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쳐버린 수업

지금 민주주의와 시민참여라는 3학년 과정을 가르치는 중이다. 그 중 한국민주주의의 시련과 과제라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소개한 단원이 있다. 백문이불여일견이기 때문에 설명 생략하고 518광주민주항쟁과 6월민주항쟁 비디오를 보여주고, 그걸 바탕으로 팔로우업을 진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수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비디오를 보면서 복받치는 감정에 통곡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청년들은 월드컵 거리응원의 강렬한 기억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에서 경찰에게 얻어맞고, 최루탄을 뒤집어 쓰며 청년기를 보냈던 것이다.

아아, 그때 죽음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문 죽음들. 죽음과 공포와 광기와 희망과 열정과 이상이 마구 엉켜 눈물자욱, 핏자욱에 범벅이 되었던 나의 청년기.

요즘 젊은이들,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세계 10대 경제대국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중년층이 입에달고 다니는 "약소국의 설움"이라는 말을 거의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그런 자랑스러운 조국이 되기 위해 거쳐가야 했던 시련은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저 찬란했던 6월항쟁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가? 노무현 조차 "6월이 그립다"라며 눈시울을 붉히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 역시 그 80년대를 살아오고, 또 싸웠지 않은가?

이런 생각들이 솟구치자 수업도중에 엉엉 울어버릴수 밖에 없었고, 팔로우업이고 뭐고 수업은 그냥 긴 침묵의 시간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지도안 기준으로는 망친 수업임에 분명하겠지.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선생은 슬퍼서 우는것이 아니라 너무 자랑스러워서 울고 말았음을. 너희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꽃피는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서 선물해 준것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눈물을 흘렸음을.

자, 중학생, 대학생을 막론하고 사랑스런 나의 제자들아. 너희들은 후배들에게, 미래의 자녀들에게, 혹은 제자들에게 어떤 선물을 만들어 줄것인지 부디 생각해 보기 바란다. 혹 "선생님은, 혹은 아버지,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어떤 꿈을 꾸었나요?"라고 물어올때 "대박, 출세, 입신양명"이라고 대답하지 않기를 바란다.

난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수 있기에 너희들 앞에서 당당하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저 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세상. 그래서 내 친구, 벗들과 함께 눈물로 투쟁했던 짧았던 나의 젊음이 결코 헛된 꿈이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 그런 세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결실이 하나하나 맺혀가고 있기에 나의 과거는 너무도 자랑스러웠던 젊음이었다."

by 부정변증법 | 2008/05/07 00:23 | 교단 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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