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3일
공부에 대하여
나의 독서는 다섯살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일찍 한글을 깨친 나는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을 건너뛰고 지금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컬러학습백과'라는 일종의 초등학교용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 나의 독서는 축복이었다. 어른들은 '재주 있다'며 나를 칭찬했고, 그때마다 나는 더욱 우쭐하며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심지어는 당시 가장 큰 어린이 도서 출판사인 '계몽사'직원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인재가 났는데 그깟 책값이 문제겠냐?"면서 꽤 많은 책을 돈 한푼 안 받고 그냥 주기도 했다.
나의 축복받은 독서는 국민학교때까지는 그런대로 이어졌다. 나의 방의 두면은 이런저런 책들로 가득 메워졌다. 세로줄로 인쇄된 모파상, 사르트르, 서머셋 모옴 등등의 단편집들, 죄와벌, 파우스트 처럼 뭔 소린지도 모르지만 마냥 읽어댔던 이런저런 소위 수준있는 책들로 가득찬 나의 공부방은 자랑이었고 정체성의 큰 부분이었다. 물론 읽는 만큼 쓰기도 했다. 꽤 많은 시와 소설(동시와 동화가 아님)을 썼고, 이런저런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나의 축복받은 독서는 저주가 되었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훌륭한 일로 칭찬받았던 독서, 그리고 글쓰기가 나쁜일이 되었고, 부모 없을때 몰래 해야하는 일이 되었다. 교과서와 참고서만이 공인된 유일한 책이었으며, 그 외의 책들은 사마천의 '사기'와 포르노잡지를 구별하지 않고 모조리 나쁜 것들, 공부에 방해되는 것들 취급을 받았다. 그린의 '사물의 핵심'을 읽다가 교과서가 아닌 책을 본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고 천하의 후레자식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율배반에 폭발하여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받고 말았다.
고등학교때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다가 야단을 맞기도 했다. 영어나 독일어가 아닌 대입 과목도 아닌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고. 요즘 자살하는 청소년도 무척 많은데, 내가 가출도, 자살도, 비행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s대학에 무사히 진학한것은 참으로 기적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신의 사랑을 받는 아이인 탓이리라. 그렇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신의 사랑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알량하나마 박사학위도 받고, 나름대로 교사로서 또 학자로서 꽤 인정받고 있는 지금.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적인 정서적인 자원은 부모님 표현에 따르자면 '공부에 방해되는 엉뚱한 짓거리'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내가 부모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다면, 지금 내 머리 속은 텅비어 있을 것이며, 설사 학위를 받기는 하더라도 교수가 시킨것만 할줄아는 학자로서는 영 글러먹은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바득바득 압박을 가하며 강요했던 "공부"는 전혀 공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 안하고 엉뚱한짓 한다며 집에서 학교에서 구박받아가며 몰래몰래 했던 짓들, 그것이 바로 공부였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부모와 선생이 "공부하지 말라"며 야단치고 구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공부를 한 엄청나게 착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몹시 안타깝다. 학교 끝나자 마자 학원으로 달려가고, 집에오면 이미 자정이 다 되어버린 요즘 아이들. 그러니 공부할 시간이 없는 요즘 아이들.
세월이 20년이 지났는데 엉뚱한 헛짓거리를 공부라 부르며 강요하고, 진정한 공부를 헛짓거리 취급하는 부모와 교사들의 무지함은 어찌하여 사라지기는 커녕 되레 강화되고 있는지. 혹 나 역시 그런 무지함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또 걱정된다.
나의 축복받은 독서는 국민학교때까지는 그런대로 이어졌다. 나의 방의 두면은 이런저런 책들로 가득 메워졌다. 세로줄로 인쇄된 모파상, 사르트르, 서머셋 모옴 등등의 단편집들, 죄와벌, 파우스트 처럼 뭔 소린지도 모르지만 마냥 읽어댔던 이런저런 소위 수준있는 책들로 가득찬 나의 공부방은 자랑이었고 정체성의 큰 부분이었다. 물론 읽는 만큼 쓰기도 했다. 꽤 많은 시와 소설(동시와 동화가 아님)을 썼고, 이런저런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나의 축복받은 독서는 저주가 되었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훌륭한 일로 칭찬받았던 독서, 그리고 글쓰기가 나쁜일이 되었고, 부모 없을때 몰래 해야하는 일이 되었다. 교과서와 참고서만이 공인된 유일한 책이었으며, 그 외의 책들은 사마천의 '사기'와 포르노잡지를 구별하지 않고 모조리 나쁜 것들, 공부에 방해되는 것들 취급을 받았다. 그린의 '사물의 핵심'을 읽다가 교과서가 아닌 책을 본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고 천하의 후레자식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율배반에 폭발하여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받고 말았다.
고등학교때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다가 야단을 맞기도 했다. 영어나 독일어가 아닌 대입 과목도 아닌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고. 요즘 자살하는 청소년도 무척 많은데, 내가 가출도, 자살도, 비행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s대학에 무사히 진학한것은 참으로 기적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신의 사랑을 받는 아이인 탓이리라. 그렇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신의 사랑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알량하나마 박사학위도 받고, 나름대로 교사로서 또 학자로서 꽤 인정받고 있는 지금.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적인 정서적인 자원은 부모님 표현에 따르자면 '공부에 방해되는 엉뚱한 짓거리'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내가 부모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다면, 지금 내 머리 속은 텅비어 있을 것이며, 설사 학위를 받기는 하더라도 교수가 시킨것만 할줄아는 학자로서는 영 글러먹은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바득바득 압박을 가하며 강요했던 "공부"는 전혀 공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 안하고 엉뚱한짓 한다며 집에서 학교에서 구박받아가며 몰래몰래 했던 짓들, 그것이 바로 공부였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부모와 선생이 "공부하지 말라"며 야단치고 구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공부를 한 엄청나게 착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몹시 안타깝다. 학교 끝나자 마자 학원으로 달려가고, 집에오면 이미 자정이 다 되어버린 요즘 아이들. 그러니 공부할 시간이 없는 요즘 아이들.
세월이 20년이 지났는데 엉뚱한 헛짓거리를 공부라 부르며 강요하고, 진정한 공부를 헛짓거리 취급하는 부모와 교사들의 무지함은 어찌하여 사라지기는 커녕 되레 강화되고 있는지. 혹 나 역시 그런 무지함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또 걱정된다.
# by | 2008/05/03 19:32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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