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깡에서의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타이난을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다. 무려 5시 53분에 타이중을 떠나 타이난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컴컴할때 들어오는 기차의 모양이 보기 좋았다???

원래는 여유있게 풍경도 보며 다니는게 기차여행의 묘미고, 또 고속철도역이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일반 열차를 이용한 것이지만 워낙 일찍 올라탄지라 잠자기 바빴다. 잠깐 눈 감았다가 뜬 것 같았는데 벌써 타이난에 도착하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덧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천년이 넘은 문화재가 즐비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어쨌든 타이난은 타이완의 가장 오래된 도시다. 우리 나라로 치면 경주 쯤 될까? 그렇다고 해서 타이난이 타이완의 발상지라는 따위의 말을 하면 안된다. 다만 정부 조직을 갖춘 집단이 처음 도시를 개설한 곳이라는 게 정확한 뜻일 것이다.
사실 타이완에 사람들이 거주한 역사는 무척 길다. 오늘날 태평양 여러 섬들에 거주하는 폴리네시안들의 조상뻘 되는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니. 작은 섬이지만 이들의 명맥은 아직도 남아서 원주민이 무려 9개 부족이나 남았을 정도다. 다만 어떤 통일된 사회를 이루지 않고 마을 단위로 흩어져서 주로 산악지역의 수렵민족으로 살았을 뿐이다. 겨울에 나름 추운 섬 서편보다는 열대기후에 가까운 동편에 몰려 산 경향들이 있었고, 섬 서편은 자연스레 중국(주로 복건성이나 광동성)인들이 건너오게 되었다. 그런데 17세기 경 식민지 경영에 나선 포루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인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경합 끝에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몰아내고 이 섬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들의 통치는 가혹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이곳 타이난에 튼튼한 요새를 지어놓고 원주민이나 한족들을 혹사했다고 한다. 이 때 한족의 명나라가 만주족의 청나라에게 멸망하고 명나라의 부흥을 꿈꾸던 정성공이 부흥운동의 근거지로 한족 유민들을 이끌고 이 섬에 상륙했고, 네덜란드와 싸워 이긴 뒤 망명정부를 세웠다. 이 때 부터를 타이완의 나라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봐야 하니 길게 봐도 400년이 채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난에는 오래된 도시의 느낌을 주는 풍경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우선 기차역부터 남달랐다.

타이난 기차역은 타이중 기차역과 마찬가지로 100년된 건물인데, 깨끗하게 청소하고 보수는 했지만 거의 그대로 남겨두어 마치 타임터널 입구를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바로 뒤의 현대식 빌딩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월인데도 활짝 핀 꽃들과 야자수는 과연 이곳이 열대기후임을 잘 보여주고 있었고, 하여간 풍경이 보기 좋았다.
또 소방서 역시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그런 소방서였다. 소방서 옆에는 시립 문학관이 있었는데 그 역시 고색 창연한 옛날 건물이었다. 비록 수백년 된 건물들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도시의 흥취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저 낡은 소방서를 무시하면 안된다. 1년에 크고 작은 지진이 십수회, 그리고 대형 태풍이 적어도 7~8회는 정통으로 지나가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는 이 나라 방재 능력이 저 안에 들어 있을 터이니...


그런데 문학관 앞에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내 눈길을 끌었다. 자전거 도로가 차도 제일 가장자리가 아니라 중간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도 가장자리는 주정차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도로 가장자리에 그려진 우리 자전거 도로는 걸핏하면 불법주정차 차량에 막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지만, 여기서는 아예 현실적인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 대신 노란 색으로 그려진 자전거 도로에는 차 한대도 얼씬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찾은 문화재는 공쯔마오(공자묘)다. 타이완의 웬만한 도시마다 공자묘, 관우묘, 천후궁은 다 있지만, 당연히 이곳 타이난의 공자료가 가장 오래되었고, 또 문화재 가치도 높다. 전체적으로 숙연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으며, 수백년 된 건물들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역사가 짧을수도 있겠지만, 그 수백년의 향기는 고스란히 다 발휘하고 있었다.


공자묘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한족들이 유달리도 사랑하고 공경하는 관우 사당. 광성제라는 극존칭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관우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관우사당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앞에서 커다란 참외를 깎고 즙을 내어 파는 할아버지였다. 연세가 8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중년 남자가 부지런히 과일을 깎고 다듬고 있었는데, 설명을 보면 수십년째 이 일을 계속 해 왔다고 한다. 정말 자그마한 가게에서 어찌보면 초라해 보이는 그러나 고집있어 보이는 노인이 묵묵히 수십년간 해 온 일을 끈기있기 같은 자리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한 사람이 몇 봉지 이상 살수 없다는 나름의 규칙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끈질긴 장인정신과 사소한 일이라도 자긍심을 가지고 대를 이어가며 계속하는 것이 일본뿐 아니라 타이완에서도 흔한 모양이다. 조금 성공하면 자식은 그 일 안시키고 펜대 굴리게 하려는 우리나라의 풍토와는 좀 다른 뭔가가 있어 보였다. 바로 이런 것들이 비슷한 경제수준, 그리고 최근에 비슷한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사람들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우리 나라보다 좀 더 밝고 안정되어 보이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관우묘 건너편에는 타이완의 발상지라고도 할 수 있는 적간루(츠칸러우)가 있다. 정성공이 네덜란드인을 물리치고, 네덜란드의 요새 위에 중국식 건물을 올려서 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그런데 공교로운 것은 이 개국영웅 정성공이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중국문화와 일본문화의 교묘한 혼합지대가 된 타이완의 오늘날의 모습을 개국 당시에 이미 예견한 것이 아닐까?
츠칸러우 건너편에는 지금은 천후궁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당시의 궁전이 있다. 정성공은 명나라의 마지막 왕족을 데려다가 이곳에 왕궁을 짓고 명나라의 명맥을 잇고 더 나아가 만주족을 몰아낼 힘을 기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나라 왕족들은 왜 만주족에게 패할수 밖에 없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나약하고 무도한 지배계급에 불과했으며, 결국 타이완의 망명정부는 정성공의 아들 대에 청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자, 이제 돌아 볼 곳은 다 돌아 보았으니 이제는 먹을 차례다. 타이완을 대표하는 면 요리가 두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타이페이의 우육면(뉴러우멘)이며 또 하나는 바로 타이난의 단짜멘이다. 아마도 일본의 라면과 같은 뿌리가 아닐까 싶은데, 비교적 엷게 뽑은 면발과 깊은 맛이나는 국물, 고기 고명, 그리고 거기에 큼직한 피시볼 한 덩이와 삐딴 한 덩이를 얹어주고 60원(2200원 정도)을 받았다. 전국에서 가장 이름난 단짜멘 원조집인 두사오웨에서... 아래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큰 식빵의 속을 파서 스튜를 부어 먹는 관짜반이라는 타이난의 간식거리다. 아, 간식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배 터진다. 하지만 배가 터져도 먹어야 한다. 타이완 관광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식사를 마쳤으면 디저트를 해야 한다. 타이완의 디저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누가 뭐래도 두부 푸딩에 시럽을 끼얹어 먹는 두화다. 정말 이 두화는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타이완 음식 중 하나다. 왼쪽에 있는 두화는 우유와 타피오카를 사용한 일종의 버블 두화? 오른쪽에 있는 것은 단팥과 시럼을 사용한 전통 두화다. 어느 것이나 다 맛있다. 두화 맛의 관건은 단맛이 아니라 두부푸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있는 것이다. 나는 심지어 홍콩에서 오직 두부 한덩이에 설탕 좀 얹어주는 극 심플 두화를 먹어본적도 있다. 두부가 디저트가 될 정도로 감미롭다는 것.. 생각만해도 흐뭇하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가?


원래는 여유있게 풍경도 보며 다니는게 기차여행의 묘미고, 또 고속철도역이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일반 열차를 이용한 것이지만 워낙 일찍 올라탄지라 잠자기 바빴다. 잠깐 눈 감았다가 뜬 것 같았는데 벌써 타이난에 도착하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덧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천년이 넘은 문화재가 즐비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어쨌든 타이난은 타이완의 가장 오래된 도시다. 우리 나라로 치면 경주 쯤 될까? 그렇다고 해서 타이난이 타이완의 발상지라는 따위의 말을 하면 안된다. 다만 정부 조직을 갖춘 집단이 처음 도시를 개설한 곳이라는 게 정확한 뜻일 것이다.
사실 타이완에 사람들이 거주한 역사는 무척 길다. 오늘날 태평양 여러 섬들에 거주하는 폴리네시안들의 조상뻘 되는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니. 작은 섬이지만 이들의 명맥은 아직도 남아서 원주민이 무려 9개 부족이나 남았을 정도다. 다만 어떤 통일된 사회를 이루지 않고 마을 단위로 흩어져서 주로 산악지역의 수렵민족으로 살았을 뿐이다. 겨울에 나름 추운 섬 서편보다는 열대기후에 가까운 동편에 몰려 산 경향들이 있었고, 섬 서편은 자연스레 중국(주로 복건성이나 광동성)인들이 건너오게 되었다. 그런데 17세기 경 식민지 경영에 나선 포루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인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경합 끝에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몰아내고 이 섬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들의 통치는 가혹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이곳 타이난에 튼튼한 요새를 지어놓고 원주민이나 한족들을 혹사했다고 한다. 이 때 한족의 명나라가 만주족의 청나라에게 멸망하고 명나라의 부흥을 꿈꾸던 정성공이 부흥운동의 근거지로 한족 유민들을 이끌고 이 섬에 상륙했고, 네덜란드와 싸워 이긴 뒤 망명정부를 세웠다. 이 때 부터를 타이완의 나라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봐야 하니 길게 봐도 400년이 채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난에는 오래된 도시의 느낌을 주는 풍경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우선 기차역부터 남달랐다.

타이난 기차역은 타이중 기차역과 마찬가지로 100년된 건물인데, 깨끗하게 청소하고 보수는 했지만 거의 그대로 남겨두어 마치 타임터널 입구를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바로 뒤의 현대식 빌딩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월인데도 활짝 핀 꽃들과 야자수는 과연 이곳이 열대기후임을 잘 보여주고 있었고, 하여간 풍경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문학관 앞에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내 눈길을 끌었다. 자전거 도로가 차도 제일 가장자리가 아니라 중간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도 가장자리는 주정차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도로 가장자리에 그려진 우리 자전거 도로는 걸핏하면 불법주정차 차량에 막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지만, 여기서는 아예 현실적인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 대신 노란 색으로 그려진 자전거 도로에는 차 한대도 얼씬하지 않았다.



공자묘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한족들이 유달리도 사랑하고 공경하는 관우 사당. 광성제라는 극존칭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관우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관우사당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앞에서 커다란 참외를 깎고 즙을 내어 파는 할아버지였다. 연세가 8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중년 남자가 부지런히 과일을 깎고 다듬고 있었는데, 설명을 보면 수십년째 이 일을 계속 해 왔다고 한다. 정말 자그마한 가게에서 어찌보면 초라해 보이는 그러나 고집있어 보이는 노인이 묵묵히 수십년간 해 온 일을 끈기있기 같은 자리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한 사람이 몇 봉지 이상 살수 없다는 나름의 규칙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끈질긴 장인정신과 사소한 일이라도 자긍심을 가지고 대를 이어가며 계속하는 것이 일본뿐 아니라 타이완에서도 흔한 모양이다. 조금 성공하면 자식은 그 일 안시키고 펜대 굴리게 하려는 우리나라의 풍토와는 좀 다른 뭔가가 있어 보였다. 바로 이런 것들이 비슷한 경제수준, 그리고 최근에 비슷한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사람들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우리 나라보다 좀 더 밝고 안정되어 보이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관우묘 건너편에는 타이완의 발상지라고도 할 수 있는 적간루(츠칸러우)가 있다. 정성공이 네덜란드인을 물리치고, 네덜란드의 요새 위에 중국식 건물을 올려서 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그런데 공교로운 것은 이 개국영웅 정성공이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중국문화와 일본문화의 교묘한 혼합지대가 된 타이완의 오늘날의 모습을 개국 당시에 이미 예견한 것이 아닐까?




식사를 마쳤으면 디저트를 해야 한다. 타이완의 디저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누가 뭐래도 두부 푸딩에 시럽을 끼얹어 먹는 두화다. 정말 이 두화는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타이완 음식 중 하나다. 왼쪽에 있는 두화는 우유와 타피오카를 사용한 일종의 버블 두화? 오른쪽에 있는 것은 단팥과 시럼을 사용한 전통 두화다. 어느 것이나 다 맛있다. 두화 맛의 관건은 단맛이 아니라 두부푸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있는 것이다. 나는 심지어 홍콩에서 오직 두부 한덩이에 설탕 좀 얹어주는 극 심플 두화를 먹어본적도 있다. 두부가 디저트가 될 정도로 감미롭다는 것.. 생각만해도 흐뭇하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가?









덧글
참 자세히 적어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