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7일
노동의 종말을 읽었다.
노동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 민음사
왜 기술은 향상되는데 오히려 실업자는 늘어나는가? 왜 신기술로 인해 늘어난 실업자가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여전히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가? 신자유주의자의 달콤한 성장논리를 그 근저에서부터 차근차근 허물어뜨리는 비판적 경제학의 역저. 10년전 책이라는데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거의 그대로 예언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인 노동시간의 공유도 유효할 것이다.
옮긴이는 리프킨이 정보화 산업의 혁신이 가져올 새로운 종류의 고용창출 효과를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다고 살짝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옮긴이야 말로 신자유주의의 사탕발림에 살짝 넘어간 것은 아닐까? 이 책이 나온지 어느덧 10년. 현실은 그 10년간 신기술이 오히려 미친듯이 일자리를 소멸시키고, 앞으로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국가가 나서서 노동시간 단축을 하는것이 어색하다면서 리프킨을 비판한다. 하지만 리프킨이 주장하는 것은 국가 정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에 대해 권고하는 것이다. 즉 노동조합이 더 이상 임금인상이나 생산상의 분배를 놓고 타협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실업자들과 연대하여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금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면 안토니오 네그리의 사회적 임금 요구까지 나아갈수 있다.
E랜드, 홈에버 계산원들의 눈물을 보며 계속 곱씹어 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미 소용이 없어지고, 갈수록 불안정해지며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 분명한 일자리에 돌려보내달라는, 결국 개별 자본가의 자비심에 호소하는 투쟁이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한 것일까?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하루 10시간씩 일하지 말고, 5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내어달라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삭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도록 법정 노동시간 개정을 위한 투쟁과 사회적 계약을 하자고 요구하는 쪽을 강력히 주장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혹자는 리프킨이 말하는 제3부문에서의 고용창출, 즉 그림자 임금이라는 대안이 한국의 척박한 NGO상황에서 요원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할 것이다.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이는 역시 네그리의 사회적 임금(실업수당을 일상화 한것)과 결합하면 강력한 주장이 된다. 사회적 임금 개념에서는 실업수당이 일상이고 회사가 주는 임금(고용상태)이 오히려 비일상이다. 주로 국가가 주는 생계비를 받고 가끔 일감이 생기면 고용되어서 조금 더 받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사회주의의 진정한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강화된 복지국가로 여겨진다. 이렇게 된다면 제3부문에서 받는 병아리 눈물같은 그림자 임금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리프킨이 제시한 대안까지 추종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의 분석의 예리함은 인정해야 한다. 정보화가 생산력의 토대를 사실상 뒤바꾸었음을 끝내 인정안하면서 산업사회의 틀을 고집하는 구좌파의 완고함과, 정보화 혁명의 위력앞에 쉽게 저항성을 상실해버린 포스트모더니즘의 경박함 사이에서 리프킨은 계속 날카로운 사유의 추를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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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6/17 15:43 | 뉴레프트/탈근대사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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