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에 주는 고언(3)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엔 배심원이 있다.

교사조합이 전문직 조합으로 굳건히 설 때, 교육은 고유의 논리와 고유의 원리가 작동하는 독자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주장이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이는 비효율이라는 신자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한 축을 막아 낼 것이다. 또 교사조합이 전문직 조합의 기능을다한다면 도덕적 해이라는 신자유주의 공격의 따 다른 축도 막아 낼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침탈은 힘 싸움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침탈은 항상 도덕과 효율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론을등에 업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저 따위 일 하라고 내가 세금을 냈단 말인가?”라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무기다.따라서 이는 당사자 간의 대결이 아니라 여론이라는 배심원이 있는 대결이다. 그리고 여론이라는 배심원 앞에 최대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신자유주의의 침탈은 격퇴된다. 교사는 전문직으로 고유의 영역을 지킬 자격이 있음을 배심원에게 입증해야 한다.

많은 연대고리로 우리편 배심원을 확보하라.

자본에 굴복하지 않은 지식인의 후원자와 그들이 활동할 공간이 절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많은 지식인들을 실용적이거나보수적으로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의 전문직 프로젝트는 가뭄 끝의 비가 될 것이다. 실제 교육은 다양한 교과목의 수를 보면알 수 있듯,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지식영역을 망라한다. 또 교육은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거의모든 인문사회과학을 망라한다. 따라서 전교조는 교육을 매개로 현존하는 거의 모든 학문, 예술분야의 진보적인 학자와 작가들의 후원자이자 무대가 될 수 있다.

실제 전교조가 교육계만 대표한 적은 거의 없었다. 1990년대 전교조는 모든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운동 세력들이 모여들 공통의깃발을 제공해 주었다. 2000년대 전교조는 이와 반대로 모든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세력들이 단결할 공통의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이제 전교조는 다시 진보적이고 양심적이고 순수한 학자들과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되어주어야 한다.

교사가 주장하는 이익은 물질 이상의 것이라야 한다.

전교조가 조합원의 이익을 도모한다 하더라도 그 이익은 물리적인 것이 우선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적절한 수준의 임금과 적당한 량의노동시간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전문직 운동은 여론이라는 배심원에게 사형선고를 받는다.
전교조가 주장하고 옹호해야 할 교사의 이익은 주로 위신, 명예와 관련되어야 한다. 이는 비록 박봉이더라도(사실 박봉도 아니다),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이 보람이 있도록, 또 교사가 이런 일에 전념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의미한다.
특히 교사가 교사로서 늙어가면서도 성장할 수 있고, 축적된 업적을 보람있게 회고할 수 있는 그런 여건들을 확보해야 한다.수석교사라는 명예직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또 교대, 사대에 압력을 가해 충분한 연구와 경력이 있는 교사들이 교대, 사대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사양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로서 커리어를 쌓아갈수록 보람과 기쁨을 느낄 계기들이 있어야 한다. 평교사로 늙어감이 보람있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만으로는곤란하다. 이를 이끌어낼 계기도 필요하고 보상도 필요하다. 이는 중년 조합원 탈퇴의 원인이기도 하다. 모든 교사를 조합이동등하게 보호하려는 무분별한 평등주의는 위험하다. 전교조는 성장하고자 하고 전문성과 책무성을 지키고자 하는 교사에게 든든한지원군이 되어야 한다.

전문직으로서의 대우는 높은 소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업무에서의 폭넓은 자율성이다. 물론 이 자율성은 강한 책임과관계되어야 한다. 즉 전교조는 교사의 업무에서 폭넓은 자율성을 요구하면서, 책무성과 관련한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전문성 갱신을 위해 교수에게는 연구실적을 요구하지만, 교사에게는 연수 참여를 요구한다. 이는 교수는 스스로 공부하지만교사는 강제로 시켜야 공부한다는 대단히 모욕적인 처사다. 따라서 전교조는 연구실적, 연수시간, 사회활동 등을 포괄한 전문성학점제를 요구해야 한다. 즉 논문을 발표하거나, 연수를 받거나, 구체적인 사회활동을 하거나 모두 학점으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그리고 그 논문발표 학술대회나 학술지, 연수프로그램, 사회활동 프로그램 등을 책임지고 마련해야 한다.

아무리 참교육 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사라 하더라도, 자신이 어떤 공동체, 어떤 전제된 전체 집단에서 역할을 하고, 또 그 집단에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소외된다. 이것은 마르크스 소외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유적 존재로서 인간의 문제다.
전교조는 교사들에게 이 소외를 극복하고 의미있게 참가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 주어야 한다. 즉 평조합원이 자신이 조합을움직이고 자신이 조합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인간은 이런 공공의 삶의 참여함으로써 활기 있는 삶을살 수 있다. 전교조는 교사들에게 폴리스가 되어주어야 한다.
사실 모든 노동조합이 결국 담당했던 역할이 이것이다. 노동조합을 단지 이익집단으로만 본다면 해고나 무노동무임금에도 불구하고맹렬하게 참여하는 노동자의 동기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공동체나 집단을 움직이고 있다는 쾌감에 그 활동을 하고있는 것이다. 만약 조합마저 간부위주로 움직이면서 평조합원을 소외시킨다면 그 조합은 존재의 가장 중요한 근거를 망실하는 것이다.

투쟁 방법도 교사다와야 한다

전문직 조합은 투쟁방법, 운동방법에서 이미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 생태운동이 보편화된 계기가 된 것은 3보1배였다.이는 비폭력적이고 우아하며 생태주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훌륭한 투쟁방법이었다.  무조건 많은 수가 모여서 힘이 형성되면힘으로 밀어붙여 이길 것이라는 무식한 발상을 버려야 한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모든 민중이 같이 모여들 전선은 없다. 어차피일부만 참여하고 나머지는 방관자나 배심원이다. 문제는 이 배심원을 어떻게 설득해 내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는 교사들의 조합이라는 특성에 맞도록 투쟁해야 한다. 단순 노동자는 업종과 무관하게 노동자로 불리는 표준화된 영역이다. 그러나 전문직은 업종에 다라 다른 관점과 기준이 적용된다. KTX승무원들의 파업농성은 많은 동정표를 얻는 반면 간호사들의 파업농성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간호사가 하는 업무의 속성이 여론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잘 이용한다. 이들은 노동자들을탄압할 때는 무자비한 폭력과 무노동 무임금 같은 순전 물질적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이들이 교육계나 문화계를 침탈할 때는 항상학술적인 형태를 취한다. 논문으로, 데이터로 공격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전교조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학술적인 발표회장을 물리적 완력으로 공격하고, 삭발 단식에 농성 난입. 이런 모습은 교사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교사들이 교사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투쟁할 때 배심원들은 고개를 돌린다.

물론 어떻게 싸우는 것이 교사스러운 것인지 여기서 답을 낼 수는 없다. 우선 일상적인 학술발표대회, 콜로키움 등이 전교조의 이름으로 많이 개최하고, 여러 학술, 문화 행사에 전교조가 패트론으로 참여하고, 각종 지자체의 봉사활동에 적극 조합의 이름을 걸고 나서는 등 이미징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이런 일상적인 이미징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전술이 될 것이다. 이런 이미징이 누적되었을 때 대규모 집회가 아니라대변인의 논평 한마디가 더 위력적이 될 것이다. 이때 대변인 논평이 붉은 머리띠 매고 격앙된 어조로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됨은물론이다. 지적인 유머도 포함되어야 하며, 고전으로부터의 적절한 인용과 교훈적인 경구도 다소 포함되어야 한다.
만일 집단행동이나 집회가 필요하다면 청소년이나 어린이에게 보여주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훌륭한 퍼포먼스로 기획해야 한다.

교사는 투쟁을 할 때도 교육을 하는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우리선생님이 가두에서 머리띠를 하고 주먹을 하늘로 휘두르며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교육적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누가 봐도 “아, 저들은 무척교사스럽다”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전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 전술의 개발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도대체 전술과운동방법을 연구하지 않고, 슬로건만 좋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전교조는 교사다운 전술을 연구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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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05/07 00:19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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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koong21 at 2008/05/03 13:16
전적으로 공감하는 의견입니다. 20여년 갈라져 분화해왔던 교사운동(노동운동)과 교육운동(교과운동)이 하나로 통합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선생님의 지적이고 용기있는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제 블로그로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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