조의 비극이라면 비극일 것이다. 학생을 어떻게 대하는가, 동등히 대하는가, 결국 통제하는가를 보았더라면 쉽게 가려졌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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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대번에 따라 드는 생각은 바로 교사들은 그럼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재생산 이론등 정통 좌파 이론을 따르면 교사들은 철저히 지배계급의 개다. 교사는 지배계급에게 순종하는 성품을 길러내며, 지배계급이 요구하는 노동력을 양성하는 철저한 이데올로기 기구다. 그런데 이런 이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막힌다. 왜 교사들은 그런 이데올로기 도구로서의 역할을 형식적으로 건성으로 하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가? 즉 왜 교사는
규율을 잡는척만하면서 편하게 가지 않고 실제로 규율을 잡고 훈육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규율을 잡는척만하면서 편하게 가지 않고 실제로 규율을 잡고 훈육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이 역시 미시권력 현상으로 볼수밖에. 교사들은 학생들의 신체에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흔적을 남길때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싸대기에 손자욱을 남기고, 머리털을 깎고, 고통스러운 동작을 취하는 벌을 주고, 학생들이 내어주기 싫어하는 물건들을 가차없이 빼앗고. 그들을 구획하고, 그들을 분류하고, 그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이 과정 속에서 교사들이 고통보다는 쾌감을 느낄 가능성이 분명히 더 클것이다. 아, 변태들인가? 물론 그 속에서 양심의 고통을 느끼는 교사들도 있겠지만, 교사들에게서 양심이 살아나길 기대하는 쪽보다는 교사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쪽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교원노조운동 하는 교사들조차 교육관료들이 자신들에게 가하는 통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지만,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가하는 통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척만 하고 만다. 그것이 권력임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 교장은 자신이 권력자임을 느끼지 못한다. 하물며 교감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교사는 거의 매일 자신이 권력자임을 자각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헤겔이 말한 그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권력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방의 신체를 나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최후의 경지는 상대방의 의지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다. 한국 학교의 학생들은 거의 이 지경까지 와 있다. 그러나 권력은 사람을 상대로 행사해야 맛이다. 돌을 내 마음대로 옮겼다고 권력을 만끽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권력을 행사하면 행사할수록 그 대상은 의지를 잃어가며, 즉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되어간다. 학생들 역시 교사들의 권력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교사의 의지에 순종함으로써 사물이 되어간다. 이런 학생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더 이상 권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른을 좌지우지해야 한다. 그래서 40 넘어가면 교사들은 승진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학생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같은 교사들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결국 승진병의 원인은 학생들을 상대로 권력을 탐닉하게 한 저 병리적 환경에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교사들은 어김없이 조합원이었건 말건 결국 승진병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러나 학새들과 소통적 관계에 있었던 교사들은 결코 승진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비로소 그 동안 전교조 교사들에게서 보아왔던 위선과 변절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전교조 운동을 한 것 역시, 학생이 아니라 교사들을 좌우하려던 권력의 발로였던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바로 전교조가 그 유용한 도구였지만, 이미 중년이 된 이상 전교조보다는 교육청이 더 유용한 도구가 된 것이다. 애초에 그런 무리들을 가려내지 못했던 것이 전교조의 비극이라면 비극일 것이다. 학생을 어떻게 대하는가, 동등히 대하는가, 결국 통제하는가를 보았더라면 쉽게 가려졌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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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9/01 22:12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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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권력의 유혹
그럼 혹시 교사도 권력의 개가 아닌게 아닐까?나도 가끔 이글에 쓰인 이런 권력의 유혹을 느낀다.조합원이었다가 교육청 가서 돌변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나는 저렇게 안 돼겠지. 안 돼야겠지....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