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네티즌이 시위도중 물대포로 중상을 입은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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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블로그에 당분간 이렇게 교육이 아닌 이야기를 실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과목도 아닌 사회선생입니다. 이 역시 교육을 위한 준비라고 보겠습니다.
좋은 날이 오면 블로거들의 수기, 안티명박카페글들을 분석해서 이 아름다운 5월, 아마도 6월까지를 기록물로 정리하려 합니다.

이하 퍼옴 글입니다.

5월 31일 저녁부터 6월 1일 새벽까지 문화제 및 시위현장에 있었습니다.저는 효자동 경복궁역 인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5시 30분경 경찰살수차가 인도에 있는 저에게 쏜 물대포를 쐈고, 저는물대포에 왼쪽 귀를 정면으로 맞고 광화문 앞에서 실신하였습니다.

 

경복궁역 인근, 새벽 4시 20분 경 강제진압 시작

 

애초에 나는 강릉에서 상경투쟁하는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들을 동승 및 동행취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그냥 묵과할 수 없어, 먼저 이 기사를 쓴다.

 

시청광장에서 진행되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주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 운집한 10만명은 청운동에서기습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80여명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8시 40분경에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는 세 갈래로 향했고,오후 11시경에 각각 동십자각, 효자동 입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는 도중 경찰에게 제지를 당했다. 그리고 긴긴대치가 시작되었다.

 

나는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들이 행진하는 것을 동행하였기에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들이 있던경복궁역 인근에 있었다. 경찰은 3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각이 6월 1일 자정이 넘어서자 소화전과 살수차 등을 이용한살수를 시작하였다. 그래도 시민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경찰이 버스 위에서 살수를 하자, 큰 비닐을 덮어 물을 막는 시위대 ⓒ타리페>

 

 <대치 중에 다친 시민를 호송하기 위해 온 구급차 ⓒ타리페>

 

 <계속된 살수와 연행에, 한 시민이 호송차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든다 ⓒ타리페>

 

그리고 새벽 4시 경, 강제진압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동시 생중계 중인 진중권 교수가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사람들 사이에 돌았다. 잠시 후 새벽 4시 20분, 강제진압을 위해 바리게이드 밖으로 수천명의 전경 병력이 집결하였다.

 

 <경복궁역 인근에서 새벽 4시 30분경 시민과 대치 중인 전경 병력 모습 ⓒ타리페>

 

그러나 수천명의 전경 병력을 앞에 둔 수천명의 시민들은 전문 기술을 갖춘 경찰 병력에게 밀리기는 하였지만, 치열한 버티기로 30분 가까이 경복궁역에서 광화문 사이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내 살수차가 등장하였다.

 

인도에 있는 시민까지 물대포로 공격한 경찰 살수차

 

시민들이 전경의 방패밀기에도 끄떡을 않자, 경찰은 이내 검은 색과 하얀색의 살수차 두 대를 우선 동원한다. 그리고 새벽 다섯시를 조금 넘겨 거리는 이미 거의 동이 터 시야가 밝아졌다. 그러한때에 살수차는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전경과 대치 중이던 시민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던 시민들 또한 옷을 흠뻑적셨다. 그러한 물대포가 몇 차례 이어졌다. 시민들은 "이제 아침이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를 외치고, "독재 타도"와"이명박은 물러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를 외쳐며 이러한 물대포를 견뎌냈다.

 

<대치 중인 시민들에게 강력한 물대포를 살포 중인 경찰 살수차 ⓒ타리페>

 

세 대의 살수차 역시 꾸준히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았다. 그 와중에다치는 시민도 덕지 않았고, 경찰은 대치 중이던 시민의 연행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그런데, 그 세 대의 살수차, 도로에 있던시민들이 인도로 피신을 하자 인도에도 물대포를 쏘았다. 도로점거시위를 해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 인도에 있는 사람을 공격또는 연행하지 말아야하지만, 경찰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공중파 매체 하나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들었다.

 

<경찰의 물대포 살수와 인도로 물대포를 쏘는 모습 ⓒ타리페> 

 

나는 시위에 직접 참가한 가담자의입장이 아닌, 취재를 하는 블로거기자의 입장에 있었기에 도로로 나가지 않고, 도로에서 살수로 인해 넘어진 나이드신 분들을 인도로데려와 일으켜 세우고 아이들을 인도로 피신시키는 정도의 일 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경복궁을 둘러싼 철판 방면의 인도에 있었다는것은 위의 사진들의 구도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인도에 지속적으로 물대포를 쏴, 전경과 대치 중인 젊은 남성들을 제외한 여성들과 나이드신 분들이 넘어지고 다치기를 반복했고, 의료봉사단원들도 인도에서 부상자를 쉴새없이 피신시켰다.

 

<뉴시스가 촬영한 살수 모습이다. 경찰이 경복궁 방향 인도로 살수를 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이제껏 못 보았던 살수차가 한 대 더 추가되어, 시민과대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살수차의 물대포 공격이 시작되었다. 물론 인도에도 물대포를 쐈다. 시위대 중 단 한 명도 무기를 들고있지 않은 평화시위였는데, 진압의 정도는 마치 폭도를 대하는 듯 했다.

 

나,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다

 

5시 30분 경, 나는 인도에서 그 물대포를 피하던 도중 왼쪽 귀 정면에 물대포를 맞고 그 충격에 실신하였다.

 

<아고라에 한 네티즌이 올린, 5시 30분 경 내가 실신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나의 신변보호를 위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귀에 물대포를 맞은 직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깨어났을때는 광화문 앞인도에 누워서 의료봉사단이 의식을 확인하려 눈에 불빛을 갔다댔을 때부터이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시민 다수가 나를 걱정하여의식을 계속 깨어있게 하려고 팔 다리를 주무른 것이 기억난다.

 

내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을 때는 경찰이 인도에서도 시민을 광화문바깥으로 밀어내려고 하여 한창 몸싸움에 시민들이 밀려나고 있을 때인데, 아마 다리에 타박상으로 봐서는 내가 쓰러진 것을 미처모르던 뒷걸음치는 시민들에게 그때 밟힌 것 같다.

 

<경향신문의 사진으로, 빨간 원이 나다. 저 물줄기에 귀를 맞아 실신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결국 시민분들의 도움으로119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전경들의 진압을 지도하던 경찰 간부도 내가 쓰러진 것을 보았다고했고, 많은 시민들이 조치를 취하라고 경찰에게 요구했지만 경찰은 조치도 취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결국 한 시민을보호해야 할 공권력의 도움이 아닌, 시민들의 도움으로 119구급차를 탈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꽤 많은 카메라와 방송이 내가 쓰러진 모습을찍어갔다는데, 찾기가 힘든 것으로 보아 내가 '피'를 흘리지 않아서 심각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피가 나지않는다고 해서 결코 간단한 부상이 아니었다.

 

왼쪽 귀의 고막, 절반 가까이 구멍나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탄 119구급차는 들것에 실려간 나를 제외하고도, 다섯명의 부상자를 싣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서울 중구의 백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미 다른 인근 병원들은 만원 사례라 아직 집회 당시 다친 사람들을 받고 있지 않았던 백병원으로 향한 것이다.

 

나는 실신의 원인이 된, 왼쪽 귀의 부상 이외에도 목과 턱 사이에물대포를 맞아 입은 타박상과 앞서서 십여차례 인도에서 물대포를 맞는 과정에서 옷이 흠뻑 젖은 데에서 오는 오한과 더불어 뒷목에도정면으로 물대포를 맞았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약 한 시간여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간호사가 접수를 받는데, "접수비 만해도 꽤 되실 것 같아요.어디어디 아프세요?" 라고 하는 말에, 우선 제일 급한 귀부터 진찰을 받고 다른 다친 곳은 강릉으로 내려가서 진찰을 받기로생각을 했다. 공권력으로 인해 부상을 입었는데 내 돈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상황에 분기가 치밀어올랐지만,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없는 상황에선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시간여의 대기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부상자는 자꾸만백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그 중에는 경찰 방패조의 방패에 뒷통수가 찍혀 뒷통수가 찢어져 출혈이 심한 젊은 여성도 있었고, 경찰체포조의 곤봉에 맞아 팔에 금이 간 젊은 남성도 있었다. 또 나처럼 귀에 이상(고막이 파열된)이 있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그리고 다리를 다친 한 전경도 있었다. 바로 내 옆 침대에...

 

곧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선생님이 몇 차례 검사를 해보시더니 "고막에 구멍이 난 것 같네요."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고막 가운데에 고막의 3분의 1 이상 크기의 구멍이 났습니다."라고 하셨다.

 

왼쪽 귀의 고막이 물대포에 맞아 구멍이 난 것이다. 그것도 절반가까이나.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약 4개월간 왼쪽 귀의 경과를 지켜보고 절개 수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소송 등)을 대비하여 따로 고막의 상태를 특수장비로 촬영하여 사진화하였다.

 

현재,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의 왼쪽 귀가 말해주는 경찰의 잔인성

 

현재, 나 말고도 부상자가 속출하여 내가 진찰을 받은 후에 응급실로돌아가보니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서 부상자를 조사하러 따로 파견을 나온 분이 있었다. 당시까지 대책회의가 파악한 부상자는60여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책회의가 주장하는 '경찰의 과잉진압 행위에 대한 고발'의 취지에 동의한 나는 그들에게 이름과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몸을 추스린 후, 오후 12시경에 출발하여 오후 4시쯤에 강릉에 도착했다. 지금 나의 얼굴 왼쪽은 타박상으로 인해 부풀어 올라있고, 왼쪽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낙관적인기대를 한다고 해도 나의 왼쪽 귀는 앞으로 몇 달간은 이 상태이다. 이상한 기분은 둘째치고, 침을 삼킬 때나 하품할 때 그리고종종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있다. 참기엔 꽤 괴로운 통증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의 왼쪽 귀는 듣는 대신 말을 하고 있다.국민을 위해야 할 경찰이 국민에게 얼마나 잔인한지를, 그리고 국민을 대대적으로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 아래 공권력의 현실을...


by 부정변증법 | 2008/06/01 20:18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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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씨박정부 at 2009/10/03 15:42
아~~ 눈물이 납니다.그때를 떠올리자니... ㅠ.ㅠ 선두로 나가신 용감함.. 저는 사실 무서워서 도망갔습니다.. 지금 몸상태는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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