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철학함의 의미

교사가 철학함의 의미


문제는 철학함이 과연 어떤 행위인가 하는 것이다. 칸트는 제자들에게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함을 배우라고 했지만, 정작 그철학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저작과 활동을 통해 미루어 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미루어 배우기 위해 그의 저작과 활동을 이리저리 따져보는 것, 그게 바로 철학함이겠다.

즉, 철학함이란 따져보고, 나누어보고, 다시 합쳐도 보고 하면서 그 의미를 밝혀내는 과정이 된다. 흄의 비유대로 돌부리에 발이걸려 넘어진 뒤 돌부리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은 반응하는 것이지만, 그 돌부리의 어떤 작용이 자신을 넘어지게 했는가, 그리고 그돌부리가 거기에 있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따지는 것은 학문이지만, 그 돌부리가 거기 있음, 그리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짐이 세계와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따져보고 사색하는 것은 철학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교육으로 옮겨 보면, 그저 주저진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단지 반응하는 것이며,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를 숙고하는 것은교육학을 하는 것이며, 가르친다는 것이 교사와 학생과 세상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따져보는 것은 교육철학을 하는 것이다. 즉반응은 지도안에 나와있는 행위 이상 수준을 생각하지 않으며, 교육학은 교육 이전 수준에서 생각하지 않지만, 교육철학은 교육 이전수준에서 생각하여 교육의 정당성과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철학은 추상의 학문이다. 이 추상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최고로 상승되어있음의 의미다. 개개의 사물을 그 공통점만을추출하여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추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이 추상이 최고에 도달할때 우리가얻는 관념, 개념은 가장 단순한 것이라는 것이다. 공통점만을 계속 추출했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내용들이 모두 제거된, 가장작은 알맹이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추상은 철학의 과정이 아니다. 최고도의 추상은 철학의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추상은 오히려 일상속에서 일어난다. 인간의 지성은 원래 추상하는 기계다. 오랜 역사동안 인간은 자신의 행위들을 일상속에서 추상해왔으며, 이런추상들이 모여서 상식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개념, 일상 속에서 적용하는 수 많은 관습, 관례들은의심받지 않는 우리의 "공통의 장소" "공통의 것"의 원천을 이루는 추상들의 저장고다. "인생". "선과 악", "탄생과죽음", "고통", "기쁨", "행복" 같은 개념들이 구체가 아니라 추상임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추상들은 철학함의 결과가아니라 인류 역사의 결과인 것이다.

철학자는 바로 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개념들의 의미를 캐어 묻는다. 그리하여 이 추상들이 기실 아무 알맹이 없음을 깨닫고,그것을 삶과 세계속에 투입하여 의미를 채워나간다. 만약 그 추상이 의미를 담을 수 없는 용기이면 그것은 폐기될 것이다. 이와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관념과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의 의미를 캐어물어 그 용기를 채워나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함이다.즉, 철학함의 시작은 바로 "의심"에 있는 것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더 많이 얻었음을 자랑하던 시대에 맞서 "안다는 것"자체를 캐어 물었다. 그리하여 "앎"을 자처하던자들의 무지를 폭로하면서 "앎"과 "지혜"가 무엇인지 고뇌하게 만들었다. 공자는 "마땅히 지켜야 하는 대상" 혹은 "시대에뒤떨어진 폐기대상"이라고 간주되던 "예"의 의미를 캐어물어, 그 의미를 인간의 선한 마음으로 정당화시키는 인학을 펼쳤다. 흄은통용되던 거의 모든 상식 "지식", "과학", 심지어는 "자아"까지 모조리 의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크스는 너무 당연히통용되어 더 이상 따져볼 여지가 없을 것 같았던 단순한 개념들인 노동, 화폐, 자본을 추궁하여 방대한 이론을 뽑아내어 현존하는사회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었다. 하이데거는 더 나아가 최후의 추상인 "존재"까지 추궁하였다.

그렇다면 교육철학이란, 교사의 철학함이란, 교육이라 불리는 행위의 체계에서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되지 않는 것, 너무 당연한것, 그리하여 의미의 최소단위로 여겨지는 것들을 추궁하여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와 내용을 끌어내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교육의 최소단위라면 가르침, 교사, 학생, 교재, 학습 등이 있겠다. 평소에 가르침은 무엇인가, 교사는 무엇인가 등을 추궁해 본교사가 사실은 의외로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사가 자신의 삶을 활기있고 생기있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이러한 추궁을 생활화한 교사는 매순간의 교육활동이 자신의 의미 체계 속에서 유의미하게 되도록 선택할 것이며, 그렇지 않는 교사는주어진 것을 그저 따라할 것이다. 그저 따라하는 교사는 사르트르의 용어로 "자기기만, 불성실"을 하고 있는 것이며 "죽은자의일"을 하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가 지금 현재 하는 일을 자신의 존재와 비추어 정당화할 수 없다면, 그는 삶을 사는 것이아니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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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8/09 20:18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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