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자기애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교사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불만으로 가득찬 집단으로 나타난다. 전교조와 한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2001) 전체 교사의 68% 이상이 불만을 표시했다. 그 중 가장 큰 불만 요소가 임금이며 그 외 근무환경, 사회적 평가 순으로 불만을 표시했고 직장 안정성에 대해서는 11%만 불만을 표시 하였다.
이를 해석하면 교사들은 자신들의 직무에 대해 대단히 불만족스럽지만 다만 고용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견디며 학생을 교육하고 있다는 비참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불만에 가득찬 그러나 단지 해고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성의한 교사들에게 역시 만만치 않게 불만에 가득한 학생들을 맡겨 둔다는 것은 거의 부조리에 가깝이다.
그러나 불만의 원인이 임금>근무환경>사회적 평가의 순서라는것이 더 큰 문제다. 통계청이나 노동부등의 조사에 따르면 교사는 결코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교사들은 오직 임금에 대해서만 볼만을 터뜨린다. 교사의 지위 하락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수업 노동의 탈 지식화는 전교조가 질문 문항에도 포함시키지 않을 정도로 교사의 관심 밖에 있다. 이를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면 교사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성의도 없으며 단지 튼튼한 고용 안정성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거기에 높은 수준의 임금마저 기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교사집단의 자기 성찰 부족과 무지의 증거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교사가 사회적인 피해자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교사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차단당했고, 마침내 자신들의 본질마저 무지의 베일에 의해 차단당한 것이다. 이 베일을 교사 스스로 펼쳤다고 볼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무지의 베일 속에 교사가 머무르고 있는 동안 교사는 국가 기구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 조종될 수 있는 관료제 집단의 최 말단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료제 집단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교사의 불만은 엉뚱하게 임금이라고 하는 영역으로 터져 나오고, 이 분출은 마치 임금만 인상되면 나머지는 다 해결될 것 교사들의 의식을 호도하였다.

학생은 교사들로 하여금 자신이 관료제 집단의 최종 소모품이 아니라 마치 상당한 권위와 권력을 지닌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소재로 활용되었다. 아직도 근절되지 않는 학교내의 각종 학생 노동력 동원에서 교사들은 이른바 감독을 한다. 물론 이 노동 감독에 교육이니 지도니 하는 미사여구를 붙이기는 한다. 냉난방 장치도 교장실이 가장 먼저, 다음이 교무실, 교실이 가장 나중 순서로 가동되며 부지불식간에 교장 등 교육관료> 교사>학생이라는 권력 서열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을 오도한다. 이는 학생을 위해야 할 교사가 학생에 대립해 서게 만든다. 학생이 자유롭고, 학생이 많은 권익을 확보할수록 교사도 자유롭고 많은 권익을 확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끊임없이 교사와 학생의 권력투쟁의 장으로 바꾸어 버린다. 교사들은 자신의 권력이 아니라 자신 뒤에 있는 다른 집단의 권력을 위하여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대부분 망각한다.

교사들은 관료제의 말단이라는 위치를 “안정된 고용”이라는 장밋빛 표어와 교환하였다. 그리고 최근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는 학생들의 권익, 교사 학생의 민주적인 인간관계 등을 “교권침해”라고 부르며 저항하고 있다. 도대체 촌지를 음지가 아닌 공적 담론으로 만들어 비판하고 근절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야만적으로 가해지는 폭력행위를 “지도”가 아니라 “체벌”(이것도 지나치게 부드러운 표현이다)이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것이 왜 교권 침해가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교장 한 사람이 교사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학교의 운영방침을 멋대로 움직이는 것, 교장과 서무주사(부장이 아니다.)가 마땅히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데 사용되어야 하는 자금을 유용하는 것, 각종 행사, 연수 등에 대한 동원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내용을 가르치게 하면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조차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학생들 앞에 교사를 위선자 거짓말장이로 만들고, 더 나아가 학생들에 대한 비민주적인 통제를 강요하는 것, 이런 것들이 진짜 교권침해가 아니겠는가? 나이 많은 교사들은 젊은 교사들을 윽박질러 많은 시간의 수업을 하게 하고 자신의 수업시간을 줄인다면 이야 말로 교권을 침해가 아닌가?

이러한 진정한 교권침해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교사들이 학생들의 권익을 신장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일제히 교권침해라며 들고 일어섰다. 이는 이들이 말하는 교권이라는 것이 가르칠 권리가 아니라 학생들에 대해 행사하는 무제한의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겠는가? 관료에게 복종하고 학생에게 군림함으로써 자신이 말단이 아니라 중간위치라고 착각하는 허위의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사가 진정 교권을 회복하고 존경받는 스승으로서의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학생들에게 군림할 궁리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다음과 같은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교사들은 마땅히 자신들이 현장에 파견된 연구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의학자와 임상의가 있고, 법학자와 변호사가 있듯이 교사들은 스스로를 교육학자들과 동등하게 보고, 단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주도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임을 자각해야 한다. 물론 이는 자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입증할수 있는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실적을 요구한다. 교사들은 끊임없이 각종 교육 이론이 교육현장에 적용하고 학자들에게 피드백을 주어야 하며 필요한 겨우는 체계적인 비판도 가해야 한다. 따라서 교사는 교과서의 수준과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를 획득하기 위해 수준 높은 독서와 정보검색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의사들이 의학 매뉴얼에 적힌 대로 기계적으로 진료하고 치료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의학자들만의 연구로는 절대 의학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연구하고 실험하지 않으면 절대 교육은 발전하지 않으며 아울러 교사는 지식노동자로 대우 받지 못한다.

둘째, 교사는 자신들이 권위를 유지 할 수 있는 수준의 문화적 자본들을 획득하여야 한다. 문화, 예술에 대한 소양, 생활방식, 사고방식, 언어수준, 의복 수준에 이르기 까지 교사들은 자신들이 하층민이 아님을 문화적으로 입증하여야 한다. 그리고 일반 사무직이나 노동자와 구별되는 전문직으로서의 교사 문화를 형성하여야 한다. 여교사의 경우 모임에서 일상적인 수다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하고 남교사의 경우 술판이나 고스톱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들은 의식적으로 한국이나 외국의 여피 라이프 패턴을 살피고 자신이 할수 있는 한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정부는 자생적 교직단체들에 대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는 여러 비공식 조직이 활성화 될 때 꽃피기 때문이다.
셋째, 교사는 관료제의 말단에 적합한 업무를 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각종 수납대행, 건물, 시설관리, 각종 단순 통계 및 회계업무를 해서는 안되며 그런 일을 요구받을때 교원 단체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점차 삭제시켜 나가야 한다. 또 교사는 일반 노무직에나 해당되는 불신에 기초한 관리를 받아서도 안 된다.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간섭하지 않아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할 집단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고 불신에 기초한 관리감독이 가해질 경우 교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이는 일반 노무, 사무직이 아닌 지식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이다. 아울러 교사는 학교 내에 여러 가지 형태로 온존하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관료제적 모욕의 코드들을 발견하여 이를 지적하고 시정 하여야 한다. 예컨대 부장교사를 “부장님”이라는 칭호 대신 “부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스스로 층층시하의 관료제 말단이 아님을 확인하고 또 확인 시켜야 한다.
넷째, 이른바 관리감독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교사의 업무 조직 체계는 전면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이는 교장의 지시 전달자이자 교사의 불만차단자(교장에게 가지 않게)인 교감제의 폐지에서부터 시작되어 교무실 폐지와 교과별 연구실의 설치, 교무부, 학생부 등 일반 행정 업무를 보는 부서는 사무원으로 충당하고 부장만 교사로 보하는 체제(대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도입 등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교육청의 교육지원센터로의 전환, 더 나아가 교육청의 관료제 억압도구화를 방지하기 위한 광역 교육청 뿐 아니라 산하 교육청의 완전 민선화 등도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들은 각종 교직단체를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고 법제화 시켜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로 교사는 학생과 공동운명체이지 결코 권력과 헤게모니 다툼의 대상이 아님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학생의 권익을 신장 시킬 수 있는 존재는 교사이며 교사의 권익을 신장시킬수 있는 존재는 학생이다. 프랑스의 경우 교사의 계약직화를 저지시킴으로써 교사의 고용을 안정시킨 집단은 교원단체가 아니라 학생단체였다. 프랑스의 학생들은 교사의 고용 불안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며 이는 학습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압력을 가하였고 정부를 굴복시켰다. 사실 교사에 대한 관료제적 억압과 통제는 교사를 통제하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 학생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교사에 가해지는 부당한 통제와 억압은 교사가 재생산 도구임을 거부할 때, 즉 더 이상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압하지 않고자 할 때 비로소 제거 된다. 교사는 학교장이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비판을 하지 못하도록 학교 홈페이지 검열을 요구 할 때(실제로 이런 일은 대단히 자주 있다) 교장이 비민주적인 검열을 자신에게 요구했음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폭로 함으로써 교장을 고립시키던지 아니면 최소한 검열에 무성의하게 임함으로써 자신과 학생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야 한다. 교사는 자신에게 부당한 억압과 통제가 가해질때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히 맞서 싸움으로써 학생들에게 자신이 민주주의라는 거짓말을 가르친 위선자가 아님을 보여야 하며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부당한 억압에 저항할 때 적극 지원하든지 최소한 지지의 뜻을 보여줌으로써 공동 운명체임을 입증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교사자격증의 질적 유지를 위해 노력 하여야 한다. 교사들은 교육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원의 폐교를 교원단체의 이름으로 요구함으로써 교사자격증의 남발을 막고 그 수를 관리함으로써 스스로 자신들의 자격증의 권위를 지켜야 하며, 최소한 상업적이유로 만들었음에 분명한 날림 교육대학원에 승진 점수라는 저속한 목적으로 입학함으로써 교육학 석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한다. 또한 스스로 자정작용을 벌여 무자격 교사를 교단에서 추방하는 일도 벌여야 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교직사회는 대단히 온정주의적이라서 어떤 교사가 전혀 능력과 자질이 없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에도 학교 차원에서 그를 보호하곤 했다. 이러한 일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교사자격증의 권위는 교사 스스로 세우지 않으면 결코 유지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이기적이라고 비판 받기는 하지만 의료계나 법조계는 의과대학 증원이나 사법고시 선발 인원 증원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들의 적절한 권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상의 여섯가지 실천은 물론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교사가 스스로 지식노동자라는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다면, 일반 사무직, 일반 노무직으로 전락하여 전문직이라는 명함이 민망하게 되는 사태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러한 실천들은 크건 작건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왜 교사가 굳이 전문직으로 남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런 교사는 단합된 힘으로 사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건, 변호사건 간에 사람을 다루는 일은 그것이 육신이건 정신이건 권리이건 반드시 전문직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제1보인 인간존중이다. 만약 사람을 다루는 일이나 기계를 다루는 일이나 비슷한 난이도의 작업으로 취급한다면 인간 도구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교사는 육신을 다루는 의사보다 권리를 다루는 변호사 보다 더욱 섬세하고 소중한 영혼과 지성을 다루는 직업이다. 이러한 소중한 직업이기 때문에 교사는 자신이 거기에 합당한 노동을 하고 있는가 또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늘 반성해야 하며 합당한 노동을 할 권리와 합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를 위해 힘써 싸우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6089918');

by 부정변증법 | 2008/05/07 00:17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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