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교육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시장실패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면 신자유주의는거꾸로 사회주의가 시도한 국가실패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실제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 중앙집권 국가(개발독재국가)의 병폐인동기저하, 모럴 해저드, 비효율성, 경직된 관료주의에 대해 가한 비판은 예리한 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병폐들에 대한대안으로 비인간적인 자유경쟁시장, 즉 획일적인 화폐의 지배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경쟁시장은 원조자유방임주의자조차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렵다고 본 이념형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신기루처럼 무너졌지만 신기루라는 점에서는 국가개입 없는 자유경쟁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국가와 권위적 관료주의에 불만이 극에 달한 대중들에게호소력을 발휘했다.


신자유주의가 대중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이유는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했기때문이다.  영역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일단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반대로 안전지대의 상실이라는 불안도 함께 제공한다.신자유주의는 각종 공공영역을 허물어져야 하는 낡은 벽의 수호자로, 그리고 교육을 불안 해소를 위한 자원의 제공자로 설정하였다.이런 논리 하에서 공교육은 이중으로 비판받는다. 공교육은 새로운 기회의 제공을 가로막는 구제도이면서 불안 해소를 위한 질 높은교육 제공의 의무를 거부하는 나태한 영역이 된다.

신자유주의는 기존의 낡은 관료적 공교육을 해체하고지식·정보사회에 적합한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 논리는 기존의 학생·학부모의 불만, 그 동안비판받아왔던 근대 공교육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로서 반박되기 어렵다. 만약 이를 전체적으로 반박하고자 한다면 사실상오히려 관료적이고 획일적인 근대 공교육을 지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교육에서 관료제를허물어뜨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다만 교육과정까지 일일히 간섭하던 관료제를 무너뜨릴 뿐이다. 교육의 목표는 화폐의속성을 닮아가며, 도리어 계량화하여 측정가능한 학력으로 더욱 획일화된다. 즉 획일화된 목표를 두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만다양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무한경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의 교육개혁 정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분명 국가는 수업과정에 대한 간섭에서는 한발 물러서고 있다. 이른바 다양성의 강조다. 그러나 최종 결과에 대한 통제는 강화하려고 한다. 각종 표준화 검사를 초등에서고등까지 심지어는 대학까지 도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표준화 검사 점수따기 경쟁에 학교가 자발적으로 나서게 만드는 것이이른바 학부모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헛점은 신자유주의의 논리 자체를 끝까지 추구할 경우 자기 파멸적이된다는 것이다. 근대적 억압의 근원은 삶의 외부에 추상적으로 설정된 척도, 그리고 이러한 척도에 의한 강제적인 구획과 조작이다.신자유주의는 이런 획일적이고 외부적 척도와 구획을 파괴한다. 그러나 시장은 완전한 자유의 세계가 될 수 없다. 시장은 교환의체계이며, 모든 교환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유가 아니라 추상적인 화폐의 지배가 신자유주의의 모순적 본질이다.신자유주의는 더 많은 자유, 진정한 자유를 요구하는 다중의 요구앞에 자가당착에 빠져버린다. 자유를 강조하여 국가주의를공격하지만, 그 자유는 이제 자신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된다.

그런데 화폐의 지배는 국가나 관료제의 지배처럼 명백한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와 관료제에는 명백하게 전선을 치고 집단적으로 대항할 수 있지만 화폐의 지배는 주체의 내면에파고든다. 따라서 주체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율적 삶의 창출, 즉 분자혁명이 요구된다. 당연히 이는 집단적 저항보다 수십갑절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참된 자율적 삶이 분출될때 신자유주의는 자신이 파괴한 국가, 관료제의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토대에서부터 부패할 것이다.

결국 교육에서 신자유주의는 가로막기 보다는 돌파해야 할 무엇이다. 신자유주의가관료제를 무너뜨린다면, 그것들이 무너지는것을 즐거이 바라보자. 그러나 그것들이 무너진 자리에 진정한 다양성과 창발성의 세계를한발 앞서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화폐의 지배 앞에서 더 이상 전진하기를 거부하는 신자유주의의 위선적인 다양성 담론을 오히려극한까지 밀어붙여 스스로의 무게로 무너지게 만들어 버리자.

by 부정변증법 | 2008/05/07 00:2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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