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5일
낚인건가, 아니면 자율성의 폭발인가? 24일(25일 새벽)
24일 밤에 마침내 촛불집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그 상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이후의 결과들이야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길로 간다. 아마 오늘도 자발적인 가두시위가 열린 모양이다. 오늘 이후부터는 아무도 모르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미리부터 판 깨는 소리 할것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내가 일전에 촛불은 이미 꺼졌다고 과감히 선언한 이유는 계속된 촛불집회가 어떤 정체성을 생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체성이란, 그 집회에 계속 참여하는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될 최소한의 공통성이다. 예컨대 87년의 가두에 나선 다양한 계급, 계층의 시민들은 "독재를 거부하는 시민"이라는 공통성을 강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통성이 있었으며, 2004년에는 "민주정부를 수호하는 시민"이라는 공통성이 작용했다. 2007년 선거의 참담한 결과는 그 동안 자긍심과 자부심의 보루 역할을 했던 이 "민주시민 정체성"이 실용이라는 한 마디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결과다. 이제 민주시민이라는 말이 별 다른 아우라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터에 2008년 다시 촛불시위가 터졌다. 그들은 어떤 정체성으로 모인 것일까? 안타깝게도 정체성의 싹수가 보이려는 순간 강탈당하고 말았다. 어제의 민주시민을 가장한 각종 이익집단, 운동권 소매상들에게!
이건 어찌된 일인가? 언제부턴가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열던 촛불집회가 갑자기 장사가 되자, 즉 대박이 나자 그 사이에 빌붙는 옛 운동권 상인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연단을 설치하고 고성능앰프와 확성기를 제공하면서 그리고 혹시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아마튜어들에게 일련의 안도감을 제공한 대가로 마이크를 빼앗아갔다. 5월 9일 이후 촛불집회에는 마이크를 45도 각도로 비껴들고 격앙된 운동권 톤으로 숨넘어가게 외치는 연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자발적 세력들은 5월6일 여의도 침묵시위를 통해 운동권으로부터 독립을 꾀했으나(말하면 잡아간다는 경찰의 위협앞에 아예 침묵시위로 응대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매우 기발했다), 청계천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내어준 이상 배겨날 수 없었고, 결국 대동단결론에 밀려 합류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운동권 상인들의 특징은 무엇으로 집회를 하든, 일단 사람이 모이면 그들 앞에서 자기네 점포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 청계천에 모인 젊은이들의 분노는 무엇이었나? 그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가지고 로토놀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광우병도 그렇고, 415 교육조치도 그렇다. "밥좀 먹자, 잠좀 자자!" 이 얼마나 선명한 구호인가? 이걸 좀 어렵게 표현하면 "우리 생명은 너희들의 정치와 경제 대상이 아니다."쯤 되겠다. 여기에서 구성될 정체성은 명백하게 녹색의 자아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한 줄이 추가되었다. "우리의 밥상, 너희의 밥상" 이 보다 선명할수 있을까? 이게 바로 적록연합이다. 21세기의 계급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안전", "생명", "건강", 즉 녹색의 불평등한 분배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권 소매상들이 달려들어 이 선명한 구호에 개칠을 했다. "한미FTA반대"냐 "한미FTA"반대냐 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점점 판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한다. "농민의 생존권"이 여기에 다시 붙었다. 사실 "밥좀 먹자, 잠좀 자자"의 정신이 확대되면 현 상태로는 FTA와 무관하게 농민들은 피해보게 되어있다. 지금 한우는 풀먹고 사는가? 한우도 사료먹는다. 그 사료는 식물성인가? No. 그 사료 역시 동물성, 옥수수 등이 마구 섞인 사료다. 즉 미국산 소가 반자연적이고 위험하다면, 한국산 소 역시 마찬가지이며, 국내 검역이 허술하기로는 한국이 미국보다 몇 길 위이게에 도리어 한우야 말로 광우병 무풍지대라고 할 수 있다.(다우너 집계조차 안되고 있지 않은가? 다우너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세어 보지 않은 것이다).
환경관련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NAFTA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이 전개되었던 미국과 멕시코와는 천양지차. 소위 진보단체 어디에서도 FTA는 국익, 민중생존권 등등 한마디로 이익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을 뿐, 녹색은 찾기 어렵다. 모두 자기 이익을 말한다. 그 이익을 말하기 위해 건성으로 "국민 건강, 생존권"을 말하는 시늉을 한다.
22일. 농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촛불판을 벌렸다. 그들이 학생들의 잠좀자자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들의 관심은 광우병 쇠고기가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그 자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와서 어렵게 될 한우 장사를 정부가 보전해달라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24일 전공노, 공노총, 전교조, 민주노총이 제나름 집회를 열고 대거 합류했다. "생존권? 건강?" 개뿔. 그들이 실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연금법", "공기업구조조정", "학교평가, 교원평가"였다. 정녕 그들이 저 녹색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집단이었다면, 그들의 대의원 대회나 각종 행사시 주차장에 기름처먹는 하마인 SUV들이 즐비하지는 않을 것이다(전교조가 특히 그렇다.) 세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서 자기들 장사를 하겠다는 수작이다. 지금은 노동조합들이 공공의 가치를 말할때 그말을 곧이 듣는 사람이 남아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촛불판이 이상해졌다. 젊은이들, 학생들은 자리 채우는 존재, 혹은 경찰들의 침탈을 예방하는 귀중한 방패가 되었다. 그리고 정부를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어린 학생들의 존재였다. 어쨌든 젊은이들의 싱싱한 피를 빨아먹고 고사상태에 빠졌던 구 운동권이 기사회생했다. 이메가는 다급했다. 이때 1999년 이후 불타오른 반세계화 운동을 진압한 유럽 경찰들의 수법을 리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건 시위대에 경찰 끄나풀을 심어서 과격한 행동을 유도한 뒤 핑계김에 쳐잡는 방식이다.
24일 밤. 정체를 알수 없는 일단의 청년들이 청와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울분에 찬 평범한 청년들인지(다음 아고라에서 쪽지로 알게된 사이라고들 했다) 끄나풀인지 관심이 없다. 다만 적들이 학수고대 했던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후 경찰들의 대응은 자기들 말로는 당황 운운하지만, 사전에 준비가 된 조직적인 것이었다. 순식간에 세종로에 포위해서 언제든 쳐잡아갈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대오의 이탈을 기다리면서 핵심만 남기를 기다렸다. 1986년, 1991년 건국대와 연세대에서 썼던 수법이다. 그리고 새벽 네시 300여명이 남았을때 요놈들이 주동이라고 판단하고 일망 타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구운동권들은 이미 저녁 9시경에 현장에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연료인 '술'을 마시며 조합별, 분회별 '뒤풀이 투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쳐잡아놓고 보니 평범한 젊은이들이라... 원래 세상은 이렇게 우연의 연속인 것이다. 불을 끄려다 도리어 불을 지른 셈이 되었다.
나는 청와대를 외친 후미의 청년들, 그리고 밤샘농성을 한 젊은이들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구운동권들이 모여서 제멋대로 선언한 소위 "지도부"다. 대오의 후미에서 촛불집회가 아니라 가두시위로 바뀔 조짐이 보였을때, 참여연대의 간부는 마이크를 들고 도리어 선동질을 했다. 선동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도부라면 준비된 선동, 준비된 투쟁을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사태를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판단을 빠르게 내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후미의 술렁거림에 덩달아서 격앙된 것 같았다. 그는 마이크를 잡지 말았어야 했다. 마이크를 잡았다면 조율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속에는 어느 정도 세가 모이면 가두로 진격투쟁이라는 80년대의 공식만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진격투쟁을 할 경우 철저한 사전 전술(택)이 필수라는 것 역시 80년대의 공식인데, 그는 이 공식은 그만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아, 그리고 막상 가두시위가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이 되자 "진격"도 "해산"도 아닌 어정쩡한 "일단 청계광장으로"를 말하다가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동요하는 대신 "이탈리안 투티 비앙키"(이탈리아는 모두 흰색)로 대응했다. 즉 시위대는 일단 해산한다. 그러나 절대 무저항 비폭력임을 강조하기 위해 모두 흰색을 입고 재집결한다. 그래도 경찰의 폭력이 이어지면 다음에는 모두 경찰 제복을 입고 집회를 여는 기발함까지 보여준다. 이런 기발함들은 모두 지도부 없음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어쩔까? 빼앗은 촛불을 돌려줘 봐야 이제는 살수차 물에 젖어 꺼진 촛불이다. 성난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올진 모르지만 이미 그들의 정체성이 구성단계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구운동권은 교사대회 등 각종 노동조합의 정기이벤트 일정이 거의 소화되었기 때문에 다시 이 정도로 모이기 어려울 것이다. 갑갑한 상황이 되었다. 자칫 구속자 석방, 폭력경찰 규탄 등을 내세우며 "이제는 반격이다" 따위 내질렀다가는 궤멸이다. 설사 궤멸되지 않더라도 길게 끌고갈 동력과 흥미가 없다.
뭔가 엉뚱하고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조중동조차 취재하지 않을 수 없다. 사파티스타가 총을 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메라에 찍히기 위해서 들고다녔듯이 뭔가 흥미거리를 제공하고, 각종 퍼포먼스와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나처럼 부지런히 글들을 써서 올려야 한다.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촬영해서 인터텟 방송에 올리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왕 그런것 미국, 호주 등의 Animal Movement, Earth First, 그리고 Green Peace등과 연대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기왕이면 U-Tube에 영어 자막 넣어가며 올리고. 이걸 국내싸움으로 끝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르코스 이전의 사파티스타가 총질만으로 자치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만큼 착각이다.
이를 어쩌나? 그러자니 영어실력이 컴퓨터 실력이 후달린다. 영어 좀 되고, 문장력 되는 놈들을, IT좀 되는 놈들을 대우해서 모시려니 운동권 조직에서 현 지도부의 권력이 위태롭다. 그럴바엔 차라리 패배하고 말자? 설마 저 놈의 지도부가 이 정도 짱구를 굴리지는 않겠지? 암만 봐도 굴리는 것 같다.
음 나도 격앙된 모양이다. 다음에 좀 더 정리해서 써야겠다.
내가 일전에 촛불은 이미 꺼졌다고 과감히 선언한 이유는 계속된 촛불집회가 어떤 정체성을 생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체성이란, 그 집회에 계속 참여하는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될 최소한의 공통성이다. 예컨대 87년의 가두에 나선 다양한 계급, 계층의 시민들은 "독재를 거부하는 시민"이라는 공통성을 강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통성이 있었으며, 2004년에는 "민주정부를 수호하는 시민"이라는 공통성이 작용했다. 2007년 선거의 참담한 결과는 그 동안 자긍심과 자부심의 보루 역할을 했던 이 "민주시민 정체성"이 실용이라는 한 마디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결과다. 이제 민주시민이라는 말이 별 다른 아우라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터에 2008년 다시 촛불시위가 터졌다. 그들은 어떤 정체성으로 모인 것일까? 안타깝게도 정체성의 싹수가 보이려는 순간 강탈당하고 말았다. 어제의 민주시민을 가장한 각종 이익집단, 운동권 소매상들에게!
이건 어찌된 일인가? 언제부턴가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열던 촛불집회가 갑자기 장사가 되자, 즉 대박이 나자 그 사이에 빌붙는 옛 운동권 상인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연단을 설치하고 고성능앰프와 확성기를 제공하면서 그리고 혹시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아마튜어들에게 일련의 안도감을 제공한 대가로 마이크를 빼앗아갔다. 5월 9일 이후 촛불집회에는 마이크를 45도 각도로 비껴들고 격앙된 운동권 톤으로 숨넘어가게 외치는 연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자발적 세력들은 5월6일 여의도 침묵시위를 통해 운동권으로부터 독립을 꾀했으나(말하면 잡아간다는 경찰의 위협앞에 아예 침묵시위로 응대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매우 기발했다), 청계천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내어준 이상 배겨날 수 없었고, 결국 대동단결론에 밀려 합류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운동권 상인들의 특징은 무엇으로 집회를 하든, 일단 사람이 모이면 그들 앞에서 자기네 점포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 청계천에 모인 젊은이들의 분노는 무엇이었나? 그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가지고 로토놀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광우병도 그렇고, 415 교육조치도 그렇다. "밥좀 먹자, 잠좀 자자!" 이 얼마나 선명한 구호인가? 이걸 좀 어렵게 표현하면 "우리 생명은 너희들의 정치와 경제 대상이 아니다."쯤 되겠다. 여기에서 구성될 정체성은 명백하게 녹색의 자아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한 줄이 추가되었다. "우리의 밥상, 너희의 밥상" 이 보다 선명할수 있을까? 이게 바로 적록연합이다. 21세기의 계급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안전", "생명", "건강", 즉 녹색의 불평등한 분배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권 소매상들이 달려들어 이 선명한 구호에 개칠을 했다. "한미FTA반대"냐 "한미FTA"반대냐 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점점 판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한다. "농민의 생존권"이 여기에 다시 붙었다. 사실 "밥좀 먹자, 잠좀 자자"의 정신이 확대되면 현 상태로는 FTA와 무관하게 농민들은 피해보게 되어있다. 지금 한우는 풀먹고 사는가? 한우도 사료먹는다. 그 사료는 식물성인가? No. 그 사료 역시 동물성, 옥수수 등이 마구 섞인 사료다. 즉 미국산 소가 반자연적이고 위험하다면, 한국산 소 역시 마찬가지이며, 국내 검역이 허술하기로는 한국이 미국보다 몇 길 위이게에 도리어 한우야 말로 광우병 무풍지대라고 할 수 있다.(다우너 집계조차 안되고 있지 않은가? 다우너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세어 보지 않은 것이다).
환경관련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NAFTA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이 전개되었던 미국과 멕시코와는 천양지차. 소위 진보단체 어디에서도 FTA는 국익, 민중생존권 등등 한마디로 이익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을 뿐, 녹색은 찾기 어렵다. 모두 자기 이익을 말한다. 그 이익을 말하기 위해 건성으로 "국민 건강, 생존권"을 말하는 시늉을 한다.
22일. 농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촛불판을 벌렸다. 그들이 학생들의 잠좀자자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들의 관심은 광우병 쇠고기가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그 자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와서 어렵게 될 한우 장사를 정부가 보전해달라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24일 전공노, 공노총, 전교조, 민주노총이 제나름 집회를 열고 대거 합류했다. "생존권? 건강?" 개뿔. 그들이 실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연금법", "공기업구조조정", "학교평가, 교원평가"였다. 정녕 그들이 저 녹색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집단이었다면, 그들의 대의원 대회나 각종 행사시 주차장에 기름처먹는 하마인 SUV들이 즐비하지는 않을 것이다(전교조가 특히 그렇다.) 세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서 자기들 장사를 하겠다는 수작이다. 지금은 노동조합들이 공공의 가치를 말할때 그말을 곧이 듣는 사람이 남아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촛불판이 이상해졌다. 젊은이들, 학생들은 자리 채우는 존재, 혹은 경찰들의 침탈을 예방하는 귀중한 방패가 되었다. 그리고 정부를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어린 학생들의 존재였다. 어쨌든 젊은이들의 싱싱한 피를 빨아먹고 고사상태에 빠졌던 구 운동권이 기사회생했다. 이메가는 다급했다. 이때 1999년 이후 불타오른 반세계화 운동을 진압한 유럽 경찰들의 수법을 리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건 시위대에 경찰 끄나풀을 심어서 과격한 행동을 유도한 뒤 핑계김에 쳐잡는 방식이다.
24일 밤. 정체를 알수 없는 일단의 청년들이 청와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울분에 찬 평범한 청년들인지(다음 아고라에서 쪽지로 알게된 사이라고들 했다) 끄나풀인지 관심이 없다. 다만 적들이 학수고대 했던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후 경찰들의 대응은 자기들 말로는 당황 운운하지만, 사전에 준비가 된 조직적인 것이었다. 순식간에 세종로에 포위해서 언제든 쳐잡아갈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대오의 이탈을 기다리면서 핵심만 남기를 기다렸다. 1986년, 1991년 건국대와 연세대에서 썼던 수법이다. 그리고 새벽 네시 300여명이 남았을때 요놈들이 주동이라고 판단하고 일망 타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구운동권들은 이미 저녁 9시경에 현장에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연료인 '술'을 마시며 조합별, 분회별 '뒤풀이 투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쳐잡아놓고 보니 평범한 젊은이들이라... 원래 세상은 이렇게 우연의 연속인 것이다. 불을 끄려다 도리어 불을 지른 셈이 되었다.
나는 청와대를 외친 후미의 청년들, 그리고 밤샘농성을 한 젊은이들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구운동권들이 모여서 제멋대로 선언한 소위 "지도부"다. 대오의 후미에서 촛불집회가 아니라 가두시위로 바뀔 조짐이 보였을때, 참여연대의 간부는 마이크를 들고 도리어 선동질을 했다. 선동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도부라면 준비된 선동, 준비된 투쟁을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사태를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판단을 빠르게 내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후미의 술렁거림에 덩달아서 격앙된 것 같았다. 그는 마이크를 잡지 말았어야 했다. 마이크를 잡았다면 조율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속에는 어느 정도 세가 모이면 가두로 진격투쟁이라는 80년대의 공식만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진격투쟁을 할 경우 철저한 사전 전술(택)이 필수라는 것 역시 80년대의 공식인데, 그는 이 공식은 그만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아, 그리고 막상 가두시위가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이 되자 "진격"도 "해산"도 아닌 어정쩡한 "일단 청계광장으로"를 말하다가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동요하는 대신 "이탈리안 투티 비앙키"(이탈리아는 모두 흰색)로 대응했다. 즉 시위대는 일단 해산한다. 그러나 절대 무저항 비폭력임을 강조하기 위해 모두 흰색을 입고 재집결한다. 그래도 경찰의 폭력이 이어지면 다음에는 모두 경찰 제복을 입고 집회를 여는 기발함까지 보여준다. 이런 기발함들은 모두 지도부 없음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어쩔까? 빼앗은 촛불을 돌려줘 봐야 이제는 살수차 물에 젖어 꺼진 촛불이다. 성난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올진 모르지만 이미 그들의 정체성이 구성단계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구운동권은 교사대회 등 각종 노동조합의 정기이벤트 일정이 거의 소화되었기 때문에 다시 이 정도로 모이기 어려울 것이다. 갑갑한 상황이 되었다. 자칫 구속자 석방, 폭력경찰 규탄 등을 내세우며 "이제는 반격이다" 따위 내질렀다가는 궤멸이다. 설사 궤멸되지 않더라도 길게 끌고갈 동력과 흥미가 없다.
뭔가 엉뚱하고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조중동조차 취재하지 않을 수 없다. 사파티스타가 총을 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메라에 찍히기 위해서 들고다녔듯이 뭔가 흥미거리를 제공하고, 각종 퍼포먼스와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나처럼 부지런히 글들을 써서 올려야 한다.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촬영해서 인터텟 방송에 올리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왕 그런것 미국, 호주 등의 Animal Movement, Earth First, 그리고 Green Peace등과 연대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기왕이면 U-Tube에 영어 자막 넣어가며 올리고. 이걸 국내싸움으로 끝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르코스 이전의 사파티스타가 총질만으로 자치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만큼 착각이다.
이를 어쩌나? 그러자니 영어실력이 컴퓨터 실력이 후달린다. 영어 좀 되고, 문장력 되는 놈들을, IT좀 되는 놈들을 대우해서 모시려니 운동권 조직에서 현 지도부의 권력이 위태롭다. 그럴바엔 차라리 패배하고 말자? 설마 저 놈의 지도부가 이 정도 짱구를 굴리지는 않겠지? 암만 봐도 굴리는 것 같다.
음 나도 격앙된 모양이다. 다음에 좀 더 정리해서 써야겠다.
# by | 2008/05/25 23:53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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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칭) 구국 정의로운 대한국인 연합회
어제 촛불문화제에 갔다왔다. 1200번을 타고 동화면세점에서 내렸는데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잘 들리지 않는 엠프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였다. 일민미술관을 거쳐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러 갔다. 각 단체에서 초를 나눠주면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선전물을 나눠주는 다함께 회원을 만났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심상정의원실에서 일하냐고 물어봤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