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0일
두 재판... 괴물 만들기. 정치의 시작

하나는 촛불 참가자에게 집시법 관련 무죄가 선고된 재판이었다. 또 하나는 용산 참사 농성자들에게 유죄가 선고되고 징역 6년이 언도되는 재판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근대 국가의 근본적인 한계, 입헌주의, 대의민주주의 종점을 깨닫는다.
여기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조르지오 아감벤이다. 작년에 읽었던 그의 저서 "호모 사케르"가 떠오르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로마법에서 정의된 신성한 인간이란, 희생양(제물)으로 삼을 수 없지만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이미 신의 소유이므로 희생양(제물)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고, 인간 공동체의 법/권리의 보호 바깥에 위치하기에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영역에서도 배제된다. 혹은 이렇게 배제되는 조건 하에서만 공동체 안에 포함된다. 그는 예외적인 존재이며, 아감벤에 따르면 이런 예외적인 조건을 선포하는 능력이 바로 국가권력의 본질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상황은 매우 특별하다. 테러와의 전쟁, 혹은 좌파 용어를 사용하면 위험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은 예외적인 조건을 선포하는 특별한 능력에 기반하여 존립되었다. 그러나 위험이 도처에 널려있고, 보편화되어버린 세상, 예외가 정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국가권력은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이렇게되면서 권력은 이제 미시적인 현상이 된다. 예외적인 것 바깥에서 안전하게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시민(즉, 일부를 즉 호모사케르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을 시민이라고 규정할 수 있었던)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잠재적인 위험으로, 잠재적인 예외로 간주된다. 수용소는 전 시민을 대상으로, 전 영토로 확장된다.
즉, 시민은 없다. 시민이 없으면 입헌주의 국가도 없고, 하버마스가 말한 정당성의 위기가 시작된다. 국가가 정당성을 회복하려면 예외를 선포할 수 있는 그 권능을 회복해야 한다.
여기서 아감벤과 비슷한 논지를 펼친 랑시에르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는 이제
"도덕적 분개를 일으키기에 가장 알맞게 만들어진 이 전시, 타자에게 도래한 것에 대한 고통, 고문하는 자에 맞선 공허한 증오, 이는 더 비밀스럽게 자주 이 타자의 입장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을 만들고 때때로 우리에게 고통받는 존재를 조심성없이 환기하는 자들에 대한 짜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국가는 누가 호모사케르인가를 자기가 결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권력이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했다.
촛불은 시민이다. 그러나 용산 철거민은 시민이 아니다.
촛불은 정상성의 범주에 넣어주마. 그러나 용산 철거민은 배제하겠다.
그러니까 촛불 들었던 사람들아, 너희들은 용산 철거민(그리고 어젯밤의 동대문 노점상)들과는 영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니 안심하고 기꺼이 내 품에 오라(포섭하겠다).
그리고 이제 국가는 계속하여 누가 시민이고 누가 호모사케르인지 나누려고 할 것이다. 최근 별안간 강화된 이주노동자의 추방. 불체자라는 신조어까지 유포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작년 촛불 세력의 상당수가 불체자에게 적대감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 이 모든 것이 범상치 않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조만간에 군가산점 부활 논의가 일어나면 여성을 배제하려 할 가능성이 크고, 계급이 아닌 신분이 되어버린 비정규직들도 그렇게 내몰릴 것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지금 자신들을 정상성의 범주에 넣어달라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외 이런 저런 정상성, 시민의 범주 나누기를 통해 기존의 계급, 계층의 구획을 재정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저런 소수자, 배제되는 집단과 정체성을 공유하려 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려는 노력 속에서 진정 참으로 정치적인 것이 출현할 것이다. 이미 이들과 공통성을 창출하기 어려워진 기존의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은 더 이상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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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30 11:14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2)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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