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29일
교육에 대해 철학함(1)
서설 -교사는 왜 철학해야 하는가?
우리는 흔히 우왕좌왕하는 정책을 비판할때 "철학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국정철학"을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비판을 하고,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과연 "철학"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 의문이 생긴다. 그냥 사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명석판명한 의미를 가지고 사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철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사 모를지라도 그 배후에 어떤 무의식적인 전제를 두고 사용하는 것일까?
특히 교육감 선거가 한창인 요즘, 교육에 대한 철학을 요구하는 질문이 잦아지고 있다. 교육전문가는 물론 정치인, 학부모들까지 "당신의 교육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기 일쑤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질문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교육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좀 현학적이고 폼나게 바꾼 것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의미가 은연중에 사용되고 있는것일까?
그러나 여기서 너무 현학적이 되지 말자. 철학이라는 말, 혹은 철학함이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음미하고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 즉, 그냥 지나쳐가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자신의 삶, 행위, 세계와의 관련속에서 되새겨보는 것이다.
데이비드 흄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이"의 비유로 철학함을 잘 설명했다. 보통 아이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돌부리를 원망한다. 그러나 철학하는 아이는 그 돌부리가 왜 하필 그곳에 있었으며, 자신은 왜 하필 그곳으로 갔으며, 왜 그 돌부리를 보지 못해 넘어졌는지 따지게 된다. 그 돌부리가 우연히 있었을수도 있고, 행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치되었을수도 있으며, 이 두 경우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현상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는 재수 없는 경우며, 앞으로 좀더 주의해서 다녀야겠다는 결심으로 마무리 되며, 후자의 경우는 왜 이 땅의 출입이 통제되었는지, 그것의 정당성의 근거는 무엇인지 따져보는 추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철학함이며 철학적 반성이다.물론 흄은 일반인들이 이런 철학적 반성을 일상적으로 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어쨌던 바로 철학이란 습관들, 상식들의 의미를 음미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철학이란 교육과 관련한 각종 관생, 관습, 행위, 개념들의 의미를 음미하고 반성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속에서 교육이란 무엇이며, 어떤 것이라야 하며, 교육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반적 기준은 가능한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가 따져지게 될 것이다. 요컨대 교육철학은 교육에 대한 일반론이며, 교육을 상식과 습관이 아니라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의도적 행위로 수립할 기본 토대가 된다. 즉 교육철학이 없는 교육은 단지 직관에 의존한 독단론이나 습관에 의존한 무의미한 관행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특히 후자의 경우를 "생기없는 교육" "죽은 지식"이라 부르며 일종의 퇴행적 현상으로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것은 교직과목에 엄연히 교육철학이라는 과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 말이 널리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교육에 대한 철학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교육문제가 중산층 가정을 파탄낼정도의 처지가 되었음에도 "교육"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 널리 회자되지 않고 입시제도니, 학력신장이니 하는 지엽말단적이고 기능적인 논쟁만 오가고 있는것이다.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이고, 좋은 교육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없이, 교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방법만 논구하는 것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가장 좋은 코스를 찾고있는 어리석은 운전자와 같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교육철학의 위기만은 아니다. 철학 전반의 위기이며 세계의 위기인 것이다. 즉 세계가 부조리하고 갈수록 살기 어려워 짐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와 근원을 캐어묻는 행위 자체가 거의 소멸되어버린 세계의 위기인 것이다. 살기 어렵다고 하는 말을 입에달고 살면서도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하지 않는것이다. 이렇게 "좋은 삶"이 무엇인지 캐어묻지 않으면서도 "잘 살게 해달라"는 욕망만이 넘치는 것이 현대병의 근원이 아닐까? 그래서 이 넘치는 욕망이 "나쁜삶"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 원인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 바로 현대병이 아닐까? 그리고 철학이야 말로 이 현대병에 가장 적절한 처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흄은 일반인들이 철학적 반성을 할 기대도 필요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삶의 매 순간순간이 정당성의 문제에 빠져드는 피곤한 현대에는 일반인들이야 말로 철학함이 일상화되어야 할것이다. 철학함이란 치료약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치유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육이 교육병에 걸려있다면, 우리는 교육에 대해 철학함으로써 그것을 치유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일반인이 아닌, 교육전문가인 교사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매순간 자신의 교육적 선택을 음미하고 그 근거를 캐어물어야 하지 않을까? 매 순간 자신의 교육적 행위가 초래한 결과를 반성하고 그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의미들을 다른 교사들과 주고받고, 비판하고, 공유하고, 확장시키는 과정 속에서 교육을 더욱 풍성한 의미를 가진 인간 행위의 집합으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행복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과정이 인간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교사의 철학함은 비단 학생뿐 아니라 교육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뿐 아니라 교사 자신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무릇 자신이 행하는 일의 목적과 의미를 여러 다양한 행위들과의 관련 속에서 설명하고 그 정당성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가 하는 일은 단순노동에 불과할 것이며, 소나 말이 하는 일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인간적 행위라면, 그는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인간은 철학을 하기 때문에 소나 말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 by | 2008/07/29 12:27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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