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사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10.26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박정희 기일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10.26 사태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 나라 민주화 역사에서 중요한 날일 것이다. 뭐가 되었든 간에 한국의 현대사는 박정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분명하다. 그러니 그는 정말 그 때 그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박정희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말이 몹시 거슬린다. 이는 현재 민주화된 칠레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피노체트 향수와 비슷하리라. 박정희가 경제발전 시켰다고? 저 잔혹한 피노체트도 경제 발전시켰다. 하지만 칠레 사람들은 여전히 피노체트 보다는 그의 총칼앞에 희생된 아옌데를 더 존경한다. 지금도 아옌데의 무덤과 기념비 앞에는 헌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의 박정희 향수는 참 부끄러운 일이다. 박정희는 향수의 대상이면서 유신에 저항하다 목슴을 잃은 장준하 같은 분들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 말이다.

박정희의 재평가라.... 다음의 사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까?

"이 사람이 권력을 잡기 전만 해도 이 나라는 주변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오랜 내전의 상처로 허덕이고 있었다. 또한 여러 정파들간의 소모적인 정쟁으로 정부도 비효율적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그는 확고한 미래 발전 비전을 가지고 강력한 추진력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하였으며, 소모적인 정파들을 정리하였고, 이러한 개혁과 발전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소탕하였다. 마침내 20년만에 이 나라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스탈린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스탈린을 평가하면 이런식의 평가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누구도 스탈린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하지 않으며, 스탈린에게 향수를 느끼지도 않는다. 왜? 세상에는 경제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를 미끼로 인권을 유린한 지도자는 공과 과의 양면성을 가진 지도자가 아니다. 다만 독재자일 뿐이다.

다음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좌빨 사상가가 쓴 글이 아니라 아주 순수 자유주의자인 이사야 벌린 이 쓴 자유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중 두번째 에세이에 나오는 대목이다.


"“객관적 이성”을 주장한 철학자들은 감각을 가진 모든 존재의 가슴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발견될 수 있는 합리적인 요구에 자기들이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맞추어 이루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식의 민주적 낙관론을 거부하고, 헤겔주의자의 목적론적 결정론에 등을 돌리는 대신 보다 자유의지론에 가까운 철학을 지향하면서도, 사회에 - 더 좋아지도록 하기 위해- 내 합리적 지혜로 내가 고안한 계획, 아마도 대다수 동료시민들의 영속적인 소원에 역행하면서 내 방식을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결코 형체조차 갖출 수 없을 그런 계획을 강제할 수 있다. 또는 이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버리고도, 영감을 받은 예술가, 자기의 독특한 시야에 포착된 패턴에 따라 화가가 색을 섞고 작곡가가 소리를 결합하듯 사람들을 주조하는 예술가인 양 나 자신을 상정할 수 있다. 설사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고통을 받거나 죽더라도, 자기 삶에 내가 강제로 침입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올라가지 못했을 고원한 경지로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모든 독재자, 고문 가해자, 폭력배들이 자기 행위를 도덕적으로 또는 심지어 미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싶을 때 그런 식으로 주장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그들을 위해 해주어야 한다. 그때 그들의 허락이나 동의를 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처지에서는 자기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허락하고 수용하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천박한 평범함, 심지어 자기파멸이나 자살일 것이다. 삶에는 원칙적으로 오직 하나의 정확한 길이 있을 수 있다. 현자는 자발적으로 그 길을 가기 때문에 현명하다고 불린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현자의 힘이 닿는 한 모든 사회적 수단을 통해서 그 길로 끌고 가야 한다.

이것은 사실 우리의 자유주의적 출발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만년의 피히테가 구사했고, 그 뒤로는 빅토리아 시대의 교장들과 식민지 행정관에서 최근의 민족주의 혹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에 이르는 권위의 옹호자들이 활용한 이 주장은 자기 내면의 빛을 따르는 자유로운 개인의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스토아주의나 칸트의 도덕이 가장 강렬하게 항거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합리주의적 주장은 하나의 진정한 해답이 있다는 추정과 함께 개인의 책임과 자기완성을 강조하는 윤리적 신조에서 출발하여 플라톤주의적인 수호자계급 엘리트의 명령에 복종하는 권위주의적 국가로 변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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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0/28 08:35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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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깃발없는 군대 at 2009/10/30 19:54

제목 : 박정희 30주기 추도식에 부쳐
(이 글은 죽은 박정희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글이nb.....more

Linked at LemonTree - What.. at 2009/11/24 15:49

... 뿐만 아니라 댓글들도 수두룩했으니 그야말로 '입을 다무는'것도 아니였고.궂이 최근에 올라온 예 좀 들어주자면,그것도 뉴스비평 상단부에 올라간 게 있긴 있다면 이 글과 요 글이 있으니까.그리고,저 위에 있는 '독재자'들이 좋은 평 받냔 말이다.특히나 '제 3제국의 게르만 민족의 위대하신 밀덕후(?)'이나 '동토의 강 ... more

Commented by 피티라메 at 2009/10/28 09:44
나찌때도 경제가 좋았죠...대공항을 타파했으니까요.
오바버닝한 면도 있지만 독일이 히틀러에 열광한 이유가 있었죠.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10/29 16:11
또 당시 독일은 민주주의를 경험한 역사가 너무 짧았습니다. 우리도...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0/28 09:48
어차피 '돈돈돈' 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쇠귀에 경읽기...(뭐야 임마?)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10/29 16:12
그 사람들은 포기하더라도 다음 세대라도 잘 가꿔야겠죠
Commented by 착선 at 2009/10/28 10:44
그래서 오바마를 포함한 수많은 외국인사들이 '한국을 배우자' 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현실은 좋은 교육표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K모 국가에서 독재자를 찬양하는 것에 대해 서술하시오. 같은 논술문제도 낼수 있을테고 말이죠.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10/29 16:14
반면교사로 배우자는 뜻이겠죠
Commented by 저련 at 2009/10/28 13:27
니체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니체를 대중 철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이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나름의 사상적 전쟁이 필요한 지점으로 생각하고 있고, 주장을 다듬고 있는 것을 제 까페에서 이미 보셨을텐데.. 어쨌든 벌린도 비슷한 우려를 보여주었군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10/29 16:13
니체에 대해서라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독해가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프랑스 학파의 매우 주관적이고 멋대로 식의 니체 해석이 유포되고 있어서 저윽이 우려됩니다. 들뢰즈의 유목주의조차도... 유목주의가 가장 즐거울 집단은 국제 투기 자본일지니...
Commented by 유치찬란 at 2009/10/28 15:29
비참한 말이지만 한국에는 아옌데와 같은 대표 아이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것'이 없는 우리는 재단하지 못하니까요.

박정희는 재평가가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경제부분에서는 훨씬 더 좋은 평가로 바뀔수도 있을지언정(사실 이 부분은 인정합니다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훨씬 더 안좋은 쪽으로 평가가 바뀌어야겠지요. 뭐 사실 현실이 시궁창이니 이런것일지도요ㅋㅋㅋㅋ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10/29 16:14
노통이 아옌데 같은 상징이 될 수 있을까요?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상징은 만들기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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