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0일
아름다운 교육,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40여 평생을 교육과 사색과 연구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보낸 평생에 후회도 없고 자랑스러움만 가득합니다.
그리고 중학교 교사로 16년, 대학 강사로 5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책도 네권을 냈습니다. 물론 안 팔리는 학술서적이지만요....
원래 대문에 아카데미 학당 그림이 걸려 있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옛 철학자들이 토론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만, 잠시 일본 교토에 있는 "철학의 길"을 산책하고 있는 생존해 있는 철학자의 사진을 대문에 올려둡니다. 저 자세와 저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창을 여는 것입니다.
혹시 여기 들어오신 분들중 뉴라이트 계시면 잘 뒤져서 좌빨 어쩌구 하면서 고발을 하든가 말든가 하시고, 들어 오신분들 중 개념 탑재하신 분들은 이 글에 댓글 달거나, 아니면 방명록 남겨주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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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2/20 01:06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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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이 눈에 띄네요! ^^
다녀간 흔적 남기고 갑니다. ^^
링크 완료! ^^
09년에도 좋은 글 많이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곳에서 08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고 갔습니다.
09년에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글 많이 써주세요~~^^
http://wallflower.egloos.com/1883730
이곳 저곳 들러보면
주옥같은 글들 진주같은 주인들
많이 봅니다.
오늘도 좋은 곳 들렀다는 생각 듭니다.
몇 가지 읽어보고 시작종 나서 그만 닫습니다.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
http://nullmodel.egloos.com/1889888
http://nullmodel.egloos.com/1890332
그리고, 정부는 학급당 인원수 줄이려고 천문학적 돈을 쓴적 없습니다. 학생수가 알아서 줄어들었죠. 그리고 요즘은 다시 늘리고 있습니다.
http://nullmodel.egloos.com/1891023
http://nullmodel.egloos.com/1893211
http://nullmodel.egloos.com/1893561
http://sschh.egloos.com/2320155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가설을 세운 것 자체가 아주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은데요.
개인적 친분 관계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제가 님보다는 부정변증법님 글을 훨~씬 더 많이 읽은 것 같아서요... 개운치 않은 글을 대문에서 보니, 그렇네요.
키시야스님이 비판하신건 위의 null model님 말하시는거 아닐까요?
헷갈리네요. 날때부터 청해할 수 있고 혹은 청해할수 없는 사람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개념틀의 학습과 훈련에 의해 그런 사람이 갈라지는 것일까요?
1) 한 사람이 각각의 자연언어로 실제로 쓰인 가사들을 듣고 느끼는 미감 차이.
2) 청해가 불가능한 외국어를 듣고, 그 고유의 음소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신이 청해할 수 있는 음소들로 인식하는 경우와, 음소를 제대로 인식하는 경우 사이의 미감 차이.
2)가 원래 생각한 문제 형식이었습니다. 언어능력이 완성된 성인이라면 언제나 자신이 청해하지 못하는 외국어를 듣고 겪는 그런 일상적 상황에 기초한 문제죠. 만일 미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미감에 일말의 언어 상대적 속성이 속해 있게 되는 거라는 점을 떠올렸습니다. 같은 가사를 들었을 때 각각의 인식자의 상태에 의존해서 차이가 있게 될테니 주장을 검증하기에도 편한 형식이겠고 말이죠. 원래 생각했던 물음과는 다르지만, 1)도 흥미로운 물음이군요. 아마도 이건 알파벳 표기는 같은 가사를 각 자연언어 고유의 읽는 방식으로 읽어나가는 식으로, 음역 방식을 취하면 명백한 대조가 가능할 듯 합니다.
음소를 개념틀이라고 언급한 것은 촘스키 식의 언어 발생 과정에 대한 매우 약소한 지식을 통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음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인간의 언어가 취하는 것이 가능한 체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음소는 형식에 따라 학습되는 것이라는 게 촘스키 식의 주장인 모양입니 판단력비판의 문제의식의 위치를 자세히 밝힌 그런 주장으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