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8일
기획번역1: 신자유주의 시대와 강철새장의 해체
George Martell(요크 대학 교수)
권재원 번역
이 책의 핵심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사랑하고 우리들의 학교에서(우리의 삶에서도) 성취하고자 투쟁하는 것들이 단지 윤리적 명령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역사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교육의 지구적 경험의 이해를 시작하기 위한 명백한 출발점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실 이것은 세계의 교육 체계들에서, 특히 노동 혹은 식민지 민중들 속에서 경험하게되는 비인간성에대해 저항할 때 종종 잊어버리는 현실이다. 우리 학교의 일상생활에서 정의와 복지의 교육체계를 수립하고자 하는 피지배 계급의충동은 자주 지배계급의 정책과 실행의 공격적이고 압도적인 구조물에 대한 충동적인 반발 이상의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교육적 변화의 큰 패턴에서 이러한 피지배계급의 충동이 먼저 오며 지배 계급의 위협이 그 다음에 온다는 사실이다.공교육에서 지배계급의 행위는 무엇보다도 그들 학생들의 삶을 진정으로 향상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대중적 요구에 대한 반응이다;그것은 자신의 자녀를 위해 보다 훌륭한 미래를 수립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지배자들이 제한하고 개조해야할 필요를반영한다.
이 이해는 이 책에서 명시적이기 보다는 암시적일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장차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공교육에 대한 공격에 저항할 때 취해야 할 모든 행동의 근거를 제공한다. 이제 세계의 학교들을 강하게압박하고 있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강철 새장은 자신들을 위한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러한 과업을 위한 지식을 탐색하고자하는 지속적인 요구에 대한 지배 계급의 공격적 반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빈농들, 원주민 공동체들, 수공업자와 소농들, 모든나라의 산업 노동자들, 그리고 지구화된 미개발 국가의 농민들은 모두 그러한 세계를 위해 싸워왔고, 장차 그러한 세계의 건설을위한 지식에 기여해왔다. 이러한 투쟁은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억압적이라 할지라도 전 지구적으로 계속되며, 그곳에는 우리를 위한지식이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근자에 발전되고 있는 지구적 교육의 지배적 유형은 전후 노동계급과 민족해방운동의 억압 속에서 국제 자본의 점증하는 힘으로부터 출현하였다. 이 유형의 목적은 세계 노동 민중에 대한 기업통제를 심화하는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본은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교육적 구조들은 여전히 이들 피지배 계급의 즉각적인 요구(그들의세계를 위한, 그것을 세우기 위한 지식을 위한)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본은 또한 그러한 피지배계급의 역량이 종국에는 대립속에서 다시 한 번 성장하고 이전의 제도적인 “희망의 형식들”(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교육에서)이 새로운 세계를 위한 투쟁 속에서재구성되고 개조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이러한 즉각적인 요구들은 권력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저지된다. 일부는지배자들에게 흡수되고 일부는 현실적인 정책의 보완에서 해법을 찾는다. 반면에 피지배계급의 잠재적인 역량은 지배계급의 심사숙고의허점 속에서 자신의 정책과정의 통로를 발견한다. 우리 학교 체계들의 현실세계에서의 최종 생산물은 때때로 적절한 순간에 자리 잡는힘들(무엇보다 계급의 힘들)의 합성점 혹은 타협점은 “교육 복지”라고 불리지만, 이 힘들은 언제나 유동적이며 상대적 우위가바뀌기 때문에 항상 잠재적으로 불안정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피지배계급의 역량의 성장이 시작하는 지점이 혹은 그 반대이든 간에,이 균형이 바뀌는 지점에 있다. 학교에서의 새로운 저항 운동은 형성이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의 최종 결과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지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난 30년간 자본과 신보수 혹은 신자유주의의 변형태들에 의한 공교육에 대한 공격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격의 주요 목적들도 명백하다: 첫째, 재정삭감(부자와 기업들의 감세를허용하는)과 학교 서비스의 외주화(사적 이윤을 위한 학교 시장의 팽창)를 통한 자본 이윤의 증대; 이 과정은 종종 “민영화”라고불린다. 이 공격의 두번째 목적은 학교에서의 인간자본의 생산, 특히 저소득층, 이주민, 이민자, 유색인종 아동들을 저차원인적자본으로 개발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기꺼이 말하는 대로 따라하고 생각하는 노동자, 시민, 그리고 소비자의 지속적인증가를 요구한다. 그러한 인간자본의 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이다.
그러나 그것의 힘이 분명하고 그 전반적인 목적이 명백하더라도 이 공격의 단단한 지반이 여전히 쓰러뜨리기 벅찬 것은 사실이다.
지구적 자본주의는 너무도 빠르고 강력하게 세계 곳곳에서 학교들을 공격하여그 반대편은 대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 공격은 새로이 교묘한 언어 속에서 항상변화하는 교육과정 진술과 관료적 그리고 기술적 통제 체제 의 범위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것들 중 상당 부분을 포괄하는 몇몇 핵심영역을 간단히 제시해보자.
1.1. 민영화 의제
우리가 능히 했어야 함이 너무도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 공격에 무능하게대처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는 민영화 위협의 강렬함이다. 이 위협은 공교육에 너무도 파괴적이어서 우리 학교의 진보적 힘의 정력과시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다. 학교교육에 대한 우리의 원대한 목표는 공교육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대한 투쟁 속에 묻히고 말았다.결과적으로 현재 기업의 교육의제인 인적 자본의 측면은 상당한 저항을 받고 있다. 물론 학교에 기반한 인적자본 생산은 몰인격적이며사회 분열을 조장한다고 널리 비판받아왔다. 특히 이 생산적 교육과정의 핵심 - 표준화 검사에 의해 규제되는 산출(혹은 기대)기반교육(OBE)-은 반대의 증가(특히 교사들 사이에서)에 직면했었다. 이 반대는 여전히 상당한 조직적 힘을 취하고 있다. 많은부분 민영화 위협의 강도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날이 험악해지는 세계에서 “사회통합”의 건설에 대한 강조와 함께21세기를 열었던 모든 공식 조직의 인본주의는 최소한 사민주의적 임기응변적 용어에서나마 살아남아 현실에서 완전히 바닥에 이르지는않았다. 신우파 보수주의는 대대적으로 이전의 보수적 제도와 개혁을 강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우파 자유주의로대체되었다. 공공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은 30년 이상 굳건하게 남아있었다. 노골적인 기업 권력, 그리고 즉각적인 이윤 창출 기회에대한 압력은 정부의 의사결정 집단 내에서 여전히 두드러진다. 그것은 사회 통합과 보다 인간적인 자본 발전을 위한 자본가의 보다장기적인 관심사에서 좋은 패를 쥐는 것을 계속해왔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공공 학교교육의 민영화가 갖가지 형태로 계속된다.
정부는 부자와 기업을 위한 조세 감소의 강력한 압력에 처한다. 그들은광범한 사회사업 삭감을 통한 조세감축이라는 신보수주의 재정 구조를 고수했다. 이는 특히 군사, 경찰, 법원과 감옥 비용이증가하는 나라에서 두드러졌다. 때때로 학교 재정지원이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되는 지역에서는 다른 사회 영역들을 삭감시키면서교육에 약간 더 많은 돈이 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학교 체계가 필요로 하는 것과 비표하자면, 이 새로운 재원은 언 발에오줌 누기다; 그들은 학교 건축과 수리를 위한 충당금등 기초적인 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며 교사와 교육노동자의 임금 인하 압력은계속된다. 여러 나라에서 학생 1인당 교육지출이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새로 투입된 재원이 상당부분 새로운 결과기반교육과정과평가정책의 보완과 유지를 위한 연구 프로젝트 -공교육 체계에 도움이 되기보다 고통스럽게할- 에 탕진되었음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공교육에 대한 추가적인 압박과 함께 민간부문으로의 외주화 역시 성장하고 있다.
보다 많은 공공 자금이 사립학교 -영재학교와 종교학교가 그 대부분인-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 자금과 함께- 그리고 공교육에 대한 계속적인 공격에 조응하며 사립학교는 갈수록 팽창하고 있다.
우리가 조사한 모든 나라에서 또한 공교육 내에서의 민간 영역의 지속적인 확장이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영리추구 활동들이 이제 학교 내에서 행해진다. 거기에는 교사연수, 교육과정 개발(문해 프로그램에서 기술교육에 이르기까지), 지도안 패키지, 정책 개발 자문, 국제 경쟁을 위한 교육 기업설립, 스쿨버스 운영, 청소, 수리, 급식 용역, 출판, 학교 경영, 그래픽 디자인, 급료 분배, 프로그램 후원, 바우처 개발,보충수업, 그리고 끝으로 민간 기업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소유되고 운영된 뒤 손익 분기점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게 대여되는공립학교의 건설과 유지 등이 포함된다. 학교 관료제의 모든 부분들이 “공공-민간 협력”을 열어젖히고 있다.
또한 공립학교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비영리, 친기업적 활동들도 증가하고 있다.
공교육의 기능을 더욱 민간 기업처럼 만들라는 압력이 증가한다. 학교체계는이제 지역교육청간, 학교간, 교사간, 그리고 학생들간의 다양한 형태의 경쟁들, 마찬가지로 이 경쟁의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다양한표준화 검사를 촉진하는 CEO와 관리자가 지도한다. 학교당국의 업무는 점점 더 시장의 내부의 경쟁적인 시장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며사회 계급의 구별을 심화하는 것이 된다. “성공적”인 공립학교는 중산층 지원자들로 보상받으며 반면 점점 더 많은 가난한 아동들은그들이 중산층 “표준들”을 성취하는데 실패할 경우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삭감당할 가난하고 열악한 학교로 가는 수밖에 없다.중산층 부모들은 공교육 체계에서 자신들의 사립학교들의 재정지원 확대와 그들 학교와 실패한 하층계급 체계와의 거리를 늘리도록압력을 가한다. 반면 가난한 아동의 교사들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그 차이를 보상해야하는 압력에 처한다. 바우처와 차터스쿨은 이복잡한 혼합물의 다른 부분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에서 앞장서고 있는 경쟁적 마인드의 기업 및 종교 이데올로그들에게 학교 관리를직접 맡기라는 압력도 증가하고 있다. 학교 바깥의 자본주의 세계에서와 같이 이 새로운 “경쟁적”구조들에서 교육 정책들과 자원들은부유층들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1.2. 강철 새장
모든 영향력 있는 권력들에게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이윤의 증가-신자유주의 교육의 민영화 압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위한 실제의 위험들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측면에서 이는 인적 자본생산에 맞지 않으며 교육 체계에서 효율적인 인적 자본 정책의 완성에 필요한 자원을 박탈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보다사려 깊은 구성원들이 예견하듯이- 우리 사회의 통합력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교육 영역에서 노동계급은 이제 물질적 설비와그것을 획득할 자원에서뿐 아니라 학생 학부모와 함께 그들의 관행을 방어할 공공의 능력에서 그들의 학교가 붕괴되는 것을 보게된다. 특히 분명해진 것은 이 학교들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유색 이민자 공동체에서만큼 이것이 분명한곳은 없다.
이는 인적 자본 생산(특히 그것의 저차원적 수준에서)의 쟁점이 우리 학교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것이 한때 로렌 린드가 “학습 기계”라고 불렀을 만큼 효과적으로 기능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인간 자본이란 쟁점을 제안한 사람들은 - 우리 학교들에서 목적과의미를 위해 투쟁했던- 여전히 부비에와 칼렌치크가 이 책의 다음 장에서 자본주의 질서가 수세기에 걸쳐 상품과 노동을 위한 안정적시장을 위해 창조한 “기능적 합리성과 도구성의 강철 새장” 이라 고 부른 것과 투쟁해야만 한다.
이 강철 새장은 이 용어가 영어권 청중들에게 번역되기 전에 베버의 원래상상과 같은 “강철 상자”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열려있으며 공격에 취약하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들에서 서로 다른 제도들을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세련된 것일 수도 있고 거칠게 부과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형태야 무엇이든 막강한 힘을가진 구조다.
“강철 새장”이란 용어는 사회 전역에서 그 중심 기능이 인적 자본의 창출인모든 강압적인 경제적 심리적 관계들에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은 지적 수동성과 정력적 행동의 독특한 자본주의적 혼합인 자본주의고유의 인간을 함께 야기하는 노동자 시민 소비자의 창출로 널리 이해되어온 인적 자본 생산이다. 그것은 가능하면 민중을 기계처럼만들거나 최소한 효율적인 기계들의 연장으로 만들고자하는 표준화의 과정으로 가장 잘 이해된다.
표준화 과정 자체는 두개의 완전히 통합된 부분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첫번째 부분은 양날의 통제 압력이다: 이것은 민중을 그들의 인간적 유대와 자연적 세계로부터 단절시키는 한편(연대의 절단,대상화의 조장) 동시에 복잡한 사회적 위계에서의 그들의 개별적 위치(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공동체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권위자들의명령을 들으라는 강한 압력을 가한다. 두번째 부분은 표준화된 행동인데 이는 이 통제 압력에서부터 출현한다: 작업장에서 시장에서그리고 국가 체계에서 자본가의 이윤을 지원하는 행위. 이 모든 영역들에서 그러한 행위를 받아들이는 능력과 자발성이 인적 자본의중심적인 의미다.
그러한 표준화된 행동의 현재의 형태는 19세기 말의 “과학적 경영” 그리고뒤따른 “산업 심리학”의 대두와 함께 나타났다. 이 양자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불온성에 대한 응답으로 근대의 특징적인 경제적억압과 심리적 조작의 조합을 창출했다.
우리는 이 전체과정을 경제적 합리성의 모든 사회영역으로의 공격적 확장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강철 새장은 점점 더 학교 행정과 교육과정 구조의 핵심을 형성하고있다. 그것의 가장 최근의 표현이 결과 기반 교육(OBE)이다. 그것은 학생을 인적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통제 압력과 이 인적자본의 가장 현실적인 표현인 표준화된 행위를 포함하며 연결시킨다. OBE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사회와 자연으로부터 분리하며권위자에게의 묵종과 복종을 조장한다. 동시에 그것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점점 더 파편화되는(그리고 탈의미화되는) 각종 기능들을 학습하도록 유도된다.
이 책의 기고자들이 보여주듯이 OBE는 지구적 자본주의와 서구 제국주의의 경제, 정치, 그리고 군사적 힘과 함께 세계로 확산되었다. OBE에 대한 저항은 지구적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도 성장시킬 것이다.
1.3. 강철 새장의 해체
자본주의 관점에서 공교육의 -특히 그것의 물적·인간적 기틀의- 해체는 정밀하게 진행 중이다.
내가 지적했듯이 이 과정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공립학교 체계가 현실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이는 은유를 하자면 빗속에 방치된 강철 새장에게 일어난 현상이다. 그것은 녹슨다. 그것은 부서진다. 그것은 권위와 권력을 상실한다.
예산삭감과 외주화의 민영화 의제는 공립학교 세계의 물적, 인적 기반을 강타했고 계속 강타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의 노동계급 사이에서의 권위와 권력은 실추되고 있다.
민영화에서 비롯된 모든 파괴로 인해 보다 깊이 착근된 정치적 조직-지역학교 수준,그리고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모든 수준의 정부- 의 기회가 창출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할 뿐 아니라 더 많은 민주적 교육, 그리고 참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그들을 둘러싼 물적, 사회적, 정신적 세계를 개방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도전을 위한 투쟁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 논문집이 보여주듯이 우리를 이들 세 방향 모두로 이끄는 수많은 발걸음들이 있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기업 세계의 신자유주의적 압력과 직접적으로 대립한다. 우리는 또한 자본주의가 우리 학교에서 탈취해간 자원들을 회복하는데 열중한다.
내가 여기서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보수적이든 자유주의적이든)에 대한 지구적 저항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을 거칠게 요약하는 것이다. 이 논문들로부터 나타나는 결론들은 내 입장에서 볼 때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큰 문제는 단결의 문제다: 연대를 건설하고 노동계급과원주민 공동체의 과업들과의 연대를 통해 조직되는 농민들에 집중하기; 서로 맞물리는 돈, 권력 그리고 교육과정의 쟁점 견지하기;그리고 학교 체계에서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요구와 무엇이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요구를 연결하기.
1.3.1. 함께 일하기
교육에서의 강력한 연대의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학생, 교사,교육노동자, 학부모, 지역사회, 그리고 노동운동이 모두 이 전선에 결집해야 한다. 지금까지 흔히 너무 자주 그래왔듯이 그들이분열한다면 우리의 불운이 될 것이다. 모든 공감할 수 있는 모든 조직들이 이 이를 위해 함께 투쟁하고 공통성을 정립하기 위해 이전선에서 조직화되어야 한다.
이 조직화는 결코 신자유주의의 학교 공격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어서는 안 된다. 그 기저에는 학교교육이 그것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건설을 돕는 정의와 복지 사회의 비젼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조직화는 동시에 두 전선에 도달해야 한다: 공립 학교교육에 대한전반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적 기구들(국가정부, 주와 지역 정부)에게 충격을 가해야 하며, 지역 학교들(핵심적 조직화가 자리잡고 진정한 변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중앙 집권화 된 교육부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에 착근되어야 한다.공립학교들에서의 기틀과 사회적 운동의 조직화로서 기능할 수 있으며 필요한 곳에서 선거인단을 배출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구조-주의 교육 정치 정당, 지역 교육 네트워크, 그리고 전국 정치 조직의 부서 등의 다양한 형태로-들이 요구된다. 이들 구조들은우리를 “민중과 장소” 그리고 우리의 교육 체계를 가로질러 더 큰 사회적 목적들과 다시 연결시키는 참된 지식을 위한 투쟁에서의전반적인 지도력과 비젼을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이 지도력은 이웃 학교들의 교육과정, 교육학과 행정의 민주화를 강력히 요구해야한다.
조직화는 또한 노동계급과 농민뿐 아니라 원주민 공동체에도 뿌리를 두고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많은 중산층 학부모와 활동가들이 조직에 결합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우선적으로 노동계급, 빈농, 그리고원주민 아동들에게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쇠퇴할 것이며, 공립 학교교육은 계속 공격받을 것이다. 공립학교 교원노조는 특히 이현실을 파악해야 한다. 노동자, 빈농, 그리고 원주민은 공교육 체계가 필요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에 응답하는 한 그것을 지킬것이다. 그러나 중산층은 지난 20년간 분명해졌듯이 꼬임에 넘어가 공교육 체계를 이탈할 수 있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이사립학교를 공교육의 재난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한다. 따라서 교사의 이익과 노동계급, 빈농, 원주민의 이익이 몇몇 쟁점에서 굳건히연결되는 것을 확실하게 하려면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학급규모 감축은 수준별 학습 폐지와 연결된다; 교사와 교육 노동자들의임금과 근로조건 향상은 교실을 행복하게 만들 뿐 아니라 더 넓게 모두가 획득할 수 있는 임금의 상승 패턴과 연결된다. 마지막으로이런 방식으로 학교를 강화하는 것은 사교육으로 떠나갔지만 여전히 공교육 체계를 믿고 있는 불만스러운 중간계급들을 다시불러들인다는 것은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다.
1.3.2. 돈, 권력, 교육과정
교육에서 모든 진보적 행위자들이 단결해야 하는 것처럼 돈, 권력, 그리고 교육과정(교육학과 평가를 포함하여)이라는 세 쟁점도 하나의 지평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우리가 과거에 학교 체계의 재정적 문제를 우선시했던 것처럼 어떤 한 쟁점에집중하여 다른 것들을 약화시켜서는 안 됨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 세 쟁점들은 교육 개혁을 조직화하면서 통합되어야 한다.우리가 더 많은 돈을 요구할 때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도 말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특별한 교육과정관점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재원을 조달하고 교실과 학교 전체에서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가 포함되는지도 설명해야한다. 우리가 특별한 행정형태를 요구한다면 돈과 관련한 혹은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완성과 관련하여 어떤 방식의 의사결정을의미하는 것인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영역을 하나로 견지하는 것은 대안적인 학교 체계의 비젼을 제안에서근본적일 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연대를 고스란히 유지하고자 한다면 전략적으로도 필수적이다. 만약, 예를 들어 교사가 임금과근로조건의 단협이 체결되기가 무섭게 교육과정 쟁점에서 떠나가 버린다거나 학부모가 교육프로그램이나 학부모 발언권에 집중하느라교사와 교육노동자의 임금을 무시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완벽한 그림을 앞에 제시하는 것(이 책의 모든 기고자들이지지하는)은 필수적이다. 학부모들은 임금과 근로조건 쟁점에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매달려야 하며 교사들은 그들의 협약에서 교육과정과행정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민주적 절차와 프로그램의 우선성은 대안적인 교육재정을 성취하는데 특히중요하다. 우리는 민중들 앞에 세입과 세출에 대한 진정한 선택권 - 현재의 부족분 충당을 위한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세금인상하한선에서부터 공공 지출을 위한 보다 정밀한 기초(교육 지출을 포함하여), 장기적인 세입원을 보증하고 장기적인 세출 우선권을정초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을 제안해야 한다.
1.4. “아니오”라고 말하기, 그리고 “옳소”라고 말하기
우리는 원하지 않는 정책과 프로그램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하고 동시에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옳소”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의 인간자본 생산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한편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사회와 국가에서 진정한 자신의 고향을 건설하는 과업에 적합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옳소”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학문적 지식의 “추상화”를 중단시켜야 하며 학생들이 사유와 행위를 교육과정(이웃의 삶을 개선하는 일에서부터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OBE를 반대해야 하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을정직하게 탐색하고 그것과 씨름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이것은 주어진 일차원적 결과의 기반에 대한 명백한 저항과 교사와학생이 의미있는 공동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탐색, 공동의 발전의 열린 영역들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의미한다.
이 반대는 모든 형태의 표준화 검사로 확장되고 학생들이 그들이 무엇을 알고있는지 표현할 수 있고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참 평가”라고 불리는 것으로 향해야 한다. 이는우리가 학생들의 가장 수준 높은 작업을 공동으로 지원하는 한편 학과 경쟁을 거부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으로 편향된 꼬리표 -계급, 인종, 문화,성-에 저항해야 하며, 모든 학생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직도 말해질 것이 남아있는 이야기와 역사를 가진 완전한 인격으로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사회적으로 편향된 우열반 편성에 반대하고 모든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포괄적인 학급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 훈련을 통한 인적 자본 생산을 거부하며, 동시에 강화된예술, 과학 교육과 결합된 튼튼한 기술교육 -그 과정은 대학에 기반한 프로그램 등과 동등하게 학술적인- 을 주장해야 한다.우리는 교육의 역할이 탈숙련화되는 것에 저항해야 하며 다른 모든 중요한 기능들이 밟아간 경로처럼 우리의 기술적 연구도 학문적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우리는 정신과 육체노동의 분리에 반대해야 하며 모든 학생들이 양자를 경험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요구해야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무의식적 채택을 거부해야 하며 우리 학생들의 미래의 작업장을 구성할보다 넓은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산업적 고안의 보다 깊은 이해를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계속 해 왔듯이 예산삭감에 대해 “아니오”라고 해야 하며, 안정적이고 관대한 학교 재정을 위한 참된 기반에 대해 “옳소”라고 해야 한다.
우리는 거대 교육 기구들에 대해 “아니오”라고 해야 하며 작은 교육청(혹은 위원회), 작은 학교, 작은 학급에 대해 “옳소”라고 해야 한다.
우리는 상명하달식 기업적 행정 구조에 도전하고 공통의 목적과 자원 할당요구를 감안하는 민주적 행정을 요구해야 하며, 동시에 지역 학교들의 정밀하게 진행되는 민주화를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우리는학교를 억압하는 중앙집권화 된 억압과 조작에 저항해야 하며 학교 개혁의 효과적인 모델 -주 수준에 적용될 수 있지만 지역학교들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창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을 지지해야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의 “교사 검증”(파괴적인 교원평가를 포함하여)에 저항해야하며 교사들이 가르칠 수 있는 구조를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는 교육위원회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맹목적인 위계서열에 저항해야 하며 그들이 학교의 업무와 의사결정과정에 완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조직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동의 성격을 부인하고 지역사회를 무시하는 기업이조종하는 의제들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며 아동의 삶을 진정으로 활기차게 하는 교사, 학생, 학부모와 지역사회 지식의광범한 동원에 대해 “옳소”라고 해야 한다.
이 논문집의 기고자들은 이 대안적 프로그램들이 빠른 시일 내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제시된 이런 광범한 프로그램-우리의 특별한 환경들을구체화하고 행동을 이끄는-이 없다면 학교에서의 제한된 변화를 위한 우리의 직접적인 작업들은 결코 결실을 맺지 못함을 알고 있다.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미래 학교 체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이해다. 이 방향이 없다면 현재 우리의교육개혁 정치학은 현재 학교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탈락되고 잘려나갈 것이다.
아르헨티나 저널리스트인 클라우디아 코롤이 최근에 말했듯이: “필요하다면 가능하다고 믿으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성취하라.”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 by | 2008/05/28 10:32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