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2일
요즘 유행하는 프레임이란 말에 대해
요즘 프레임이란 말이 유행이다.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프레임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담론이 형성되지 않을 정도니 마치 90년대의 담론이라는 단어만큼 위세가 당당하다. 그럼 프레임이란 무엇일까? 결국 일종의 생각하고 개념화 하는 습관이다. 이 습관이 어느 정도 굳어지면 이것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도구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레이코프는 최초의 프레임은 자신의 신체의 은유에서 비롯된다는 몸철학을 제기한다. 가장 익숙한 자기 신체의 은유가 최초의 프레임을 만들고, 여기에 따라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레이코프에 동의하던 안하던 간에 인간은 어떤 프레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실제 그 인식에 따라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런 주장이라면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듯하다. 구성주의에서 말하는 스키마와 큰 차이가 없는듯 하다. 그런데 스키마가 상호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구성되어가는 틀이라면, 프레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잡는 틀인듯 하다. 즉 심층에 숨어있는 은유인 것이다. 그래서 프레임을 장악하는 것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식을 장악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은 프레임 전쟁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파는 이 프레임 전쟁에 약했다. 좌파들은 기존의 프레임을 남김없이 해체하고 새로운 프레임을 세우는데 도사들이었다. 오늘날 우파들의 기반이 되어왔던 초월적인 정신, 신적인 광채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프레임은 거의 설 자리가 없다. 좌파 뿐 아니라 유럽의 니체, 아메리카의 듀이는 보수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형이상학적 잔재를 산산히 부숴버렸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보수가 관념 대신, 천상 대신 지상과 "현실"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프레임 전쟁이 역전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보수 특유의 초월적인 도덕,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들을 시장에 연결시켰다. 만사를 시장에 맡기면 경제도 성장하고 도덕성도 함양된다는 해괴한 논리, 보수주의와 시장주의가 결합한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갑자기 NGO, 각종 자선단체들이 보수진영들에 의해 칭송되었다. 그리고 그 논리는 고스란히 복지국가의 철수를 합리화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들은 "복지국가의 철수"가 아니라 "책임과 도덕성의 회복, 그리고 국가에 의한 삶의 간섭 완화"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들은 복지국가를 국가의 간섭과 규제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을 국가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고 자유를 증진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자 도리어 진보가 할 말이 없어졌다.
특히 교육분야에서 프레임 전쟁은 치열했고, 진보진영은 여지없이 패퇴했다. 한국 우파중 프레임의 도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에 짤린 이주호다. 이주호는 "수월성 교육을 통한 교육경쟁력 제고"라는 말 대신 "학교자율화", "평준화 폐지를 통한 교육 선택권 확대", "학교 다양화를 통한 사교육비 저감"등의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동안 전교조와 진보진영은 이주호와 정면으로 부딪치면 학교자율화, 학교선택권, 사교육비 저감에 반대하는 해괴한 포지션을 차지하면서 보기좋게 여기 걸려들곤 했다.
다행히 요즘 이주호 없는 청와대와 공정택은 다시 "수월성, 교육경쟁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바보가 아닐수 없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면 은유에 기반한 프레임의 힘이 무너진다. 3월달에 이주호가 교육자율화를 말할때 얼마나 맞서싸우기가 어려웠나? 그러나 공정택이 수월성, 경쟁을 말하자 얼마나 맞서기가 용이해졌나? 여기에 프레임을 다루는 능력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교묘한 프레임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프레임의 약점은 프레임 안에 있다.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지배계급의 체계 외부에 다른 체계를 세워봐야 비판이 되지 않는다. 비판은 항상 적진 깊숙히 들어가야 하는 것이며,적의 것을 우리 것으로 탈취해 오는 것이다. 우파가 진보진영의 어휘들을 자기들 것으로 슬쩍 가로챘다면, 진보는 도리어 우파의 용어들을 가로채어 우리 것으로 만들고 그들의 지반을 헐어버려야 한다.
클린턴이 인권, 평화, 생태를 외치지 않고 도리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친 순간 부시는 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 노동당도 그런 전술을 사용했고, 그러자 올 영국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치열한 프레임 전쟁을 펼쳤다.
레이코프는 "코끼리(보수의 상징)는 생각하지 마"라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코끼리를 우리식으로 개조하는"쪽이 보다 전복적인 것이다. 변증법의 오묘함은 이 세상의 어떤 체계도 완전하지 않음을, 그 안에 자신의 부정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방이 사용하는 체계의 내포된 부정은 바로 우리에게는 긍정의 씨앗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소리는 "경쟁교육 반대"가 아니라 "경쟁력 갉아먹는 경쟁교육 반대"가 되어야 하며, "학교자율화 반대"가 아니라 "학교자율화 망치는 학교자율화 반대", "수월성 망치는 수월성교육 반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교육학 이론이 우리편으로 대기중이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레이코프에 동의하던 안하던 간에 인간은 어떤 프레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실제 그 인식에 따라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런 주장이라면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듯하다. 구성주의에서 말하는 스키마와 큰 차이가 없는듯 하다. 그런데 스키마가 상호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구성되어가는 틀이라면, 프레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잡는 틀인듯 하다. 즉 심층에 숨어있는 은유인 것이다. 그래서 프레임을 장악하는 것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식을 장악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은 프레임 전쟁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파는 이 프레임 전쟁에 약했다. 좌파들은 기존의 프레임을 남김없이 해체하고 새로운 프레임을 세우는데 도사들이었다. 오늘날 우파들의 기반이 되어왔던 초월적인 정신, 신적인 광채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프레임은 거의 설 자리가 없다. 좌파 뿐 아니라 유럽의 니체, 아메리카의 듀이는 보수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형이상학적 잔재를 산산히 부숴버렸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보수가 관념 대신, 천상 대신 지상과 "현실"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프레임 전쟁이 역전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보수 특유의 초월적인 도덕,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들을 시장에 연결시켰다. 만사를 시장에 맡기면 경제도 성장하고 도덕성도 함양된다는 해괴한 논리, 보수주의와 시장주의가 결합한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갑자기 NGO, 각종 자선단체들이 보수진영들에 의해 칭송되었다. 그리고 그 논리는 고스란히 복지국가의 철수를 합리화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들은 "복지국가의 철수"가 아니라 "책임과 도덕성의 회복, 그리고 국가에 의한 삶의 간섭 완화"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들은 복지국가를 국가의 간섭과 규제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을 국가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고 자유를 증진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자 도리어 진보가 할 말이 없어졌다.
특히 교육분야에서 프레임 전쟁은 치열했고, 진보진영은 여지없이 패퇴했다. 한국 우파중 프레임의 도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에 짤린 이주호다. 이주호는 "수월성 교육을 통한 교육경쟁력 제고"라는 말 대신 "학교자율화", "평준화 폐지를 통한 교육 선택권 확대", "학교 다양화를 통한 사교육비 저감"등의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동안 전교조와 진보진영은 이주호와 정면으로 부딪치면 학교자율화, 학교선택권, 사교육비 저감에 반대하는 해괴한 포지션을 차지하면서 보기좋게 여기 걸려들곤 했다.
다행히 요즘 이주호 없는 청와대와 공정택은 다시 "수월성, 교육경쟁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바보가 아닐수 없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면 은유에 기반한 프레임의 힘이 무너진다. 3월달에 이주호가 교육자율화를 말할때 얼마나 맞서싸우기가 어려웠나? 그러나 공정택이 수월성, 경쟁을 말하자 얼마나 맞서기가 용이해졌나? 여기에 프레임을 다루는 능력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교묘한 프레임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프레임의 약점은 프레임 안에 있다.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지배계급의 체계 외부에 다른 체계를 세워봐야 비판이 되지 않는다. 비판은 항상 적진 깊숙히 들어가야 하는 것이며,적의 것을 우리 것으로 탈취해 오는 것이다. 우파가 진보진영의 어휘들을 자기들 것으로 슬쩍 가로챘다면, 진보는 도리어 우파의 용어들을 가로채어 우리 것으로 만들고 그들의 지반을 헐어버려야 한다.
클린턴이 인권, 평화, 생태를 외치지 않고 도리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친 순간 부시는 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 노동당도 그런 전술을 사용했고, 그러자 올 영국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치열한 프레임 전쟁을 펼쳤다.
레이코프는 "코끼리(보수의 상징)는 생각하지 마"라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코끼리를 우리식으로 개조하는"쪽이 보다 전복적인 것이다. 변증법의 오묘함은 이 세상의 어떤 체계도 완전하지 않음을, 그 안에 자신의 부정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방이 사용하는 체계의 내포된 부정은 바로 우리에게는 긍정의 씨앗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소리는 "경쟁교육 반대"가 아니라 "경쟁력 갉아먹는 경쟁교육 반대"가 되어야 하며, "학교자율화 반대"가 아니라 "학교자율화 망치는 학교자율화 반대", "수월성 망치는 수월성교육 반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교육학 이론이 우리편으로 대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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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9/02 14:59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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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교육을 모두가 똑같이의 획일교육으로 보이지 않도록, 도리어 누구도 소외받거나 낙오되지 않는의 의미로 해석해야 핀란드 교육이 보이는데, 그럴 경우 바로 수준별 학습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 수준별 학습의 본질이 뒤쳐지는 아이에 대한 배려임을 밝혀내야겠죠. 또 핀란드식 수월성 교육의 핵심은 잘하는 아이들은 격려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지, 자꾸 귀찮게 보충수업 시키는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밝혀야죠.
원튼 원하지 않든 전장이 핀란드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너도 나도 핀란드...
며칠 전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었습니다.
각하가 좋아라하는 '선진화' 프레임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