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15일
대체 왜 내가 안타까워야 하나?- 잡설
한길 리서치가 최근에 조사했더니 이명박의 지지율이 50%를 넘었다고 한다. 정책을 바꾼 바도 없는데 바꿀 것이라는 말이나 뉘앙스만 가지고도 이렇게 올릴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도대체 노무현은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50% 지지율의 속내를 보니까 더욱 갑갑해진다. 그건 전반적으로 지지가 상승한 결과가 아니라 원래 이명박을 지지하던 집단의 충성도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70대 이상의 지지율 74%(이러면서도 전라도의 김대중 지지율 욕한다. 이 노인들....), 자영업자의 지지율 60%.... 아마 학력별로 분류한다면 고졸이하 지지율이 70%로 나올 가능성도 크다.
내가 이런 현상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에게 가장 많이 피해를 보고 있는, 혹은 보게 될 집단이 몰표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 자영업자들, 지하상가에서 줄줄이 쫓겨나도, 대형 마트의 공격적인 입점으로 곳곳에서 문을 닫아도, 노점상 철거, 재개발로 사방팔방에서 찢겨 나가도 이놈의 자영업자들의 여당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게다가 저학력층은 자신들의 자녀를 영원히 찌질이로 박아넣을 교육정책을 포탄처럼 쏟아내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아낌없는 몰표를 선사한다. 이게 세계적으로 가방끈 긴 대한민국의 지성 수준이란 말인가?
할렘가를 허우적거리고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심지어 글자도 제대로 못읽는 미국의 흑인들도 누가 자기편이고 누가 남의편인지는 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민주당에게 몰표를 던진다. 히스패닉은 보수적인 카톨릭 신앙 때문에 동성애를 긍정하고 낙태를 찬성하는 민주당과 거리를 둘 뿐이지, 공화당이 자기 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안다. 그들은 뭔가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을 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왜 자신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고졸이라는 대한민국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은 왜 자기들이 부자정당에게 지지표를 던지는지 이유도 대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그 정당을 지지해야만 하는 의무라도 느끼는 것 같다. 옛날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이 일어났을때 사실상 권력을 잃어버린 지주 앞에서도 농민들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것 처럼 이들은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저 집단들이 아닌 다른 집단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큰 결단이라도 내려야 하는 일 처럼 본능적으로 느끼는 모양이다. 어쩌면 유신시절부터 새겨진 상처의 흔적 때문일까?
그리고 엉뚱하게 이명박 정권 들어선 이후 물질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전도된 현상이란 말인가? 집값은 다시 올라가고 있고, 종부세는 돌려 받았고, 재산세도 내렸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에 대해 언짢음을 느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결국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정치를 바라볼때 나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내 이익과 무관하게 올바르지 못한 정책에는 분노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저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엉뚱한 정치적 선택의 원인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공동체 전체의 올바름의 관점이 아니라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다 보니 잔꾀에도 속아넘어가는 것이다.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진정한 자기 이익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데, 시종 이익만 생각하게 되면 눈앞의 허깨비에 홀딱 속아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플라톤의 국가론, 정치가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모두 그 마지막을 교육학에 할애하였다. 시민들이 이익이 아니라 올바름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을때 비로소 공화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어째서 왕께서는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발끈했던 것이다. 통치자들은 올바름의 관점에서 민중들은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조합을, 뒤르켕이 직능조합을 긍정적으로 본 것은 일단 가족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넘어서는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지,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자체를 긍정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좌파들은 완전히 길을 잘못간 것 같다. 계급의 이익을 생각하라고 외친것이 잘못이다. 저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몰라서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다. 그게 자기들에게 이익일것이라 생각했기에. 물론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 몰랐기에 더 속기 쉬웠겠지만... 하지만 그들이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올바름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으려면 교육을 거쳐야 한다. 어른들이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교육운동은 학교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진정 교육운동가로 불릴려면 학교가 아니라 사회의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올바름이라는 말이 몰계급적 소부르주아적 환상이라고 핏대를 세울 좌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가 혁명을 꿈꾸었던 것은 자본주의적 분배가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에게 자본가의 폐지와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폐지도 요구했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는 계급으로서 자신을 소멸시키며, 그럼으로써 계급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들의 이익을 넘어선 그런 올바름의 관점을 계급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이 과연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익을 위해 봉기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훗날 경제투쟁, 정치투쟁의 구별이 나오고 등등한 것 같은데, 에이 머리 아프다.... 대체 이 사회의 살아있는 부정이자 피해의 담지자들이 멍거니 저러고 있는데 왜 내가 이런 고민을 하며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가? 운동가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해명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내가 이런 현상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에게 가장 많이 피해를 보고 있는, 혹은 보게 될 집단이 몰표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 자영업자들, 지하상가에서 줄줄이 쫓겨나도, 대형 마트의 공격적인 입점으로 곳곳에서 문을 닫아도, 노점상 철거, 재개발로 사방팔방에서 찢겨 나가도 이놈의 자영업자들의 여당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게다가 저학력층은 자신들의 자녀를 영원히 찌질이로 박아넣을 교육정책을 포탄처럼 쏟아내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아낌없는 몰표를 선사한다. 이게 세계적으로 가방끈 긴 대한민국의 지성 수준이란 말인가?
할렘가를 허우적거리고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심지어 글자도 제대로 못읽는 미국의 흑인들도 누가 자기편이고 누가 남의편인지는 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민주당에게 몰표를 던진다. 히스패닉은 보수적인 카톨릭 신앙 때문에 동성애를 긍정하고 낙태를 찬성하는 민주당과 거리를 둘 뿐이지, 공화당이 자기 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안다. 그들은 뭔가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을 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왜 자신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고졸이라는 대한민국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은 왜 자기들이 부자정당에게 지지표를 던지는지 이유도 대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그 정당을 지지해야만 하는 의무라도 느끼는 것 같다. 옛날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이 일어났을때 사실상 권력을 잃어버린 지주 앞에서도 농민들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것 처럼 이들은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저 집단들이 아닌 다른 집단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큰 결단이라도 내려야 하는 일 처럼 본능적으로 느끼는 모양이다. 어쩌면 유신시절부터 새겨진 상처의 흔적 때문일까?
그리고 엉뚱하게 이명박 정권 들어선 이후 물질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전도된 현상이란 말인가? 집값은 다시 올라가고 있고, 종부세는 돌려 받았고, 재산세도 내렸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에 대해 언짢음을 느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결국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정치를 바라볼때 나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내 이익과 무관하게 올바르지 못한 정책에는 분노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저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엉뚱한 정치적 선택의 원인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공동체 전체의 올바름의 관점이 아니라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다 보니 잔꾀에도 속아넘어가는 것이다.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진정한 자기 이익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데, 시종 이익만 생각하게 되면 눈앞의 허깨비에 홀딱 속아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플라톤의 국가론, 정치가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모두 그 마지막을 교육학에 할애하였다. 시민들이 이익이 아니라 올바름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을때 비로소 공화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어째서 왕께서는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발끈했던 것이다. 통치자들은 올바름의 관점에서 민중들은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조합을, 뒤르켕이 직능조합을 긍정적으로 본 것은 일단 가족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넘어서는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지,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자체를 긍정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좌파들은 완전히 길을 잘못간 것 같다. 계급의 이익을 생각하라고 외친것이 잘못이다. 저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몰라서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다. 그게 자기들에게 이익일것이라 생각했기에. 물론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 몰랐기에 더 속기 쉬웠겠지만... 하지만 그들이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올바름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으려면 교육을 거쳐야 한다. 어른들이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교육운동은 학교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진정 교육운동가로 불릴려면 학교가 아니라 사회의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올바름이라는 말이 몰계급적 소부르주아적 환상이라고 핏대를 세울 좌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가 혁명을 꿈꾸었던 것은 자본주의적 분배가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에게 자본가의 폐지와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폐지도 요구했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는 계급으로서 자신을 소멸시키며, 그럼으로써 계급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들의 이익을 넘어선 그런 올바름의 관점을 계급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이 과연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익을 위해 봉기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훗날 경제투쟁, 정치투쟁의 구별이 나오고 등등한 것 같은데, 에이 머리 아프다.... 대체 이 사회의 살아있는 부정이자 피해의 담지자들이 멍거니 저러고 있는데 왜 내가 이런 고민을 하며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가? 운동가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해명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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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9/15 14:34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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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혁명보다는 끌리고 멋있는 전략으로 - capcold..
정치권이나, 시민들 사이에서 진보에 대해서 논하는 이야기는 한결 같습니다. 항상 반대하는 세력으로만 비쳐보이고,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이미지를 돌파하자는 전략은 이미 인터넷에서 널리고 널렸습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을 개발하자. 서민 속으로 뛰어들자. 지금보다 더 급진적이고 선명한 색깔을 보여야 한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방법에서만 그치고 정작 전략의 수준이 아닌 대책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 /......more
우리 집은 전통적으로 여당을 찍고, 여당을 비판하면 내 집단이 비판받는것 같은 느낌과 같은 경우 말이지요.
이 두개가 맞물려서 돌아가면 학력이 높아도 벗어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적 투표는 이익을 넘어, 공동체이지만, 그게 안되면 일단 이익이라도 제대로 추구 해야 하는데 그 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죠....
아무튼 재보선때 한번 볼 일입니다.
나라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전체를, 그리고 그 안의 나에게까지 다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깨닫지도 못 합니다. 유권자인 성인들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 필요하죠.