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의 여러 관점들과 교과서

교육철학의 여러 관점과 교과서

 

 

1. 교육 철학과 교과서

 

알프레드 노쓰 화이트가 말했듯이 일반적인 관념(IDEA)는 그 모습을 전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특수한 표현, 특수한 상황과 결합하여 나타난다. 그 특수한 표현과 상황 뒤에는 그 배후로서의 관념이 도도히 흐르고 있지만,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그것을 밝혀내거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철학이란 바로 이 모든 특수성의 배후에 있는 일반적인 관념을 밝히고자 하는 사색의 과정이며, 철학자란 바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때로 그 시대, 그 사회의 구체적인 상황과 매우 동떨어진 활동과 사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가 어떤 형태든 간에 이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듯이 철학은 어떤 종류가 되었든 구체성보다는 추상성에 관여하는 것이다.

 

교육철학은 바로 이 배후의 관념을 직관적으로 통찰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교육의 배후를 지배해온 근본적인 관념들을 조망해주며, 아울러서 앞으로 우리가 배후로 삼아야 할 관념들의 목록을 제공할 수 있다.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는 철학이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교과서 역시 철학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선 교과서는 어떤 특정한 교육과정의 한 부분이며, 그 교육과정은 당연히 그 배후에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교육과정은 교육목표와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오직 주어진 교육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만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소위 중립적 교육관조차 그 배후에 객관주의, 과학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깔고 있는 것이다. 의식의 배후에서 습관과 관례처럼 깔려있는 전제, 관념이 무엇인가에 따라 교육과정의 성격, 그리고 그것에 따른 교과서의 성격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2. 기존 교육 철학의 주요 흐름과 교과서

 

2.1. 기능주의(객관주의)와 교과서

 

객관주의는 교육할 내용이 피교육자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이들의 지식관은 진리절대주의다. 지식은 객관적인 것으로 인식주체 외부에 있으며,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론만 올바르다면 누구나 동일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지식관에 서게 되면 교육이란 이 객관적인 내용을 어떻게 피교육자에게 효과적으로 전수하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또한 학습에 대한 객관적인 보편법칙도 전제되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전수 방법이란 개념도 성립된다. 그렇게 되면 교육학자가 할 일은 바로 이 방법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찾아내는 것이다. 일단 이 방법론이 개발되면 이를 바탕으로 표준적인 교수 방법의 패키지가 제공되며, 동시에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똑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객관적 교육내용가 교수방법의 패키지에서 교과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교과서는 이 세상의 여러 객관적 사실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들을 합리적으로 선택한, 즉 세계의 객관적 지식의 일종의 표본이 된다. 교과서는 세계의 축소판이며, 교과서의 내용을 안다는 것은 세계를 전반적으로 아는 것이 된다(Comenius). 따라서 교과서의 내용은 객관적인 진리이며,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익히느냐 하는 것이지 여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과서는 이런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보편타당한 방법론을 응축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이미 교과서의 선구자인 코메니우스가 보여준 바 있다. 교과서는 세계의 축소판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배열한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라 샬로트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전혀 전문적인 식견이 없지만 통상적인 상식만 가진 일반인들도 적혀있는데로 따라 하기만 하면 능히 전문적인 교사와 같은 교육효과를 볼 수 있는” 매체로서 교과서 편찬을 주도하였다. 따라서 교과서의 객관성은 그 내용뿐 아니라 배열 순서, 읽는 방식, 사용법을 모두 포괄하게 된다. 교사는 교과서의 내용 뿐 아니라 방법까지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행하는 존재가 된다. 또한 그렇게 이행했는지 여부를 감시하는 장학관제도가 교과서와 함께 도입되었다.

결국 객관주의 교육철학의 최종 종점은 내용과 교사용 지도서로 세트를 이루는 교과서다. 내용은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정해주는 것이며, 지도서는 소위 교육전문가가 개발한다. 교사의 전문성은 이 내용과 방법에의 숙달여부로만 판단된다. 따라서 전문직(profession)이라기 보다는 숙련직(craftsman)에 가깝게 된다. 따라서 교육학은 일종의 공학이 된다. 이는 “교육이란 의도된 행동의 변화”라는 Tyler류의 행동주의 교육학에서 극치에 이른다. 타일러는 어떤 행동을 어떤 행동으로 바꾸어야 하는지는 교육학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아예 배제해 버린다. 그것은 교육철학의 과제라고 하면서 교육학과 교육철학을 분리한다. 따라서 교사는 철학할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가장 냉전이 치열하던 시기에 이런 류의 교육학과 교과서가 판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교과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종의 요약집과 드릴북이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참고서는 사실상 이들의 교과서관을 가장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자습서와 교과서의 근본적인 차이는 연습문제의 숫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2.2. 인문주의(전통주의)와 교과서

 

유교문화권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가장 보편적인 교육철학으로 자리잡았던 것이 바로 이 전통주의다. 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은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다. 여기에는 배움 그 자체의 기쁨 이외의 어떤 외재적 가치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 흐름은 텍스트에 유연하게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객관주의와 가깝지만, 교과서의 내용과 방법을 빈틈없이 이행하는 것을 교육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거리가 멀다. 전통주의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교과서를 피교육자의 뇌에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내용을 공부함으로써 얻게 되는 피교육자의 교양과 안목이다. 이 관점은 교육의 목적이 어떤 특정한 기능과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되며, 이런 점에서 교육 본위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인문주의, 전통주의 혹은 교육본위론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정리한 철학자는 피터즈다. 피터즈는 교육을 교도, 교화, 훈련 등과 구별하는 본질적인 기준을 1) 그 내용이 내재적인 가치 있는 것이라야 하고, 2) 그 방법이 도덕적으로 정당화 되어야 하며, 3) 자발성에 기초한 것이라야 한다 고 제시하였다. 그 내용이 내재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서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것 자체가 가치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교육내용은 인문적 소양이 중심이 되며, 심지어 기능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인 목적은 기능 자체가 아니라 소양 함양이 된다. 방법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행동주의의 각종 보상-강화 연쇄(특히 부정적 보상)는 일종의 기만적인 것으로 거부된다. 또한 자발성의 기준에 의해 각종 강제적 학습은 거부된다.

인문주의 교육철학의 입장에 서면 교과서의 권위는 어떤 면에서는 기능주의보다도 더 높아진다. 그러나 교과서의 권위는 객관적 사실,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지식이라서가 아니라 인류의 지혜가 농축된 고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권위다. 따라서 교과서는 엄선된 고전, 혹은 고전의 발췌나 안내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타당해진다. 다만 배우고자 하는 바가 고전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소양과 지성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 배울 필요 없으며, 표준화될 필요도 없다. 당연히 그 방법도 표준화된 효율적 방법을 추구하지 않고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 속에 찾아가는 것이 된다. 즉 교과서는 단지 교재(material)이 되는 것이지 포괄적인 지침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기능주의 입장에서는 전국의 모든 학교가 같은 교과서를 사용해야 하지만 인문주의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으며, 교사가 능력이 된다면 스스로 교과서를 만들어 쓰거나, 교재로 쓸만한 다른 책을 골라서 가르쳐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일단 선택된 교과서의 내용은 전통과 관습의 이름아래 무거운 권위를 가지게 된다.

 

2.3. 구성주의와 교과서

 

구성주의 교육의 목표는 매우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상에 대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 기관, 인식 도구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구성주의는 기능주의의 바탕이 되는 객관주의적 지식관과 정 반대방향에 서 있다. 객관주의에서 지식은 외부세계의 모사이며 인상이다. 그러나 구성주의의 지식은 외부세계에서 유입된 자극을 인식하는 주체가 고유의 메카니즘에 따라 구성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구성주의가 완전한 상대주의나 불가지론의 입장에 서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객관적인 세계의 존재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는 문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식하는 주체와 무관한 객관적인 지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래의 표(강인애, 1997)는 구성주의와 객관주의를 비교하는 거의 모든 저서에 빈번히 인용되는 도표다. 객관주의와 구성주의는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르며, 따라서 지식을 얻는 과정 즉 인식과 학습의 과정도 전혀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객관주의

구성주의

지식

고정적이고 확인 할 수 있는 대상

개인의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인지적 작용에 의해 지속적으로 구성, 재구성 되어지는 것

지식의 특징

초역사적, 초공간적, 범우주적인 성격

특정 사회, 문화, 역사, 상황적 성격의 반영과 구현

현실

규칙으로 규명가능하며 통제와 예측이 가능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독특함을 지니고, 예측이 불가능

최종목표

모든 상황적, 역사적, 문화적인 것을 초원해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와 지식의 추구(Truth)

개인에게 의미있고 타당하고 적합한 것이면 몯 진리이며 지식(Viability)

주요용어

발견(discovery/find)

일치(correspondence)

창조(creation)

구성(construction)

교수-학습 원칙 비교

▶ 추상적인 지식과 상황에 관계없이 적용될 수 있는 지식을 제공.

▶ 모든 지식은 수업 이전에 미리 세밀한 계획에 따라 구조화, 순서화, 체계화,하여 제시.

▶ 교사와 학생의 역할 : 지식의 전달자와 지식의 습득자로서의 관계.

▶ 개별적 학습환경 : 개인과제, 개인활동, 개인의 성취의 중요성 강조.

▶ 지식의 암기와 축척

 

 

▶ 항상 구체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 지식을 제공

▶ 현실의 복잡함을 그대로 제시하여 인지적 도전을 유도

▶ 모든 지식과 과제는 항상 실재적 상황을 전제로 하여 전개되고, 다루는 과제는 실제로 사회에서 대면하게될 특성을 지닌 것으로 제시

▶ 교사와 학생의 역할 : 학새의 학습을 도와주는 조언자, 촉매자로서의 교사와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책임감 있는 학습의 주체로서의 학생의 역할

설계와 분석

▷ 누가

▷ 언제

▷어느만큼

▶ 수업설계자/교사

▶ 수업 전

▶ 세분화, 순서화, 연계화

▶ 학생 개개인 스스로

▶ 수업하는과정중에 지속적으로

▶ 전체적으로 학습목표만 설정

수업 평가

▷ 누가

▷ 언제

▷ 형태

▶ 수업설계자/교사

▶ 학습목표 설정과 동시에 설계한 뒤 맨나중에 실시

▶객관적 평가

▶ 학생 본인, 동료학생, 교사

▶ 수업하는 과정 중에서 계속 수행

▶다양한 형태(객관식, 주관식, 관찰,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저널 등)

 

 

만약 인식하는 주체가 변하면 그 주체가 인식하는 지식도 변한다. 마찬가지로 인식하는 주체가 다르면 그 주체가 인식하는 지식도 다르다. 즉, 지식은 완전히 열려있는 개념이 된다. 하지만 지식이 열려있다는 것의 의미를 상대주의와 혼동하면 안된다. 이 열려있음은 진위가 수시로 뒤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식의 의미와 내용이 인식주체에 의해 구성, 재구성된다는 의미다. 구성주의의 대표자인 마투라나는 우리의 인식과정을 잠수함을 조종하는 항해사가 각종 계기판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에 비유했다. 따라서 학습자는 교육자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모두 나름의 계기판을 가지고 있는 잠수함 항해사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제 문제는 그 계기판이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그 계기판은 자생적인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구성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따라 여러 종류의 구성주의가 나타나며, 거기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관점이 나타난다. 이들 여러 구성주의들 중 특히 교육학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다음의 세 유파다.

 

 

2.3.1. 급진적 구성주의

 

여기서 급진적이라는 의미는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구성주의의 원래 개념에 가장 충실하다는 의미다. 마투라나, 바렐라, 글라저스펠트가 대표자들이다. 이들의 인식론은 한마디로 “재귀적 과정으로서의 인식”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든 지식은 인식하는 주체가 자신을 인식하는 것으로 본다. 인식은 외부세계를 정신 안에 그대로 그려내는 일이 아니며, 또한 우리의 인식도구에 의해 첨삭된 것을 그려내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인식도구는 훨씬 능동적이다. 우리의 정신은 외부에 자극에 따라 스스로의 삶에 적합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놓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 속에서 산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메트릭스”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를 인식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계를 인식한다. 마투라나는 이러한 순환의 과정을 “무릇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라고 표현했다.

교과서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급진적 구성주의는 매우 난감한 이론이다. 급진적 구성주의에서는 교과서는 물론 교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인식 주체가 10명이면 구성되는 지식도 10개이기 때문에 개별학습을 제외한 어떤 교육방법도 이 이론에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과서의 개념은 아예 수립될 수 없다. 교사는 학생들 각각에게 그들의 인지구조에 따른 적절한 교재를 선정해 주어야 한다.

 

2.3.2. 인지적 구성주의

 

급진적 구성주의는 구성주의 아이디어에는 가장 충실하지만 교육학이라기 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반교육학에 가깝다. 급진적 구성주의에 입각하면 제도로서의 교육은 그 자리에서 해체되고 만다. 따라서 급진적 구성주의는 교육학이 아니라 생물학과 인공지능 분야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교육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피아제의 인지적 구성주의다.

피아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문헌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피아제는 인간의 인식이 고정된 활동의 반복이나 습득 정보의 양적 증가가 아니라 지속적인 인지 발달과정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발달과정은 임의적인 것과 조건지워진 것 사이에 위치한다. 우선 인지 발달과정은 생물학적으로 결정지어지는 발달 과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틀 안에서는 인간의 인지가 외부 자극에 의한 평형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동화(assimilation)와 조절(accomodation)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발달해 간다고 보았다.

동화란 새로운 정보 혹은 새로운 경험을 접할 때, 그러한 정보와 경험을 이미 자신에게 구성되어 있는 도식(schema)에 적용시키려는 경향성을 뜻한다. 도식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반응하고 기능하기 위해 사용하는 지식이나 저차, 관계, 마투라나의 비유를 빌리면 계기판이다. 조절이란 새로운 정보 혹은 새로운 경험을 인식하기 위해 기존의 도식을 수정하는 것이다. 인지 발달이란 모순없는 새로운 지식은 동화시키고, 기존의 도식에 적절하지 않은 지식은 도식을 변경하면서 이를 확장시키는 과정이 된다.

따라서 효과적인 교육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인지적 발달 단계에 적합한 자극을 주어야 하지만, 그 자극이 지식이 되는 과정은 각 학습자의 스키마에의 적응과 스키마의 조절을 통한 능동적인 지식 구성적 과정이 된다. 생물학적 발달 단계에 따라 수용가능 혹은 불가능한 교육적 자극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후는 학생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정보를 내면화 시키면서 자신의 인지도식을 확장시키게 된다. 이것이 피아제의 교육이다.

피아제의 이론을 따라가면 교과서가 극단적으로 거부되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절대화된다. 각 인식주체의 동화 조절 과정을 강조할 경우 교과서는 극단적으로 개별화된다. 모든 교재는 개별 아동들의 기존 스키마에 따라 가장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도록 개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피아제는 여기에 발달심리학적 배경을 집어 넣어 극단적 개별화의 위험을 피해간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피아제의 교과서는 개별화 교재이면서 연령대별로 어느정도 일반화된 모습을 갖게 된다.

 

2.3.3. 사회적 구성주의

사회적 구성주의는 비고스키(Vygotsky)의 발달 심리이론에 기초를 두고, 학습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인 요소에 관심을 갖는다. 시회적 구성주의에서는 인간의 인지적 발달과 기능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내면화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고츠키과 피아제의 교육은 그 실천의 측면에서는 결국 서로 비슷한 실천을 하게 되지만, 그 이론적 전제는 매우 날카롭게 대립된다. 특히 도식(스키마)은 이들의 오랜 이론적 전쟁터가 되었다.

피아제의 스키마는 아동의 내면에서 먼저 발생한다. 비고츠키의 스키마는 아동 외부의 영향이 보다 결정적이다. 피아제의 스키마는 아동과 외부자극간의 개별적인 작용에 의해 구조화된다. 그러나 비고츠키의 스키마는 개인의 신체적인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결과가 결정적으로 확장한다. 인간의 정신은 독립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 학습의 결과이며, 일상에서의 과제 해결은 성인이나 혹은 뛰어난 동료와의 대화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사회의 보다 성숙한 구성원들과 상호작용하는 동안 자신의 문화에 적합한 인지 과정이 아동에게 전이된다.

비고츠키는 아동의 개별적인 스키마와 사회적 상호작용의 접점으로 '근접 발달 영역(zond of proximal development)'라는 개념을 개발했다. 이는 아동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성인이나 뛰어난 동료와 함께 학습하면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Woolfolk, 1993). 이 영역에서는 어른 혹은 유능한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동의 인지구조가 확장되어가는 영역이다. 여기에서는 스키마를 형성할 수 있는 단서가 제공되고 각종 협력과 격려가 제공된다. 학습이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할 때, 비고츠키는 그 중 근접발달영역을 교육이 일어나는 영역이 된다. 즉 교육은 궁극적으로 아동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제공되는 도움이나 보조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교사나 성인의 적극적인 역할의 이론적 정당성이 마련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지식은 전적인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며, 모든 사람은 똑같은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급진적 구성주의의 한계점을 사회,문화적 상호작용으로 보완하고 학교 교육의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의미가 있다. 결국 사회적 구성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지식의 구성은 개인 내면의 인지적 작용과 함께 사회, 문화적인 상호작용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적 구성주의를 따르게 되면 교과서의 위상도 어느정도 정당화된다. 교육은 스스로 사회, 문화적인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조력활동이다. 따라서 학생이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 그리고 사회적 상황이 요구하는 상호작용과 지식이 교과서의 내용이 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재료로서 주어질 뿐, 교육의 결과는 성인이나 유능한 동료와의 근접발달영역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생들의 정신 속에서 구성되어간다.

 

2.4. 실용주의와 교과서

 

이명박에 의해 남용되어 전혀 엉뚱한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실용주의는 그런 천박한 의미가 아니다. 실용주의는 불변의 고정된 진리관을 거부하고 모든 진리는 구체적인 삶의 맥락, 즉 실천과 경험 속에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실천과 경험의 맥락에서 벗어나서는 어떤 진리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보면서 일체의 형이상학을 거부하였다. 그런데 이 실천과 경험은 인간이 인식 대상에 단지 적응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인식 대상을 자신의 목적에 맡게 변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육이야말로 인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인 만큼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교육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존 듀이는 교육을 “경험의 능동적 재구성 과정”이라고 보았다. 즉 인식의 과정이 곧 실천과 경험의 과정이라면 배움의 과정 역시 당연히 실천과 경험의 과정일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듀이에게는 인간적인 삶과 배움, 그리고 교육은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 아니다. 산다는 것이 곧 교육하는 것이다. 다만 듀이는 좁은 의미의 교육(학교 교육)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이를 별도로 구별하고 있다. 학교교육, 혹은 제도교육은 이런 경험의 재구성 과정을 위해 적절하게 조성된 환경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여타의 경험과 구별되는 특수한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듀이는 교육과 훈련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훈련은 지식이나 기능을 획득하는 과정과 실제 그것을 사용하는 과정이 구별되어 있다. 반면 교육은 이 둘이 구별되지 않는다. 훈련은 과정이야 어떻든 최종적인 결과인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면 되는 것이지만 교육은 학습자가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획득하게 될 지식과 기능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실용주의에서는 학습자가 자신을 스스로 가르치는 것이지 정해진 교육자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습자가 자신을 스스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의 위상은 구성주의보다 더욱 학생과 같은 방향에 서게 된다. 구성주의의 교사가 안내자라면 실용주의의 교사는 동반자가 된다. 듀이는 학생과 교사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것은 교사와 학생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의 개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듀이는 자신의 대표작에 정치적 내용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는 구체적인 실천과 경험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세상을 개선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과 공유된 문제의식 속에서 함께 경험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이들이 함께 몸담고 있는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화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교육의 목적이자 동시에 교육의 결과다.

그런데 실용주의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교사의 위상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교사는 학생들과 같은 방향을 보는 만큼 교과서의 압박에서는 자유로워진다. 실용주의에서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며, 그 속에서 경험 많은 지도적인 구성원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서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용주의 교육관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여러 지식과 정보의 리소스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어느정도 확정된 진리를 담고 있는 교과서의 자리는 전혀 없다. 지식과 정보의 리소스는 아직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학생들의 삶과 앎의 공동체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용할 때 비로소 지식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용주의는 객관주의(행동주의)가 아니라 인문주의와 강력하게 충돌을 일으킨다. 실용주의 관점에서는 전통과 고전 역시 특별한 자격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을 중심으로 편성된 인문주의의 교과서, 교재는 그것이 학생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정보나 통찰을 이끌어내는데 사용되지 않으면 다만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극 결과 실용주의의 교육관과 교과서관은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실제 실용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듀이와 대단히 근접한 사상적 유사성을 보여주는 파울루 프레이리(1991)의 대화식 교육 역시 이런 관점에 서 있다. 프레이리는 미리 정해진 내용을 일방적으로 답으로서 가르치는 교육을 은행저금식 교육이라 부르면서 비판하고, 또한 학생들이 모두 같은 방향, 즉 교사를 향해 앉아있는 모습을 고속철도 교실이라고 비판한다. 프레이리 역시 교사는 정해진 교재나 교과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삶의 경험 속에서 교재와 교과서를 끌어와야 하며, 이를 위해 교사로서가 아니라 공동의 행위자로서 학생들의 삶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결론 혹은 질문

 

지금까지 교육철학의 몇몇 관점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비롯되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사실 교육철학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 행위의 배후에 깔린 관념을 추적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말했듯이 어떤 관점을 취하게 되면 탐조등처럼 그 부위는 밝게 보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전혀 볼 수 없게 된다. 철학은 바로 현재 우리가 어떤 탐조등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인식의 지평의 한계를 미리 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어느정도인지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관점, 관념의 한계에 갇혀있어 보지 못한 부분을 보기 위해 정교한 계획은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보는 모험이다.

따라서 교육철학은 모험을 하기 위한 사전 답사와 같은 것이다. 교육에 대해 또 교과서에 대해 철학한다는 것은 교과서에 숨어있는 관념, 탐조등을 찾아보는 것이며, 자신이 교과서에 대해 은연중에 전제하는 관념을 비추어 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교과서로부터 벗어나 모험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험은 보수, 진보 모두에게 필요하다. 자신의 탐조등에 갇힌 편협한 시야는 설득이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존하게 되며, 그 비극적인 말로를 집권 반년만에 정치적으로 파산한 대통령에게서 보고있지 않은가?

 

참고문헌 혹은 더 읽을 책

 

Boyd, W.(1964). The History of Western Education. London: Penguin Books.

Dewey, J.(1916). Democracy and education: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education. New York : Macmillan. 이홍우 역(1992).『민주주의와 교육』.서울:교육과학사

Freire, P.(1991). Pedagogy for Oppressed People.

Mollenhauer, K.(1983). Vergessene Zusammenhaenge. Muenchen: Juventa Verlag. 정창호 옮김(2005). 『가르치기 힘든 시대의 교육』. 서울: 삼우반.

Niebuhr, R.(1960).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London: John Knox Press.

Peters. R.S.(1966). Ethics and Education. London: George Allen & Uni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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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ltz, T., W.(1981). Investing in People: The Economics of Population Quali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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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oyd(1964). The History of Western Education. London: Adam & Charles Black. 이홍우 역(1996). 서양교육사. 서울: 교육과학사.

Young, R.E.(1990). A Critical Theory of Education: Habermas and Our Children's Future. London: Pearson Education. 이정화, 이지헌 옮김(2003). 『하버마스, 비판이론, 교육』. 서울: 교육과학사.

 

강인애(1997). 『왜 구성주의인가?』. 서울: 문음사.

이유선(2006). 『듀이와 로티』. 서울: 김영사.

이홍우(1996). 『교육과정 탐구』. 서울: 교육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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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8/18 23:1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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