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3일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가?
- 제목이 정말 거창하지만, 사실은 이건 내가 몇해전 미친듯이 빠져들었던 컴퓨터 게임에 나오는 대사다. 게임의 이름은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롤플레잉게임 형식인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활하는 이름없는자라는 캐릭터를 담당하게 된다. 문제는 이 캐릭터는 한번 죽을때 마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 자신이 왜 죽었는지, 어떤 짓을 하고 살았는지 전혀 모른다. 이를 대비해서 항상 죽기전에 자기 몸에 자신의 삶을 요약해서 문신으로 새겨놓는다. 그러니 깨어나자마자 이 희미한 문신의 단서로 자신의 전 생애를 추적해서 재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이 진행되면 될수록 주인공은 자신이 과거에 수 많은 악행을 저지르다 죽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때 주인공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바로 "what can change the nature of man?"이다. 그리고 보기로 1)후회, 2)고통, 3)기쁨, 4)욕망, 5)사랑, 6)슬픔, 7)두려움 그 외 기억이 안나지만 여러가지가 제시된다. 정답은? 이미 게임 제목에 torment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2)번임에 분명하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이런 심오한 상황에 직면하리라 상상도 못했던 나에게 이 게임은 몇권의 철학책보다 더 많은 충격과 번민을 던져주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nature를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그렇다. 고통은 인간의 본질을 바꾸어 놓는다. 슬픔이나 후회는 어쩌면 여기에 가장 근접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면 본질을 바꾸지는 못할것이다. 기쁨, 욕망, 사랑 따위는 잠깐의 느낌, 찰라간의 덧없는 순간에 지나지 않지, 사람의 본질까지 바꿔놓기에는 무리다. 물론 고통스러운 욕망, 사랑의 고통은 인간의 본질까지 위협한다. 이성적인 사람을 광기에 물들게 하고, 잔악한 인간을 천사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누구에게 고통을 주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가? "고통 받는 인간"이란 책을 쓴 어느 교수는 과연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리고 혹 그 분 역시 본질이 위협받지는 않았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고통받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고통받는 아이들, 고통받는 벗들. 또 그 고통받는 이들때문에 고통받는 또 다른이들. 하나의 커다란 고통제조기가 되어버린 학교와 학원의 수많은 아이들. 태어날때는 누구나 천사였을 아이들. 누적된 고통과 반복된 시련속에 서서히 본질까지 잃어버리는 아이들.
고통받는 이들로부터 눈 돌리는 요령을 잘 모르는, 그리고 정작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 지난 37년간의 삶은 온갖 아우성과 탄식으로 가득찬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그 고통이 나까지 바꾸어 놓을까 두렵다. 아니 어쩌면 바꾸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이미 오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스틱스강까지 흘러가버렸을지 모를, 나의 원래 모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요즘 부쩍 게시판에 구사하는 문장이 사회계열 보다는 인문계열 분위기로 바뀌어 가는데, 과연 나는 바뀐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원래의 나일까? 이제 나는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
몇해 전 내가 가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칭찬했던 은사님의 말씀이 결코 축복이나 칭찬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그 말씀을 듣기 전에 이미 운명이라 생각하고 내면화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고통을 씹는다. 나의 고통, 남의 고통 , 온 고통을 씹는다. 쓴맛이 난다. 그리고 자꾸 씹을수록 쓴맛은 단맛으로 바뀐다. 아, 난 사도마조히스트인가? 생각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고통스러워하니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
# by | 2008/05/03 19:31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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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추가 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저는 신념이라고 답했습니다. 후회, 사랑, 고통, 어떤 것이든 상관 없습니다. 무엇이든 강하게 믿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