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 그 혼란스러움

Modernity는 19세기, 20세기 학문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사회 변동을 설명함에 있어서 modernization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물론 고전 사회학자인 스펜서와 콩트에게 있어서 근대화의 의미는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근대사회는 진화해 나가는 사회의 여러 단계들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콩트에게 있어서 근대사회는 진화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실증과학의 단계로 칭송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앞의 두 단계 모두를 대립항으로 갖는 것은 아니었다.

Sztompka는 이러한 관점을 근대화에 대한 역사주의적 접근이라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근대화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 분석적 접근이라고 정의하는데 이것의 시초를 맑스에게서 보았다. 여기서 분석적이라고 하는 의미는 근대라고 부를수 있는 시대, 시민혁명과 산업 혁명 이후의 시대를 그 보다 앞선 수천 년의 과정과 1:1 대립 항으로 두고 근대화 이전과 이후를 날카롭게 분석 비교한다는 의미이다.

맑스에게는 분명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와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구별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역사주의적인 유산이 너무 강해서 자본주의 이전의 모든 시대를 전근대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대립시켜 날카롭게 분석한 것은 이미 근대화 담론의 시초를 제공한 것이었다.

근대와 전근대혹은 전통사회(원시사회에서부터 봉건시대를 몽땅 합쳐)를 대비 분석한 이론의 시초는 베버에게서 처음 발견 할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탈 마법화의 기준, 합리화의 기준이 등장한 것이다. 이때 베버의 탈 마법화, 합리화의 기준은 주로 권위와 규칙에 적용된다. 베버는 권위와 규칙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고 그 힘을 획득하는가에 주목했고, 합리화에서 근대적 권위와 규칙의 원천을 발견한 것이다. 즉, 중세의 기사나 성직자의 힘의 원천은 근대사회 관료의 힘의 원천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런데 중세의 기사, 성직자의 힘의 원천은 고대 로마의 지배계급의 힘의 원천과 큰 차이가 없다. 고대와 중세는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중세와 근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근대와 전 근대라는 날카로운 대비가 가능하다.

결론은 다르게 나오지만 뒤르케임과 퇴니스 역시 근대와 전근대를 날카롭게 구별하였다. 이들은 모두 공동체의 해체, 공공 가치의 상실 등등에서 근대화의 척도를 발견하였다. 공교로운 것은 맑스와 베버는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고도의 통합력(맑스의 경우는 그것의 전 지구화 까지 바라보았다.)에 주목한 반면 뒤르케임이나 퇴니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력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서 밀스나 리즈만의 대중사회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소수의 엘리트만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의미없는 집합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조점은 달라도 이들 모두가 동의한 것은 근대화=자본주의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강조점이 서로 다른 것은 자본주의가 합리화(합리화는 기본적으로 표준화, 따라서 집중을 가져온다)와 개인주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통적 공동체의 부속물이었던 인간들은 그 속박에서 벗어나서 개별화 된다. 이때 이들을 전통적 공동체에 복속시킨 힘은 일종의 마법적 신비주의적 가치이거나 종교이거나 혹은 관례적인 권위, 한 마디로 불합리한 것들이었다. 합리화가 진행되면서 개인들은 더 이상 이러한 전통적 권위에 복종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것을 비 과학적인 미신으로 판정하게 되며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연대는 파괴된다.

뒤르케임이나 퇴니스의 우려, 혹은 맑스의 혁명에의 열망(생산수단의 개인주의화에 의한 인간성 파괴에 대한 분노)은 바로 이 단계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개인주의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공동체의 파괴는 새로운 연대를 위한 전주곡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합리화는 곧 모든 기준의 표준화를 동시에 의미한다. 즉 개인주의화는 새로운 연대의 기준을 만들기 위한 과도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 착안한 파슨스는 베버나 그 외의 선배 학자들과는 단리 오히려 전통사회의 표준이 개인주의이며 근대사회의 규준이 보편주의라고 주장하였다. 전통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는 개인의 특징에 의해 결정된 반면 근대사회에서는 그 지위 자체가 보편화된 능력과 기질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 개인이 아니라 그러한 보편적 능력과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익명의 누구라도 얼마든지 등용될 수 있다. 다만 개인주의화는 업적 평가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전통사회에서 업적의 평가는 집합 내 멤버십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대신 근대사회에서는 지위에 따른 역할의 수행정도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그러나 베버와 파슨스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차가운 잣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파슨스는 전근대 사회와 근대사회의 가장 큰 차이로 감정의 역할을 들었다. 이는 베버의 합리화 과정과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스펜서나 맑스, 혹은 콩트와 뒤르켕이 사회 전체의 변화와 흐름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반면 베버와 파슨스는 변화된 사회에서의 인성, 개성의 변화를 보여 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보여준다.

즉 맑스는 무엇이 근대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였다면 베버와 파슨스는 ‘누가 근대인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셈이다. 맑스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모든 가치의 신비성이 탈각되고 이윤의 획득이라는 경제 가치가 노골화 되고 직설화된 사회, 따라서 기존의 모든 사회관계들이 경제적인 관계로 재편되는 사회’가 될 것이고 베버와 파슨스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이고 자신이 맡은 지위에 대한 표준화된 가치, 능력등을 공유하고, 기본적으로 불합리한 일체의 관계와 속박 가치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맑스, 베버, 파슨스는 그들의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낙관론자들이라고 할수 있다. 맑스는 자본주의의 참상을 고발하면서도 그것을 빌미로 중세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낭만주의자들을 철저히 비판하였으며 독일이 이 비참한 자본주의화가 영국보다 뒤늦고 있음을 개탄하였다. 부르주아는 적어도 군주보다는 바람직한 지배계급인 것이다. 이는 베버의 관료주의 비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아무리 관료제의 폐단을 지적하여도 베버는 레비스트로스가 그런 것처럼 제사장이나 추장의 권위로 다스리는 사회를 찬양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합리화의 개가였으니.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루카치나 아도르노, 그리고 하버마스에게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똑같은 근대성의 발현이다. 그리고 이 근대성은 총체적인 사물화에서 그 특징을 찾는다. 이러한 과정속에 개인들은 개성을 상실하고 사물화된 System에 노예처럼 종속된다. 그리고 이 종속은 중세처럼 물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초기 자본주의처럼 경제적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총체화되고 표준화된 코뮤니케이션의 융단폭격에 의해 이루어진다. 총체화, 그리고 중앙집중화에서 근대성의 특징을 찾고자 한 이들의 주장은 결국 분절화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20세기 후반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NGO운동에 이론적 뿌리를 제공하게 된다.

또 앤서니 기든스와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데서 근대성을 찾는다. 위험에 순응하는 것을 전근대사회로 보고, 위험을 조직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근대사회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인 통제가 아니라 위험의 중앙집중화에 불과하다. 즉 위험의 빈도는 줄어들었으나 파괴력도 집중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이론들은 공통적으로 근대사회의 디스토피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닉하게 이들은 이러한 근대사회의 어두운 면을 극복할 힘을 근대사회를 이루어낸 합리성에서 찾고 있다. 그 증거가 근대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세력인 비합리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실존주의등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다.

어떤 주장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한 일이 될지 모른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 근대사회의 한 부분씩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옳은 것도 하나 없고 동시에 틀린 것도 하나 없다고 할 수 있다. 근대사회는 분명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모두 지니고 있다. 그것의 어두운 면은 다렌도르프 식으로 소유의 공동체화(주식회사, 보험)등으로 약화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도 아니고, 맑스 식으로 필연적인 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만틈 구제불능의 것도 아닐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비판, 비판에 대한 비판, 다시 비판을 통한 끊임없는 논쟁과 개선의 모색이여야 할 것이며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룰이라고 할 수 있는 코뮤니케이션의 진정한 자유(형식 법적인 자유가 아닌)와 평등(이 역시 실질적인 평등)의 보장에 있을 것이다. 나는 해답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바탕이 보장된다면 분명 슬기롭게 앞길을 헤쳐나갈 방안이 인간의 손에 의해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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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5/03 18:47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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