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시민 사회론이 거의 유행처럼 불거져 나왔다. 이념에 근거한 계급투쟁론의 80년대가 지나고 시민운동이 사회의 새로운 변혁운동으로 제시되었고 이에 따라 수많은 시민단체들과 시민운동가들, 그리고 각종의 시민 사회론과 시민운동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제기된 대부분의 시민사회론, 시민운동론은 정보화 사회의 누적되는 작은 변동으로서의 사회운동들과 등치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시민사회론들은 비록 표면적으로 다원적 다핵적 사회를 상정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1원론적인 사회관과 운동관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된 시민사회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로크, 토크빌에서 비롯된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루소, 맑스, 뒤르껨에게서 젓줄을 대고 있는 공동체주의적 시민사회론, 그리고 이 둘을 나름대로 절충했다고 인정받고 있는 하버마스의 시민사회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근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이념형에서 출발하였거나, 혹은 이상적 허구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시민 사회론은 정보화 혁명으로 계급투쟁이 무익하게 되어버린 새로운 현실적 조건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계급투쟁에 입각한 운동의 힘이 약해지자 새로운 운동의 동력을 찾고자 하는 당위론적인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국가와 대립되는 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혹은 주권자와 사적 행위자의 괴리를 해소하는 공동체로서의 시민사회를 상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개인들은 공통의 이성을 가진 근본적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되고 있다. 물론 차이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 사회론에는 개인간의 차이 보다는 시민으로서의 공통점에 대한 강조점이 훨씬 크다. 차이에 대해 가장 많이 인정하고 있는 토크빌류의 자유주의에서조차 모든 개인들은 자신들의 재산권과 자유에 대한 간섭을 거부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깔고 있다. 모든 시민은 동등하다.

둘째, 시민 사회론은 사회의 변동을 설명하기 보다는 사회의 유지와 균형회복을 설명하는데 보다 적합하다. 자유주의적 시민 사회론의 경우 모든 개인들은 시민으로서 나름의 재산권을 자유로이 행사하고 증식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이러한 재산권끼리의 분쟁이 생기거나 조정이 필요할 경우 혹은 외부로부터 재산권이 위협받을 경우 국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간섭은 거부한다. 이에 따라 개개인들은 국가의 간섭을 견제하기 위한 시민사회를 형성한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사회 변동은 단지 개인의 재산 증식을 위한 활동에 의해서만 설명된다. 시민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를 견제하고 간섭을 배제하는 소극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 어떤 의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사회를 변혁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운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공동체 주의적 시민사회론이나 하버마스의 이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들의 이론에서 시민사회는 어떤 이념형으로 상정된다. 루소는 개개인들이 모두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보편의지(칸트는 이것을 실천이성이라 불렀다.)에 따라 입법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꿈꾸었다. 하버마스는 개개인들의 세계와 이제는 강력해진 제도의 세계가 동등하고 합리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이는 로크나 토크빌의 경험주의적인 설명과는 좀 다른 측면이다. 즉, 루소나 하버마스의 시민사회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변혁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국가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프로그램은 단지 이상에 불과하고, 국가에 대한 전복은 시민사회론에서 배제되고 있다.

그 결과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며, 공동체주의적 시민사회론은 표면적인 급진성과는 달리 실천적으로는 아무런 함의도 주지 못한다. 즉 시민운동을 정보화 사회에서 변동 동력이 되는 사회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정보화 사회의 사회운동은 국가와 대립되거나 국가와 융합하거나 하는 것에 따라 규정되지 않는다. 정보화 사회에서의 사회운동은 기본적으로 국가라고 하는 운동의 근본 대상 혹은 영역을 상정하지 않는다. 국가는 운동에서 근본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영역중 하나에 불과하다. 즉 정보화 사회의 사회운동은 다핵화된 여러 영역에서 국가와 같은 큰 그리고 총체적인 영역이 아니라 단지 그 영역에서의 제한된 작은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그런 운동들이다.
안티 하나로 사이트를 만든 네티즌들은 단지 하나로 통신의 서비스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지 그것을 통해 전체 사회를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는 가지지 않다. 따라서 이는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상당히 다른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운동들이 누적될 경우 사회는 변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1차적으로는 누적된 변화에 따른 사회의 변동일 것이고 2차적으로는 그런 누적된 활동에 따른 행위자의 변동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변화된 행위자들은 또 다른 운동을 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누적은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동시키겠지만 이 변동은 미리 프로그램화 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임의적이며 이전의 모든 변동운동과 구별된다.

물론 이런 작은 운동들이 시민운동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적어도 대한민국의 시민운동은 아직까지는 거시적 운동이다. 지금 우리에게 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10주년을 기념하는 참여연대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발빠르게 모였다 해체되었다를 반복할수 있는 게릴라성 사이버 몹들이다.

by 부정변증법 | 2008/05/07 00:23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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