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례고 민중의례고 다 안하면 그만...


요즘 정부의 행태가 거의 북한을 닮아가고 있다. 이런 식이면 아마 남북통일에서 체제차이 문제는 거의 사라질 것 같다.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중국까지 합쳐서 남북한과 중국이 한 덩어리가 될 날도 머지 않았다. 다음의 뉴스를 보자.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노조가 각종 행사 때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하는 행위를 금지토록 하는 공문을 각급 기관에 보냈다고 23일 밝혔다.  민중의례는 노동운동권 등이 행하는 있는 의식으로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지 않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공무원이 민중가요를 부르고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행위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 신분인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해 국가공무원법 제63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5조의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공무원노조법상 각종 행사를 근무 시간 내에는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행사를 한다면 그건 휴일이거나 근무시간 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때 국민의례를 하던 민중의례를 하던 아니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하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기사를 살짝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게 될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직장내의 각종 기독교 신우회가 각종 행사 때 국민의례 대신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가를 부르는 행위를 금지토록 하는 공문을 각급 기관에 보냈다. ...행안부는 중립적이라야 할 공무원이 특정 종교의 의례를 행하고 신앙심을 고취하는 행위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 신분인 공무원 품위를 손상해...."

분명, 아니 두 경우가 어떻게 같냐는 질문할 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같다. 아니, 오히려 어청수, 공정택 따위들은 공공연하게 근무시간중에 공무원을 상대로 특정 종교적 발언을 나불거렸다. 그런데 공무원은 국민의 봉사자다. 국민들 중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천도교, 무속신앙, 도교, 무슬림 등 수많은 교인들이 있다. 그러니 공무원만으로 구성된 단체에서 행사를 한다면 종교관련 의례를 아예 하지 말던가, 아니면 모든 종교 의례를 다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징계해야 한다.

자, 이 말이 논리가 성립되는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왜냐고?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직무를 이용해서 종교편향 행위를 할 수 없지만, 근무 시간외에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 신앙을 확인하는 의례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다.

그렇다면 민중의례는? 민중의례는 518을 추모하는 임을위한 행진곡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등재된 열사들을 추모하는 의례다. 즉, 이미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기념하고 있는 사건과 인물들을 추모하는 행사다. 그게 딱히 반정부적이라고 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설사 반정부적이라 할지라도 근무시간 외에 반정부적인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생각을 확인하는 의례를 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그게 공무원이든 군인이든간에 마찬가지다. 반정부적인 것과 반국가적인 것은 다르며, 우리 헌법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무원은 대통령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의 적이면 당연히 공무원도 정부와 싸워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 전통윤리다. 그런데 저 행안부의 논리는 마치 "탕왕과 무왕은 신하로서 임금을 공격했으니 역적이다."라는 형식논리를 펴면서 맹자에게 따지고 들었던 전국시대의 군주와 같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국민의례고 민중의례고 다 집어 치웠으면 좋겠다. 어떤 정치공동체에 대한 감정적은 충성을 고취하는 의례나, 아니면 어떤 사상이나 경향성에 대한 신성함을 불러일으키는 의례는 모두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태극기가 자랑스럽지 않은 국민이 있을수도 있는 것이며(사실 나는 중국의 전통 점괘판을 사각형으로 자른 태극기가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 임을위한행진곡이 싫은 노동운동가도 있을수 있는 법이다. 사회운동 보다는 공무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조합활동을 하는 노조원이라면 민중운동과 연결된듯한 민중의례가 거북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례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을 한 순간 거대한 동일체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이런 소수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억압한다. 이 역시 자유에 대한 침해일 것이다.

나는 공무원노조가 이번 일에 직면하여 민중의례를 사수하기 보다는 아예 모든 의례를 생략하고 바로 행사를 시작하는 쿨 한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솔직히 운동권 집회는 지루하고 형식적이다. 민중의례도 뻔하고, 그 다음에 각 단체 대표가 차례 차례 나와서 선동성 발언 하는 것도 식상하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by 부정변증법 | 2009/10/23 18:31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hagi87.egloos.com/tb/155353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Picketline at 2009/10/23 21:52
1.
저도 '국회 내 12지파'가 생각났습니다.


2.
앞부분은 토달 것도 없는데, 마지막 두 문단의 내용에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합니다. 상가에서 문상을 하고,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과 저런 의례적인 행사 의식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의 개념을 지나치게 원자화하는 것이 아닌지?

그리 본다면 웬만한 집단행위들은 '군중심리'를 야기하는 까닭에 개인의 올바른 판단과 생각, 행동을 저해하며 지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아닐지. 조합원에게 노조 선택권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황이라면 '자유의 침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지요.
Commented by 비르투 at 2009/10/23 23:38
처음에 올라온 그 글을 읽으며 공무원이 국가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면 그만이지, 국가의 헤게모니에 충성을 할 것까지야 있나 싶더군요.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실 애초에 국가 헤게모니에 반대한 것도 아니지만요.
Commented by Lucid at 2009/10/24 00:42
반정부와 반국가를 구분하지 못하는(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Commented by 111 at 2009/10/24 01:08
공무원 법에도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되어 있지,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구절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참 원글 쓴 사람이나, 그 밑에 댓글단 슈타인호프같은 사람이나...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