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7일
추천서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요즘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이 극에 달해가고 있다. 아울러서 고등학교 교사들의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 바로 추천서 때문이다. 웬만한 대학에서 교사 추천서를 두개 정도를 요구하면서 이 선생, 저 선생 할 것 없이 추천서 써 달라는 성화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일부 자사고에서도 추천서를 요구하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들도 추천서 때문에 업무가 폭증이다.
여기서 추천서를 쓴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추천하지 않는 추천서, 즉 요식행위, 아무 의미 없는 추천서가 늘어난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사실 그 학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학생을 가르친 교사일수밖에 없다. 한 두번의 시험으로 그 학생의 잠재력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며,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대다가 전문성도 부족한 부모가 알아내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내새끼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수십년 가지고 산 내 몸을 의사가 단 몇분만에 나보다 더 잘 알수도 있듯이, 십수년 길러온 내 새끼를 교사가 단 몇 달만에 더 잘 알수 있는 것이다. 아니 거의 대부분 더 잘 안다. 이를테면 교사가 "당신 아들은 문제아다."라고 말할때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 이 아이는 착한 아이다."라고 부모가 반발한다면 95%의 확률로 그 학생은 문제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교사 추천서가 입시에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 '추천서'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이름이 '소견서'가 아닌 것이다. 만약 소견서라면 이 학생이 과연 이 학교 이 학과, 이 전공에 적합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교사의 전문적인 의견을 묻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추천서다. 추천서는 이 학생을 이 학과, 이 전공에 추천할만한 사유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지원자가 채워 넣어야 할 여러 서류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추천서가 없으면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 지원을 했기 때문에 추천서를 써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바로 이런 인식이 자리잡혀야 한다.
영화 '페임'에 보면 매우 훌륭한 교사가 제자가 발레단에 입단하는 데 필요한 추천서 작성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발레단에 들어갈만한 자질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천할만한 사유가 없는 것이다. 추천할만한 사유가 없는데 어떻게 추천하는가? 미국에서 교사 추천서 제도가 값어치를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교사의 추천서가 남발되지 않기 때문이며, 써주지 않는다 해서 문제삼지 않기 때문이다. 서운하기야 하겠지만 문제는 교사에게 있는게 아니라 그런 자질이 모자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당한 순서는 추천서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지원서 다 작성한 다음에 추천서 채워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다. 만약 추천서를 받지 못했으면 깨끗하게 지원을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사가 먼저 추천서를 써 주었기 때문에 그 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이런 식의 대화도 가능해야 한다.
교사:"나는 네가 서울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천서를 써 두었다."
학생: 저,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로는 안될까요?
교사: 거기 지원할 생각이면 추천서를 써줄수 없다. 그냥 정시 봐라. 너는 경상계열에는 재주가 없다. 하지만 너는 뛰어난 인문적 소양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깊이 고민해 보거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역사전공으로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정시로 경제학과 갈 것인지....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이것을 과연 수용할 수 있을까? 온 사방에서 원서 대여섯개 써 가지고 와서는 추천서 빨리 끼워 넣어달라고 떼를 쓰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모든 지원자들이 모두 추천서 받는데 성공한다면 도대체 그놈의 추천서는 무슨 가치를 가지게 될까? 결국 원서와 함께 제출하는 첨부문서에 불과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나라 실정과 문화에서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 새로운 입시제도가 정착하려면 결국 다음의 두 가지 조건
1) 교사는 잠재력이 있는 학생만 추천서를 쓰고, 아닌 경우에는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2) 학생과 학부모는 거절당했을 경우 그것을 수긍해야 한다.
이게 정착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입학사정관 한 사람이 600명을 봐야 하는 고달픈 상황도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도 긴 길이다.
물리적으로 한 학교, 혹은 한 교사당 추천서 수를 제한하는 그런 지경까지 가기 전에 먼저 문화적으로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 책임은 아무래도 학부모 쪽이 큰 것 같다. 그 동안 한국의 학부모들은 요구만 할 줄 알았지 책임질 훈련과 태세가 부족했던것도 사실이다. 학부모를 교육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 왕으로서의 소비자, 수요자로 보는 한 이 꼬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 역시 교사와 책임을 분담하는 교육자로 간주하고 그런 책임을 짊어지게 만들때 이 나라의 교육문제는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시장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조차 학부모가 자신을 수요자라고 주장하고 소비자는 왕 타령 하는 것이 양식없는 짓거리인 판에 어디서 이 해괴한 논리가 들어왔는지....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여기서 추천서를 쓴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추천하지 않는 추천서, 즉 요식행위, 아무 의미 없는 추천서가 늘어난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사실 그 학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학생을 가르친 교사일수밖에 없다. 한 두번의 시험으로 그 학생의 잠재력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며,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대다가 전문성도 부족한 부모가 알아내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내새끼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수십년 가지고 산 내 몸을 의사가 단 몇분만에 나보다 더 잘 알수도 있듯이, 십수년 길러온 내 새끼를 교사가 단 몇 달만에 더 잘 알수 있는 것이다. 아니 거의 대부분 더 잘 안다. 이를테면 교사가 "당신 아들은 문제아다."라고 말할때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 이 아이는 착한 아이다."라고 부모가 반발한다면 95%의 확률로 그 학생은 문제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교사 추천서가 입시에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 '추천서'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이름이 '소견서'가 아닌 것이다. 만약 소견서라면 이 학생이 과연 이 학교 이 학과, 이 전공에 적합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교사의 전문적인 의견을 묻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추천서다. 추천서는 이 학생을 이 학과, 이 전공에 추천할만한 사유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지원자가 채워 넣어야 할 여러 서류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추천서가 없으면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 지원을 했기 때문에 추천서를 써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바로 이런 인식이 자리잡혀야 한다.
영화 '페임'에 보면 매우 훌륭한 교사가 제자가 발레단에 입단하는 데 필요한 추천서 작성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발레단에 들어갈만한 자질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천할만한 사유가 없는 것이다. 추천할만한 사유가 없는데 어떻게 추천하는가? 미국에서 교사 추천서 제도가 값어치를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교사의 추천서가 남발되지 않기 때문이며, 써주지 않는다 해서 문제삼지 않기 때문이다. 서운하기야 하겠지만 문제는 교사에게 있는게 아니라 그런 자질이 모자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당한 순서는 추천서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지원서 다 작성한 다음에 추천서 채워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다. 만약 추천서를 받지 못했으면 깨끗하게 지원을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사가 먼저 추천서를 써 주었기 때문에 그 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이런 식의 대화도 가능해야 한다.
교사:"나는 네가 서울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천서를 써 두었다."
학생: 저,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로는 안될까요?
교사: 거기 지원할 생각이면 추천서를 써줄수 없다. 그냥 정시 봐라. 너는 경상계열에는 재주가 없다. 하지만 너는 뛰어난 인문적 소양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깊이 고민해 보거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역사전공으로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정시로 경제학과 갈 것인지....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이것을 과연 수용할 수 있을까? 온 사방에서 원서 대여섯개 써 가지고 와서는 추천서 빨리 끼워 넣어달라고 떼를 쓰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모든 지원자들이 모두 추천서 받는데 성공한다면 도대체 그놈의 추천서는 무슨 가치를 가지게 될까? 결국 원서와 함께 제출하는 첨부문서에 불과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나라 실정과 문화에서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 새로운 입시제도가 정착하려면 결국 다음의 두 가지 조건
1) 교사는 잠재력이 있는 학생만 추천서를 쓰고, 아닌 경우에는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2) 학생과 학부모는 거절당했을 경우 그것을 수긍해야 한다.
이게 정착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입학사정관 한 사람이 600명을 봐야 하는 고달픈 상황도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도 긴 길이다.
물리적으로 한 학교, 혹은 한 교사당 추천서 수를 제한하는 그런 지경까지 가기 전에 먼저 문화적으로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 책임은 아무래도 학부모 쪽이 큰 것 같다. 그 동안 한국의 학부모들은 요구만 할 줄 알았지 책임질 훈련과 태세가 부족했던것도 사실이다. 학부모를 교육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 왕으로서의 소비자, 수요자로 보는 한 이 꼬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 역시 교사와 책임을 분담하는 교육자로 간주하고 그런 책임을 짊어지게 만들때 이 나라의 교육문제는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시장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조차 학부모가 자신을 수요자라고 주장하고 소비자는 왕 타령 하는 것이 양식없는 짓거리인 판에 어디서 이 해괴한 논리가 들어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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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9/27 20:1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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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에서는 아쉬발쿰. 내가 대입관계자라도 추천서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겁니다. 혹시 우리제자들 대학 못갈까봐 내신 퍼 주고, 우리 제자들 대학 못갈까봐 추천서 밤새서 40명거 5장씩 써 주는 광경이 훤하네요.
그러나 정말이지 추천서 거절 정말 쉽지 않습니다. 성적도 적성도 택도 없이 가겠다고 우기는 녀석이 있어서 말려봤지만 학부모까지 달려드니 애매하더군요. 게다가 다른 반은 모두 써주는데 왜그러냐는 말에는... 결국 써주긴 했습니다. 추천하지 않는다는 데 체크를 해서. 그런데 글 읽고 좀더 당당하지 못했던 게 부끄러워지네요. 이거 이외에도 사정관 자료를 엄청 두껍게 올 컬러로 제본까지 해서 만들어와서 -심지어 출판까지해서- 옆 친구라도 볼까봐, 당연하죠 스스로 쓴 게 아니니, 한사코 감추던 슬픈 광경들이 너무도 많더군요. 이거에 대한 검증법은 없을까요? 예컨대 공개제라던가... 프라이버시가 문제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