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사랑

사랑을 함부로 들먹이지 마라


사랑의 능멸

필자와 함께 근무했던 교사들 중 대단히 억압적인, 속칭 무서운 선생님 한분이 있었다. 그 앞에서 아이들은 숨소리 외에 내지 않았으며, 걸핏하면 30~40분에 달하는 종례에 시달렸으며, 아주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도 추호도 용서가 없었다. 게다가 책상이건, 의자건, 무엇이건 직각으로 줄이 맞춰져 있어야 했다. 심지어 그는 술자리에서 맥주병과 병뚜껑까지 정확하게 줄을 맞춰야 성에 풀렸다. 그런 그가 해마다 2월이면 하는 말이 있었다. “자, 올해는 어떤 아이들을 새로 만나서 사랑을 줄까? 참 설레인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소름이 끼치고 구토와 현기증을 느꼈다. 그가 아이들에게 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그 사랑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고결하고 따스해야 할 사랑이 끔찍하게 들렸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지만, 어디 그 선생님뿐이랴? 많은 교사들이, 그리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하기 때문에 매질하고 두발을 단속하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우열반 편성을 하고, 나중에 잘 되라고 ‘소년동아일보’도 구독시킨다. 이것 말고도 아이 사랑이 끔찍해 보이는 사례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저 무시무시한 “사랑”을 받으면서 시달리다 집에 온 아이들은 입은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학원에서 밤 10시까지 멍한 눈으로 더 무서운 사랑에 시달려야 한다. 아이 사랑에 어디 나이가 따로 있으랴? 그 연령도 점점 내려가 밤 10시 학원 앞에 늘어선 학원 셔틀버스는 끄떡 끄떡 졸고있는 초등학생들로 그득하다, 간신히 집에 들어와 겨우 샤워나 하면 이번에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 보라는 부모의 닦달이 이어진다. 이런 끔찍한 아동학대도 역시 사랑의 이름으로 가해지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이 아닌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0교시 부활, 자사고·특목고 확대에 마음이 들썩 거리는 것이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한국의 부모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끔찍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만행을 자행하는 어른들은 한 결 같이 입에서 “사랑”을 읊조린다.

사실 “사랑”은 사람을 상대하는 모든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덕목이다. 부모는 자식을, 의사는 환자를, 성직자는 신자를, 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야 한다. “학생 사랑”이 교직윤리의 핵심 덕목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어떤 교육정책도 그 배경과 기반에는 “학생 사랑”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랑이 이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남용되고 잔혹극에 가까운 아동학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고귀한 덕목은 모욕 정도가 아니라 거의 유린당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랑의 매”라는 모순적인 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되어왔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희화화 되어버린 사랑의 무력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너도 나도 다 학생을 사랑한다고 하며,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이 사랑의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으니, 이 덕목이 무슨 도덕적 가치가 있겠는가 하는 회의마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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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려야 할 사랑

그렇다면 차라리 사랑을 교사의 덕목에서 지워버리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욱 끔찍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4·15 참변이나 혹은 교육 쿠데타라 불릴만한 이른바 공교육 자율화 방안이 발표된 뒤,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 앞에서 교육 당국이 당황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은 그래도 “아이 사랑”이라는 이 모호한 가치가 공통의 가치판단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나마 이 모호한 사랑이라는 가치라도 공통성의 기반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것마저 사라진다면 학력이니 노동생산력이니 하는 차가운 양적 척도만 남게 된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도구적 이성이 가져오는 암울하고 억압적인 결과는, 게다가 그것이 경제와 행정체계를 벗어나와 생활세계와 문화전승의 영역까지 잠식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왜곡하고 소외를 만연시키는 우울한 풍경화는 벤야민, 아도르노, 푸코, 하버마스, 프롬 등 수 많은 석학들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묘사해왔던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 사랑”이 모호하고 남용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가치하게 만들거나 냉소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제는 왜곡된 사용이지 이 덕목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정화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학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런 불순한 용도들을 찾아서 제거해야 한다. 감히 사랑을 참칭했던 각종 사이비 사랑들을 찾아서 질타하고 사랑의 목록에서 영원히 삭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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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화를 위하여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지적했듯이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은 자연스럽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사랑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어렵다. 사실상 근대성에 찌들어있는 우리는 사랑을 잘 모른다. 사랑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한 다음의 문장들을 곱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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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소유가 우리를 너무도 우둔하고 편협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상을 소유할 때, 즉 그것이 우리에게 자본으로서 존재하거나 우리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점유할 때, 먹고 마시고 몸에 걸치고 그 안에 거주하는 등, 간단히 말해서 사용할 때야 비로소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여기에 더해 사적소유는 스스로 이 모든 소유의 직접적인 실현을 단지 생활수단으로서만 파악하며, 이 실현이 수단으로 봉사하는 생활은 사적소유의 생활, 즉 노동과 자본이 된다. 그리하여 감각들의 단순한 소외, 소유의 감각이 모든 육체적·정신적 감각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인간의 본질은 절대적 빈곤으로 환원되어 자기 내면의 부를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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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형식이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 수탈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수탈을 용이하게 만드는, 아니 그러한 수탈 관계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왜곡되고 소외된 인간성을 생산한다. 이렇게 왜곡되고 소외된 인간은 오직 소유를 통해서만 인식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며, 사랑을 한다. 즉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며, 정체성이란 소유의 목록이 되고, 사랑이란 그 대상을 온전히 가지는 것이 된다. 이런 왜곡된 삶 속에서 “사랑”만큼은 너무도 고귀하고 위대해서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40년 전 비틀즈는 40억 인류가 동시에 “All you need is Love"를 부르면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이라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이 40억 개의 왜곡되고 소외된 사랑이라면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대전의 발발이 될 것이다.

물론 삭막한 근대화는 그만큼 인간들에게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높여 놓았다. 그러나 소유와 도구적 이성에 기반한 사랑은 마실수록 갈증만 심해지는 이뇨성 액체와 같다. 현대인들은 살아 있는 사람과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으면, 죽은 사물처럼 다룰 수 없으면, 한 마디로 소유할 수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

부모는 장난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자녀들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 때만 그 사랑을 느낀다. 실제로 각종 매체들을 통해 표현되는 부모-자식의 기호들 중 자녀가 능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자녀는 무기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목마를 탄 모습으로, 아니면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조금 잔인하게 표현하면 체온이 있는 인형으로 묘사된다. 부모는 자녀가 무력한 아기이거나 복종하면서 사실상 아기나 다름없을 때가 아니면 사랑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며 지배다.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저 많은 학원들, 저 많은 아동 학대기관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많은 부모들은 사랑과 지배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자식이 나이를 먹고 신체적 힘에서 월등해 졌을 때 효도는커녕 도리어 학대를 받는 것이다. 그들이 자녀를 사랑한 적이 없으니, 자녀도 그들을 사랑할 턱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떨까? 어쩌면 하고 많은 직업 중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조금은 사랑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이 가르치고 사랑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회, 경제적 이익 때문에 선망되고 있는 현실은 그런 섣부른 희망을 갖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교사는 사랑을 해야 하며, 세상이 모두 차갑게 식어버리더라도 학교만큼은 사랑으로 따스하게 데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장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 바깥에서 생활하지 않는 한, 먼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지, 우리가 감히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자칫 왜곡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마르크스의 말을 되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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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으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전제한다면 그대는 사랑은 오직 사랑과만, 신뢰는 오직 신뢰와만 교환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예술적인 교양을 갖춘 인간이어야만 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대 자신이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라야 한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대의 모든 관계는 그대의 의지의 대상에 상응하는, 그대의 현실적·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라야 한다.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 그대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그대의 생활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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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사랑이란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따라서 결코 쉽지 않으며 심지어는 두렵기까지 한 일임을 깨달을 수 있다. 예컨대 음악회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티켓을 구입하기 위한 화폐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며 애호하는 삶이다. 식비를 쪼개어 가며 파가니니 독주회 티켓을 마련한, 그걸로도 모자라서 아예 한 달을 굶어가며 친구를 위한 티켓까지 마련한 가난한 청년 슈베르트는 화폐를 넘어선 참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사랑 하려면 자신의 삶 자체가 사랑이라야 한다. 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하며, 그의 생활이 사랑과 베풂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그는 학생들의 삶 자체를 사랑해야 하며, 그들이 자신의 고유한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 사랑은 일방적인 지배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대등관계이기 때문이다. 지배관계에서 오가는 것은 명령과 복종뿐이다. 물론 명령하는 자는 그 명령의 동기가 사랑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복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말 대로 사랑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사랑은 하나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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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5/17 12:0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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