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6일
평가를 무력화 하는 평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모든 성적 처리가 끝났다. 수행평가 20점에 서술논술 50점을 반영한 나의 무지막지한 평가때문에 잔뜩 쫄았던 아이들이 뜻밖의 점수를 받고 싱글벙글이다. 5지선다형으로 시험 쳤으면 결코 받지 못할 점수를 다들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푸코를 읽기 전까지 나는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아는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낮은 점수를 받아서 피차 불만이나 이의가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험"과 "평가"를 혼동한 나의 무지였다. 물론 공정한 평가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험이 될수는 없다. 시험은 애초에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고,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을 길들이고 구획하는 권력의 도구일 뿐 결코 평가일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평가는 그 학생에 대해 내가 구체적으로 하는 진술들이다. 공자는 자기 제자들을 "자로는 천승의 나라에서 삼군을 맡아 이끌만하다.", "회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다.", "중유는 하나를 배우면 반드시 실천에 옮겼으며, 미처 실천에 옮기기 전에 새것을 배우려하지 않았다." 같은 식으로 말했다. 결코 자로는 80점, 자공은 70점 이런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공교육에서는 진짜 평가는 이른바 생활기록부의 "중얼중얼"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으로 불리며 순전히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고, 저 말도 안되는 숫자가 진짜 평가로 둔갑해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게 제도인걸? 점수를 안 낼수 없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소극적이지만 의미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저 점수가 별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자신의 '앎'을 얼마나 드러내려고 했는지, 얼마나 설득하려고 했는지 그 노력을 평가할 뿐, 얼마나 많은 것을 외워서 알고 있는가를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수행평가는 그야말로 학생들이 그것을 행하는 과정에서 분투한 정도를 동료평가를 통해 최소한의 등급화를 통해 매겨야 한다. 지필평가는 가능한한 객관식 문항을 한 문제도 내지 말아야 한다. 객관식 문항은 정답 외에는 점수를 인정하지 않는 가장 억압적인 평가다. 공정택이가 어거지로 도입하긴 했지만 논술형 평가야 말로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상호작용하면서 오답도 인정할수 있는 덜 억압적인 평가다.
논술 평가가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외워야 할 내용이 없어야 한다. 즉 외워서 쓰는 평가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는 놀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제 자체가 대단히 길고 외워야 할 내용은 문제나 예시문에 모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교과서를 전혀 외우지 않은 학생도 문제를 꼼꼼히 읽고 예시문에 제시된 자료들을 활용해서 조리있게 글을 쓰면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교무부에서 서술형, 논술형 평가 관리 철저 어쩌구하면서 평가기준, 유사정답 처리기준을 상세히 내라고 할 것이다. 까짓거 글자수만 많게 잔뜩 써서 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채점은 내 맘대로 하는거다. 되도록 열심히 작성한 아이들에게 유리하도록. 사소한 오류같은건 그냥 무시하면서 즐겁게 채점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하려면 객관식 문항 낼때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교사의 노고가 들어간다. 문항 출제하는 것 부터가 장난이 아니며, 수업 역시 그 평가에 걸맞게 활발하고 창의적인 수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노고는 결코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을 길들인 것이 아니게 되며, 아이들은 참으로 교육받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니.
그래서 나는 전교조 전임이었던 시절보다 평범한 교사인 지금이 훨씬 바쁘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기만적 인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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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5/06 18:32 | 교단 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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